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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of Economic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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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권0호(2007) |수록논문 수 : 7
간행물 제목
42권0호(2007년) 수록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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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말 서울 동막(東幕)의 미곡객주 연구 -창희조합(彰熙組合), 서서동막합자상회(西署東幕合資商會)의 사례-

저자 : 홍성찬 ( Sung Chan Hong )

발행기관 : 경제사학회 간행물 : 경제사학 42권 0호 발행 연도 : 2007 페이지 : pp. 3-31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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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말에 서울의 이름난 객주, 상인, 은행가, 지주였던 김락희, 백완혁, 윤정석, 조창한, 백인기 등이 한강변 동막에서 공동으로 설립, 개편, 운영하였던 창희조합과 서서동막합자상회의 장부를 이용하여 당시 서울지역 미곡객주의 기업설립과 그 운영을 사례연구한 것이다. 그간 이런 종류의 사례연구가 많지 않았고 또 조선후기 이래의 상업발전 위에서 한말에 새로운 기업을 만들고 부단하게 사업영역을 확장하여 갔던 한국 부르주아지들의 내재적 성장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소재라고 생각한다.


This article is a case study of grain merchants in the Seoul region using the ledgers of the Changhui Cooperative and the Seoseo Dongmak Company, Ltd. Located in the Dongmak area along the Han River, thesecompanies were established by Gim Rakhui, Baek Wanhyeok, Yun Jeongseok, Jo Changhan, and Baek Ingi, well-known gaekju, merchants, bankers, and landlords in Seoul during the Hanmal period. The aim is so to examine the internalgrowth of the Korean bourgeoisie by showing how, after the commercial development in the late Joseon period, they established new businesses in the Hanmal period and continuously expanded their operations. Since thereare few such case studies in existing literature, this study aims to make a contribution to this to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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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30년대 일인(日印) 통상마찰과 조선면화증산정책의 연구

저자 : 정안기 ( An Ki Joung )

발행기관 : 경제사학회 간행물 : 경제사학 42권 0호 발행 연도 : 2007 페이지 : pp. 33-70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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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930년대 조선면화증산정책의 전개 배경과 조건 그리고 그 성과를 당시 일본경제가 직면했던 사상 초유의 대인도 통상마찰과 그 해결의 장이었던 日印會商과의 관련에서 검토하였다. 1920년대 후반 조선면작은 당시 세계적인 면화가격의 지속적인 하락으로 증산정책의 전면적인 후퇴와 함께 심각한 부진을 면치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33년 조선총독부는 이후 20개년에 걸친 대대적인 조선면화증산정책을 공포하였다. 이는 1933년 인도정부의 일방적인 대일 통상조약의 폐기와 수입금지적 고율관세 부과로 인해 발생한 일인 통상마찰을 직접적인 계기로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최대 수출시장의 상실위기에 직면한 일본방적업은 전면적인 인도면 불매운동으로 대항하는 한편, 제국내 원면 자급권 구축에 의한 대인도 통상교섭력 확대를 목적으로, 제3차 조선면화증산정책을 재개하게 되었다. 그 결과, 1930년대 조선면작은 20년대 후반과는 달리 미국의 면화감산정책에 따른 세계원면가격의 상승, 조선총독부 주도의 적극적인 증산정책과 시장개입 그리고 산미증식계획의 중지라고 하는 조선내 농업정책의 변화 등을 제 조건으로, 작부면적의 확대와 함께 면화생산량도 크게 증가하였다. 결과적으로, 면화증산정책과 그 괄목할만한 성과는 1930년대 면작농민의 소득 증대로 이어지면서 불황하의 농가경제 안정과 공산품 소비의 구매력 확대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 같은 1930년대 조선면작의 전개와 성과는 식민지기 조선면작의 확대와 감소를 단지 제국의 강제 혹은 면작농민의 자발성만으로 파악해 왔던 선행 연구를 재검토하게 한다.


This paper has investigated the background, conditions, and outcome of Joseon-RawCotton Yield Promotion Policy during the 1930s in consideration of Japan's unprecedented international trade conflict with India and the business of Japan-India association. In the late 1920s, Joseon's raw cotton production experienced recession due to the continuous drop of international cotton price. In 1933, nevertheless,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promoted a 'Joseon-Raw Cotton Yield Promotion Policy' over the period of two decades. This policy was the main reason of the trade conflict between Japan and India in 1933, which included the abrogation of trade treaty and high tariffs by India against Japan. Japan, having faced the risk of losing its largest cotton market, promoted a 'NO INDIAN COTTON' campaign and launched the third Joseon- Raw Cotton Yield Promotion Policy in order to have a better position in its trade negotiation with India. As a result, unlike the stagnant period of the 1920s, the Joseon raw cotton harvest has seen a great increase during the 1930s along with the expansion of acreage under cultivation due to the rise of the international raw cotton price after the reduction of raw cotton production by the US, as well as the active raw cotton production increase policy by the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and the changes in agricultural policy in Joseon (ex: giving up the policy for high production of rice). Due to the raw cotton production increase policy, consequently, the revenue for the raw cotton farmers greatly increased in the 1930s. In turn, the farmers became economically stable and acquired higher purchasing power. In conclusion, this paper has provided a critique of the previous studies which attributed a sharp expansion of Joseon raw cotton harvest in the 1930s either to the Japanese colonial sword or to the raw cotton farmers' voluntary eff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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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해방 전후(1936-1956년) 서울의 물가와 임금

저자 : 박기주 ( Ki Joo Park ) , 김낙년 ( Nak Nyeon Kim )

발행기관 : 경제사학회 간행물 : 경제사학 42권 0호 발행 연도 : 2007 페이지 : pp. 71-105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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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36-56년간 서울의 소비자물가지수, 임금지수 및 실질임금을 추계한다. 한국은행의 소비자물가지수는 1955년부터 발표되었고, 해방 전의 물가와 임금에 관한 기존추계도 1910-38년에 그쳤다. 본 추계로 그 사이의 공백을 메우면 실질임금의 장기계열이 구해진다. 추계에 이용된 품목별 가격 및 직종별 임금 자료는 조선은행(해방 후는 한국은행)의 도ㆍ소매가격 및 임금 자료를 이용하였다. 추계에 사용된 가중치에 관한 정보는 1955년의 생계비조사와 1946년의 업종별 노동자 조사 등을 이용하였다. 추계결과에 따르면, 제조업의 실질임금은 해방 후 급락하여 1948년에 바닥(1944년의 절반 이하 수준)을 지난 다음 급속히 회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일전쟁 이전 평시의 평균 임금수준은 6.25전쟁 이후 1967년까지 평균임금의 82% 수준이었다. 장기적으로 보면 식민지기를 포함하여 1960년대 이전에는 실질임금의 뚜렷한 상승 추세가 보이지 않다가 1960년대 말부터 급속한 상승으로 돌아선 것으로 나타났다.


Using Laspeyres formula, we have created estimates of Seoul's consumer price index, wage index, and real wage for the years 1936-1956. Previous studies have provided several estimates of these indexes for the period 1910-1938. For the subsequent years, the Bank of Korea has computed a consumer price index; however it only commenced from 1955. Our estimate enables us to determine the long-term trend of real wage by linking the gap between the series of the colonial period and of the period after 1955. Price and wage data used for our estimation came from monthly surveys of wholesale prices of consumer goods and occupational wages in manufacturing and construction industries. These surveys were conducted by the Bank of Chosen in the colonial period and by the Bank of Korea after liberation. We also utilized several surveys of living expenses and the numbers of workers employed in each occupation to get a set of base-year weights corresponding to the individual prices and wages. The major results of this study are as follows: (1) real wage sharply decreased after liberation, reached the bottom in 1948 at below half its level achieved in 1944, and recovered rapidly to its pre-liberation level after the Korean War; (2) the peace-time average real wage prior to the Sino-Japanese War (1910-1937) was 82% of the average wage for the period after the Korean War (1953-1967); and (3) from the long term perspective, the end of the 1960s was a turning point, from which Korea entered into a period of rapidly increasing real wage. We failed to find any significant upward trend in real wage before the 1960s, including the colonial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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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영국 산업혁명기 직종구조와 노동이동성, 1750-1850

저자 : 송병건 ( Byung Khun Song ) , 김재호 ( Jae Ho Kim ) , 리쇼테일러 ( Leigh Shaw Taylor )

발행기관 : 경제사학회 간행물 : 경제사학 42권 0호 발행 연도 : 2007 페이지 : pp. 107-140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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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본 고용조정제도의 형성 -사회적 합의과정과 고용안정, 1920-1980-

저자 : 선재원 ( Jae Won Sun )

발행기관 : 경제사학회 간행물 : 경제사학 42권 0호 발행 연도 : 2007 페이지 : pp. 141-165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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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용시스템의 요소 중 하나로 알려진 '종신고용제'는 최근의 연구에 의해 무조건적인 고용보장이 아닌 고용조정을 전제로 한 안정적인 고용제도라는 점이 명확해지고 있다. 이러한 시각에 기초하여 분석한 본 논문은 고용조정방식이 정책적으로 보장되고 노사관계의 파트너로서 노조가 공인된 부흥기에 일본 고용시스템이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고용조정제도의 구성요소 별 형성과정은 먼저, 기업 잔류자의 고용보장을 확보하는 과정이기도 한 '희망퇴직제도'는 전간기부터 시행되어 석유파동기에 정착되었고, 인원정리과정에 대한 '정부의 개입'과 그 결정과정에의 '노동자참여'는 부흥기 이후에 시작되어 석유파동기에 정착되었다. 한편 경영자는 전간기부터 석유파동기에 걸친 각 경기침체기에 일관되게 인원정리를 실시함에도 불구하고 '고용보장의 이념'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러한 분석결과는 일본 고용시스템을 구성하는 제도들이 경기호황기라고 평가할 수 있는 2차대전시기에 형성되었다고 주장하는 최근의 논의에 대해 재고하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고, 또한 일본기업의 고용조정 속도가 유럽과 비교하여서 결코 느리지 않다는 기존연구에 대한 역사적 근거를 제공할 것이다.


Recent studies established that 'lifetime employment'in Japan did not preclude employment adjustment. This article argues that this central feature of the Japanese hiring practice was first introduced by firms and acknowledged by the government during the post-WWII reconstruction period, when trade unions were recognized by management as a partner. Voluntary retirement (kibotaishoku) emerged during the interwar period to mature as an institution in the 1970s. Public intervention and workers participation in employment adjustment process started in the reconstruction period to be routinized in the 1970s. Shedding workers in response to cyclical downturns throughout the interwar and postwar high growth periods, Japanese firms never abandoned the ideology of job security. These findings imply that origins of the Japanese employment system should be found in the postwar reconstruction period, rather than in the Second World War period as is sometimes argued. They are also consistent with the observation that the speed of employment adjustment in Japan was at least as rapid as that in European coun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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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서평(書評) : 『근대 동아시아 경제의 역사적 구조』 (나카무라 사토루,박섭 엮고 지음) 일조각, 2007, 508쪽

저자 : 강진아

발행기관 : 경제사학회 간행물 : 경제사학 42권 0호 발행 연도 : 2007 페이지 : pp. 167-171 (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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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서평(書評) : 제14차 국제경제사대회 참관기

저자 : 이헌창

발행기관 : 경제사학회 간행물 : 경제사학 42권 0호 발행 연도 : 2007 페이지 : pp. 173-175 (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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