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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일본학 update

THE HALLYM JOURNAL OF JAPANESE STUDIES

  • :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 : 사회과학분야  >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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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반년간
  • : 1738-5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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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35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6
간행물 제목
35권0호(2019년) 수록논문
권호별 수록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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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냉전기 오키나와 독립론의 한 사례 -키유나 쓰구마사의 삶과 활동

저자 : 이지원 ( Chi-won Lee )

발행기관 :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한림일본학 35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5-34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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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유나 쓰구마사(중국명 차이쨩)가 평생을 바쳤던 류큐 독립운동은 무엇보다도 광범위한 국제적 활동의 폭과 경력으로 특징지워진다. 하와이 출생, 중국 연원의 가계, 어린 시절부터 오키나와와 동남아와 사이판 등을 오갔고 중국대륙과 대만에서 정치활동을 하며 동아시아 각국 지도자와 교류했던 그의 다채로운 이력과 폭넓은 활동범위를 넘어설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의 반일, 반공, 친중적 독립론은 중화민국 장제스 정부 및 한국 이승만 정부의 지지를 받기도 했다. 1950년대에는 오키나와의 일본 '복귀'에 반대하고 류큐 독립을 지향하는 이승만 정부와 연대활동을 시도하기도 했으며, 이후 박정희 정부 시기에도 반일, 반공활동에서 일정한 연계가 있었음이 확인된다.
그러나 키유나의 류큐독립론은 오키나와 내에서는 큰 지지를 얻지는 못했고 국제적으로도 냉전기의 일시적인 현상에 그쳤다. 탈냉전 후, 또 최근의 신냉전기 단계에서는 현실성이 더 약화되었다. 독립론은 아직 소수의 견해이다. 그럼에도 그의 일본 및 오키나와의 병행변혁의 사상은 유효성을 지닌다. 그는 일본 '복귀'를 지향한 오키나와인들의 정신적 노예상태에 대해 한탄하고 주체적 각성을 촉구하였다. 이는 제국 및 포스트제국의 단계에서도 관철되고 있는 일본의 문화권력을 넘어서는 대항적 문화를 형성할 것을 요구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의 사후 오키나와는 '역사의 교훈'을 잊지 않고 되새기면서, 자율성을 강화하려는 각종 시도를 전개해왔다. 새로운 시대적 여건 속에서 키유나의 꿈은 새로운 방식으로 실현되리라 기대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Kiyuna Tsugumasa(Chinese name, Tsai Chang) was a politician who spent all his life on Okinawan independence movement. His political activity can be distinguished by extensive worldwide activity within large range of personal histories. His anti-Japan, anti-communism, and pro-Chinese independence movement was supported by Chiang Kai-shek and Syngman Rhee. Also, Kiyuna tried to make a joint activity with Syngman Rhee who was against Okinawa's 'return' to Japan. Moreover, it is confirmed that Kiyuna was involved with Park Chung-hee's anti-Japan and anti-communism activities.
However, popularity of Kiyuna's idea was temporary during cold-war and was not popular inside Okinawa. His theory became less realistic in new cold-war. However, his parallel-revolution idea of Japan and Okinawa carries effectiveness. He lamented over psychological slave thoughts of Okinawans who aimed 'returen' to Japan and insisted to awaken independence thoughts. This can be seen as a demand to create counter-culture that is beyond the cultural power of Japan, which is secured in the imperial empire and post-empire stages. After Kiyuna's death, Okinawa has been attempting to develop independency within ruminating the 'historical lesson'. In the new periodic conditions, there can be expectations that Kiyuna's dream may become reality in new w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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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요코하마의 가네코 후미코: 항구도시를 스친 시선과 근대천황제

저자 : 고토유코 ( Yuko Goto )

발행기관 :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한림일본학 35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5-76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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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새로운 천황이 즉위하면서 일본의 연호가 平成에서 令和로 바뀌었다. 令和라는 단어는 만요슈(万葉集)라는 일본의 가장 오래된 가집에서 따온 것이다. 민족문학의 성격을 띠고 있는 이 가집의 배경에는 근대천황제와 마찬가지로 일본 근대의 민족국가 형성을 위한 문화적 장치로 이용하고자 한 의도가 깔려있다. 본 논문은 근대천황제 완성 후 일본에서 태어난 가네코 후미코(1903-1926)의 “시각”을 통하여 구심적인 자장에 저항하는 정신의 가능성을 묘출한다.
사형을 선고 받고 감옥에 있는 동안, 가네코 후미코는 일본의 전통 작품과는 다른 독창적인 단가를 쓰기 시작했다. 대역죄를 선고받은 인물이 다수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많은 일본인들이 가네코에게 각별한 애정과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당시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언설의 재생산이 작용했을 것이다. 즉, 일반인들에게 그녀 자신의 수기라고 믿고 있는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의 풍요한 세계가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고, 사실보다 “이야기”를 소비하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음을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수기”에서는 중점을 두지 못했던 요코하마에서의 가네코의 유년기에, 처음으로 초점을 맞춘다. 20세기 초 근대화의 길에 들어선 항도 요코하마에서 다양한 “삶”의 레퍼런스를 얻은 경험은 그녀의 이후의 “시각”의 작용에 투영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경험한 이동성은 “혈연”, “성별”, 그리고 “지성”의 경계를 넘어서게 만들었다. 외부의 세계로 뻗어나가는 항구처럼 그녀의 시선은 구심적인 자기장에 매물되지 않았다. 결국, 이러한 시선은 그녀가 일본문화내 유사종교로서의 천황제의 허구를 꿰뚫어 보게 하였다.


With the enthronement of the new emperor, the Japanese era transited from Heisei to Reiwa in May 2019. The word Reiwa is derived from Manyo-shu (the oldest anthology of tanka), and it is based on modern Japan's viewpoint of national literature. However, this viewpoint was invented to create a nation-state such as the modern emperor system of Japan, which was newly created in modern times. This paper thus elucidates the vision of Fumiko Kaneko (1903-1926), whose life displayed a centrifugal movement against the centripetal magnetic field. After being sentenced to death and while in prison, she began writing tanka that were different and unique from traditional Japanese works. Many Japanese are very fond of talking about Kaneko; however, there also exist other prisoners who have committed higher forms of treason. The existing narrative represents a reproduction similar to the discourse about Kaneko's life. 'Nani ga watashi o kosasetaka', Kaneko's autobiography, is thought to possess the key to deciphering this discourse. Hence, this paper focusses on her childhood in Yokohama that is overlooked by her autobiography's influence. Her experiences in the modern port city on its path to development must have accorded her with references to a multifarious vision of herself at the beginning of the twentieth century. The mobility she encountered as a child enabled her to transgress the borders of blood, gender and intellect. Therefore, her perception is never attracted by the centripetal magnetic field in her life; much like the very movement of modernity, it extends outward across the modern port city. Ultimately, this sweeping vision allows her to see through the fiction of the emperor system as a pseudo-religion within the Japanese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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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대 일본의 학제 편성 양상(1868∼1877) : '이학'과 '문학'의 비대칭성에 주목하여

저자 : 허지향 ( Heo Ji-hyang )

발행기관 :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한림일본학 35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77-103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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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868년부터 1877년까지 구 동경대학의 전신 기관이었던 동경개성학교를 중심으로학제 편성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에 관하여 검토한다. 이 때 다음 사항에 주목한다. 첫째, 현재의 '이학'과 '문학'이라는 대칭성은 언제 생겨났는가? 둘째, 근대로 넘어오면서 '理'라는 개념이 특히 학제를 통해서는 어떻게 변모했는가? 본고에서는 한자권에서 최초로 근대 학제를성립시킨 동경대학의 역사에 주목하여 위의 사항들을 검토하였다. 그 결과 다음 사실들이 밝혀졌다. 개성소 시기부터 학과목 규정의 표적이 된 것은 서양의 자연과학 및 기계분야 학문이었으며, 이 학문들이 최초의 근대적 학제인 대학규칙 (1870)에서 '이과'라는 명칭으로 묶인다는사실, 또한 이 때 '문과' 또한 학과목의 상위 범주로 등장하나, 대학본교와 대학남교 각각에서그 개념이 포함하는 내용이 달랐다는 사실, 애초부터 자연과학 계열의 학제화가 목표였던 전문학교 구상에서 '문과'는 곧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근대학제의 정착과정을 살펴볼 때 구 동경대학의 예는, '대학'이 서양의 전문학을 가르치는전문기관이며, 이 때의 전문학이란 자연과학 계열 과목을 뜻한다고 규정했다는 점에서 그 역사성과 특수성을 드러낸다. 이러한 특수성이 한자어 '理'의 새로운 한자권으로의 편입을 가능케했다.


This paper examines how the academic system was organized around Tokyo Gaesung School, which was formerly Tokyo University from 1868 to 1877. This paper examines how the academic system was organized around Tokyo Gaesung School, which was formerly Tokyo University from 1868 to 1877. At this point, note the following:
First, when did the current symmetry of 'Science' and 'Literature' emerge?
Second, how has the concept of '理' changed, especially through the academic system?
The above points were reviewed in this paper, paying attention to the history of Tokyo University, which established the first modern academic system in the Chinese character world. The following facts were revealed as a result. Since the time of Kaeseong-so(開成所), the western studies of natural science and mechanical sceince were defined as the subject of course regulation. And these studies were grouped under the name of “Science faculty” in the first modern academic system “University Federation(大学規則)”(1870). Also, the concept of 'Literature faculty' was included in the top category of the subject of course, but was different in terms of content between the university's main school and the university's south school. Lastly, the 'Literature faculty' was about to disappear from the professional school initiative, which was initially aimed at the natural science based system.
In looking at the settlement process of the modern university system, the example of the old Tokyo University reveals its historicality and speciality in that it stipulates that the 'university' is a specialized institution for teaching Western specialties, and that this specialty means a subject of natural science. This speciality allowed the conversion of Chinese character '理' into new Chinese character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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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마자키 도손(島崎藤村)과 가사이 젠조(葛西善藏)의 대비적 삶과 문학 -부모로서의 삶을 중심으로

저자 : 천선미 ( Chun Sun-mi )

발행기관 :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한림일본학 35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04-126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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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손과 젠조는 본디 친숙한 부모가 아니었으나 다이쇼시대(1912-1926)에 접어들면서는 빈곤과 가족 이산 등 기본적인 의무조차도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1916년 3년간의 도피성 프랑스 체류를 마치고 귀국한 도손은 오롯이 아이들의 양육에 집중한다. 충실한 부모로서의 삶은 이 시기 도손문학의 특징이기도 하였다. 이에 반해 젠조의 경우 일생 빈곤과 가족 이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누구보다 가장으로서 행복한 가정생활을 꿈꿨으나 현실극복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결국 고통받는 가족을 외면하고 자기 파탄적인 삶을 살아가는 일관된 모습을 보였다.
두 사람의 삶과 문학은 시간이 흐를수록 극명한 대비를 보이고 있는데 그 근원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순 없지만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차이점은 '장기간의 외유경험'이었다. 즉, 도손은 3년간의 긴 해외체류 동안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고 자아 성찰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러한 경험이 귀국 이후 새롭게 변화된 삶과 문학의 근원이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일생 무변화·무의지의 삶을 살았던 젠조는 절망과 좌절로부터 빠져나올 기회조차 없었던 것은 아닐까 한다.


Originally, Tōson Shimazaki and Zenzo Kasai were not friendly parents; they suffered poverty and family separation during the Taisho Era (1912-1926), and so they were unable to fulfill even basic duties. However, Tōson concentrated on raising his children after returning from a three-year stay in France, in 1916. Life as a faithful parent was also a characteristic of his literature at this time. In contrast, Zenzo struggled with poverty and family separation in his lifetime. Although he dreamed of living a happy life as the head of a family, he failed to overcome reality. Eventually, he turned a blind eye to his suffering family and seemed to live a self-destructive life consistently. The stark contrast between the respective lives and literature of Tōson and Zenzo became clearer over time. Though it is hard to know exactly what the definite causes were, there was a marked difference between their long-term experiences in overseas. In other words, Tōson focused on himself completely and led a life of self-reflection during his three-year stay abroad―an experience that became the source of his newly changed life and literature. But Zenzo, who lived a life of stasis and unwillingness, might not have had a chance to escape from despair and frust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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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 운동과 미주 한인사회

저자 : 장태한 ( Edward T. Chang )

발행기관 :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한림일본학 35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27-160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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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3.1운동 관련 한인사회에 대한 선행연구를 보충하는 차원에서 첫째, 미국에서 미주한인들의 비공식 법적 위치가 공인된 헤멧 밸리 사건(1913)을 재조명하여 미주한인들이 미국에서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점을 지적하고, 둘째, 3.1운동 이후 전개된 미주한인들의 무장 독립운동사를 서술보고, 셋째, 3.1운동이후 미주 한인 여성들이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한 사실을 강조하고, 넷째, 미국 언론이 보도한 3.1운동 소식 내용의 동향을 소개하고 분석한다.
특히 헤멧 밸리 사건은 미국 거주 한인들이 비공식적으로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으로서 법적 지위를 부여받음으로써 미주 한인들이 일본 식민국민이 아닌 한국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사건이었다. 만주나 러시아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면서 일본 군대와 경찰의 탄압을 받았던 동포들과는 달리, 미주 한인은 일본의 간섭 없이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할 수 있었다. 이는 초기 미주 한인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의 하나이며, 3.1운동 소식을 전해들은 미주 한인들 고무시키기에 충분했으며,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동기가 되었다. 이는 여성에 의한 외교활동과 반일 경제활동 그리고 무장 독립운동으로 이어졌다.


How did March 1st uprising of 1919 impact Korean immigrant community? Scholars and researchers previously focused on how Korean immigrants in the United States raised substantial amount of funds to support independence activities in the U.S. and elsewhere and how successfully launched pro-Korea/anti-Japan public relations campaign.
In this paper, I focus on how the March 1st uprising impacted Korean immigrant community in four previously neglected areas: 1) historical importance of the “Hemet Valley incident” (1913) and how it laid the legal ground for Korean immigrants to continue independence activities in the United States, 2) how Korean immigrants called for direct military action against Japanese militarism, 3) how it engaged Korean immigrant women to independence movements, 4) content analysis of U.S. newspaper reporting of the March 1st uprising. stream before World War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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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남미의 코리안 디아스포라와 고향/조국의 기억 : 한국전쟁기 반공포로와 근대화/산업화를 중심으로

저자 : 김환기 ( Hwanki Kim )

발행기관 :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한림일본학 35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61-187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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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지역의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역사와 문화지형은 기존의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의 해외 이주/이동과 차별화된다. 한국전쟁기의 반공포로와 1960년대/70년대 한국의 근대화/산업화 과정에서 추진된 코리안의 이주/이민이 남미지역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른바 박정희 군사정권은 1962년 '해외이주법'을 제정하고 남미지역의 농업이민을 비롯해 독일로의 광부/간호사 파견, 베트남전쟁의 파병 등을 연쇄적으로 추진했던 것이다. 따라서 남미지역 코리안들의 이민역사와 문화 정체성, 고향(조국) 표상/기억이라고 할 때 한국의 굴절된 근현대사를 비롯해 반공포로의 유폐된 디아스포라적 삶, 조국의 근대화/산업화와 연동된 이민자/이민사회의 자화상을 천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디아스포라의 구심력과 원심력이라는 관점에서 경계의식과 트랜스네이션, 혼종성과 글로컬리즘적 세계관은 반공포로를 비롯해 남미지역(브라질, 아르헨티나)의 코리안 이민자/이민사회를 표상하는 역사적, 사회문화적 지점이다. 문학평론가로 활동했던 황운헌은 끊임없이 중심의 영역에서 주연의 영역으로 월경(越境)하면서 문화적 혼종을 경험하고 열린 세계관을 통해 “이화(異化)된 갖가지 활성적인 요소”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브라질의 한국계 이민자/이민사회에서 보여주는 “축제적인 다이나이즘”은 그러한 개인/단체가 선경험을 통해 주체적으로 발산하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이민선에 함께 올랐던 몇몇 한국인의 이주/이동의 역사, 한국전쟁기 반공포로의 중립국행(브라질, 아르헨티나)에 얽힌 정치이데올로기, 1960년대/70년대의 근대화/산업화와 맞물린 영농이민의 이주/이동의 역사는 그들 코리안 이민자/이민사회의 민족적, 문화 정체성을 대변하는 소중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The history and cultural topography of South American regions can be differentiated from the Late Period of Chosun and the Japanese colonial era and emigration/migration after liberation. This is because the emigration/ migration of Koreans and anticommunist prisoners of war of the Korean War Period was propelled to South American regions during the modernization and industrialization of Korea in the 1960s and 1970s. The military government of Park Chung-hee enacted the 'Overseas Emigration Law' in 1962 and it triggered a domino effect of agricultural immigrates moving to South American regions, miners and nurses being dispatched to Germany, and troops being sent to the Vietnam War. Therefore, the emigration history and cultural identity along with the symbols/memories of the homeland (native country) of Koreans in South American regions excavate self-portraits of the distorted modern and contemporary history of Korea, the diasporic lives of confined anticommunist prisoners of war, and emigrants/emigrant societies linked to the modernization/industrialization of the homeland. In particular, from perspectives of the centripetal force and centrifugal force of diaspora, guard consciousness and translations, hybridity, and glocalism related worldviews are historical and sociocultural points that represent anticommunist prisoners of war along with Korean emigrants/emigrant societies in South American regions (Brazil and Argentina). Hwang Un Heon, who acted as a literary critic in Brazil, said that ceaselessly crossing borders from central domains into main domains allowed him to experience cultural hybridism and meet “various alienated elements” through open worldviews. In actuality, “festive dinism” displayed in Korean emigrants/emigrant societies in Brazil can be considered strength released autonomously by individuals/groups through prior experiences. Also, the emigration/migration history of some Koreans that boarded Japanese emigrant ships in the Japanese colonial era, political ideologies tangled in the travel to neutral countries (Brazil and Argentina) of anticommunist prisoners of war of the Korean War Period, and the history of emigration/movement of agricultural emigration, which meshed with modernization/industrialization in the 1960s/70s can be considered valuable points which represent the national and cultural identities of Korean emigrants/emigrant socie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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