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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문화 update

  • :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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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3회
  • : 1226-5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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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82)~58권0호(2018) |수록논문 수 : 580
탐라문화
58권0호(2018년 06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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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탐라국의 대외교섭과 항로

저자 : 최희준 ( Choi Hee-joon )

발행기관 :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간행물 : 탐라문화 58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7-32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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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탐라국이 주변국들과 교섭하는 과정에서 이용했던 대외항로들을 탐라사의 맥락 속에서 재검토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 탐라국의 시대에 황해를 중심으로 한 항로는 북부 연안항로와 중부 횡단항로, 그리고 남부 사단항로 등이 있었다. 북부 연안항로는 신석기시대부터 이용된 항로였고, 중부 횡단항로는 5~7세기, 남부 사단항로는 9세기 전반에 각각 새롭게 개척되었다. 탐라국은 5세기 후반 백제와 처음 통교하여 약 200년 가까이 신속관계를 맺었다. 660년 백제 멸망 직후 탐라국은 당과 신라, 백제부흥운동군, 그리고 일본 등 주변국들과 새로운 외교 노선의 정립을 모색하였다. 결국, 679년 신라에 복속한 탐라국은 신라가 멸망할 때까지 이 같은 관계를 유지하다가, 그 대상을 바꿔 925년 고려에 다시금 복속하였다. 탐라국과 고려의 관계는 1105년 고려가 탐라국을 자국의 郡으로 편재할 때까지 지속하였다. 탐라국은 백제ㆍ신라ㆍ고려 등 한반도에 위치한 국가들과의 교섭을 위해서 '제주도 북부-추자도-한반도 남서부'를 잇는 連陸航路를 이용하였다. 7세기 중반 당에 1차례 사신을 파견했을 때는 연륙항로를 이용해 한반도 남서부 지역으로 건너간 후, 한반도 서부 연안을 따라 북상하다가 남양만을 거쳐 황해 중부 횡단항로를 이용하여 입당하였을 것이다. 일본과의 교섭에서는 연륙항로를 통해 한반도 남서부 지역으로 건너간 후, 다시 한반도 남부 연안을 따라 이동해 대마도와 이키섬을 지나 규슈 북부지역에 내착하는 연안항로를 이용하였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review the sea routes used by Tamla during negotiations with neighboring countries in the context of Tamla. In the days of Tamla, there were “The Northern Coastal Route”(北部沿岸航路), “The Middle Transversal Route”(中部橫斷航路), and “The Southern Slant Route”(南部斜斷航路) in Yellow Sea(黃海). The northern coastal route was the route used from the Neolithic period, the middle transversal route was developed in the 5th to the 7th century, and the southern slant route was newly developed in the first half of the 9th century. In the late 5th century, Tamla first interacted with Baekje for about 200 years. Immediately after the fall of Baekje in 660, Tamla sought to establish a new diplomatic line with neighboring countries such as Tang, Silla, Japan and the government of Baekje Restoration Movement. In the end, Tamla decided to establish a subordination relationship with Silla in 679, and maintained this relationship until the fall of Silla. The relationship between Tamla and Goryeo continued until 1105 when Goryeo unified Tamla into its own county. In order to negotiate with the countries located on the Korean Peninsula including the Baekje, Silla, and Goryeo, Tamla used a route 'North part of Jeju Island-Chuja Island(楸子島)-Southwest of the Korean Peninsula'. In the middle of the 7th century, when one ensvoy was dispatched to Tang, he crossed the southwestern part of the Korean peninsula using the 'North part of Jeju Island-Chuja Island-Southwest of the Korean Peninsula', then went northward along the western coast of the Korean peninsula, and crossed the middle transversal route. In negotiations with Japan, it crossed the southern coast of the Korean peninsula through the 'North part of Jeju Island-Chuja Island-Southwest of the Korean Peninsula', and then used the coastal route through the Tsushima(對馬島) and Iki Islands(壱岐島) to the northern part of Kyus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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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탐라국의 동아시아 교섭과 신라

저자 : 박남수 ( Park Nam-soo )

발행기관 :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간행물 : 탐라문화 58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33-64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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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의 대외교섭을 문무왕 2년의 탐라국 내항 기사와 문무왕 19년의 신라의 탐라국 경략기사, 그리고 애장왕 2년(801)의 탐라국 조공 기사를 중심으로 살피고, 탐라의 특산물이 신라 대외 교역사상 어떠한 위치에 있는가를 밝히고자 하였다. 이에 문무왕 2년(622) 탐라국의 신라로의 내항은, 백제 의자왕의 항복에 따라 백제의 속국으로서 당나라와 신라에 대한 항복의 의사를 표한 것이었다. 또한 문무왕19년(679) 2월 신라가 사신을 보내어 탐라국을 경략하였던 것은, 탐라국이 백제부흥군과 웅진도독부-왜로 이어지는 동맹의 라인을 유지하던 가운데, 676년 기벌포 해전으로 나당전쟁이 종결되고 678년 4월 신라가 무진주 도독을 임명하여 전라도 일원까지 지배력을 확대하자, 동 시기에 8개월 여 동안 일본에 함께 체재한 신라 사신과 탐라국주 간의 협의가 있었던 데서 가능하였다. 신라는 탐라국에 대하여 안승의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그 독자성을 인정하여 종묘와 사직, 독자적인 내정과 외교권을 보장하였다. 그러나 탐라는 일본에 마지막으로 사신을 파견한 693년 11월 이후 외교권을 박탈당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탐라의 특산물 가운데 珍珠와 玳瑁, 牛毛, 그리고 白芷ㆍ八角ㆍ零陵香등의 향료, 사향, 石決明 등은, 탐라가 백제ㆍ신라와 내왕하면서 고급 물품의 재료나 향료, 약재에 이르기까지 새로이 개발함으로써, 통일신라의 융성한 대외 교역품으로까지 자리매김하게 되었던 것이다.


This article aims to examine the diplomacy of Tamra kingdom focusing on the records on the visit to Silla to surrender in the 2nd year of King Munmu's reign(622), the diplomatic surrender to pressures and threats from Silla in the 19th year of King Munmu's reign(679) and tributes to Silla in the 2nd year(801) of King Aejang. Based on this examination, the author also tried to determine in which place special products by Tamra kingodm took in the trade history of Silla. The visit of Tamra kingdom to Silla, as a subject country of Baekje, appearing in the record in the 2nd year of King Munmu(622) means the expression of its surrender intention to Silla and Tang, according to the defeat of Baekje. However, while the alliance with Tamra kingdom, the revival army of Baekje and Japan was maintained, the war between Silla and Tang ended up in Silla's victory in 676. After that, Silla expanded its domination to the area of Jeolla, appointing the governor of Mujin. Under this situation, the envoy of Silla pressed and threatened king of Tamra to surrender while they stayed together in Japan for 8 months, which made the colonization of Tamra kingdom by Silla possible without wars in February of 679. At first, Silla gave Tamra kingdom a guarantee for independent domestic affairs and diplomatic rights as like the revived Goguryeo. Later, it appears that Tamra was deprived of its diplomatic rights after December of 693 when Tamra dispatched its envoys to Japan. However, Tamra kingdom identified and commercialized new herbs and spices, medicine herbs and high quality materials for trade with Silla. Among special products of Tamra kingdom, especially, pearls, shell of sea turtle, cow hair and herbs such as angelica dahurica(白芷) star anise(八角) Lysimachiae Foenum-graeci Herba(零陵香), musk, senna(石決明) took an important position in trade with unified S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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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탐라의 대일교섭 - 『일본서기(日本書紀)』의 교류기록을 중심으로

저자 : 이유진 ( Lee You-jin )

발행기관 :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간행물 : 탐라문화 58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65-89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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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羅와 日本의 대외교섭이 처음으로 시작된 것은 백제멸망 후인 661년 5월 탐라왕자 阿波伎등이 일본에 貢獻하면서 부터이다. 齊明5년(659) 일본이 당에 파견한 제4차 遣唐使는 入唐하여 당의 황제를 알현하고 견당사의 임무를 수행하였지만 당시 신라와 연합하여 백제정벌을 준비하던 당이 기밀누출방지를 위해 견당사를 유폐하여 귀국하지 못하다 당이 백제를 정복한 후에야 귀국할 수 있었다. 661년 귀국길에 오른 견당사는 조난을 당하여 탐라에 표착하게 되고, 탐라왕자 阿波伎등과 함께 일본으로 귀국하였다. 이후 탐라는 백제의 부흥운동에 참전하였으나 패배하였다. 당시 더욱 긴장이 고조되어 가던 당시 동아시아 정세 속에서 탐라는 일본의 天智朝에 수차례에 걸친 사절파견과 조공을 통한 본격적 교섭을 진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유인궤의 요구에 응해 취리산 맹약의식에 참여하고, 신라ㆍ백제ㆍ왜와 함께 태산의 封禪儀式에 참여 하는 등 적극적 대외교섭을 통해 동아시아의 정세변화에 대응하였다. 다이카개신을 통해 고대율령국가를 완성한 일본은 天武ㆍ持統朝를 거치며 前朝의 친백제정책에서 친신라정책으로 한반도에 대한 대외정책 방침을 전환하고, 이로 인해 고구려멸망, 나당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당과 30년에 걸친 관계 단절이라는 정책을 고수하지만 동시에 탐라와는 더 적극적으로 교섭을 진행하여, 탐라사의 일본파견과 일본사의 탐라파견을 통한 양국의 교류관계는 지속되었다.


The first foreign bargainings with Tamra Kingdom and Japan began in May, A. D. 661, after the fall of Baekje Kingdom, when Prince of Tamra Kingdom, Apagi, made a contribution to Japan. In A. D. 659, the 4th T'ang Dynasty dispatched by Japan to the party was the T'ang Dynasty, which recognized the Emperor of the party and carried out the duty of the diplomatic envoy. However, the party that was preparing for the Baekje Kingdom War, in conjunction with Silla Kingdom at that time, After Baekje Kingdom was conquered, he could get permission from your home country. In A. D. 661, he returned to Japan with prince of Tamra Kingdom's Apagi, etc. Since then, Tamra Kingdom has participated in the Baekje Kingdom revival movement as the Baekje Kingdom, but was defeated. The allied forces from the army for reconstructing Baekje Kingdom and Japanese army were completely destroyed by the allied forces from Silla Kingdom and T'ang Dynasty at the battles of Baekchongang in A. D. 663. As part of the process of establishing self-help measures through active foreign bargainings, such as participating in ceremonies for the Chulisan and participating in the ceremonies of Taesan toward Heaven, Yingue Yu, a general from T'ang Dynasty, went back to Tang together with envoys with Silla Kingdom, Baekje Kingdom, and Japan. In the morning, we conducted several bargainings with the envoys through tribute and Denzy dynasty. According to the Historical Document of Japan, Tamra Kingdom sent envoys almost thirty times. This is regarded as an attempt to seek new alliance with Japan instead of Baekje Kingdom. Japan, which completed the ancient rulling kingdom through the Daika Reform, went through the Denmu and Jitou dynasties and shifted its foreign policy toward the peninsula from the pro-Baekje Kingdom policy of the previous morning to the apology of the Korean Peninsula. This led to the fall of Goguryeo Kingdom, at the same time, Tamra Kingdom continued to engage in more active bargainings, and Tamra Kingdom's dispatch to Japan and the exchange of Japan with Tamra Kingdom in Japan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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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태평양 지역 섬의 군사화와 탈식민, 그리고 커먼즈

저자 : 백영경 ( Paik Young-gyung )

발행기관 :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간행물 : 탐라문화 58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93-122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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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동아시아를 포함하여 태평양 지역의 섬이라는 조건은 이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으며 또 미치고 있는가. 일반적으로 공동자원의 이용에 대한 연구가 지역의 범위를 넘어서 정치사를 다루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나 태평양 지역 섬의 역사와 문화라는 맥락에서 공동자원의 문제는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곧바로 제국과 군사주의의 문제, 그리고 식민화와 탈식민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태평양 지역 섬에서 공동자원의 사유화ㆍ상품화ㆍ군사화를 가져온 가장 큰 계기는 20세기 이후 이 지역에서 이루어진 제국주의의 확대와 식민화 과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역사적 과정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인클로저와 그것을 가능하게 한 논리를 추적해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이 논문에서는 특히 태평양 도서 지역에서 정착형 식민주의와 기지 문제를 보여주는 사례와, 군사주의의 문제를 도외시한 환경보호의 명분이 우리 시대의 또 다른 인클로저가 되고 있는 사례를 함께 검토할 것이다. 그런 후 이 지역이 현대의 민주주의와 시민권의 한계, 자본과 영토의 논리를 살펴보는 데 있어서 중요할 뿐 아니라, 현대 커먼즈 운동의 실천과 이론적 진전을 위해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함을 역설하고자 한다.


How has the condition of an island in the Pacific, including East Asia, been and has affected the lives of people living in this area? In general, research on the commons does not typically deal with political history that goes beyond the boundaries of the region. In contrast, in the context of the history and culture of islands in the Pacific Islands, the issues of militarism, colonization and decolonization cannot be avoided. The largest factor for the privatization, commodification and militarization of the commons in the islands of the Pacific has been the expansion and colonization process of imperialism in the region since the 20th century. Therefore, in this presentation, we will look at what factors in this historical process have made possible the extensive forced migration and forced land acceptance in the islands of the Pacific. In particular, this paper examines the case of settler colonialism and military bases on the Islands in the Pacific and explore the environmental protection ignoring the issue of militarism as another case of enclosure in our time. This paper emphasizes that the history of this region is important not only to look at the logic of modern democracy and citizenship, the logic of capital and territory, but also for the practical and theoretical progress of the modern commons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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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미크로네시아의 미 군사기지와 탈식민주의

저자 : 조성윤 ( Cho Sung-youn )

발행기관 :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간행물 : 탐라문화 58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23-147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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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1945년 이후 70년 동안 미국이 태평양의 섬 지역을 어떻게 지배해왔는지를 미크로네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지배 대상이었던 현지 주민들이 미국의 지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해 왔는지를 평가해 보려고 한다. 특히 전쟁 직후 신탁통치 기간의 미국 지배와 각 섬들의 독립국가로의 변신 과정, 그리고 21세기 현재의 변화를 지역별로 살펴보려고 한다. 괌과 마셜 제도의 주요 섬에 배치된 미군기지는 한국과 일본, 오키나와에 배치되어 있는 미군 기지와 함께 냉전 시기 소련, 중국의 위협에 맞서는 전진 기지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알려져 왔다. 냉전은 1980년대에 끝났다. 하지만 냉전이 끝나고도 30년이 지난 지금, 미군기지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고, 오히려 시설을 보강하면서 유지되고 있다. 미크로네시아 주민들은 지배세력에게 저항하다가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미국의 지배에 크게 저항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움직임을 점점 커져가고 있다. 한편 일본과 호주, 대만, 중국은 제각각 미크로네시아의 국가들을 상대로 원조를 제공하면서 외교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21세기 들어서 미크로네시아 지역에서 각종 투자를 확대하면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이 때문에 미크로네시아 지역에 대한 미국의 지배는 매우 복잡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미크로네시아 지역 주민들은 자신들의 삶에 대한 발언권을 얼마나 되찾을 수 있으며, 미국은 자신들의 군사기지를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In this article, I want to try to see how the United States had dominated the Pacific islands for 70 years after the end of World War II. Especially the people of Micronesia. In particular, we will discuss the transformation of the Micronesian States from American rule to independent states, and the current changes of the 21st century. The U.S. bases deployed on major islands of Guam and the Marshall Islands, along with U.S. bases deployed in South Korea, Japan and Okinawa, have played an important role as a front base against the threat of the Soviet Union and China during the Cold War. The Cold War ended in the 1980s. However, 30 years after the end of the Cold War, the U.S. military base has not decreased at all, and rather is being maintained while strengthening its facilities. The people of Micronesia were severely oppressed while resisting the ruling forces. It was not very resistant to U.S. domination. However, people are increasingly moving to claim their rights. Meanwhile, Japan, Australia, Taiwan and China are strengthening their diplomacy by providing aid to countries of Micronesia. In particular, China has been increasing its influence by expanding its investments in the region of Micronesia since the 21st century. For this reason, U.S. dominance over the region of Micronesia is very complex. Amid these changes, the people of Micronesia are asked how much they can talk about their lives, and how long will the United States be able to maintain its military b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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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제주 해군기지를 둘러싼 투쟁과 강정마을 공동체의 변동

저자 : 정영신 ( Jeong Young-sin )

발행기관 :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간행물 : 탐라문화 58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49-183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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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주 해군기지를 둘러싸고 전개되었던 강정마을의 반기지운동을 두 가지 시각에서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첫째, 한국사회에서 진행되었던 대규모의 국책사업들은 1990년대부터 지역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운동에 직면했다. 그 배경에는 대도시의 과잉팽창과 혐오시설에 대한 저항, 지방의 경제적 위기와 중앙의 재정적 지원을 대가로 한 무리한 정책 강행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이러한 충돌은 한국의 여러 지역에서 군사기지의 건설을 둘러싼 사업과 투쟁들에서 반복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일련의 투쟁과 운동을 '지역화된 사회운동'으로 규정하고, 로컬 수준에서 형성된 공동성을 바탕으로 투쟁공동체의 형성과 그 동학을 경계의 재구성이라는 측면에서 분석한다. 둘째, 마을공동체의 결속에서 커먼즈의 존재는 매우 중요한데, 강정마을 구럼비처럼, 이것들은 투쟁의 과정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획득하며 공간을 초월한 연대망의 형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강정마을에서는 구럼비 발파 이후에, 커먼즈 없는 커머닝(commoning without commons)의 실천이 반대운동의 가치 지향으로 자리잡았다. 즉 상징적 커먼즈로서 구럼비의 이미지와 가치를 재소환하고 그 내러티브를 재생산하는 실천을 통해 투쟁의 공동체를 확장하고 지속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투쟁공동체의 진화와 커먼즈론에 기반을 둔 사회운동 분석은 기존 사회운동이론에서 간과했던 투쟁의 공동성과 경계의 문제에 대한 이해를 통해 지역화된 사회운동의 역동적 면모를 분석할 수 있게 해 준다.


This article aims to analyze the anti-base movement of Gangjeong village which was developed around the Jeju naval base from two perspectives. First, large-scale national projects in Korean society have faced strong opposition movements of local residents since the 1990s. The overgrowth of metropolitan cities and resistance to hate facilities, the economic crisis in the provinces, and the excessive policies of the central government are the backgrounds. In particular, these conflicts have repeatedly arisen in projects and struggles surrounding the construction of military bases in various parts of Korea. In this article, we define such a series of struggles and movements as 'localized social movements' and analyze the formation and the dynamics of the struggle community based on the communality formed at the local level. Second, the existence of commons is very important in the formation of localized social movements and struggle community. Like Kurumbi in Gangjeong village, these acquire a symbolic meaning in the course of the struggle and play an important role in the formation of a transnational network. In Gangjeong village, the practice of 'commoning without commons' has become the value orientation of the opposition movement after the blasting of Kumumbi . In other words, the members of the struggle community tried to expand and sustain themselves through the practice of recreating the images and values of Kurumbi as a symbolic commons and reproducing the historical and cultural narratives of Kurumbi . The evolution of the struggle community and the analysis of the social movement based on the Commons theory enables to analyze the dynamic aspect of the localized social movement through the understanding of the commonness and the border problem of the struggle that was overlooked in the existing social movement the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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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포로수용소의 설치 및 해제와 주민들의 고통: 제주 통영을 중심으로

저자 : 전갑생 ( Jeon Gab-seang ) , 김민환 ( Kim Min-hwan )

발행기관 :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간행물 : 탐라문화 58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85-215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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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제주도와 통영에서 토지 수용과 수용소 건설 과정을 통해 주민들의 소개, 소개민 수용소 생활, 복귀 및 복구 등 주민공동체 변화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검토했다. 첫째, 포로수용소가 어떤 과정을 통해 설립되고 건설되는지를 분석했다. 두 지역은 후방지역이며 음용수의 수급이 원활하고 섬이라는 공통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제주도는 이미 포화상태의 피난지이며 제1육군훈련소와 두 곳의 비행장을 보유하고 있었다. 통영군 용초와 봉암(지금의 추봉도)은 거제도와 가까운 거리에 있었지만 군사기지가 없는 전형적인 어촌이었다. 둘째, 포로와 피난민 정책의 변화에 따라 기존 민간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포로수용소와 소개민 수용소가 동시에 설립되는데, 이 과정에서 일어난 토지 수용과 주민공동체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1952년 4월 이후 포로 재분류에 따라 여러 지역에 새로운 수용소가 건설되었다. 하지만 수용소 추가 건설은 기존 민간인들을 '강제 소개'해야 하는 문제를 낳았다. 토지수용 과정에서 발생한 이주와 이산은 주민공동체 변동을 가져 올 수밖에 없었다. 셋째, 소개민들의 복귀와 복구 및 배상 문제에서 토지수용과 공동체가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분석했다. 휴전협정 체결 전후 포로교환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소개당한 주민들은 다시 복귀해 마을을 복구해야 했다. 주민들은 국방부에 강제 수용된 토지를 '해제'하고 보상할 것을 요구했다. 소개민들의 복귀와 복구, 보상 문제는 토지수용과정에서 낳은 여러 난제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계기로 작용했다. 두 지역의 토지수용 과정과 반환과정을 알 수 있는 토지대장, 주민들이 소장한 징발해제 관련 자료, 소개 주민들의 구술 등을 활용해 토지수용과 반환 과정에서에서 발생한 공동체 변화 등을 현재적 관점에서 분석하고자 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changes of residential communities such as the evacuation of residents, evacuatees' camp life, their return to homes, and recovery through the expropriation of land and camp construction in Jeju-do and Tongyeong. First, this study will analyze how POW camps are established and constructed and examine the geographical characteristics and commonalities of wartime prisoners in Jeju and Tongyeong, which are both rear areas with drinking water and island. Jeju-do was already saturated with refugees and had Command Center of the 1st Army Training Center and several airfields, rather than logistics base to support large-scale foremost troops. In contrast, Yongcho and Pongam (presently Choobongdo) in Tongyeong were typical fishing villages without a military base although they were close from Jeju. Second, wartime prisoner and evacuatees' camps were installed at the same time in the existing civilian residences with the changes of POW and refugee policy, inevitably causing land expropriation and changing the residents' community. After April 1952, POW and refugee camps were built in many places according to the categorization of wartime prisoners but setting up additional camps brought the issue of having to forcefully evacuate the existing residents. Migration and separation of families caused during land expropriation could inevitably change the residents' community. Third, this paper will analyze what changes that expropriation of land and community brought during the evacuatees' return, recover, and compensation. Residents who were forced to evacuate near the end of POW exchange after signing the armistice treaty returned to their hometown and recover the village. The residents demanded the release of land expropriated by the Ministry of Defense and to give them compensation. The issues of evacuatees' recover, and compensation caused the various difficulties during the land expropriation of land to explode at once. Overall, this study aims to examine and analyze the changes of communities during the expropriation of land in the military facilities of two areas based on the land registers, land release data owned by the residents, and the talks of evacuated residents from the present persp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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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제주 4ㆍ3을 기억하는 방법 -제주 4ㆍ3평화기념관을 중심으로

저자 : 남경우 ( Nam Kyoung-woo )

발행기관 :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간행물 : 탐라문화 58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219-247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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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ㆍ3을 지칭하는 이름은 다양했다. 그리고 다양한 이름은 각자의 방식으로 4ㆍ3을 기억한다. 4ㆍ3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대표적인 장소인 제주4ㆍ3평화기념관은 4ㆍ3을 어떠한 방식으로 기억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제주4ㆍ3평화기념관은 스토리텔링의 형태를 취하며 4ㆍ3을 기억하였다. 그러나 과거에 '폭동'으로 4ㆍ3을 기억하는 방식이 지배적 담론으로 자리 잡은 후였고,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서 국가가 4ㆍ3을 기억하는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것을 확인하였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화해와 상생'을 강조하는 담론이었다. 4ㆍ3을 화해와 상생으로 기억하고자 하는 방식은 화해의 주체와 화해의 과정에 대한 고려가 없는 단계적 도약을 상정하고 있다. 이것은 4ㆍ3을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용서를 강요하는 것이며, 나아가 4ㆍ3의 기억을 현재가 아닌 과거에 묶어두는 결과를 야기한다. 4ㆍ3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분단체제 속에서 드러나는 분단서사의 전형적인 양상이다. 분단체제의 강력한 자장 속 피해자들은 진실을 규명하고 완전한 신원을 이루는 것을 쉽게 체념할 수 있다. 그러나 4ㆍ3이 기념관이 말하는 것처럼 화해와 상생, 그리고 평화로 나아가는 길로 기억되기 위해서는 4ㆍ3에 대한 '고발'과 '동정'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현재의 4ㆍ3은 어떤 하나의 이름으로 고정되지 않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 많은 사람이 4ㆍ3을 다양하게 기억하는 방식, 다양한 이름과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할 때, 4ㆍ3의 진정한 청산과 치유, 나아가 분단체제라는 문제적 구조의 해체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In this article we looked at names referring to 4 3 and looked at how the names remember 4 3. On the extension line, Jeju 4 3 Peace Memorial Hall, which is a representative place to memorize and memorialize 4 3, tried to examine how 4 3 are remembered. Jeju 4 3 Peace Memorial Hall tried to reveal the truth of 4 3 through the way of story telling. However, in the past, the way of memorizing 4 3 by 'riot' became the dominant discourse, and it was confirmed that various factors did not completely remove the state from the way of memorizing 4 3. The representative case was the discourse emphasizing 'reconciliation and co-existence'. The way to memorize 4 3 as reconciliation and co-existence assumes the leap without consideration of the subject of reconciliation and the process of reconciliation. This forces the forgiveness of those who want to memorize 4 3, and it also results in keeping memories of 4 3 bound to the past, not to the present. This perception of 4 3 is seen as a typical aspect of the division narrative revealed in the division system. In the powerful structure of the division system, the victims of 4 3 can easily forget to identify the truth and achieve full identity. In the division system, it is safe to live without telling 4 3. However, in order to be remembered as a path to peace and reconciliation and peace, it is necessary to have a voice of 'accusation' and 'sympathy' that can overcome the division system. Therefore, it is necessary that current 4 3 does not have to be fixed to any one name. When many people memorize 4 3 in various ways, when various names and various voices coexist, it will be possible to dismantle the structure of division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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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선흘곶자왈 동백동산 탐방로 주변의 학습자원 발굴과 학교교육의 활용을 위한 방향성 탐색

저자 : 정광중 ( Jeong Kwang-joong )

발행기관 :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간행물 : 탐라문화 58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249-285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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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목적은 선흘곶자왈 동백동산 탐방로 주변에 산재하는 다양한 학습자원을 발굴하고, 실제로 학교교육의 프로그램에서 활용하기 위한 전제로서 학습내용의 조직과 구성에 대한 방향성을 탐색하는데 있다. 이를 위하여 먼저 선흘곶자왈 동백동산 2개 탐방로 주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세 가지 유형의 학습자원, 즉 지형ㆍ지질자원 7개, 식생자원 7개 및 문화자원 8개 등 총 22개를 추출하고 이들의 특성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였다. 더불어 세 가지 유형의 학습자원들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에서는 학습내용의 조직과 구성과정에서 몇 가지 방향성을 정한 후 교육 프로그램에 도입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배경 하에 크게 다섯 가지 관점에서 접근하여 검토하였다. 이들을 간단히 요약하면, 첫째, 학습내용의 조직을 위한 위계성의 관점, 둘째, 유형별 학습자원 활용의 관점, 셋째, 학습자원과 마을주민 간 관계성의 관점, 넷째, 학생들의 실천장으로서 학습논점 지향의 관점, 다섯째, 코스별 선택과 활용의 관점 등이다. 본고에서는 학교 급별로는 어떤 방식으로 주제를 설정하고, 또 학습내용과 학습활동은 어떤 방식으로 조직ㆍ구성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논의하지 않았다. 따라서 앞으로 학교 급별 학습주제의 설정과 배경, 학습자 중심의 활동방법 그리고 학습내용의 조직과 구성방법 등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뒤따라야만 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plore the direction of the organization and composition of learning contents as a precondition for discovering diverse learning resources available throughout Seonheul-Gotjawal Dongbaek- Dongsan trail and utilizing them in school education programs. To this end, this study extracted three types of learning resources that can be confirmed around the 1st and 2nd courses of Seonheul-Gotjawal Dongbaek-Dongsan trail. The following were confirmed: a total of 22 learning resources such as 7 terrain and geological resources, 7 vegetation resources, and 8 cultural resources. The specific characteristics of each learning resource type were then analyzed. This study approached and examined them from five perspectives. They were evaluated under the judgment that, for the effective use of the three types of learning resources, it is effective to determine some of the directions in the process of organization and composition of learning contents. The contents would then be introduced into educational programs. A brief summary is as follows: the 1st is the perspective of the hierarchy for organization of learning contents; the 2nd is the perspective of utilization of learning resources by the three types; the 3rd is the perspective of the relationship between learning resources and villagers; the 4th is the perspective of the directions of learning issues as students' place of study, and the 5th is the perspective of the selection and utilization by each course. This study neither specifically discussed how to set up topics by school class nor how to organize and structure the learning contents and activities. Therefore, it is necessary to discuss the setting and background of the learning topics, the types of learner-centered activities, and the way of organizing and structuring the learning contents by school class in the future.

KCI등재

10중국역사교과서(中國歷史敎科書)의 한국역사서술(韓國歷史敍述)과 인식(認識) - 개항기(開港期)를 중심으로

저자 : 장희흥 ( Jang Hee-heung )

발행기관 :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간행물 : 탐라문화 58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287-315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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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중국 중ㆍ고등학교 교과서의 한국 개항기에 대한 한국 역사 인식과 내용을 살펴보았다. 한ㆍ중ㆍ일 교과서는 각 나라 상호 관계보다는 자국 중심으로 서술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것은 중국의 경우 中華主義적 성격이 강하며 중국이 조선에 미친 영향을 중심으로 서술하였다. 일본 역시 침략을 합리화하면서 자국이 유리한 방향으로 서술하였다. 중국은 주변국들을 번국(혹은 속국)으로 서술하였다. 그 중 조선에 대한 종주국으로서의 지위 상실은 곧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세계관의 상실을 의미한다. 개항은 결국 이러한 중국이 조선에 대한 종주국으로서의 지위가 상실해 가는 과정으로 보았다. 강화도 조약-청일전쟁-한일합방으로 이어지는 일본의 대륙정책 시행과정에서 결국 종주권을 상실하여 일본으로 넘겨주게 되었다는 것이다. 일본은 50년대 미국과의 수교를 모방하여 강화도를 침략하여 수교하게 되면서 청은 종주권이 위협받게 되면서 반식민지의 길을 가게 되었다고 하였다. 갑신정변 이후 체결된 천진조약에서 조선에 군대 파병 시에 상호 통보한다는 조약내용을 강조하면서 침략의 도화선이 된 점을 강조하였다. 가장 중요한 청일전쟁의 발발 원인은 동학농민운동으로 보았다. 동학농민운동의 발생 배경에는 일본의 경제적 침투보다는 농민들의 피폐로 인한 봉기임을 강조하였다. 이 과정에서 천진조약에 따라 청일 양국군대의 파견과 일본의 침략성을 특히 강조하였다. 이 과정에서 전봉준과 이후 조선농민들의 항일운동을 높이 평가하였다. 청일전쟁에 대한 패배의 원인으로 일본의 군비 확충과 청의 준비 부족, 중국 내부의 자의태후와 이홍장의 문제 등을 들고 있다. 전쟁 과정에서는 청 장군들의 용감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중국계 교과서의 동일한 상황은 마관조약의 체결로 조선에서 종주권의 상실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이후 미국과 영국 등이 일본을 인정하는 가운데 조선민들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합병이 이루어졌다고 서술하였다. 중국 교과서의 한국관련 내용은 역시 자국에게 불리한 내용은 생략된 채, 종주권의 상실이라는 면을 강조하였다. 현재 동아시아는 상호 협력하는 시대를 맞이하여 교과서 역시 상호 객관적인 서술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This paper explores the description and consciousness in the period of Korean opening port. The textbooks in Korea, China, and Japan have more tendency to describe the history with their on country rather than that of mutual relationships. The Chinese wrote the history with the centre of the effect to Korea. Japanese rationalized the domination of Korean and described the history to gain an advantage. The Chinese described the neighboring countries as a subordinate state. The loss of domination to Joseon meaned the loss of the world viewpoint as a suzerain state. So the Korean opening port resulted in the loss of the Chinese domination of Joseon as a suzerain state. The Japanese continental politics including Kanghwa-do Treaty, Sino-Japanese War, and Annexation of Korea made China lose the domination to Joseon. Japanese imitated the treaty of amity with America in 50th and invaded Kanghwa-do. As the result, Sino suzerain power was treatened and fell into the anti-colonialism. The main point of Sino-Japanese War was Donghak Peasant movement. The background the struggle was emphasized with the peasant's impoverishment rather than the Japanese economical invasion. The cause of defeat of Sino-Japanese War was described in the expansion of the military expenses, lack of War preparation, and the problem of Lee Hong Jang and so on. In the Chinese textbook, Chinese dealt with the war to the loss of suzerain power caused by the Makwan Treaty. Last but not least, The historical description with their own countries was distorted as the Japanese Invation and the Chinese loss of suzerain power in Joseon. In recent East Asian has been agreed on the mutual cooperation and the description in the history textbook also must take first priority on the mutual historical obj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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