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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예술 update

ORIENTAL ART

  • : 한국동양예술학회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사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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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계간
  • : 1975-0927
  • :
  • : 한국동양예술학회지(~2000) → 동양예술(2001~)

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2000)~46권0호(2020) |수록논문 수 : 542
동양예술
46권0호(2020년 0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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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비선형 패러다임 시대의 동양예술 창의성 고찰 -지(知)·호(好)·악(樂)·광(狂)과 능(能)·묘(妙)·신(神)·일(逸)을 중심으로-

저자 : 김규철 ( Kim Kyu Cheul )

발행기관 : 한국동양예술학회 간행물 : 동양예술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5-30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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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원인으로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선형시대를 넘어, 원인으로부터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비선형의 패러다임 앞에 놓여있다. 비선형이 일상화된 것이다. 동양예술의 창의성도 이 패러다임의 측면에서 고찰할 필요가 대두되었다. 본 연구의 목적은 비선형 시대에서의 동양예술의 창의성 고찰이다. 연구순서는 ①선형과 비선형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구한다. ②선형적 창작 태도로서의 '知·好·樂', 창작 결과로서의 '能·妙·神'에 대해 파악한다. ③비선형적 창작 태도로서의 '狂'과 창작 결과로서 '逸'을 고찰한다. ④둘을 종합하여 비선형시대의 창작 태도로서의 狂과 逸의 중요성과 그 역할에 대해 파악하였다.
선형적 창작태도는 논어 옹야 20장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에서의 '知·好·樂'에서 그 의미를 파악하였다. 연구결과, 知의 단계는 기법을 충실하게 습득한 후 창작을 하는 단계, 好의 단계는 기법을 아는 것을 넘어 창작하는 자체를 좋아하는 단계, 樂(락)의 단계는 기법을 알고 좋아하는 단계를 넘어 즐기면서 창작을 하는 단계라고 파악하였다.
비선형적 창작태도로서의 광(狂)은 다른 생각과 다른 행동 그리고 몰입을 통해 순수했던 자신의 본성으로 돌아가거나, 본성을 되찾기 위한 다리로 파악하였다. 선형적 창작결과는 북송(北宋)의 황휴복(黃休復)이 『익주명화록 益州名畵錄』에서 우열을 나눈 能·妙·神·逸4격 중 能·妙·神으로 파악하였다. 연구결과, 能品은 그리고자 하는 대상의 모습이 그림에 온전히 표현되어 있는 것이고, 妙品은 온전한 형상과 더불어 작가의 성품·마음·표현의도가 전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神品은 대상의 형상과 작가의 정신을 모두 갖추었으되 그 경지가 높은 작품이라고 파악하였다. 비선형적 창작결과로서의 일(逸)은 필이 간략해도 형태는 갖추어지며, 자연에서 얻고, 본뜰 수 없으며, 유법을 넘어 예상 밖에서 나오는 걸작(逸品)이다.
결국 知·好·樂의 창작 태도로 유법을 완성하고, 몰입을 통한 狂이라는 다리를 통해 逸이라는 창작결과에 도달하게 된다. 즉 逸의 창작결과는 원인으로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비선형적인 과정을 거친다. 즉, 狂은 逸로 가기 위한 다리이고, 逸은 狂의 태도가 만든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비선형적인 상황이 일상화된 오늘날, 예술가들이 복원할 수 있는 狂의 진취성은 창작예술의 중요한 요소이다.


Today, the age of linear thinking, when we could predict outcomes from causes, has ended, and we are facing an age of non-linear thinking in which causes are not the basis for predicting the outcomes. Non-linearity has become the norm. Understanding the creative aspects of Eastern art must also be approached from this paradigm shift. The main purpose of this study is to review the creative nature of Eastern art in the age of non-linearity. Its order is as follows: (1) gain a basic understanding of linearity and non-linearity; (2) identify the Ji(知, know-how), Ho(好, liking), and Lac(樂, enjoying) of the linear creative attitude, and the Neong(能, skillful), Meo(妙, beguiling), and Shin(神, divine) of the creative result; (3) study the Gwang(狂, crazy) of non-linear creative attitude and the Il(逸, masterpiece) of the creative result; and (4) combine the two in (3) to understand the importance and role of Gwang(狂) and Il(逸) as the creative attitude in the age of non-linearity.
The meaning of linear creative attitude was identified in the Ji(知), Ho (好), and Lac(樂) in The Analects of Confucius Yongye Chapter 20, which states, “To know is not as good as liking, and liking is not as good as enjoying.” There search results identified the Ji(知) stage to be the point in time techniques are faithfully acquired and then creation occurs, the Ho(好) stage as where one surpasses simply knowing techniques and likes the act itself of creating, and the Lac(樂) stage as where one, surpassing knowing and liking techniques, enjoys creating.
Gwang(狂) as a non-linear creative attitude was identified as a return to one's own innocent nature through different thoughts, actions, and immersion―or the bridge to reclaim one's nature. Linear creative results were identified as the Neong(能), Meo(妙), and Shin(神) from the four classes of Neong(能), Meo(妙), Shin(神), and Il(逸) described in 『Yi zhou Minghuala』 by Huang Xiufu(黃休復) of the Northern Song Dynasty (北宋). The research results identified skilled pieces(能品) as those that wholly express the image of the subject that is painted, and beguiling pieces(妙 品) as those where the character, spirit, and intent of the artist is conveyed in addition to the whole image. Divine pieces(神品), on the other hand, were found to be those that not only had the form of the subject and the spirit of the artist but also were of an exceptionally high level. Il(逸) as a non-linear creative result was a masterpiece(逸品) that had form even though the strokes were simple, was gained from nature, could not be imitated, and had surpassed laws to come from the unexpected.
Ultimately, the creative attitudes of Ji(知), Ho(好), and Lac(樂) complete the laws, and the creative result of Il(逸) is achieved through the bridge of Gwang(狂)―that is, the creative result of Il(逸) goes through a non-linear process where the cause cannot predict the outcome. Therefore, Gwang(狂) is a bridge to arrive at Il(逸), and Il(逸) can be said to be the result of the attitude of Gwang(狂). Today, when non-linear situations have become the norm, the progressiveness of Gwang(狂) that artists can reproduce is an important element of creative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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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계화'와 '탈영토화' 개념 중심으로 본 한국현대미술의 정체성에 관한 담론 - 이우환, 김수자, 서도호의 사례를 중심으로 -

저자 : 김정희 ( Kim Jung Hee )

발행기관 : 한국동양예술학회 간행물 : 동양예술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31-56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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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세계화'(globalization)와 '탈영토화'(deterritorialization)의 개념 중심으로 본 '한국현대미술의 정체성'에 관한 담론을 통하여 한국현대미술의 방향성을 알고자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한국사회는 1990년대부터 세계화와 다문화의 급류를 탄 이후 고유의 문화, 민족, 영토에 대한 개념의 경계가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으며, 인터넷과 매스 커뮤니케이션(mass communication)의 급진적인 발달로 매 시각 세계 각국의 소식과 문화를 접하는 것이 보편적인 시대를 맞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현대미술'의 정체성에 대한 규정을 하고자 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일 것이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가지는 것은 존재의 근원에 대한 사유를 하는 것으로 존재하는 것의 본능적인 물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국현대미술'이 존재한다고 한다면, 그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가지는 것은 존재의 핵심 사안이며 필수적인 것이다.
이 논문은 '한국현대미술'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에 목적을 두지 않는다. 그 대신에 그 '정체성'에 대한 존재론적 담론과 현재의 '한국현대미술'을 대표하고 있는 미술가들인 이우환, 김수자, 서도호의 사상과 작품 활동의 사례들을 통하여, 그들이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어떻게 형성하고 그것을 발판으로 한 예술작업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그 현상들을 고찰하여 한국현대미술의 중요한 측면을 알고자한다. 본문에서는 첫째, '한국미술'의 정체성 담론이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어떻게 한국의 현대미술의 정체성에 관한 담론으로 이어지게 되었는지 알아본다. 또한 현재의 '한국현대미술'의 정체성에 관한 담론을 위하여 '세계화'와 '탈영토화'의 두 가지 개념을 알아보고, 현재 미술계의 상황에 투영하여 분석한다. 본문의 마지막 절에서는 앞선 연구들을 토대로 한국현대미술을 이끌고 있는 이우환, 김수자, 서도호의 사례를 통하여 한국현대미술의 추동력의 방향성을 알아본다.


This paper aims to understand the direction of 'Korean contemporary art' through the discourse on 'the identity of Korean contemporary art' based on the concepts of 'globalization' and 'deterritorialization'. Since the 1990s, the boundaries of the concepts of Korean culture, ethnicity and territory have been rapidly disintegrating, due to 'globalization' and 'multiculturalism'. With the radical development of the Internet and mass communication, Korean society is facing the era of instant universal access to news and culture from all over the world. In this situation, it is not easy to define the identity of Korean contemporary art, but questioning the identity is instinctive and essential. If 'Korean contemporary art' exists, it is essential to have a question about its identity.
This paper does not focus on defining the identity of 'Korean contemporary art'. Instead, through looking at the existential discourse on 'identity' in the thoughts and artistic activities of the artists U-fan Lee, Soo-ja Kim and Do-ho Seo, the paper contemplates how they form their identity as artists, and how they are working on their art works based on it. Through this, ultimately, this study discovers an important direction of Korean contemporary art. First, the paper explores how discourses on the identity of 'Korean art' began, and how it led to the discourse on the identity of Korean contemporary art. In addition, the two concepts 'globalization' and 'deterritorialization' are explored in order to discuss the identity of 'Korean contemporary art', and this is used to analyse the current situation of the Korean art world. The final section of the paper examines the cases of U-fan Lee, Soo-ja Kim and Do-ho Seo based on the previous analysis, in order to comprehend the impetus behind the current direction of Korean contemporary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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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동서양의 생태미학 지형 연구 -심연(心然)의 생태미학에 대한 시론-

저자 : 남치우 ( Nam Chi Woo )

발행기관 : 한국동양예술학회 간행물 : 동양예술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57-81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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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미술은 대지미술, 지구미술, 환경미술 이후에 출현했다. 이 과정은 인간이 자연을 폭압적으로 착취한 것에 대한 반성적 기류이며, 내실은 과학적 사고에 기반한다. 즉, 생태미학 출현은 과학이 이 세계를 이해하는 중심 연구과제가 되면서부터다. 생물학 연구를 통해 지구환경 파괴가 곧바로 인간 삶의 지속가능성을 닫고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생태미학은 두 가지 전제를 내포한다. 첫째, 유기체적 시각을 수용함으로써 인간은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둘째, 그동안 자연을 착취하며 황폐시킨 인간의 잘못에 대한 반성을 촉구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동양의 생태미학은 인간의 자유로운 생태계 참여를 유도한다. 생명을 대하는 태도를 말하고 있고, 균형(中和)으로 인간 스스로 자연 상태에 이른다. 생태미학이 추구하는 균형감각을 서양에서는 생물학이란 과학에서 획득했다. 하지만 동양의 과학은 자연의 균형감각을 주관적 진실로 포착해 사회문화 전반에 투영시킨 사회학이다. 서양의 과학은 실험의 결과지만, 동양의 과학은 생태계의 활동성을 감각적으로 체득한다. 인간과 자연은 둘이면서 하나의 상태로 여겼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자연의 상태를 유지하는지를 연구했다. 그건 마음에 대한 연구였고, 동시에 천지자연에 대한 이해며, 모든 사물은 살아 있다는, 즉 활물로 보는 시선이다. 생명을 천지의 본성으로 개괄한다. 자연 상태의 인간은 품격으로 말해지고, 품격은 자연인으로서 자연 상태로 노니는 것으로 설명된다. 이 점이 서양의 생태미학 구조와 차이다.
나는 마음과 자연이 하나가 되어 노정하는 상태를 心然의 생태미학으로 규정한다. 서양의 생태미학이 추구하는 유기체적 세계관과 동양의 생태미학은 많음 부분이 결합된다. 기본적으로 생태미학은 지난날 인간의 과오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 핵심적 의제이며, 이를 위해 유기체론과 도덕적 책임 문제의식을 구조화한다. 동양미학은 이 부분, 즉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화해라는 질서로 해결하는데, 그 방방은 이 세계 모든 비-유기체를 존중하는 것에 있다. 다만, 받아들이는 크기에 따라 大人과 小人으로 구분할 뿐이다. 생태윤리적 시각에서 보면, 자연의 생명활동을 지속 가능한 상태로 이동시키는데 인간을 참여케 한다. 그건 마음과 자연의 일치로 자유를 획득한 자연인이 자연 상태로 노니는 것이다. 동양의 생태미학에서의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자연의 총화로서 활동이 자유롭다는 점에서다. 이 점은 동양미학의 특장이자, 또 다른 양태로 발전이 가능한 생태미학의 모델이라고 본다.


Ecological art emerged after earth art, earth art, and environmental art. This process is based on scientific thought. It is a reflective air about human exploitation and tyrannical behavior of nature, and ultimately leaves open the sustainability of human life in the wake of the spread of ecological and ethical thinking. In this light, art must meet two premises if it is to be captured as ecological aesthetics. First, it should be recognized that humans are part of nature by embracing organic perspectives. Second, we should urge reflection on human wrongs that have exploited and ravaged nature. Providing this perspective is a scientist's contribution. Thus, the emergence of ecology aesthetics comes as science has become a central research project to understand the world. Relatively, the ecological aesthetics of the East leads to free human participation in the ecosystem. It speaks of the attitude toward life, and in balance(中和) it reaches its natural state. The sense of balance pursued by ecology and aesthetics is found in the science of biology in the West. However, Oriental science is a sociology that captures the sense of balance of nature with subjective truth and applies it to society and culture as a whole. Western science is the result of experiments, but Eastern science sensitively recognizes the activity of the ecosystem. Since humans and nature were considered as one state, we studied how to maintain the state of nature. It was a study of the mind, at the same time an understanding of "Cheonjiayeon," and a view that all things are alive. summarize life into the nature of nature A man in a natural state is described as being said for quality, and quality as a natural person to play with nature. This is the difference between Western ecological aesthetics structures. I define the state of play as 'Ecological Aesthetics of One`s Mind covering Nature(心然)' by which the mind and nature become one. The organic world view pursued by the Western ecology of aesthetics and the ecological aesthetics of the East combine many parts. Fundamentally, ecological aesthetics is a key agenda item to make people reborn as new humans from the reflection of human error in the past, and to this end structure the consciousness of organicism and moral responsibility issues. Oriental aesthetics solves this part, that is, the relationship between man and nature in order, which lies in respecting all the non-organic parts of the world. However, depending on the size of their acceptance, they are only divided into 'a wise man(大人)' and 'a foolish person(小人)'. From an ecological ethical perspective, humans are involved in making nature's life activities sustainable. It's about natural people playing in nature, who have acquired freedom through a combination of mind and nature. This is because human beings in the ecological aesthetics of the East are free to act as a part of nature and at the same time as a whole of nature. I think this is a characteristic of Oriental aesthetics and a model of ecological aesthetics that can develop into another f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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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석봉(石峯) 천자문(千字文) 서체의 서예적 위상 검증(檢證) 연구

저자 : 박정숙 ( Park Jung Sook )

발행기관 : 한국동양예술학회 간행물 : 동양예술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83-115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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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선시대 4대 명필가운데 한사람으로 일컬어지는 석봉 한호(石峯韓濩, 1543-1605)가 선조의 명을 받아 해서체로 쓴 석봉천자문(石峰千字文)의 서체가 지닌 특성과 초학교재로서의 위상을 점검하기위하여 집필 되었다. 주지하듯이 천자문은 중국 남북조 시대의 학자인 주흥사(470-521)가 지은 4언 250구의 시구로 이루어진 문헌이다. 이 책은 조선시대 학동들의 한자, 한문 학습용 교재로 활용되었기 때문에 여러 종류의 판본과 사본이 남아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널리 쓰인 본이 바로 석봉천자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석봉천자문의 서체는 조선후기의 서예상(書藝象) 형성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필자가 확인한 바로는 서예 미학적 측면에서 석봉천자문의 특성과 가치를 점검한 본격적인 연구 업적은 전혀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본고에서는 먼저 천자문의 자료적 가치를 검토하기 위하여 字音의 수, 부수 및 점획사용의 다양성과 균형성 등을 분석하였다. 이어서 석봉천자문의 서체가 지닌 심미적 위상을 검정하기 위하여 이 분야 전문가 5인에게 서체가 다른 명필 혹은 이름난 비첩의 특정 문자를 석봉천자문의 해당 문자와 함께 제시하여 설문을 통해 인상적 평가를 실시하였다. 그리고 석봉천자문 문자의 필획 형태, 결구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그 조형미를 천명(闡明) 하였다.
이상과 같은 연구를 통하여 수많은 조선시대 천자문 중 가장 활용도가 높았던 『석봉천자문 』의 조형미를 검증하였고, 다양한 자음(字音), 필획 등이 활용되었음을 밝힘으로써 『석봉천자문』의 한자, 한문 및 서예교재로서의 가치를 점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석봉천자문은 해서의 기본이 되는 永자 8법의 획(橫. 縱, 點, 捺, 挑, 拘, 折)이 모범적인 형태로 고르게 포함되어 있어 이를 바탕으로 학문적, 예술적, 교육적으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서체로 개발하고, 그것을 DB화하여 현대문자 생활에 널리 활용할 수 있음을 밝혔다. 즉 초 중등 미술과 디자인교육과 서예교육 자료로 활용할 수 있으며 출판업계 디자인학계나 사회교육기관에서 교육 및 참고자료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This paper was intended to examine the characteristics of the script and the stature of calligraphic materials for beginner of Seokbong's thousand- character classic, written by Seokbong Han Ho (1543-1605), one of the four great calligraphers of the Joseon Dynasty. Thousand-character classic is a literature composed of 250 phrases of four letters written by Zhou XingSi (470-521), a scholar in the period of Southern and Northern Dynasties of China. Since this book was used as a textbook for children to learn classical Chinese and practice classical Chinese characters in Joseon Dynasty, there remained many kinds of block-printed editions and manuscripts, and among them, Seokbong's edition was the most widely used. Regarding this, the script of Seokbong's thousand- character classic would have a significant influence on the formation of the calligraphic image in the late Joseon Dynasty. However, I have confirmed that there was no full-fledged research that examined the characteristics and values of Seokbong's thousand-character classic in terms of calligraphy aesthetics. In this paper, to examine the literary value of Seokbong's thousand-character classic, I first analyzed the number of letters and the diversity and balance of the use of radicals, dots and strokes. Subsequently, to verify the aesthetic status of the script of Seokbong's thousand-character classic, I conducted an impressive evaluation to five experts in this field through a questionnaire that presented the specific letters of other scripts or other calligraphers compared with the letters of Seokbong's thousand-character classic. In addition, I clarified the formative beauty by analyzing the strokes and structure of the letters in Seokbong's thousand-character classic in a comprehensive manner. Through the analysis above, I verified the formative beauty of Seokbong's thousand-character classic, which was the most widely used among various editions in the Joseon Dynasty. In addition, I could examine the value of Seokbong's thousand-character classic as the learning materials of classical Chinese characters, classical Chinese and calligraphy by clarifying that various letters and strokes were utilized. Moreover, I clarified that the script of Seokbong's thousand-character classic could be developed as a font used academically, artistically and educationally and utilized in modern life by making it into database because the script of Seokbong's thousand-character classic contained the eight types of strokes (橫, 縱, 點, 捺, 挑, 拘, 折), which were the basis of the regular script. It could be utilized as materials for arts subject of elementary and secondary school, design education and calligraphy education, and it could be reference materials in the publishing industry, design academy or social education instit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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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동기창(董其昌) 작품(作品) 에 담긴 선종(禪宗)의 미학(美學)

저자 : 서희연 ( Sur Heui Yeon )

발행기관 : 한국동양예술학회 간행물 : 동양예술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17-144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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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末은 봉건제도와 정치가 모순에 직면하여 쇠퇴하고 있었으며, 자본주의 사상이 유입되어 새롭게 자리 잡던 시대이기도 했다. 전통과 혁신이라는 시대적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과거 전통으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복고주의와 새로운 철학과 새로운 예술을 찾는 혁신적 경향의 사상이 혼재되었다.
董其昌은 中國山水畵가 질박한 양식에서 문채로운 양식으로 발전했음을 밝혀냈으며, 질박한 양식인 옛날(古)에 집착하면 법식에 속박되게 되고, 문채로운 양식인 오늘날(今)에 집착하면 자사(恣肆)에 빠지기 때문에 今의 폐단을 보충해주기 위해서는 古가 필요하다고 하여 古와 今의 통일, 法과 變의 통일을 주장했다.
明末은 이미 禪宗, 陽明學, 老莊思想이 혼재되어 있었고, '狂禪'풍조가 성행하면서, 예의와 속박에서 벗어나고, 자아 중심적인 방임 생활을 이어나갔다.
董其昌은 다양한 이유로 禪宗에 심취했는데, 董其昌의 철학적 사유가 당시 老莊思想의 잔잔하며 은일적인 기질과는 다른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禪宗적 기풍이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董其昌의 사상 이면을 살펴보면 莊學과 동일 선상의 禪宗을 흡수한 것이다. 董其昌이 추구한 것은 내심의 平靜, 淡과 淸靜그리고 세속을 초탈한 생활이었다. 그가 즐겼던 禪悅은 바로 淸淡혹은 玄談의 禪이다.
본 연구의 목적은 明末에 행해진 禪宗의 성행은 道學化된 佛敎임을 전제로 董其昌이 특히 심취했던 禪宗은 老莊思想과 상당히 유사한 성질의 禪宗임을 바탕에 두고 그의 작품과 화론에 담긴 禪宗의 영향을 받은 미적 정서 변화가 董其昌의 작품속에서 필묵과 구도에 의해 어떻게 구체화 되었는지를 살펴보는 데 있다.


When Ming Dynasty around its end, the contradictions of its feudal system and politics was leading to their deterioration; the same period was also when the capitalism was introduced. It was the time of the mixed existence of reactionism, which insisted on going back to the traditions of the past to overcome the periodical contradictions of the coexistence of tradition and innovation, and the thought of innovative tendency, which pursued new philosophy and art.
Dong Qi Chang(董其昌) established that the style of Chinese landscape painting developed from simplicity to beautiful coloring. Also, it insisted on the unification of the past and the present, and of law and demonstration( 변), as the past(古) is necessary to complement the negative effects of the present(今); it the obsession towards the past(古), which is the style of Han Dynasty, people would be bound to rules and formalities, whereas the obsession towards the present(今), which is the style of beautiful coloring, makes it easier for people to the outside beauty(恣 肆).
Ming Dynasty, around its end(明末), already contained the mixed existence of Zen(禪宗), the doctries of Wang Yangming(陽明學), and the thought of Lao Zhuang(老莊思想). Also, with the prevalence of 'The Zen of Madness(狂禪)', people freed themselves from etiquettes and restrictions, and led their self-centered life of neglect.
For various reasons, Dong Qi Chang(董其昌) was immersed in Zen(禪宗);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Dong Gi Chang(董其昌) was well-suited with the straightforward and unhindered style of Zen(禪宗), which was different from rather still and secluded nature of the thought of Lao Zhuang(老莊思想). However, looking closer to the other side of Dong Qi Chang(董其昌)'s thoughts, it contains the absorption of part of Zen(禪宗) which is on the same level as the doctrines of Zhuang(莊學). Dong Qi Chang(董其昌) was in pursuit of the peace(平靜), purity(淡), cleanliness (淸靜), and life transcended from the mundane world. The joy of Zen(禪 悅) that he enjoyed was the Zen of purity and cleanliness(淸淡), or of the talk of the profound logic(玄談).
The purpose of the study lies in examining how the aesthetic sentiments of Dong Qi Chang(董其昌) having been influenced by Zen(禪宗) were materialized in his works. The study was therefore based on the idea that the prevalence of Zen(禪宗) around the end of Ming Dynasty(明末) was the Buddism with the doctrine of Ethics(道學化), and the Zen that Dong Qi Chang(董其昌) especially immersed himself in was significantly similar to the thought of Lao Zhuang(老莊思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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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강암(剛菴) 송성용(宋成鏞) 사군자(四君子)에 대한 연구

저자 : 이근우 ( Lee Keun Woo )

발행기관 : 한국동양예술학회 간행물 : 동양예술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45-171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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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암 송성용은 1913년 일제강점기 김제시 백산면 상정리 요교마을에서 호남의대 유학자 유재(裕齋) 송기면(宋基冕)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일제강점기, 6.25 전쟁 등 크고 작은 역사의 격동기를 모두 거치며 대대로 이어온 문한(文翰)의 가풍(家風)과 부친으로부터 학문과 예술의 토양을 갖춘 서화가이며 선비요 유학자다.
강암은 학(學)·덕(德)·예(禮)를 갖춘 청렴한 선비로서 평생을 한결같이 창작예술과 유학이념의 구현에 진력하며, 1930년 18세의 나이에 묘비(墓碑)를 쓸 정도로 일찍이 서예계의 관심을 모았다.
근본이 서야 도가 생긴다〔本立道生〕, 강암의 묵적(墨跡) 80년을 이끌어온 좌우명이다. 강암의 글씨에 기개와 혼이 살아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글씨란 무엇인가, 한 점 찍고 한 점 획 긋는 게 글씨 아닌가, 오직 맑은 기운으로 도를 따를 뿐이다. 사군자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강암' 이라는 호에서 송성용의 인품과 화품(畵品)이 짐작된다.
본 논고의 동기는 강암 예술세계의 연구에 있어 사군자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을 자각하고, 그의 예술세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이다. 아울러 향후 강암 사군자의 연구에 기여 하고자 한다. 본문에서는 강암의 사군자 작품을 분석하기 위해 크게 예술관의 형성기, 끊임없는 실험정신으로 이어지는 발전기, 창의적 사고에 의한 완숙기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예술관의 형성기인 '지(地)', 땅같이 안정되고 단단한 사군자의 초석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둘째, 발전기인 '동(動)', 끊임없이 실험정신으로 이어지는 창의적 예술정신은 무엇인지?
셋째, 완숙기인 '천(天)', 높고 푸른 하늘같이 열린 사고력에 의한 강암 사군자의 주요특징은 무엇인지?
위와 같은 세 단계 내용의 큰 틀에서 작품 분석은 기본적으로 필법, 묵법, 구도로 나누어 고찰하고자 한다. 아울러 사승관계, 서풍관계, 역대 유명 화가들의 그림과 비교를 통한 분석도 살펴보고자 한다.


Gang-am Song, Seongyong was born in 1913, during Japanese occupation period, in village; Yogyo Sangjung-ri, Baeksan-myeon, Gimjae-si third son of top Confucian scholar in southwest, Song, kimyun. He was grown up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period, and 6.25 war (Korean War) also experience many different historical turbulent period; but followed his family tradition as being literal; became confucian scholar and artist in literal and artistic like his father taught. Like his pen name 'Gang-am', we can see how he was noble and artistic.
Gang-am was scholar with both learning and virtue also the courtesy, he spend all his life to study and spreading confucian idea, and creative art, in1930 when he was 18 years old, he was able to write, calligraphy on gravestone and it was huge attention to calligraphers. The word “to have morality, you have to have root first” was his motto for 80 years. This is reason why his handwritings were realistic and live with his spirit. He said “What is handwriting? It is a dot and line became handwriting; it is pure energy of morality”. His four gracious plants aren't different.
Gang-am artistic world study was all about calligraphy.This study is about analyzing and realize Gang-am Four Gracious Plants and his artistic world, also to widen his artistic viewpoint about what Four Gracious plants. This study is pointed in analyzing Four Gracious Plant, how formative and experimental spirit, creative, with advancement, until the end of his carrier.
First; Artistic base Earth, strong foundation of Four Gracious Plant.
Second; Develop power, never ending experimental spirit on creative artistic mind.
Third; The last Sky, Opening mind like bright and high sky.
The main point of Four Gracious Plant From the three, the work will be divided into three, based on technique of how to use the brush on writing and drawing, technique of drawing with oriental ink, and technique on composition. Also, relationship on teacher and the student, relationship of his penmanship style, also analyzing and compare with other artists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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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이씩쿠르칸 황금인간의 고깔모자 형태 기원에 관한 연구

저자 : 이동아 ( Lee Dong A )

발행기관 : 한국동양예술학회 간행물 : 동양예술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73-197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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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착용되어 온 고깔모자는 북방유목기마민족의 사카(Saka)족의 대표적인 모자이다. 3~4부족으로 이루어진 사카족 모두 고깔모자를 착용하였으며, 이들 부족마다 그 형태가 조금씩 다르게 나타났던 것으로 보인다. 사카족의 고깔모자 형태는 크게 3가지 형태로 그 중 앞으로 구부러진 형태의 대표적 모자는 이씩쿠르칸의 황금인간 고깔모자로 그 형태는 일반적으로 앞으로 구부러진 형태와 달리 매우 독특한 형태이다. 그 형태를 살펴보면, 높고 곧은 원추형에 모자 상단이 앞으로 구부러져 있고 그 위에 산양이 올려 져 있으며, 모자 전체에는 150여 가지에 이르는 다양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 황금 장식물이 장식되어 있다. 사카문화권에 나타난 이와 비슷한 유형은 알타이-파지릭 문화권에서 출토된 고깔모자로 모자 상단의 형태는 황금으로 된 새의 머리이며, 그 위에는 말이 얹어져 있고, 모자 주변에 말과 사슴류가 장식되어 있다. 앞으로 살짝 구부러진 독특한 모자 상단의 형태를 이루고 있는 새는 신 또는 천손, 신과의 연결자등 다양한 의미를 지닌 지배계층의 상징물로서 북방유목기마민족의 중요한 표현도구이기도 하다. 새를 형상화한 관모는 사카족 그리고 사카문화권 전반에 걸쳐 나타나며, 새의 깃털, 새 머리 가면등 새는 중요한 상징물로서 다양한 형태로 지배계층의 관모에 많이 표현되었다. 이에 본 연구자는 이와 같은 관점에서 황금인간 고깔모자의 형태는 새를 형상화한 것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고자 한다.


The Pointed Cap has been worn in various regions since ancient times and is representative of the Saka tribe of the Northern nomadic people. It appears that all the Saka people in the three or four tribes wore Pointed Caps, and each of them had a slightly different shape. The Saka's Pointed Cap form is largely three types, of which the typical hat bent forward is the golden man Pointed Cap of Issyk Kurgans is representative form. It is a very unique form unlike the one that is generally bent forward. If you look at the shape, the top of the hat is bent forward in a tall straight cone, and a mountain goat is placed on it, and the entire hat is decorated with gold ornaments of up to 150 different symbolic meanings. Similar types in the Saka cultural sphere have been found with few of the most similar artifacts or forms tilted forward or bent as the straight old hat goes to the top. The Pointed Cap excavated from the Altai-Paziric culture has the head of a bird covered in gold and a horse is placed on it, and is decorated with horses and deer around the hat. It is almost the same shape as the golden man Pointed Cap, and the bird expressed in the Altai-Paziric Pointed Cap was a symbol of the ruling class that reflected the world view of shamanism, such as the god, the Tengri and the bearer. The Saka was also an important symbol, and the birds were also an important symbol in the Saka culture, and were often expressed in the official cap of the ruling class. In this regard, the researcher believes that the form of a golden man antique hat is derived from the shape of a 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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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전람회를 통해 본 한국 근·현대의 서예

저자 : 전상모 ( Jun Sang Mo )

발행기관 : 한국동양예술학회 간행물 : 동양예술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17-235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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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협전》·《조선미전》·《국전》이 근·현대 한국서예의 흐름을 주도했다고 간주하고, 담론을 중심으로 그 문제점을 대략 살펴보았다. 《조선미전》과《국전》을 거쳐 오면서 많은 작가가 배출되었지만 작가들의 작품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획일화된 경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럼에도 '전람회'가 서예의 대중화에 기여한 면은 대단히 컸다.
《협전》은 '미술의 발전과 후배양성'을 목적으로 1921년부터 15회까지 개최된 우리나라 최초의 민전이었으나 《조선미전》에 필적할 만한 규모나 형태를 갖추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그렇지만 후학을 양성하고 전람회도 가지면서 민족미술의 맥을 이었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으며 당시 시대상황을 고려할 때 마땅히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조선미전》은 일제의 조직적인 문화정책답게 조선 서화계 전반이 일본풍의 아카데미즘으로 이끌려져 가게 되었다. 다른 부문과는 달리 《조선미전》서부는 민족사회의 서예가를 심사위원으로 위촉하였는데, 이로 인해 계열성이 나타났다. 이러한 경향은 《국전》으로도 이어져 한국 현대서예의 다양한 발전을 저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조선미전》으로 인해 형성된 언론의 반응은 한국 근·현대서예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저널을 통해 당시 서화의 실상을 알리는 가운데 서예의 존재가치에 대한 평가와 분발을 촉발하였고, 자연히 일반대중의 관심을 유도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국전》의 목적은 일제 식민지문화 잔재의 청산과 민족미술의 수립이었지만, 《국전》은 《조선미전》과 마찬가지로 세속적인 명리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였다. 그래서 《국전》이 진행되는 동안 주목되는 현상은 그 수상작이나 특·입선작을 통해서 볼 때, 어느 한 개인이나 사숙적인 요소가 많이 나타나 있다. 그렇지만 《국전》은 많은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1949년부터 1981년까지 30회에 이르는 동안 한국 서단의 중추가 되는 서예가들을 배출시킴으로써 한국 현대서예의 기초를 튼튼하게 다져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1920년대의 《협전》과 《조선미전》그리고 해방 후 30여 년간 이어온《국전》은 서예의 저변을 확장시켰으며, 이로 인해 서예의 담론이 일어나게 되었다. 따라서 한국 근·현대서예에 있어서의 '전람회'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전람회'는 식민지 조선과 해방 후 30여 년간 우리나라 근·현대 서예를 선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까닭에 본고에서 근·현대 한국서예의 흐름을 '전람회'에 대한 담론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살펴보는 것도 오늘날 한국서단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모색하는데 많은 교훈이 되리라 생각한다.


In this paper, I considered that 《Exhibition of Paintings and Calligraphy Association》, 《Joseon Art Exhibition》and 《National Art Exhibition of the Republic of Korea》led the flow of Korean modern- contemporary calligraphy and examined the problems with a focus on discourse. Many artists have been produced through 《Joseon Art Exhibition》and 《National Art Exhibition of the Republic of Korea》, but most of the artists' works did not escape the uniform tendency. Nevertheless, the exhibition contributed to the popularization of calligraphy.
《Exhibition of Paintings and Calligraphy Association》was the first nongovernmental exhibition held with the purpose of 'development of art and nurture of younger generation' in Korea in 1921 and had been continued till the 15th exhibition. However, it did not have a large scale or a systematic form comparable to Joseon Art Exhibition. Nevertheless, it is significant that it had carried on the legacy of national arts by nurturing the younger generation artists and having continuous exhibitions, and it should be highly appreciated considering the circumstance of the times. Since 《Joseon Art Exhibition》was a part of the systematic cultural policy of Japanese imperialism, the whole Korean calligraphy field was led by Japanese academicism. Unlike the other fields of art, the calligraphy field of 《Joseon Art Exhibition》commissioned the calligraphers from the nationalistic society as judges, so the filiation has been produced. This trend was also found in 《National Art Exhibition of the Republic of Korea》, and it was judged to impede various developments of Korean modern calligraphy. In spite of these problems, the reaction of the press against 《Joseon Art Exhibition》has important meaning in Korean modern-contemporary calligraphy. Through the journal, the press informed the reality of calligraphy of the times, and that caused the evaluation and exertion of the value of calligraphy, which naturally had led to the public's attention. The purpose of 《National Art Exhibition of the Republic of Korea》was to clear the remnants of Japanese colonial culture and to establish national art, but 《National Art Exhibition of the Republic of Korea》became a tool for achieving secular fame and wealth as 《Joseon Art Exhibition》did. As a result, the winning works of 《National Art Exhibition of the Republic of Korea》had often been concentrated on the pupils of certain individuals. Despite these many twists and turns, it is undeniable that 《National Art Exhibition of the Republic of Korea》laid out the foundations of Korean modern calligraphy by producing the calligraphers who became the backbone of the field of Korean calligraphy during the 30 times of exhibitions from 1949 to 1981.
《Exhibition of Paintings and Calligraphy Association》and 《Joseon Art Exhibition》of the 1920s, and 《National Art Exhibition of the Republic of Korea》which had been continued for 30 years since liberation expanded the base of calligraphy, and it led to the discourse of calligraphy. Therefore, the 'Exhibition' in Korean modern-contemporary calligraphy has a special meaning. In addition, it could be said that the 'Exhibition' led the Korean modern-contemporary calligraphy during the period of colonial Joseon and 30 years after liberation. For this reason, a brief review of the flow of Korean modern-contemporary calligraphy, focused on the discourse on “Exhibitions” would be a lesson for us to seek the direction of the Korean calligraphy these 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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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굴원(屈原)의 이소(離騷) 가 묵란화 형성에 끼친 영향 고찰 - 원대(元代) 정사초(鄭思肖)를 중심으로 -

저자 : 최현우 ( Choi Hyun Woo )

발행기관 : 한국동양예술학회 간행물 : 동양예술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37-265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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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묵란화(墨蘭畵)가 어떠한 점에서 초(楚)나라 굴원(屈原, BC 353-BC 278?)의 이소(離騷) 영향을 받아서 원대(元代, 1271-1368)에 형성되었는지에 대해, 무근란(無根蘭)과 노근란(露根蘭)이라는 묵란화의 전범을 만들어서 시조로 알려진 정사초(鄭思肖, 1241-1318)를 중심으로 규명해 보는데 그 연구 목적이 있다.
난세(亂世)였던 전국시대(戰國時代) 말기 굴원은 유능한 충신(忠臣)이었으나 모함을 받아 유배당하였는데, 자신의 결백(潔白)과 우국충정(憂國忠貞)을 국력이 쇠하여가는 초나라 왕에게 호소하고자 - 기존에 군자의 절개를 상징하던 - 난초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향초(香草)를 소재로 이소 라는 장편서사시를 저술한 것이었다. 또한 정사초는 南宋(1127-1279)이 망한 후 은거하였는데, 망해버린 송나라에 대한 우국충정과 몽고족에 대한 항거, 즉 원나라에 국토를 빼앗겨 난초를 묻을 땅이 없다는 의미로서 흙과 뿌리를 그리지 않은 무근란과 뿌리를 드러낸 노근란이라는 묵란화의 전형을 만들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굴원과 정사초는 1600여년이라는 세월의 차이는 있으나, 극심한 난세의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유배를 당하거나 은거하였다는 어려운 처지와 조국에 대한 변함없는 절개 의지가 유사하다. 특히 굴원의 시(詩)와 정사초의 그림에서 공통적인 소재인 난초가 '우국충정과 애국심'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바로 이러한 점으로 인해 정사초는 조국에 대한 절의(節義)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면 목숨을 위협 받는 식민 지배를 받는 유민이었으므로, 그 자신을 처지와 신념이 비슷한 굴원에 비유하여 이소 에 담긴 난초의 상징 의미를 묵란화로 형상화함으로써 암시적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것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stablish in what point the orchid painting in ink (墨蘭畵) was shaped at the Yuan dynasty(元代, 1271-1368) under the influence of the poem “Lisao (離騷)” of Chu (楚) state's Qu Yuan (屈原, BC 353-BC 278?), focusing on Zheng Sixiao (鄭思肖, 1241-1318) who is called the founder of the orchid paintings in ink, because he created the models (典範) of rootless orchids (無根蘭) and orchids with roots exposed (露根蘭).
At the end of the Warring States period (戰國時代), which was a turbulent period (亂世), Qu Yuan was a competent royal subject (忠臣), but was exiled after being framed. And it was confirmed that in order to appeal to the king of the decadent Chu for his innocence (潔白) and patriotism (憂國忠貞), he employed as subjects of writing, not only the orchids, which is a traditional symbol of the fidelity (節槪) of a man of virtue(君子), but also various herbs (香草) to write his long epic poem (長篇敍事詩) “Lisao”. Zheng Sixiao also lived in seclusion after the collapse of the Southern Song (南宋, 1127-1279) dynasty. We could see that he created painting models of orchids in ink, such as rootless orchids and orchids with roots exposed, in the sense of patriotism for the collapsed Song(宋) dynasty and resistance to the Mongols. It must be said that there is no land to bury orchids because the land was taken away by the Yuan(元) dynasty.
Even if more than 1,600 years of difference separate Qu Yuan and Zheng Sixiao, they have in common the fact that they were in a difficult position, that is to say that they were either exiled or in seclusion due to the political situation in turbulent times, as well as their unwavering will for loyalty to their country. In particular, orchids, a common subject in Qu Yuan's poems and Zheng Sixiao's paintings, are in same line with the fact that they symbolize "patriotism and nationalism." We could see that Zheng Sixiao, who was a migrant (遺民) under colonial rule who would be threatened with death if he directly exposed his fidelity and loyalty to his country, likened himself to Qu Yuan, who was in a position similar to him with similar beliefs. That is why the symbolic meaning of orchids in "Lisao" was implicitly embodied in the orchid paintings in 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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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肌理技法在当代工笔花鸟画创作中的艺术表现

저자 : 손결 ( Sun Jie ) , Wu Qi Tao

발행기관 : 한국동양예술학회 간행물 : 동양예술 4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67-289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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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當代)의 다원화된 사회문화 환경 속에서 공필화조화 화가들의 심미(審美)방식과 감정의정은 이전에 비해 비교적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변화는 화가들로 하여금 창작과정에 끊임없이 노력하여 새로운 예술표현 언어를 탐색하게 함으로써 현대인들의 심미적 요구를 만족시킨다. 따라서 살결(肌理) 표현형식이 당대 공필화조화가와 관중들에 의해 접수되고 감상, 심지어 추앙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당대 공필화조화는 풍부하고 넓은 전통예술을 기초로 기타 회화의 종류에서 살결(肌理)기법의 운용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당대 공필화조화가 전통회화 이념과 판이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도록 힘쓰고 있다.
현재의 공필화조화 분야에서 전통적인 회화방식은 이미 유일한 선택이 아니다. 당대(當代) 공필화가들은 다양한 각도에서 예술적인 표현을 끊임없이 탐구하였다. 공필화조화는 살결(肌理) 기법에 대한 탐색과 실천이 풍격이 되었으며 또한 일부 예술가들의 독특한 예술풍격을 성공적으로 형상화하였다. 살결(肌理) 기법 자체의 다변성과 풍부성은 끊임없이 전통 그림의 한계를 타파하고 있다.
본 연구는 전통적인 공필화조화 절차화한 기법과 당대(當代) 공필화조화의 살결(肌理) 기법을 비교한다. 그리고 살결(肌理) 기법이 당대(當代)의 공필화조화에서 성행하게 된 배경, 원인, 존재의 다양성 및 산생된 문제 결합하여 종합 4개 부분으로 이 기법에 당대(當代) 공필화조화에서 생긴 예술적 표현에 대한 상세한 논술한다.
1. 우선 살결(肌理) 기법의 개념, 분류 그리고 예술적 표현가치 등을 통해 화면 속에 살결(肌理)에 대해 과학적인 설명을 상세하게 하였다. 그다음 살결(肌理) 기법이 역대의 공필화조화에서 운용된 것을 설명하였다.
2. 살결(肌理) 기법이 당대 공필화조화에서 나타난 원인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였으며 이 회화분야의 살결(肌理) 기법의 창작을 종이의 제작, 특수도구의 사용 및 특수 재료의 응용 등 세 가지 층면으로 나누어 구체적인 실례와 연구를 진행하였다.
3. 살결(肌理) 기법이 공필화조화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거기에 존재하는 문제를 찾아내려 시도하였으며 살결(肌理) 기법은 다만 회화표현의 수단일 뿐만 아니라 공필화조화 자체의 본질적인 특징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4. 창작실천에 결합하여 당대(當代) 공필화조화에서의 창작의 시사점을 천명하였다.


In the contemporary context of a wide range of social and cultural, the aesthetic approach and emotional identification with the past of fine brushwork bird have undergone great changes. These changes led directly to the painters in the creation of ongoing efforts to explore new artistic expression language to meet the aesthetic needs of contemporary people. Therefore, the texture of the manifestations of contemporary fine brushwork bird house and the audience to accept and appreciate, even highly regarded is no accident. Contemporary fine brushwork bird traditional rich folk art foundation, and actively absorb the essence of the use of other disciplines of painting on the texture techniques contemporary fine brushwork bird strive to make the show a new face of the very different concept of traditional painting.
Today's fine brushwork bird community, the traditional way of painting no longer the only option. Contemporary Meticulous home are continuing to pursue a multi-angle form of artistic expression, texture techniques to explore and practice the fine brushwork bird has become a painting fashion, shaping the success of some of the artists unique artistic style, texture technique variability and richness to break through the shackles of the traditional picture.
In this paper, a comparison of the use of traditional fine brushwork bird and contemporary fine brushwork bird texture techniques, combined with the background texture techniques prevalent in the contemporary fine brushwork bird reasons, the existence of diversity and the problems arising from consolidated into four parts to this techniqueartistic expression in contemporary fine brushwork bird discussed in detail:
The first part of the texture in the screen in a scientific and detailed interpretation. Secondly, it describes the historical origins of the texture techniques in the production of fine brushwork bird.
The second part, the specific analysis of the causes of the texture techniques contemporary fine brushwork bird, and the creation of texture in this field of painting techniques into the production of paper, the use of special tools and special materialsaspects of the detailed examples and research. And fully demonstrated the development trend of the texture technique in fine brushwork bird.
The third part of the analysis of the significance of texture techniques for fine brushwork bird, and trying to figure out the existing problems, pointed out that the texture creation is just a graphical representation of the means of not losing the quality of fine brushwork bird style.
Part IV, combined with their own creative practice, and illustrates the creative inspiration in the fine brushwork 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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