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행물

한국사상사학회> 한국사상사학

한국사상사학 update

The Study of Korean History of Thought

  • : 한국사상사학회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철학
  • : KCI등재
  • :
  • : 연속간행물
  • : 연3회
  • : 1226-9441
  • :
  • :

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87)~66권0호(2020) |수록논문 수 : 691
한국사상사학
66권0호(2020년 1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 | | |

KCI등재

1무령왕릉 출토 유물을 통해 본 매장 의례와 그 사상적 배경

저자 : 이장웅 ( Lee Jang Woong )

발행기관 : 한국사상사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사학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53 (53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그동안 무령왕릉 출토 개별 유물들에 대한 분석 연구는 많이 이루어졌고, 백제를 비롯하여 한국 고대 상장례에 대한 연구도 어느 정도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들 유물들이 무령왕릉 내에서 배치된 맥락에 따른 사상적 의미를 종합적으로 파악하려는 시도는 잘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에 본고는 무령왕릉 출토 유물들을 백제 왕과 왕비의 매장(埋葬) 의례(儀禮)라는 전체 맥락 속에서 그 의미와 사상적 배경을 밝혀보고자 노력하였다. 먼저 2장에서는 지석(誌石)과 목관 배치를 통해 무령왕릉에 나타난 상장례(喪葬禮)를 유추해보았다. 이어 3장에서는 3년 동안 이루어졌던 빈(殯) 의례 이후 행해진 매장 의례 때에도 목관을 열지 않고 그대로 이동하여 이곳에 안치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에 따라 목관 내부의 유물들은 빈 의례의 내용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면서, 세부 유물들의 사상적 배경을 살펴보았다.
4장에서는 매장 때에 이루어졌을 부장 의례에 대하여 왕과 왕비의 발치에서 발견된 신수경(神獸鏡)과 청동 다리미를 중심으로 그 사상에 대하여 살폈다. 5장에서는 현실(玄室) 앞에서 이루어졌을 매장 의례의 내용을 반영하고 있는 유물들에 담겨진 사상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6장에서는 연도에 현문(玄門)을 세우고 마지막 의례를 거행한 모습을 살펴보았다.
1971년 7월 8일 단 하루만에 무령왕릉 발굴이 끝난 후 50년이 흐른 현재의 시점에서는, 그간 다양하게 파악된 개별 유물들에 대한 연구와 각지에서 출토된 비교 자료들을 종합하여, 백제인의 사상 체계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때라고 본다.


Through the relics excavated from the Royal Tomb of King Muryeong, This article examined the ritual process of Baekje's burial and tried to reveal its ideological background. In Chapter 2, we inferred the funeral at the Royal Tomb of King Muryeong through the Epitaphs and the placement of wooden coffins. In Chapter 3, it was found that during the burial rituals held after three years of Bin(殯) rituals, the wooden coffin was moved without being opened and enshrined here. Accordingly, the relics inside the wooden coffin reflect the contents of the Bin(殯) ritual, and we looked at the ideological background of the detailed relics. In Chapter 4, we examined the ideas of the burial rituals, which were found at the feet of the king and queen, with bronze mirrors and bronze iron. In Chapter 5, we looked at the ideas contained in the relics reflecting the contents of the burial rituals in front of the tomb room. Finally, in Chapter 6, we looked at the appearance of the last rites of the tomb gate built on the path of the tomb.

KCI등재

216세기 『경민편(警民編)』 초기 간본의검토 - 상허 중앙도서관 소장본의 사례 -

저자 : 정호훈 ( Jeong Ho-hun )

발행기관 : 한국사상사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사학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55-90 (36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이글에서는 건국대학교 상허도서관에 소장 중인 『경민편』(상허본)을 통해 『경민편』 초기 간행본의 모습을 검토하였다. 학계에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상허본은 한글 번역문이 실려 있지 않는 특성을 보이는데, 책의 간행 시점은 1579년 이전으로 판단된다. 1579년 허엽이 중간(重刊)한 간본이나 17세기 중엽 이후원이 개간(改刊)한 간본과 비교할 때, 원문이나 구결에서 이들 간본보다 앞서는 양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한편 상허본은 황해도에서 간행된 김정국의 초간본과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으며, 전라도 남원과 무장 등 황해도 바깥 지역에서 인쇄된 간본으로 추정된다.
상허본을 통해 필자는 문자적 구성과 관련하여 『경민편』이 진화되는 양상을 확인했다. 통상적인 이해와는 다르게, 『경민편』은 초기에는 한문으로만 원문을 구성했다가 16세기 후반에 이르러 한글 번역을 보완하는 변화를 보였다. 이를 통해 살핀다면, 초기 『경민편』이 나왔을 때 이 책은 그 보급을 가로막는 장애를 내부에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 이 책을 읽고 해독할 수 있었던 독자층 또한 유식계층(有識階層)으로 한정되었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경민편』은 권력의 운용 방식을 주자학의 이념에 기초하여 전면적으로 전환하고자 했던 김정국과 기묘사림의 모습을 충실히 담고 있는 문헌이다. 상허본은 초기 『경민편』의 모습이 어떠했던지, 그리고 후대 『경민편』의 변화가 어떠한 방향으로 일어나는지를 살핌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In this article, the appearance of the early publications of 『Gyeongmin Pyeon』 was reviewed through 『Gyeongmin Pyeon』(Sangheo edition) held in the Sanghe Library of Konkuk University. The Sangheo edition, which is not yet known to the academic world, has the characteristic that Korean translations are not included. On the other hand, the Sangheo edition is not directly related to the first edition published in Hwanghae-do by Kim jeong-guk(金正國). Through the Sangheo edition, I confirmed that when 『Gyeongmin Pyeon』 was first published, it contained only the original Chinese text, but after the late 16th century, the Korean translation was supplemented. The Sangheo edition, which contains the appearance of the early 『Gyeongmin Pyeon』, is an important material for examining the direction in which the changes of the later 『Gyeongmin Pyeon』 occur.

KCI등재

3조선후기 '동국분야(東國分野)'의 출현

저자 : 편소리 ( Pyun So Ri )

발행기관 : 한국사상사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사학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91-128 (38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동국분야(東國分野)는 하늘의 28수를 조선 전역에 대응한 새로운 분야설이다. 기존 연구에서는 화담학파(花潭學派)의 인물들에 의해 16세기경 동국분야가 출현한 것으로 보았다. 이 논문에서는 동국분야의 창안자와 그 학설의 성립 시점을 재검토하였다.
유형원(柳馨遠, 1622~1673)의 분야설에 대한 일련의 문헌을 검토해 보면 동국분야의 창안 시점은 17세기를 상한으로 하는 것 같다. 이 같은 추정은 동국분야가 표현되어 있는 천문도와 지도 등 현존 자료의 제작 시점에 의해서도 뒷받침 된다.
동국분야가 출현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인을 거론할 수 있다. 첫째, 서구식 세계지도와 지리서의 전래에 따른 고전 분야설에 대한 비판적 검토, 둘째, 고전 분야설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 셋째, 일본 전역을 28수에 대응한 일본 분야설의 유입이다.
동국분야설의 출현은 상반된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여겨진다. 하나는 고전 분야설을 계승하여 시대적 변화에 맞추어 변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구설(地球說)을 비롯한 서양 지리 지식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분야설을 폐기하지 않고 새로운 형식으로 변형하였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새로운 지리 지식에 기초하여 중국 중심의 전통적 지리관에서 탈피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이나 조선도 독자적인 분야설을 수립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Donggukbunya(東國分野: Allocated fields of Korea) is newly originated Bunyaseol (分野說: The theory of allocated field) which mapped the Twenty-eight mansions(28宿) of the sky to the territory of Joseon. According to the perspective of existing research, Donggukbunya advented by the Hwadam School(花潭學派) in 16th century. In this paper, I reviewed the creator and period which Donggukbunya established as a theory.
As a consequence of research a series of documents which related to Yu Hyeong-Won(柳馨遠), the Donggukbunya seems originated in 17th century at least. This is reliable considering the timeline of various documents which contain Donggukbunya.
To explain the advent of Donggukbunya, three elements can be taken as grounds. First, criticism about traditional Bunyaseol due to inflow of western world map and geography. Second, numerous attempts to adjust traditional Bunyaseol reasonably. Third, arrival of Japanese Bunyaseol which mapped 28 mansions into Japanese field.
The advent of Donggukbunya is considered as containing two meaning. The first is that Donggukbunya is a variation of inherited traditional Bunyaseol which reflected change of the era. Despite the western geography knowledge -for instance, Idea of Round Earth(地球 說), etc.- expanded, it didn't dispose the Bunyaseol but transited into new format. The other is that Donggukbunya shows possibility of escape from traditional geography concept which centered on China to newly introduced Western geography knowledge. As it represent Japan and Joseon can establish independent Bunyaseol like China.

KCI등재

4이재 황윤석의 가계분석

저자 : 김승대 ( Kim Seung Dae )

발행기관 : 한국사상사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사학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29-163 (35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이 글은『이재난고』를 저술한 조선후기 박물학적 실학자인 頤齋 黃胤錫(1729~1791)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즉 '이재학' 정립을 위한 기초작업의 일환으로 쓰게 되었다. 이재 황윤석 가문은 평해황씨로 선대는 주로 평해, 춘천에 세거하였다. 황윤석의 8대조인 황수평은 처가가 있는 전라도 흥덕으로 입향하였다. 황수평의 자손대에 이르러서는 흥덕 일원의 도강김씨, 문경송씨, 전주이씨 등과 통혼하면서 지역의 재지사족으로 성장하였다. 황윤석의 증조인 황세기, 조부 황재만, 종조 황재중은 우암 송시열의 서인 노론계열이 되었다. 황재만은 울산김씨와 도강김씨, 아버지 황전은 도강김씨와 혼인하면서 더욱 노론계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황윤석의 외가는 무성서원을 지켰던 태인의 도강김씨 가문이다. 이재는 정극인의 행장을 쓰면서 자신의 학맥이 무성서원에 닿아 있음을 역설하였다. 이재의 처가는 남원 월곡의 창원정씨 가문이다. 부인 창원정씨는 영천서원에 배향된 정황의 7대손이다. 황윤석과 창원정씨는 2남 3녀의 자녀를 두었다.


Yi Jae(頤齋) Hwang yun-seok(黃胤錫, 1729~1791) is a representative Confucian scholar in Honam in the late Joseon Dynasty. His representative book, Yijaenango(頤齋亂藁) is a diary that he wrote throughout his life, and is a work that shows his scholarship and thoughts. He is also a Silhak scholars who has studied various fields of learning.
This article was written as a basic work for a systematic study of Hwang yun-seok. I would like to deal with household analysis as an important fundamental study of him. Hwang yun-seok's family is Pyeonghae-Hwang. His family has lived in Heungdeok-myeon, Gochanggun, Jeollabuk-do for generations. His ancestors mainly lived in the Pyeonghae and Chuncheon areas.
Hwang yun-seok's grandfather of the eight generations is Hwang Soo-pyeong(黃守平). Hwang Su-pyeong entered Heungdeok(興德), his wife-in-law's house. His children lived in the Heungdeok area and married major local family names. Examples include Dogang-Kim, Mungyeong- Song, Jeonju-Lee, etc.
Hwang's great-grandfather and grandfather belonged to the Noron school. Hwang yun-seok's mother's family is Dogang-Kim. This family is the family that guards the Museong Seowon(武城書院). Hwang yun-seok emphasizes that he took over the academic line here. Hwang yun-seok in-laws is a family of Changwon-Jeong. His children have two boys and three girls.

KCI등재

5영ㆍ정조대 충역 시비와 황극의 역할

저자 : 최성환 ( Choe Seong Hwan )

발행기관 : 한국사상사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사학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65-203 (39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주자는 황극=대중설에 기반한 한대(漢代) 이래의『서경』 「홍범」편 해석을 황극=의리설로 재해석하였을 뿐 아니라, 이전까지 죄악시되던 붕당관에서 탈피하여 군자당이 군주를 적극 설득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주자의 정치론에 따르면, 붕당에 속한 신하들라도 군주와 더불어 정치의리를 적극적으로 논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주자의 정치론을 모범적으로 구현한 것이 조선후기의 붕당과 탕평정치이다. 주자의 황극론과 붕당론을 기준으로 영조와 정조대 탕평 정치의 특징을 더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영조대 전반기에는 황극을 대중(大中) 곧 중도적 타협으로 이해하였기 때문에 노ㆍ소론 의리의 절충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수 차례의 혼란을 겪다가 절충은 실패하였고, 영조 31년에는 결국 영조의 정통성에 대한 의구심을 완전히 불식하고, 노론의 충과 소론의 역을 확정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대중' 탕평이 의리 탕평으로 전환된 것이다.
그러나 충역 의리에 대한 영조의 자신감은 점점 강해져서, 끝내 자신의 후계자를 죽이는 임오화변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영조대 후반기에는 황극이 독단적인 군극(君極)의 경향을 강화시켰다. 정조는 영조의 황극을 계승하였으나, 주자의 황극론에 입학하여 천극=의리에 기반한 군극을 실현하고자 노력하였다. 정조는 영조가 독단으로 확정했던 '영조의 임오의리'를 수정하고, 이에 수반되는 추왕(追王)과 종통 변경까지 시도할 수 있었다. 정조대에는 군주가 천극=군극=황극이라는 중심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선명한 의리론을 내세운 붕당들의 경쟁과 군주에 의한 조정 그리고 이전에는 소외되었던 정치 세력까지 가세한 변통이 가능했다.


Zhu Xi not only reinterpreted the interpretation of _Seo-gyeong(書經)_ 「Hongbeom(洪範)」 based on 'Hwanggeuk(皇極)' = 'Grand middle(大 中)' theory, but also argued that virtous men's faction should actively persuade the monarch by breaking away from having considered faction as a sin ever.
According to Zhu Xi's political theory, it is possible for even the officials in faction to actively discuss political principles with the monarch. It was the 'faction politics' and 'Tangpyeong(蕩平) politics' of the late Joseon Dynasty that exemplifyed Zhu Xi's ideals of politics. Based on Zhu Xi's theory, the characteristics of King Yeongjo and Jeongjo's 'Tangpyeong politics' can be more clearly understood.
During the first half of the reign of King Yeongjo, the Hwanggeuk was understood as a 'Great middle', and thus attempted to compromise the rightiousness of 'Noron(老論)' and 'Soron(少論)'. However, the compromise was unsuccessful after many confusion, and in 31st year of King Yeongjo's reign, it resulted to complete elimination of doubts about the legitimacy of King Yeongjo, and confirmation of the loyalty of Noron and the treason of Soron. The 'Great middle Tangpyeong' has been converted to 'Rightiousness Tangpyeong(義理蕩平)'.
However, King Yeongjo's confidence in the rightiousness grew stronger, leading to the tragedy of the 'Imohwabeon(임오화변)', which eventually killed his successor. In the second half of the reign of King Yeongjo, the Hwanggeuk strengthened the tendency of arbitrary 'Gungeuk(君極)'.
Although King Jeongjo succeeded in King Yeongjo's 'Hwanggeuk', he went after the 'Hwanggeuk' theory of Zhu Xi and tried to realize the 'Gungeuk' based on 'celestial pole(天極)' = righteousness. King Jeongjo was able to modify 'Yeongjo's Imo-righteousness(壬午義理)', which was confirmed by King Yeongjo on his arbitrary decision, to 'Jeongjo's righteousness(壬午義理)' and even attempet to carry out 'chuwang(追王)' and change the Order of royal family. Since King Jeongjo was active on the fair axis of celestial pole(天極) = Gungeuk = Hwanggeuk, it was possible to make changes by the competition of factions and the coordinating of the king joining marginal political forces.

KCI등재

6조선후기 관서 유학사 시론

저자 : 노관범 ( Noh Kwan Bum )

발행기관 : 한국사상사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사학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05-241 (37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이 글은 조선후기 관서 유학사를 읽는 관점을 시론적으로 검토했다. 첫째, 관서 유학사의 주요 인물 계보를 기록한 글들을 검토해 그 각각의 글에서 소개된 관서 유학자를 계보적으로 인식하고 각 계보의 같고 다름을 서로 비교해서 당대의 서로 다른 관서 유학사 인식을 드러냈다. 둘째, 관서 유학자를 기리는 영예로운 칭호 '관서부자'가 관서 유학자와 연결되는 양상을 검토해 관서 유학사에서 '관서부자' 현상이 관서 내부의 전통의 형성인 동시에 관서 외부의 시선의 부과라는 이중적인 성격이 있음을 독해하고 관서 유학사의 흐름이 주요 '관서부자'의 출현에 의해 특정한 국면별로 이해될 수 있음을 제안했다.
첫째 논점과 관련하여 주목할 점은 관서 내부이든 관서 외부이든 관서 유학사의 주요 인물로 선우협과 황순승을 공유하는 가운데 이시항, 백경해, 박은식 등 관서 내부인의 글은 선우협 이전 단계 관서 유학의 다양한 지역 전통을 중시하고 선우협 이후 단계에서 관서 유학의 중심 지역으로 청북의 영변을 중시하는 반면, 심기택, 장지연 등 관서 외부인의 글은 선우협을 관서 유학의 출발점으로 간주하고 선우협 이후의 관서 유학 전통을 청남의 평양에서 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관서 유학사 인식에서 세부적으로 청남과 청북, 평양과 지방의 요인이 개입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둘째 논점과 관련하여 주목할 점은 본래 관서부자는 중국에서 주변부 지역의 유학자를 찬미하는 칭호였고 이러한 개념을 적용해 조선에서도 해동공자의 의미로 사용되었기에 관서 유학자와는 무관한 칭호였는데, 관서 유학사의 특정한 역사적 조건 하에서 관서부자와 관서 유학자가 결합하여 관서 지방에서 관서부자가 배출되었다는 사실이다. 조호익(16세기), 선우협(17세기), 강규(18세기), 박문일(19세기) 등은 관서 유학사에서 관서부자의 칭호를 얻은 주요 관서 유학자로서 향후 문제적인 관서 유학자와 그의 시대라는 관점에서 관서 유학사 연구가 심화되기를 기대한다.


This paper examines the local Confucian tradition in Pyeong An province in the late Joseon Korea. Pyeong An province, generally regarded as one of the less civilized regions in Korean Confucianism, was actually beginning to give birth to the specific local Confucian scholars in the late Joseon period. The gradual growth of its local Confucianism can be found in the following two points.
First, there can be found not a few historical sources which include the important information on the Coufucianism in the Pyeong An province. Different Confucian scholars connected to each other were displayed in the specific viewpoint of the linage of those scholars. Yi Sihang(李時恒), Baik Gyeonghai(白慶楷), Pak Eunsik(朴殷植) made much of the diverse local tradition and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the Yeongbyeon(寧邊) scholars in the northern part of that province. On the contrary, Sim Gitaik(沈琦澤), Jang Jiyeon(張志淵) gave special attention to the Pyeongyang(平壤) Confucian scholars in the Southern part of that province. That was caused by the difference of views between insiders and outsiders of that province.
Second, it was the notable phenomenon that the title of Guanxifuzi (關西夫子) came into being within the local tradition in the Pyeong An province. Guanxifuzi, originally meaning “Confucius in the Guanxi, the periphery region of China” in relation with the Chinese intellectual Yang Zhen in the Han dynasty, could be connected to the Korean Confucian scholars in the Korean Guanxi, Pyeong An province since Jo Hoik received that honorable title form the King Seonjo.
Jo Hoik(曺好益, 16th century), Seonu Hyeop(鮮于浹, 17th century), Gang Gyu(康逵, 18th century), Bak Munil(朴文一1, 19th century), all of them were the representative Confucian scholars to have the title, the Confucius in the Korean Guanxi, Pyeong An province.

1
권호별 보기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

(자료제공: 네이버학술정보)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
| | | |
1연안해역에서 석유오염물질의 세균학적 분해에 관한 연구

(2006)홍길동 외 1명심리학41회 피인용

다운로드

2미국의 비트코인 규제

(2006)홍길동심리학41회 피인용

다운로드

가장 많이 참고한 논문

(자료제공: 네이버학술정보)

가장 많이 참고한 논문

다운로드

2미국의 비트코인 규제

(2006)홍길동41회 피인용

다운로드

해당 간행물 관심 구독기관

동국대학교 서울대학교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 중부대학교
 127
 120
 117
 83
 63
  • 1 동국대학교 (127건)
  • 2 서울대학교 (120건)
  • 3 연세대학교 (117건)
  • 4 고려대학교 (83건)
  • 5 중부대학교 (63건)
  • 6 이화여자대학교 (60건)
  • 7 동아대학교 (39건)
  • 8 한양대학교 (34건)
  • 9 홍익대학교 (31건)
  • 10 서강대학교 (28건)

내가 찾은 최근 검색어

최근 열람 자료

맞춤 논문

보관함

내 보관함
공유한 보관함

1:1문의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