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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문화연구 update

Journal of East Aisan Cultures

  •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사
  • : KCI등재
  • :
  • : 연속간행물
  • : 계간
  • : 2383-6180
  • :
  • : 한국학논집(~2009)→동아시아문화연구

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80)~79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855
동아시아문화연구
79권0호(2019년 11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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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구상의 『초토의 시』 연구 -원본 시집 『초토의 시』를 중심으로-

저자 : 곽효환 ( Kwak Hyo-hwan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7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3-37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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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이 1956년 발간한 두 번째 시집 『초토의 시』는 15편의 연작시를 통해 민족상잔의 전쟁체험과 전후 현실에 대해 증언하고 수록하고 있는 그의 대표작이다. 이 시집에 수록된 시편들은 각각이 독립된 내용과 형식을 갖추고 있으면서 초토가 된 세계에서 인간 내면의 강인한 생명력과 희망을 찾아내고 이를 기독교적인 윤리의식과 휴머니즘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초토의 시』는 구상 초기시 뿐만 아니라 시세계 전체의 중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구상의 『초토의 시』를 두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하나는 『초토의 시』가 시인의 대표작이면서 문학사에서도 중요작품으로 주목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번의 개작과정을 보이고 있음에 주목하고 그 개작양상을 정리하고 개작의 의의를 정리하였다. 다른 하나는 『초토의 시』에 수록된 시편들을 크게 셋으로 분류하여 각각이 갖는 의의가 무엇인지를 살피고 나아가 이 시편들이 서로 어떤 의미망을 이루고 있는지를 고찰하였다.
다만 『초토의 시』 원작의 의도와 쓰여진 시대적 상황에 최대한 밀착하여 살핀다는 차원에서 1956년 청구출판사에서 발간한 시집 『초토의 시』를 대상으로 원본 비평적 접근 방식을 취했다.


Ku Sang's second collection of poems, Wasteland Poems published in 1956, is his signature work that testifies and contains about the war experiences of a national disaster and postwar realities through 15 series of poems. The verses in this book have their own independent content and format, discovering the strength and hope of human inner strength in a devastated world and configurate them as a Christian ethic and humanism. In this point Wasteland Poems is at the center of, not only the early poetry stages of Ku Sang but also the whole poetic world.
In this article, we looked at Ku Sang's Wasteland Poems from two perspectives. One is that 「Wasteland Poems」 is a representative work of the poet, and even though it's getting attention as a major piece of work in the history of literature, it has been adapted several times so I have sorted out the details and the significance of the rewriting. The other is to divide the verses of 「Wasteland Poems」 into three large groups to examine what each of them means and further to look at how they form a semantic network.
However, in order to keep close tabs on the intentions of the original work and the situation of the written era, an original critical approaching way was taken to Wasteland Poems, the collection published by Cheonggu Publishing Co. in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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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세기 이미지 시론을 위한 시 교육 방법론 연구

저자 : 정끝별 ( Jeong Keut-byul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7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9-62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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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는 현대시의 중요한 시적 장치다. 20세기 시가 회화의 영향을 받아 시각 중심의 감각 이미지를 극대화하였다면, 21세기 시는 영화의 영향을 받아 카메라 작동방식과 편집기술을 모방해 영화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오늘날 이미지란 감각이자 경험이고, 물질이자 상상이다. 기억이자 사유이고, 정동이자 정치이다. 또한 순간이자 지속이고, 정지이자 운동이기도 하다. 따라서 기존의 이미지 개념으로는 최근 시의 복합적인 이미지 양상들을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을 초래하게 되었다.
본고는 오늘날 이미지 시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한다. 한국 현대시를 이해하고 해석하고 창작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21세기 시론으로서의 이미지를 대학 시 교육에 적합한 개념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이미지가 작동하는 주된 범주로서 지각, 의식, 인식의 차원으로 나눈 후, 여기에 더해 이미지가 구축 방식에 따라 순간성, 지속성, 운동성을, 그리고 이미지가 구축된 형태로서의 표상, 현상, 수행적 특성 등을 고려하여 다음과 같이 갈래화하였다. ① '순간적이고 표상적인 이미지'는 감각 지각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감각 이미지와 비유 이미지가 대표적이다. 기존의 이미지즘이나 신비평에서 논의되었던 20세기 이미지 시론을 대표하는 개념들이다. ② '지속적이고 현상적인 이미지'는 의식현상학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가스통 바슐라르의 물질 이미지와 앙리 베르그송의 기억 이미지를 포함한다. ③ '운동적이고 수행적인 이미지'는, 질 들뢰즈의 운동 이미지와 시간 이미지를 원용한 영화 이미지와, 브라이언 마수미의 정동 이미지론이나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의 민중 이미지를 원용한 정동 이미지를 포함한다. 이로써 여섯 가지 유형의 이미지를 도출하였다. 또한 이렇게 갈래화한 이미지들이 실제의 작품에서 어떻게 작동되는지에 대한 분석의 실례를 제시하였으며, 이를 통해 대학에서의 이미지 시(론) 교육 현장에 유효한 새로운 모형을 제시하였다. 결과적으로 21세기 시론 혹은 시학으로서의 이미지에 대한 새로운 연구 관점과 교육적 활용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The starting point of this study is a critical mind to question how the image poetry has to be educated today. As an important poetic element to be helpful in understanding, interpreting, and creating poetry in 21th century, the image is thus to be considered as a proper conception for the poetic education at universities. To this purpose, after the mainly operating categories of images are divided into the dimensions of perception, consciousness, and recognition, the followings are classified by considering not only the momentariness, durationality, and movability in accordance with constructive modes of images but also the representations, phenomena, and performative traits as constructive forms of images. ①The 'momentary and representative images' are typified by the sensory image and figurative image which are formed in the dimension of sensory perception. These conceptions have typified the theories of image poetry in 20th century that the imagism or New Criticism had discussed. ② The 'durative and phenomenal images' include Gaston Bachelard's material image (image materielle) and Henri Bergson's memorial image(image-souvenir) which are formed in the dimension of the phenomenology of consciousness. ③ The 'movable and performative images' include the cinematic image to be cited from Gilles Deleuze's theories of movable image(image-mouvement)and temporal image(image-temps) as well as the affective image to be cited from Brian Massumi's and Georges Didi- Huberman's theories of political image. The six types of images are derived from these. And besides, a new educational model available for the scene of education in the (theory of) image poetry at universities is presented by illustrative analyses about how these classified images operate actually in poems. The consequence is that the study on images, as a poetic theory or poetics in 21th century, seeks for its own new standpoint and educational us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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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지역문화 연구와 인문공동체 모델 -강원도 천주교-전쟁 담론을 중심으로-

저자 : 이근세 ( Lee Keun-se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7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63-89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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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지역문화 연구 방법으로서 중심-주변의 이분법과 지역 정체성 개념을 모두 지양하고 인문공동체 모델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지역문화 연구는 중심과 주변을 구분하는 이분법이나 중심을 기준으로 지역을 바라보는 관점으로부터 지역 고유의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경향으로 이동해왔다. 그러나 중심과 주변의 이분 논리는 문화보편주의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고 지역 정체성 개념은 중앙중심주의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문화상대주의의 덫에 걸릴 위험이 있다. 문화보편주의는 공통 가치를 보유한 보편 문화가 개별 문화들에서 일종의 변주들처럼 재현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는 중심과 주변의 극복 불가능한 이원성을 전제한 침략적 주류문화 논리에 불과하다. 문화상대주의는 정체성을 갖춘 다양한 개별 문화들이 고유의 특수성을 갖는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입장은 개별 문화가 침범 불가능한 고유성을 지닌다는 관점으로서 암묵적으로 상정된 보편 문화에 대한 단순한 대항 논리이며 중심과 주변의 이분법을 전제한 패권주의의 변종이다. 지역문화와 관련한 중심과 주변의 이분법 또는 딜레마로 인해 지역문화는 때로는 중앙패권주의에 대항하는 지방패권주의를 내세우며 주류 논리를 답습하거나 때로는 정체불명의 지역적 특수성에 대한 감상적인 강조나 피상적인 상품화 등에 몰입되어왔다. 본 논문은 개별 문화들이 고정된 정체성을 지닌다는 입장을 지양하고 문화를 '자원'(資源)개념으로 대체하는 입장을 견지한다. 문화자원은 정체성과 같은 소유물이나 고정된 본질이 아니고, 그것을 발굴하고 개척할수록 더 많이 활용되는 것이다. 본 논문에서 제안하는 인문공동체 모델은 개별 문화자원들을 상호배제나 상호경쟁의 관계로 고찰하지 않고, 서로의 간극을 인정하는 동시에 서로를 풍성하게 하는 방식으로 문화자원들을 개척하고 발굴하는 문화 간 대화네트워크이다. 이와 같은 지역문화 관계망은 어떤 문화요소 또는 자원을 접할 경우 곧바로 다른 문화자원들과의 관계로 인도되기 때문에 지역문화의 확장성과 생명력을 강화한다. 지역의 삶은 추상적이고 배타적인 개념들로 구획된 지식이 아니기 때문에 문화자원들은 지역문화의 실질을 구성하려면 상호작용하는 관계망에 포섭되어야 하며 이와 같은 인문공동체를 통해 지역문화는 역동적인 생명 주체로서 진화하게 된다.


This paper, as a method of research on regional culture, avoids the dichotomous concept of the center-periphery and regional identities and proposes the Humanities Community Model as an alternative. Regional culture studies have shown the tendency of securing local identities from the perspective of dichotomy that divides the center and the surroundings, along with the center's viewpoint of peripheral areas. Yet, the dichotomous perspective on the center and the periphery risks of cultural universalism, while the concept of local identity is likely to be trapped by cultural relativism related to centralism. Cultural universalism argues that universal culture with common values is constantly represented as its variations in other individual cultures. However, this coincides with an invasive mainstream logic based on the idea of irreversible duality of the center and surroundings. Meanwhile, cultural relativism or culturalism claims that various individual cultures with identity have their own uniqueness or particularities. This position that individual cultures have invulnerable characteristics is not only a simple counter logic against the universal culture implicitly assumed also a certain variant of hegemonism connected to the dichotomy of the center and the periphery. With this binarity and its relevant dilemma, local culture is sometimes overwhelmed by local hegemonism against that of the center, thereby imitating mainstream logic, or is just immersed in sentimental emphasis on obsecure local peculiarities or shallow merchandising of cultural elements. This paper avoids the idea that individual cultures have a fixed identity and suggests regarding cultures as the concept of 'resources'. Cultural resources are neither possessions nor fixed essences such as identity, but the more they are discovered and unearthed, the more possible it is to use them. The Humanities Community Model proposed in this paper is the intercultural network that does not consider individual cultural resources as mutual exclusion or competition but creates and discovers cultural resources in a way to acknowledge each difference and therefore enrich one another. This intercultural network is ceaselessly directed to that of other cultural resources when it encounters a new cultural element or resource, as a result, expanding the local culture and strengthening its vitality. What local life is hardly any knowledge divided into abstract and exclusive concepts, so, cultural elements must be subsumed into an interactive network for cultural resources in order to make up the substance of local culture. Through this Humanities Community, a local culture evolves as a subject of dynamic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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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광장의 공공문화 -광주공원과 5· 18민주광장의 형성과 역할 변화-

저자 : 손유림 ( Yulim Son ) , 김진아 ( Jina Kim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7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91-115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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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도시에서 '광장'은 '사람들이 만나는 곳'이라는 의미인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에서부터 로마의 포룸, 중세의 시장이나 교회 광장으로 맥락이 이어져 왔고, 근대에는 보다 체계적인 도시 계획 아래 광장과 함께 새로운 야외 공공공간인 '공원'이 탄생하였다. 서구의 광장과 이를 둘러싼 광장 문화가 오랜 역사를 통해 변모해온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19세기 초 일제강점기에 실행된 근대 도시 계획 속에서 공원과 광장이 동시에 출현하게 되었다. 이때의 광장은 식민 정권의 표상이자 교통 중심의 광장으로 서구의 전통적 광장과는 그 형태와 기능 모두 거리가 멀었으며, 종종 공원이 광장 대신 시민들의 주요 운집 공간으로 이용되었다. 이후 4·19혁명과 광주민주화운동, 6월항쟁 등을 거치며 한국의 광장은 시민들에게 중요한 공론장으로 기능했고, 점차 시민들의 문화체육행사, 축제 등을 위한 장이 되기도 하였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월드컵과 촛불시위 등을 거치며 소위 광장 문화가 활발히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학계에서 서울의 시청광장, 광화문광장, 여의도공원 등에서 열리는 정치적, 문화적 이벤트와 광장 형성 과정에 관한 연구들은 이루어지고 있으나, 광주의 광장 문화에 대한 논고는 거의 부재한 상황이다. 이에 본 연구는 '5·18민주광장'과 식민지 시대에 시민 활동의 문화적·정치적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대신했던 '광주공원'의 의미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공공공간으로서의 광장의 의미와 특성을 간략히 살펴본 후, 광주공원과 5·18민주광장의 형성과 변모 과정을 살펴보고, 만쿠조가 구분했던 광장의 다섯 가지 역할(장터로서의 광장, 문화로서의 광장, 예술로서의 광장, 의식儀式의 장소로서의 광장, 군중집회의 장소로서의 광장)이 시대별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추적한다. 마지막으로 2015년 재조성된 5·18민주광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문화예술행사와 집회 등을 고찰하면서, 그 역할 변화와 의의를 점검한다.


In western cities, the “Square” dates back to the Agora of ancient Greece and the Forum of Rome and even encompasses the medieval market or the churchyard. In the modern era, a new public space called the “Park” as well as the typical city square were born under a more systematic urban planning method. Unlike the western square and the culture formed around it throughout history, in Korea, parks and squares simultaneously began to appear in early 20th century urban planning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At this time, the square was a symbol of the colonial government and a major traffic center; the forms and roles of squares were far away from the traditional squares of the West. Often parks were used as main gathering places for citizens instead of the square. Through the 4·19 Revolution, the May 18 Gwangju Democratization Movement, and the June Democratic Uprising, the squares in Korea served as an important public sphere for the citizens, and gradually became a place for cultural sports events and festivals. Especially since the 2000s, after the World Cup and the Candlelight rally, the culture of the Square has undergone a transformation.
However, while studies have been conducted on the process of the formation of the square and the political and cultural events held in places such as Seoul City Hall Square, Gwanghwamun Square, and Yeouido Park, there has been little discussion on Gwangju's squares. Therefore, this study will consider the history and characteristics of the “May 18 Democratic Square” and “Gwangju Park” which replaced its role as a cultural and political hub of civic activities during the colonial period. To this end, at first, this paper will briefly look at the meaning and characteristics of the square as a “public” space. Then, while examining the process of formation and transformation of Gwangju Park and the May 18 Democratic Square, it tracks how the five functions of the square defined by Franco Mancuso-place for market, culture, arts, celebrations, involvement-have been revealed in each time period. Lastly, it discusses the significance and limitations of various cultural and artistic events, as well as political gatherings held at the May 18 Democratic Square since 2015, when it was reborn with the new Asia Culture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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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오키나와 석감당의 풍수적 해석과 특징

저자 : 천인호 ( Cheon In-ho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7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17-144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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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의 석감당은 중국에서 전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는 고대부터 집 주위의 불길한 곳에 '泰山石敢當'이라는 문구를 새긴 돌을 세워, 각종의 액운을 방지하고자 하였다. 한국은 석감당 문화가 없지만 마을 입구나 마을의 허결한 곳에 돌탑을 쌓아 놓고 이를 통해 액운을 방지하고자 하는 것은 석감당과 기능상 동일하다.
본 연구는 오키나와 석감당의 유래와 적용과정과 존재 형태를 분석하고 이를 한국 풍수 돌탑과 비교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석감당과 한국 풍수 돌탑은 모두 중국에서 전래된 것이지만 그 적용은 상이한 조건들에 따라 선택적으로 적용되었음을 논증하기 위한 것이다.
연구결과 첫째, 오키나와의 석감당과 한국의 돌탑문화는 중국에서 전래되었던 풍수이론의 현지 적용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 한국의 돌탑은 신앙의 대상이지만 오키나와의 석감당은 신앙의 대상이 아니다. 셋째, 한국의 돌탑은 다른 비보물과 같이 조성하는 복잡성을 보이나 오키나와 석감당은 글씨만을 새겨 세우는 단순성을 보이고 있다. 넷째, 한국의 돌탑은 주로 음택이론에 따라 마을의 풍수를 해석하고 형세론이나 형국론 등에 근거한 판단인 반면 오키나와 석감당은 주로 양택이론에 따라 주택을 중심으로 도로의 형세에 따라 '충(沖)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다섯째, 한국의 돌탑은 주로 마을이나 특정 입지의 공동체적 관점에서 설치된 '집단풍수'의 반영인 반면 오키나와 석감당은 개별 주택을 중심으로 설치되는 '개별풍수'의 반영이라는 점이다. 여섯째, 한국의 돌탑은 마을안의 생기의 누설을 방지하고 외부의 악기(惡氣)를 막는 양면성을 가지는 반면, 오키나와는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바람의 살(煞)을 막는 외부의 악기를 막고자 하는 단면성을 가진다.
이러한 차이점은 첫째, 중국에서 발생하여 한국과 오키나와에 전래되어 적용된 풍수이론의 차이임을 의미한다. 둘째, 적용과정에서 각국의 특성에 따라 선택적이고 차별적으로 적용되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풍수는 '절대적'기준이 아닌 '상대적'기준에 의해 서로 달리 적용되었다는 점에서 볼 때 향후 풍수연구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This study intends to analyze the tradition and application course of Okinawa ishiganto(石敢當) in order to compare it with stone tower(石塔) of Korean fengshui (風水). The purpose is to demonstrate that fengshui originated in China & propagated to each Southeast Asian country was selectively spread and developed depending on different conditions of each country in the application course through such analysis. Ishiganto has been built at unfavorable place near house in China since ancient time to prevent diverse bad force. There is no culture of ishiganto in Korea. However, the function of stone towers in Korea is same to that of ishiganto in that they are built at the entrance or empty place of village in order to prevent misfortune. The outcome of the above study is as follows
First, ishiganto of Okinawa and stone tower culture of Korea are the difference in applying fengshui theory transmitted from China.
Second, stone tower in Korea is the object of belief. However, ishiganto of Okinawa is not the object of belief.
Third, stone tower in Korea is mixed with other Bibo(裨補). However, ishiganto of Okinawa shows simplicity by which letters are inscribed. Fourth, stone tower in Korea interprets fengshui of village mainly in accordance with grave fengshui. Then, it judges on the basis of form theory. However, the principal purpose of ishiganto of Okinawa is to prevent the collision of road and houses mainly on the basis of dwellings in accordance with housing fengshui theory.
Fifth, stone tower in Korea is collective fengshui installed mainly in the community viewpoint of village or specific location. However, ishiganto of Okinawa is the reflection of 'individual fengshui' which is installed around individual dwellings.
Sixth, stone towers in Korea have double-sidedness which prevents good luck in the village from escaping out and blocks external bad luck. However, ishiganto of Okinawa has unifaciality which blocks external bad luck caused by geographic property, island.
In conclusion, fengshui stone originated in China &propagated to Korea and Okinawa is based on the difference in fengshui theory accepted by each country. Further, it was selectively and discriminatorily applied in accordance with characteristics of each country. Therefore, the new direction of fengshui study may be presented later given that fengshui is differently applied not by absolute standard but by relative stand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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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마당 깊은 집』, 『장난감 도시』,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에 나타난 '음식'의 문학적 재현을 통하여 한국전쟁 직후, 정신적·물질적 결핍의 고통이 심했던 주인공 소년들의 성장의 의미를 살펴본 글이다. 세 작품은 공통적으로 소년 화자를 내세워 세상의 이치, 또는 삶의 부조화를 보여주면서 소년의 성장이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그려내고 있다. 이때 소년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대상은 '음식'으로서 이는 빈곤의 일상을 구체화하여 소년의 꿈과 희망의 성취와 좌절을 보여주는 상징물이 되고 있다.
『마당 깊은 집』의 주인공 '나' 길남은 억척스러운 삶의 자세를 지닌 어머니 밑에서 장자로서의 책임감을 지니도록 교육받은 소년이다. 주인공에게 '마당 깊은 집' 생활은 굶주림의 시절로 회상되며, 그를 가장 곤경에 빠뜨린 것은 모두 음식과 관련 있다. 주인집의 음식을 훔쳐먹은 일, 장정의 밥먹는 모습을 구경하기, 크리스마스 파티(음식)를 구경하는 등의 사건에서 '음식'에 대한 욕망은 그의 신체적 허기를 드러내는 구체성으로 작용하거나 '밥'이 지닌 경건함을 깨닫게 한다.
『장난감 도시』는 고향에서 내침을 당한 '나'(윤)의 가족이 열악한 주거 환경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는 판자촌 생활에서의 부적응을 담고 있다. 판자촌은 한국전쟁의 참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공간이라 할 수 있는데, '나'의 가족은 이곳에서 서서히 가족의 해체에 직면한다. 이때 정상적인 섭식의 대상이라 할 수 없는 조악한 음식들은 주인공 '나' 에게 고향의 상실감, 가족의 해체, 애정결핍 등을 구체화하는 상징물이다. 음식은 '나'의 무의식 속에 있는 고향의 근원적 사랑과 혈육의 사랑이 충만했던 시절로 회귀할 수 없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는 시골 소읍의 장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홀어머니 아래 굶주림에 시달리는 가난한 형제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장터라는 공간은 '나'의 성향을 탐색자로 형성시킨 면이 있다. 이 작품에 나타난 음식문화는 장터와 관련 있다. 양조장의 '고두밥'이 대표적이다. '나'의 형제가 양조장의 일꾼 장석도의 '힘'에 대한 선망, 이발관의 거울을 통해 '미로와 전도'의 의미를 파악한 것 등은 어른들의 세계를 발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고미다락의 지독에 가득 담겨 있는 쌀과 곡식의 발견은 두 형제를 결핍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 새로운 경험이 된다.
세 작품에 나타난 음식은 생명유지의 기본임과 동시에 인간다운 삶의 의미를 드러내는 문학적 질료가 된다. 『마당 깊은 집』에서는 음식을 통해 장자로 길들여지는 소년과 가족의 유대를 보여주며, 『장난감 도시』에서는 음식을 통해 고향상실, 가족의 해체를 체험하는 소년의 비애를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에 나타난 음식은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되는 소년의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This study set out to investigate the meanings of growth among boy protagonists that suffered the severe pain of mental and material deficiency right after the end of the Korean War through the literary reproduction of “food” in The House with a Sunken Courtyard, A Toy City, and A Fisherman Does not Snap the Reed. These three works show the ways that the growth of a boy is embodied by depicting the way of the world or the disharmony of life through a boy narrator. Here, “food” is the object that governs the consciousness of boys, specifying their daily life in poverty and thus becoming a symbol of the achievement and frustration of their dreams and hopes.
In The House with a Sunken Courtyard, the main character “I” or Gil-nam is taught to have a sense of responsibility as the eldest son under her mother with a tough life attitude. Life at the “house with a sunken courtyard” reminds him of the days of starving. All the episodes that put him through the biggest hardship have something to do with food. In episodes where he steals food from the landlord's place, watches a strong young man having a meal, and watches a Christmas party(food), “food” is a straightforward expression of his bodily hunger and element to awake him to the reverent nature of “meals” after labor.
A Toy City describes the maladjustment of “my”(Yun's) family in a shantytown with its inferior living environment exposed as it is after they are cast away from their hometown. “My” family gradually faces their deconstruction in a shantytown. Foods that are far from normal objects of food intakes become media to make the loss of the hometown, deconstruction of family, and lack of affection concrete to the main character “I”. In “my” unconsciousness, I realize that the fundamental love of his hometown and the love of his family will never be possible again through food.
A Fisherman Does not Snap the Reed is set in a marketplace of a small town in the country. The work mainly tells the stories of poor brothers suffering hunger under a single mother. The space of a marketplace turns “my” disposition into that of an investigator. In this novel, the food culture has something to do with a marketplace. One good example is “hard-boiled rice” at a brewery. “I” and my brother discover the world of adults through their yearning for the “strength” of a brewery worker named Jang Seok-do and the meanings of “maze and propagation” via the mirror at the barber shop. The jars full of rice and grain in the attic are, in particular, new experiences for the brothers to escape from the world of deficiency.
In these three works, food is the basis of life maintenance and, at the same time, literary material to reveal the meanings of human life. The House with a Sunken Courtyard shows ties between a boy trained to serve as the eldest son through food and his family. A Toy City depicts the sorrow of a boy experiencing the loss of hometown and the deconstruction of family through food. Finally, food shows the growth of a boy realizing the way of the world in A Fisherman Does not Snap the Re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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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채만식 소설의 허무주의 연구 -『냉동어』를 중심으로-

저자 : 윤수미 ( Yun Su-mi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7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75-197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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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독한 니힐리즘의 호흡' 속에서 집필했던 『냉동어』가 채만식 문학사에서 어떤 지점에 위치해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소급적으로 보자면 채만식은 친일문학을 시작하기 직전인 1940년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온전한 작가적 자의식으로 쓸 수 있는 마지막 소설이 『냉동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따라서 허무주의의 정점에 서 있는 『냉동어』가 가지고 있는 힘은 채만식 문학의 가치관을 참작할 수 있게 해준다. 이와 같은 시각으로 『냉동어』를 읽어내어 '허무주의'와 '친일문학'에 가려진 채만식 문학의 결을 확인 하는 것이 이 연구의 목표이다.
채만식의 연보를 짚어보면, 채만식이 1939년 개성에서의 구금체험으로 인해서 육체적·정신적 피로로 고통스러울 때 창작한 소설이 『냉동어』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에는 작가가 허무주의에 천착하여 능동적인 태도로 허무주의를 끝까지 밀고나가는 과정이 『냉동어』에 불안의 형상으로 고스란히 녹여져 있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시각으로 이 논문은 식민지 지식인 남성인 '대영'을 채만식의 페르소나로 보고 주인공 '대영'의 내면이 작가 채만식의 내면과 일맥상 통하다는 전제하에 작품을 분석하였다.
이 논문은 지금까지 친일 소설로 분류되는 '대영'의 방황과 일주일 동안의 불륜을 새롭게 보고자 한다. 대영의 방황은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 가정에 부담감을 느끼고 아버지라는 책무를 탈피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이러한 자신의 상황을 온전히 떠맡기 위하여 일본 여성 '스미꼬'로 우회하고 있다고 보았다. 자신의 삶의 궤적에 침입을 허용하고 이 단절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의 양심과 주체성을 온전히 파악하게 된 대영은 이 괴로움을 곧 자신의 삶을 지켜내는 통일성으로 관철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팜므파탈로 상정되는 스미꼬는 한 가정을 파탄내고 한 남성을 파국의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요부가 아니라, 대영의 삶을 통째로 흔들면서 대영의 주체성을 각인시켜주고 자신은 팜므파탈의 이미지를 떠안고서 사라지는 희생양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소설의 마지막에 내뱉는 대영의 독백, “냉동어의 향수는 바다에 있을 테지!......”는 언제나 미끄러지고 마는 욕망에 대한 고달픈 수심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이 수심은 작가 채만식에게도 이어지는데, 채만식이 일제의 압력과 점점 강화되는 검열에서도 작품을 쓰기 위한 고뇌와 맞닿아 있다.


In 『Frozen Fish』 of Chae Man-sik's novel is The custodial experience became the basis In 1939 in Gaeseong. He fell into nihilism by being tired of fatigue. I think his anxiety is in this work. 'Daeyoung' wants to return home through an affair. And this helps 'Sumiko' in sacrificing herself. The struggle of 'Daeyoung' continues to the artist. Chae Man-sik was worried by external pressure and censorship.
Therefore, the power of Frozen word, which is at the pinnacle of nihilism, allows us to take into account the values of Chae Man-sik's literature. It is the aim of this study to read the 『Frozen Fish』 from this perspective and to confirm the texture of Chae Man-sik's literature obscured by 'nihilism' and 'pro-Japanese literature'.
'Daeyoung', On the contrary, he took full control of his situation through the Japanese woman “Sumiko”. And he named the daughter. Naming means you made a family.
This paper thinks that the process of the artist's obsession with nihilism and pushes nihilism with an active attitude is completely melted in the form of anxiety in Frozen Fish. Therefore, the work was analyzed on the premise that the inside of the main character 'Dae-young' is in line with the inside of the artist Chae Man-sik.
In some ways, Chae Man-sik encounters anguish to write a work even under the pressure of Japanese colonial rule and increasingly censorship.
Chae Man-sik pushed his worries to the end in the face of excessive censorship and physical cooperation. Since then, the world he has encountered has been the world of history.
So far, we have examined the location and the magnetic field of Frozen Fish in Chae Man Sik's chapter. It is important to note that this method of research may have identified some of the independent attitudes of Chae Man-sik literature before liberation in Korean literature.

KCI등재

8『심청전』의 부녀관계와 서사구조

저자 : 이승수 ( Lee Seung-su ) , 김용선 ( Kim Yong-sun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7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99-225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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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부녀관계와 서사구조의 유기적 상관성을 분석하여 『심청전』 읽기의 한 관점을 제시한 것이다. 세상에 가장 널리 그리고 인상 깊게 알려진 심청의 면모는 '효녀'이다. 한국 문화에서 '효녀 심청'은 일종의 관용어이다. 『심청전』의 주제를 '효'로 간주하는 입장은 20세기 초 이후 주류를 이루어왔다. 이러한 인식은 관습적 해석으로 고착되어, 실험적이면서 혁신적인 읽기를 방해해왔다. '심청 이야기'의 오랜 연원과 방대한 외연을 고려하면, 효행 윤리는 작품에 진하게 덧칠해진 특정 시대의 흔적이자 표징일 가능성이 높다. 본고는 이야기가 발 딛고 있는 역사 사실이나, 강변하고 있는 윤리에서 시선을 거두어, 서사구조 자체를 주목하였다. 형식은 그 스스로 모든 것을 말하고 있으며, 표현들은 다 의미를 감추고 있다는 관점에서, 텍스트 분석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 두 가지 사실을 밝혀냈다. 첫째, 『심청전』은 '모녀 교체→부녀 애착→부녀 분리→딸의 배우자 탐색, 혼인→부친의 안맹(眼盲), 유리(遊離) →딸의 귀환과 부친의 각성'의 과정, 즉 부녀 관계의 심리적 양태 및 그 흐름을 구현하고 있다. 둘째, 부녀관계를 구현하는 방식은 서사 구조와 긴밀하게 조직되어 독특한 미적 효과를 창출한다. 독해의 초점을 심청하게 맞추면, 『심청전』은 딸이 아버지와의 애착 관계에서 벗어나 독립을 시도하는 이야기이다. 다만 혼인을 전제로 한(또는 혼인으로 귀결되는) 아버지로부터의 분리, 아버지에게로 귀환하는 결구(結構)는 남성 중심의 혼인문화가 유지되어 온 시기의 산물일 가능성은 의문으로 남겨두었다. 독해의 초점을 심학규에게 맞춘다면, 『심청전』은 딸의 탄생과 함께 애착의 방향이 아내에서 딸로 옮겨가고, 딸에 집착하고, 딸의 분리와 혼인에 충격을 받아 심리의 혼란을 겪다가, 궁극에는 딸에 대한 맹목적 환상에서 깨어나는 이야기가 된다. 「내 복에 산다」와의 친연성에 대해서는 가설 차원에서 제기하였다.


This paper presented one of viewpoint for reading the tale 『Sim Cheong's Tale』 by analyzing the systematic correlation between father-daughter relation and the narrative structure. The characteristic of Sim Cheong which is known the most widely and impressively in the world is the devoted daughter'. 'Devoted Daughter Sim Cheong' is a kind of idiomatic words in the Korean literature. The viewpoint considering the filial duty as the main theme of 『Sim Cheong's Tale』 has been the main stream since the early 20th century. Such awareness was fixed as the conventional interpretation and so interrupted experimental and innovative reading. In consideration of the origin of 『Sim Cheong's Tale』 tracing back to the long times ago and its extensive manifestation, it is highly possible that the filial conduct moral is the trace and expression of a specific period thickly overlaid on the literal works. This study focuses on the narrative itself of Sim Cheong's Tale putting aside the viewpoint that emphasizes the historic fact and the ethical attitude of the story, and tried to analyze the text of the story from the viewpoint that form speaks all about itself and all descriptions have their implications. As a result two factors were revealed. First, 『Sim Cheong's Tale』 depicts concretely the psychological pattern between father and daughter and its stream that is the process of 'substitution of mother by daughter → attachment of father and daughter → separation of father from daughter → exploration of spouse by daughter, marriage → father's blindness, departure → daughter's return and father's gaining eyesight. Second, the development method of relation between father and daughter is tightly organized in the structure of the narrative, creating a specific effect of esthetics. Putting the focus of reading comprehension on Sim Cheong, 『Sim Cheong's Tale』 is a story about a daughter who tries to be independent by departing from the attachment to her father. On the other hand, looking into the conclusive structure of the story that reflects the separation from father with a condition for marriage (or ending in marriage) and Sim Cheong's return to her father, the possibility that 『Sim Cheong's Tale』 is a product of an era that maintained the man-centered marriage culture was left in question. Putting the focus of reading comprehension on Sim Hak-gyu, 『Sim Cheong's Tale』 is a story about a father whose attachment moves from his wife to his daughter from her birth, sticking to his daughter, suffering from psychological chaos with the shock from daughter's separation and marriage and ultimately awakening from the blind fantasy about his daughter. A hypothesis that this story has keen relationship with the proverb 「People live according to their fortune」 was presented in this 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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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경남지방 석탑건립에서 주목되는 점은 지리산과 가야산 지역에 집중된 것이다. 반면 고려 시대 석탑 건립은 전국적으로 고르게 분포한다. 사찰 신창이 제한된 상황에서 남해안 일대까지 사찰과 석탑이 건립될 수 있었던 것은 건국 초부터 경남지역이 개경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9세기를 기점으로 신라불교가 전국화하는 현상과 같이 경남지역은 지리산과 가야산을 중심으로 신라계 석탑건립이 집중되었다. 경남지역 고려석탑은 다양한 신라계 석탑양식이 동시에 출현했다. 경기도와 충청지역에선 신라계 석탑을 중심으로 기단변화가 교대하는 양상이 관찰되는 반면, 경남지역 고려석탑은 신라계 석탑의 이중기단, 단층기단, 기단 약화형 등 다양한 석탑양식이 동시에 출현하였다. 경기도와 충청지역에선 신라계 석탑을 중심으로 기단변화가 교대하는 양상이 관찰되는 반면, 경남지역은 동시대에 출현한 것은 중요한 특징이다.
이 외에도 고려식 석탑에서 경남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전남지역의 고려식 또는 백제계 석탑과의 영향을 반영한 기단이 형식화되면서 세장고준 한 탑신을 강조한 석탑양식이 등장했다.
11세기를 기점으로 일시에 나타난 경남지역의 다양한 석탑양식은 이후 전남지방 석탑에 영향을 미쳤으며, 무신난 이후 석탑이 형식화되는 과정에서도 다양한 유형의 석탑을 지속적으로 건립함으로써 고려시대 석탑건립의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였다.


The characteristics of stone pagodas made in Gyeongsangnam-do during the Unified Silla Period are concentrated on Mount Jiri and Mount Gaya. Generally, stone pagodas of the Goryeo Dynasty are evenly distributed throughout the country. With it difficult to build a new temple, it was possible to build a temple and stone pagoda on the southern coast of the Korean Peninsula. This is because the Gyeongsangnam-do region has maintained close ties with the opening of the city since the early Goryeo Dynasty.
Silla Buddhism spread throughout the country from the 9th century. As such, the construction of the Silla-style stone pagoda was concentrated in the Gyeongsangnam-do region, focusing on Mt. Jiri and Mt. Gaya. The Goryeo stone pagoda in Gyeongsangnam -do appeared in various Silla stone pagoda styles at the same time.
In Gyeonggi and Chungcheong provinces, Silla was the main pillar of the stone pagoda. And the change in the building base is seen as a shift. However, stone pagodas from the Goryeo Dynasty in Gyeongsangnam-do appeared in various stone pagodas, such as double base, fault foundation, and foundation formations. In Gyeonggi and Chungcheong provinces, the base will be changed around the Silla stone pagoda. However, it is an important characteristic of the Gyeongsangnam-do region to appear together at the same time.
In addition, stone pagodas that reflect the influence of Goryeo or Baekje stone pagodas in Jeollanam-do were erected around the western part of South Gyeongsang Province. As the base became formalized, a stone pagoda style that emphasized the thin and high form of stone pagoda body emerged.
Starting in the 11th century, various stone pagoda styles in the Gyeongsangnam-do region were later influenced by stone pagodas in Jeollanam-do. Stone pagodas made after the revolt of soldiers during the Goryeo Dynasty were formalized. In this process, various kinds of stone pagodas were continuously made. As a result, Gyeongsangnam-do was the center of stone tower construction during the Goryeo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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