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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문화연구 update

The Research of the Performance Art and Culture

  • : 한국공연문화학회(구 한국고전희곡학회)
  • : 예체능분야  >  연극영화
  • : KCI등재
  • :
  • : 연속간행물
  • : 반년간
  • : 1598-981X
  • :
  • : 고전희곡연구(~2003) → 공연문화연구(2003~)

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2000)~41권0호(2020) |수록논문 수 : 569
공연문화연구
41권0호(2020년 08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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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우리나라 다목적 공연장의 탄생배경에 관한 소고

저자 : 김경아 ( Kim Kyoung-a )

발행기관 : 한국공연문화학회(구 한국고전희곡학회) 간행물 : 공연문화연구 41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5-38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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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군사정권의 권력 전개양상에서 드러나는 문화정책이념이 '다목적 공연장'의 개념형성으로 발현되는 과정을 살펴보는데 있다. 한국의 공연장 현황은 우리나라 공연문화와 깊은 관계가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그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예술회관(문예회관)을 중심으로 한국의 공연문화와 향유문화가 깊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문예회관들은 다목적홀로 운영되고 있으며 운영주체는 절대다수 정부와 지방정부 또는 출자출연기관의 재단법인 등 공공영역에서 운영한다. 따라서 정부와 지방정부의 문화예술정책의 대상이며 제도적 측면과 긴밀한 상관관계를 가지게 된다.
박정희 정권은 초헌법적인 유신을 공포하고 우리나라 문화예술법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문화예술진흥법」(1972.9)을 제정한다. 이법을 근거로 「문예중흥5개년계획」(1973)을 수립하고 문화시설들을 짓기 시작했다. 전국의 '문화예술'회관, 또는 '문화'회관이 다목적홀로 지어진 데에는 문화예술진흥법의 “문화예술”에 대한 정의를 “문학, 미술, 음악, 연예 및 출판에 관한 사항”으로 명시함으로써 지금의 '다목적'개념의 근거가 된다. 한편, 문화공보부의 조직직제는 “문화와 예술”을 관장함을 명시하고 대중문화와 예술진흥을 구분 짓는 문화행정체계를 갖춘다. 그러나 이시기 대통령의 연설에 나타난 박정희의 화법은 '문화예술=예술'로 인식하고 있다. 예술은 문화에 포함되는 개념이지만 문화예술=예술로 인식함으로써 정치적 시국이나 시행부서에 따라 그 해석을 달리하였고, 이러한 모호성은 예술이 이데올로기적 활용에 정책적으로 동원되는 기제가 된다. 이러한 배경에서 문화예술진흥법에 근거하고 문화공보부의 관장 하에 1978년 다목적 공연장인 세종문화회관이 개관한다. 그러나 제도상의 문화예술=다목적과 설립을 추진했던 정부조직의 문화≠예술, 권력이 인식했던 문화예술=예술은 대중음악의 대관문제를 두고 가치충돌로 표출된다. 1979년 12·12사태로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민족문화를 앞세운 국풍81을 통해 저항세력을 체제 안으로 끌어들이고자 했다. 정권의 의도는 실패하였고, 저항과 지지의 양축에서 국민적 지지를 확보하는 방안으로 국민의 문화향유 기회확대 정책에 방점을 둔다. 이는 앞 정권의 문화예술에 관한 인식의 전환이며 박정희 정권과의 차별화를 추구한 것이다. 전두환 정권에 있어 앞 정권과의 차별성은 곧 정권의 정당성 확보를 의미하는 것이었고 향유기회의 확대는 문화영역의 분배 차원에서 추진되었다. 따라서 장기적인 안목의 예술발전으로 자리매김 되지 못했고 하드웨어의 상징성으로 정권의 정당성 확보를 실현하려고 하였다.
오늘날 다목적 공연장의 개념은 유신체제하에 만들어진 법체계의“문화예술”의 정의에 기인한 것이며 이를 근거하여 공공 공연장의 운영목적으로 '다목적'의 개념이 탄생한다. 군사정권을 이은 전두환 정권은 프로시니엄 구조의 다목적 공연장을 정권의 정당성 확보의 수단으로 표출하였고, 전국적으로 재생산 되어 오늘날 한국의 공연문화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The current state of performance halls in South Korea is closely related to the performance art and culture of the nation as the culture of putting on and enjoying a performance is deeply rooted in public culture and arts halls representing each area at the local government level. Today, public culture and arts halls have multiple management purposes, and the subjects of their management are in the public domain including the central and local governments or investment and donation foundations in overwhelming cases. Public culture and arts halls thus have close correlations with the institutional aspect of cultural policies as the objects of culture and art policies at the central and local government level.
The full-blown era of public culture and arts halls opened up in the 1980s~1990s, during which multi-purpose performance halls of a similar structure became universal around the nation. Public culture and arts halls of the uniform shape were distributed around the nation with no premise of genre characteristics or local environments for arts, and this was attributed to the cultural policies of the military regime.
The Park Chung-hee regime proclaimed Yusin that was beyond the Constitution and enacted the Culture and Arts Promotion Act(September, 1972), which was the first culture and arts act in the nation. Based on the act, a five-year plan for the promotion of culture and arts(1973) was made and led to the construction of cultural facilities. “Public culture and arts” halls or “culture” halls were built to serve multiple purposes around the nation because the Culture and Arts Promotion Act, which is called the starting point of the nation's legal system for culture and arts, defined “culture and arts” as “matters regarding literature, art, music, entertainment, and publications.” The definition became a ground for the current “multi-purpose” concept. The organization of Ministry of Culture and Public Information set up a culture and administration system to state its supervision of “culture and arts” and distinguish popular culture from the promotion of arts. During the period, former President Park exhibited his perception of “culture=arts=culture and arts” in his speeches. Arts belonged to the category of culture, but it was considered as “culture and arts.” There was no department devoted to arts policies when the act was enacted with a broad scope of culture accepted. This ambiguity worked as a mechanism to mobilize arts in ideological utilizations as a policy.
Against this backdrop, the Sejong Center for the Performing Arts, a multi-purpose performance hall, was established in 1978 based on the Culture and Arts Promotion Act under the supervision of Ministry of Culture and Public Information. There were, however, conflicts of value over the issue of accepting the popular music among the “culture and arts = multiple purposes” of the system, “culture ≠ arts” of the cultural organization that pushed forward its establishment, and “culture and arts = arts” perceived by the powerful class.
The new military regime seized power after Coup d'état of December 12, 1979 and failed at its culture policy of bringing the resistance force within the system. It tried to differentiate itself from the Park regime by converting the perception into “expansion of opportunities for the people to enjoy culture” to gain people's supports both from the side of resistance and that of support. For the Chun Doo-hwan regime, differentiating itself from the previous regime was to secure legitimacy. Expansion of opportunities to enjoy culture was pushed forward at the level of national distribution. This approach thus failed to settle down as a long-term policy of arts development, and the military regime tried to secure its legitimacy through the symbolism of hardware.
During the period, the institutional ground for public culture and arts halls was based on the definition of “culture and arts” in the Culture and Arts Promotion Act enacted under the Yusin system of the Park regime. The “multi-purpose” concept, which was the management goal of public performance halls, was born based on this. In this context of the times, proscenium performance halls of a similar structure and public culture and arts halls with a similar management goal were established around the nation, leading to today's performance art and culture in the 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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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극예술연구회 <어머니>와 여성 연극의 양상

저자 : 김남석 ( Kim Nam-seok )

발행기관 : 한국공연문화학회(구 한국고전희곡학회) 간행물 : 공연문화연구 41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39-67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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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극예술연구회의 제10회 공연작에 대한 연구는 거의 시행되지 않았다. 특히 이서향의 <어머니>는 거의 연구되지 않았으며, 기껏해야 제10회 공연작 중 하나였다는 사실 정도만 기록되곤 했다. <어머니>의 희곡이 남아 있고, 제10회 공연이 상당한 의의를 지닌 정기공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연구 실태는 대단히 열악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단막극 <어머니>가 드러내는 공연사적 가치와 의미를 정밀하게 고찰하지 못한 결과로 보인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공연 정황을 살펴보고, 당시 극예술연구회의 상황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어머니>의 선정 이유, 실제 무대 공연 현황, 연극적 요소, 무대 디자인, 관련 평가를 두루 살펴보아야 한다. 이 연구는 이러한 <어머니>의 공연 정황을 점검하고 그 의의를 살피는 데에 초점을 두었으며, 그 결과를 통해 극예술연구회의 한 맥락으로서 여성 연극의 흐름에 대해 논구하고자 한다.


So far, research on the 10th performance of the Geukye Suryeonguhoe has been rarely conducted. In particular, Lee Seo-hyang's Eomeoni was rarely studied, and it was only recorded that at most it was one of the 10th performances. Although the script of Eomeoni remains, and the 10th performance was an important regular performance, it should be said that the status of this research is very poor. It seems to be the result of failing to accurately examine the historical value and meaning of the single act drama Eomeoni. In order to solve these problems, it is necessary to look at the performance situation of Eomeoni and to investigate the situation at the time of Geugyesuryeonguhoe. In addition, the reason for selecting Eomeoni, the stage performance situation, theatrical elements, stage design, and related evaluations should be analyzed throughout. This study focused on examining the status of Eomeoni's performance and examining its significance, and intends to examine the flow of feminist play as a context of the Geeugyesuryeonguhoe through the concl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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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유아교사의 예술적 역량 함양을 위한 교육연극 활용에 관한 고찰

저자 : 김지윤 ( Kim Ji-Youn ) , 김수연 ( Kim Su-youn )

발행기관 : 한국공연문화학회(구 한국고전희곡학회) 간행물 : 공연문화연구 41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69-92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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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유아기 예술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며 유아의 발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유아교사들이 예술적 역량을 함양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예술은 온 국민이 누리고 향유해야 할 문화적 소양이듯이 유아교사의 예술적 경험은 유아의 예술적 감수성, 심미감, 미적능력 발달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기에 매우 중요하다 판단된다. 유아교사의 예술적 역량 향상을 위한 다양한 방법 중 본고는 연극예술의 교육적 가치를 담고 있는 교육연극의 활용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교육연극 활동은 즉흥을 통한 허구적 상황을 창조해 내고, 가상의 인물과 동일시의 과정을 경험하게 되며, 감정의 교감을 통한 정서적 경험이 가능함과 동시에 몸을 통한 체화의 과정을 밟는다. 이러한 예술경험을 통해 유아교사는 유아교육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극 놀이를 보다 다각적이고 진지한 일상과 연계된 활동으로 촉진시킬 수 있으며, 몸의 자유로운 활용을 통해 다양한 표현력과 상상력, 미적체험 자극도 가능하다. 또한 교육연극 활동 중에 유아와 교사는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다. 이러한 지향은 2019개정 누리교육과정에서 유아중심의 놀이를 강조하는 교육관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본다. 유아교사들의 예술적 역량이 강화된다면 유아들의 바람직한 예술세계 형성에 기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교사 스스로와 유아교육기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향후 유아교사들의 예술적 역량 강화를 위해 교육연극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기를 기대한다.


This study describes the impact of early childhood teacher's artistic competence on art education pedagogy and improved curriculum design. Furthermore, the effect of drama as a way of improving early childhood teacher's artistic competence is explained. Many researchers have mentioned that early childhood is a period of sensitivity and potential. Therefore, it will be helpful if children meet a teacher who understands them and inspires their innate artistic sense at a level of their eyes. It explained which aspect of artistic competence should be focused for the teacher training education. There are many approaches to develop early childhood teachers' artistic competence. Adopting drama is one of them. The strong points of drama to improve their artistic competence are as follows. Firstly, human's movement and voice are the main artistic channel in drama. What we are doing in daily life is found are drama world. It means if early childhood teachers experience drama activity, they will feel more comfortable and intimate with it. In addition, early childhood teachers tend to be familiar with dramatic play, so they can more easily access to drama world. Secondly, drama will be helpful to understand different feelings and to broaden and deepen understandings of others' standpoints. For early childhood teachers, drama activity will be helpful to understand how dramatic art form works and to lead children's play in diversified and sincere way. In addition, drama activity will be useful to build horizontal and democratic relationships between children and the teacher. It is one of the main emphases of 2019 revised Nori national curriculum. To sum up, drama will be a excellent method to develop artistic competence for early childhood teachers. Thus, it is expected that They have more opportunities to experience drama as an art f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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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제강점기 전통예술경연대회의 구성요소 - 1930년부터 1941년까지에 한하여 -

저자 : 금용웅 ( Keum Yong-woong )

발행기관 : 한국공연문화학회(구 한국고전희곡학회) 간행물 : 공연문화연구 41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93-131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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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30년부터 1941년까지 열린 전통예술경연대회의 구성요소를 논하였다. 여러 구성요소 중에서 주최 및 후원, 참가자, 심사에 한정하여, 주최 및 후원의 배경과 목적, 참가자의 양상, 심사의 형태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주최 및 후원처는 신문사·사회단체·음반회사·상점·개인 및 읍(邑) 등이었다. 이들은 각기 다른 사정과 명분을 내세워 전통예술경연대회를 주최 및 후원하였는데, 그 기저에는 상업성과 홍보성의 목적이 다분했다. 참가자의 양상은 기생과 남성예술인으로 나눌 수 있었다. 기생의 참가는 당연한 현상으로 1930년대 전통예술공연계의 양상과 기생의 양적 증가가 미치는 영향도 컸으며, 남성예술인은 경연대회가 내세운 숨은 전통예술인의 발굴이라는 개최목적을 계기로 참가하였다. 심사의 형태는 청중의 심사와 전문가의 심사로 나뉘었다. 청중의 심사는 과거 '판' 문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투표를 통해 심사에 관여하였으며, 명창·명무·기악연주자·작사가 등이 참여한 전문가의 심사는 전통예술경연대회의 전문화 과정에서 대두되었다.


This article discussed the components of traditional art competitions held from 1930 to 1941. Of their various components, observations were made of hosts and sponsors, participants, and evaluations with a focus on the backgrounds and objectives of hosts and sponsors, participant aspects, and evaluation forms.
Hosts and sponsors included newspaper companies, social organizations, music companies, stores, individuals, and eups. They hosted and sponsored traditional art competitions with their own respective reasons and justifications and there were multiple commercial and promotional objectives at the base. Participant aspects can be divided into gisaengs and male artists. While the participation of gisaengs was a natural phenomenon, aspects of the traditional art performance world of the 1930s and the quantitative increase of gisaengs had great effects and male artists participated because of the hidden purpose of the competitions, which was the discovery of traditional artists. Evaluation forms were divided into audience evaluations and expert evaluations. Audience evaluations began from 'pan' culture of the past and audience members involved themselves by casting votes and expert evaluations, in which master singers, master dancers, instrumentalists, and lyricists participated, came to the fore through expert courses of traditional art competi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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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민요 달강달강의 전승과 판소리적 수용양상

저자 : 이효녕 ( Lee Hyo-nyoung )

발행기관 : 한국공연문화학회(구 한국고전희곡학회) 간행물 : 공연문화연구 41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33-156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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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아기 어르는 소리 '달강달강'이 판소리 작품에 어떻게 수용되고, 작품의 서사 안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그 의미와 변모에 대해 고찰한 논문이다. 2장에서는 육아 현장에서 불렸던 달강달강의 지역적 분포, 아기 어르는 소리로서의 성격, 서사구조, 음악적 특징 그리고 현재적 전승에 대해 살폈다.
3장에서는 민요 달강달강의 가사와 판소리 작품 속 달강달강의 가사들을 함께 비교하여 그 수용양상을 살폈다. 판소리 작품 속 달강달강은 다소의 차이가 있지만 육아현장에서 불리던 민요 달강달강의 서사구조를 대부분 간직하고 있었다. <심청가>와 <적벽가>의 달강달강은 서사구조는 비슷했지만, 앞뒤의 구절에서 “어허둥둥 내 딸(아들)이야”로 차이가 있었으며, '도리도리'나 '쥐얌쥐얌' 같은 <단동치기십계훈>의 내용이 추가됐다. <강릉매화타령>에서는 민요 달강달강의 서사구조는 물론 “달강달강”이라는 앞뒤 구절까지 유지되어 민요와의 차이가 가장 적었다. 실제 육아현장에서 달강달강은 주로 엄마나 할머니에 의해 불려졌지만, 판소리 작품 속 달강달강은 모두 남성에 의해 불려졌다는 점도 특징이다.
민요 달강달강은 지역에 따라 육자배기토리, 메나리토리, 경토리 등 다양한 선법으로 불리며 자장가처럼 단순한 구조가 반복되는 선율이지만, 판소리의 달강달강은 판소리라는 음악양식의 특성으로 인해 대부분 평계면의 선법과 서사맥락에 따른 극적인 선율로 짜여졌다. 아기를 어르기 위한 민요 달강달강은 여유있고 나긋한 박자로 불렸지만, 판소리 작품 속 달강달강은 서사적 맥락에 의해 속도감 있는 '중중모리'나 '자진모리'장단에 맞추어 불렸다.
4장에서는 판소리에 수용된 달강달강이 작품 안에서 수행하는 역할과 의미, 그리고 변모양상에 대해 고찰했다. 달강달강은 각 판소리 작품 속에 수용되는 과정에서 서사 맥락과 극적 상황에 따라 사설과 선율이 변용되면서, 새로운 역할과 의미를 수행하고 있다. <심청가> 속 달강달강은 곽씨 부인을 잃고 슬픔에 잠긴 심봉사가 심청을 통해 삶의 의지를 되찾는 과정에서 등장했으며, <적벽가>에서는 어린 아들을 어르던 위나라 군사의 추억 회상 장면에서 달강달강의 사설이 사용됐다. <강릉매화타령>에서 달강달강은 부모자식관계가 아닌 남녀의 애정관계로 변모했다. <강릉매화타령> 속 달강달강은 육아의 현장에서 불린 '아기 어르는 소리'의 의미에서 벗어나 골생원이 가진 향락적인 삶의 태도와 지나친 성적 욕망을 이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판소리에서 달강달강은 대부분 환희의 장면에서 수용됐는데, 이는 아기를 어르는 지극한 애정의 감정이 판소리의 서사 맥락과 극적 상황을 드러내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라 하겠다.


This is a paper that examines the meaning and changes of how Dalgang Song, a parenting song, is accepted in pansori works and how it plays a role in the narrative of the work.
In Chapter 2, Compared the lyrics of Dalgang-Dalgang in actual parenting scene and Dalgang-Dalgang in Pansori's work. As a result, the songs in Pansori, show some differences in lyrics, but most of them kept the narrative structure intact. Among them, Gangreung-maehwa-ga maintained the phrase “Dalgang-Dalgang” in front and back, making the least changes. Simcheong-ga and Jeokbyeok-ga maintained their epic structures, but the the front and the rear phrase turned into a “Uh huh, Doong doong”.
And Dalgang-Dalgang was sung mostly by its mother or grandmother at the actual parenting scene, but the song in Pansori, was all sung by men.
Dalgang song in Pansori, had a mostly Gyemyeon melody due to the genre characteristics of Pansori. Also Dalgang-Dalgang for actual parenting, was sung with a leisurely, soft beat. But Dalgang song in Pansori's works were sung rhythmical with Jungjungmori rhythm or Jajinmori rhythm to maximize joy.
In Chapter 3, I discussed the roles and meanings of Dalgang song contained in Pansori. Dalgang-Dalgang of Simcheong-ga appeared in the crucial process of Sim Hak-kyu's return to will of life through Simcheong after the death of his wife. In Jeokbyeok-ga, Dalgang song also appeared as a tool to recall the happy memories with his son.
On the other hand, Dalgang-Dalgang of Gangreung-maehwa-ga played a role of expressing affection for relationships between men and women, not between parents and children. This is beyond the original meaning of parenting, which means the hedonistic and excessive affection of Mr. Gol.
The desire to change a relationship between a man and a woman into between parents and children is also found in Kim Yeon-soo's Chunhyang-ga. This change is an example of how the role and meaning of Dalgang song has changed dramatically as it was inserted into pansori. And the reason why Dalgang-Dalgang was so important in the narrative of Pansori was because of The lyrics of the song contain the love of the ba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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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한국춤의 색과 공간에서의 문화철학적 표상에 관한 이미지 재고

저자 : 김지원 ( Kim Ji-won )

발행기관 : 한국공연문화학회(구 한국고전희곡학회) 간행물 : 공연문화연구 41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57-186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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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춤의 표상을 색채라는 의미에서 조명한다. 한국춤의 고유한 색과 빛은 한국예술의 정수이자 한국인의 의식을 투영한다. 그러므로 한국예술, 색과 의미를 분석한다는 것은 한국의 색을 재조명할 수 있는 미학적 해석의 원리를 제공할 수 있다. 이는 한국예술의 근원을 묻고 인문학적 기반으로서 독창적 콘텐츠의 개발 가능성에 주목해야 함을 뜻한다. 색과 삶, 그것이 문화가 되는 한국적 사상과 철학은 한국 예술의 또 다른 재창조적 시야를 위한 뿌리로 남는다. 따라서 한국춤을 인식하는 여러 가지 미적 태도는 다양한 해석의 확대와 함께 예술로서 한국적 정체성의 체계를 확립하는 것이 필요한 때이다.


It illuminates the representation of Korean dance in the sense of color. The unique color and light of Korean dance reflects the essence of Korean art and the consciousness of Koreans. Therefore, analyzing Korean art, colors and meanings can provide the principle of aesthetic interpretation to re-examine Korean colors.
This means that it is necessary to pay attention to the possibility of developing original contents as a humanistic basis, asking the origin of Korean art. The Korean thought and philosophy in which color and life become cultures remain the roots for another re-creating vision of Korean art. Therefore, it is time to establish a system of Korean identity as an art with the expansion of various interpretations of various aesthetic attitudes that recognize Korean d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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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향토성에 의한 울산덧배기춤의 형상화에 관한 연구

저자 : 최흥기 ( Choi Heung-kee )

발행기관 : 한국공연문화학회(구 한국고전희곡학회) 간행물 : 공연문화연구 41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87-218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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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배기는 경상도에서 풍속으로 전래된 향토춤이다. 이 연구는 울산지역의 덧배기춤이 향토성에 의해 어떻게 형상화되었는지를 고찰하였다. 그 진행으로 첫 장은 울산지역의 향토성에 의한 풍속을 지역적으로 한반도 동남부 해안지역의 풍속, 역사적으로 군사문화에서 전래된 풍속, 그리고 사회적으로 마을 동제와 들놀음에서 전래된 풍속, 울산사람들이 가진 말투와 몸짓에서 본 풍속 등에서 고찰하였다. 다음 장은 지역적 풍속에 의한 울산덧배기춤의 형상화를 환경적으로 군사 문화적인 풍속에서 무예의 숭상과 군사훈련과 연관된 울산덧배기의 형상, 지리적으로 경상도 해안지역의 특성에 의한 울산덧배기 춤의 형상, 그리고 사회적으로 울산마을축제에서 주민들의 몸짓에서 본 울산덧배기의 형상으로 고찰하였다. 이 연구에서 경상도 지역 간의 향토성과 덧배기 춤 유산의 비교는 차후 연구에서 연계한다. 연구 성과는 울산덧배기 춤의 형상화를 지역 향토성에서 전래된 풍속으로 고찰한 것이다.


Ulsan Dutbeki is a local dance handed down by the Ulsan people through custom. This study was discussed on the locality of Ulsan Dutbeki. The method of this study is as follows. First of all, the perception of Dutbeki from the perspective of Ulsan's local characteristic. First, Ulsan Dutbeki is based on the local characteristic of the southeastern coastal area of the Korean peninsula. Second, Dutbeki features local characteristics of Ulsan as a military cultural area. Third, in Dutbeki, there is a local culture of Ulsan which was originated from the village Dongjeol and outdoor performances. Next, the researcher perceived Ulsan Dutbeki which had been handed down through custom and approached its shape. The origins of the shape are, firstly, the speech tone and gestures of Ulsan people. Secondly, folk plays related to worshiping martial arts and military training. Thirdly, the characteristics of the Dutbeki dance in coastal areas of Gyeongsangdo. Fourth, local custom displayed at the village festival of Ulsan. Ulsan is a region of Gyeongsang culture area and has similarity with other localities. However, this study limited its comparisons with regard to Dutbeki that were originated from the local characteristics of other regions. The results of this study recognized Ulsan Dutbeki as a local dance in Ulsan area. In other words, this study perceived Dutbeki, which had been an entertaining component of traditional lifestyle, as an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and studied the form in every conceivable way from an artistic point of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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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한국의 불교그림과 공연 - 삼척 안정사에서 연행되는 땅설법을 중심으로 -

저자 : 김형근 ( Kim Hyung-kun )

발행기관 : 한국공연문화학회(구 한국고전희곡학회) 간행물 : 공연문화연구 41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19-255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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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빅터 메어(Victor H. Mair)의 용어 'Painting and performance'에서 촉발되었다. 그 책에서는 불교가 전파된 지역에 불교그림이 공통적으로 있고, 또한 그것을 활용한 공연이 있음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불교와는 관련 없지만 이러한 공연 형식은 세계적일 수 있음을 밝혔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은 다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곧 그에 해당하는 공연의 기록과 전승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2018년 삼척 안정사의 땅설법이 알려졌다. 학계는 한편으로 매우 반가워하면서도, 또 한편으로 고민을 하게 된다. 그 고민은 곧 '공시적, 통시적 보편성'으로 요약된다. 과연 삼척 안정사에서 전승하고 있는 땅설법이 그 절만의 특이 유형인가? 아니면 전승이 안되었을 뿐 전국적인 단위에서 보편적인가 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이런 본질적 질문에 앞서 우린 아직 충분히 안정사 땅설법의 전모를 알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본고는 안정사 땅설법의 전체적인 윤곽을 보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땅설법 전체에 공통적으로 '그림'(변상도)이 쓰이며, 그것을 어떠한 방식으로 운용하는지 다양한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땅설법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땅설법은 본전으로 5개의 레퍼토리, <석가모니일대기(釋迦牟尼一代記)>, <선재동자구법기(善財童子求法記>, <목련존자일대기(目連尊者一代記)>, <성주신일대기(成造神一代記)>, <신중신일대기(身衆神一代記)>를 가지고 있다. 또 별전으로 <만석중득도기(曼碩衆得道記)>, <안락국태자경(安樂國太子經)>, <태자수대나경(太子須大拏經)>, <심청효행록(沈淸孝行錄)>, <삼한세존일대기(三韓世尊一代記)>, <위제희부인만원연기(韋提希夫人滿願緣起)> 등이 있다. 공통적으로 불교적 인물의 일대기 서사구조를 취한다. 이 서사를 진행하는데 있어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이 변상도이며, 이 변상도의 내용을 다양한 방식으로 알려주는 것이 땅설법이다.
서사의 실마리가 되는 변상도의 경우 빛이 없는 저녁에는 볼 수 없는 문제가 생겨 특별한 고안이 필요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그림자극과 영등(影燈)의 방식이다. 즉, 땅설법은 세 가지 방식의 공연 방식이 있다. 첫 번째가 변상도를 이용하는 방식이고, 두 번째가 그림자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세 번째가 영등의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레퍼토리의 내용에 따른 선택이 아닌 공연 환경에 따른 선택이다. 빛이 있어 그림을 볼 수 있으면 변상도를 이용한다. 그러나 저녁이 되면 어두워 볼 수 없으므로(과거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던 시절) 그림자나 영등의 방식을 취했다. 이렇게 땅설법에서 시각적인 방식을 도구로 활용한 것은 단순히 구비문화 차원에서 한단계 진일보한 시각문화로의 이행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구비서사와는 달리 함축되어 있는 이미지의 힘은 감성적 자극을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불교의 신비함을 체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This article was triggered by Victor H. Mair's book 'Painting and performance'. The book explained that Buddhist paintings are common in the area where Buddhism was spread, and there are also performances using them. And although it has nothing to do with Buddhism, it has been shown that this form of performance can be global. However, the problem was not 'Korea'. It was because there was no record or transmission of the corresponding performance soon.
In this situation, the landing method of Samcheok stable temple was announced in 2018. On the one hand, the academic community is very pleased, but on the other hand, it is troubled. The worries are summed up as 'synchronic and diachronic universality'. Is the landing method inherited from the Samcheok stable temple a unique type of temple? Otherwise, it is a question of whether it has been passed down or is it universal at the national level. However, prior to this essential question, we do not yet know the full picture of the stable landing method. So this article was prepared to show the overall outline of the stable landing method. There is a 'picture' in common throughout the landing method, and understanding how to operate it in various ways is the first step in understanding the landing method.
There are five repertoires (which are called main halls) that are considered important, and more than that. What these repertoires have in common is the narrative structure of a Buddhist character. In this narrative, the most important thing is the revised figure, and it was the earthly method to inform the contents of the revised figure in various ways.
In the case of Byeonsangdo, which serves as a clue to the narrative, there was a problem that could not be seen in the evening without light, which required special design. It is the way of shadow play and Yeongdeung. In other words, there are three types of performances in the landing method. The first is the method of using reparation, and the second is the method of using shadow. The third is the way of eternity. This method is not a selection based on the contents of the repertoire, but a selection based on the performance environment. If there is light and you can see the picture, use reparation. However, in the evening, it was impossible to see it dark (when there was no electricity in the past). The use of the visual method as a tool in this method is to confirm the transition to a visual culture that is a step further from the level of culture. Moreover, unlike the epic narrative, the power of the implied image provided an opportunity for viewers to experience the mystery of Buddhism through emotional stimu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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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고성오광대 연희용 탈의 변화 양상

저자 : 남진아 ( Nam Jin-a )

발행기관 : 한국공연문화학회(구 한국고전희곡학회) 간행물 : 공연문화연구 41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57-284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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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오광대는 1950년대 말부터 학술조사가 시작되어 1964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지정 당시까지는 종이탈을 사용하였으나 1965년에는 이미 나무탈로 바뀌었으며 이후 탈의 변화 양상이 매우 크다.
1960년에는 9개의 탈을 사용하였는데 문둥이, 초란이, 말뚝이, 청보양반, 젓양반, 할미, 제밀주 탈을 기본으로 하였으며 여기에 소무는 제밀주와, 청보양반과 비비양반은 영감과 탈을 겸용하기도 하였다. 황봉사와 상주는 탈을 쓰지 않고 맨얼굴로 등장했다. 1965년부터 고성오광대 연희용 탈은 전체가 나무탈로 바뀌었다. 상주, 마당쇠, 상두꾼을 제외한 전 배역이 탈을 쓰고 있는데 비비, 홍백양반, 봉사 탈은 1964년까지는 등장한 적이 없는 탈이다. 초라니는 종가도령으로 바뀌었고 청보양반은 원양반으로 대체되었다. 1969년을 기점으로 연희용 탈은 종류가 현재와 같아지는 안정기에 들어선다. 비비양반과 소무를 제외한 모든 등장인물들이 개별탈을 사용하여 총18점의 탈을 사용한다. 양반들은 적제양반까지 확실하게 분화되어 총 7명의 양반이 등장한다.
이렇게 탈의 종류와 재질 및 표현법에 변화가 큰 것은 1세대 탈 제작자가 사망하면서 탈 제작의 전승이 끊어진 이유도 있겠으나 지정 이후 연희자들이 맞닥뜨려야 했던 연희환경의 극심한 변화에도 그 원인이 있다. 연희자들의 자족적인 놀이였기 때문에 세부 사항에서는 엄격한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 유동적인 놀이였으나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면서 점차 공연을 위한 준비로 바뀌었다. 춤이나 의상, 소품들도 점차 화려해졌고 시각적인 효과와 짜임새 있는 연출을 시도하면서 연희 전반의 변화와 함께 탈의 변화를 가져왔고 이를 보존회 내부에서도 수용하게 되었다.


Goseong Ogwangdae started academic research in the late 1950s and was designated as a national intangible cultural asset in 1964. From the time of the academic survey to the time of designation, it was recorded as using paper masks, but when the recording image was filmed in 1965, it was already changed to wooden masks.
In 1960, before being designated as an intangible cultural asset, the number of masks, which was 9 points, gradually increased to 19 points in 1964. It is necessarily included in the leper, Chorani, Malttuki, Cheongbo-Yangyang, Halmi, and Jemilju, but the character of the yangban is not yet clearly differentiated. Hwangbongsa and Sangju appeared as bare faces, and consumption, milling, Cheongbo-Yangyang are used together with Bibi and inspiration. It can be guessed that Bibi was not the appearance of a foreign object with horns as it is now, considering that Bibi and Madangsoi were used together.
Since 1965, shortly after the designation, the whole of the Goseong Ogwangdae mask has been changed to a wooden mask. All the characters except for resident, courtyard, and top-of-the-line are wearing masks. Bibi, Hongbaek, and service masks have never appeared until 1964. The Yangban was changed to the closing ceremony with six people in the order of Won-Yangban, Baekje, Heukje, Cheongje, Hongbaek, and Jonggadoryong.
Starting in 1969, the mask enters the stable period where the kind is the same as the present. Bibi-Yangban uses both the Won-Yangban and the Jemilju uses the Somu, but all other characters use the individual mask to use a total of 18 masks. The Yangbans are clearly differentiated, and a total of seven Yangban appear.
The reason why the change in the type of mask and the expression of material is so large is that the first generation of mask makers died and the tradition of mask production was cut off, but there is also a cause of the extreme change in the environment of the drama that the performers who joined after the designation had to face. Also, it is closely related to the change of the times when the meaning and weight of masking in masking has changed. At that time, the performers were not so tied to the current concept of 'original form' that they preserved the appearance of the designated time. Originally, Goseong Ogwangdae was centered on improvisation dance, not the formalized dance as it is now, and there was a certain fluid aspect in the retelling, so it was flexible in the use of masks even before the designation of cultural assets. Strict rules did not apply in the details, as it was a self-sufficient play by the performers, not an offer event.
The form and contents of this fluid play are changed to preparation for the performance while preparing for the folk art contest. As the subject of the contest in self-sufficient play, dance, costumes, and props became more and more colorful as well as dancing, costumes, and props. As a result, participation in the contest brought about changes in the overall performance and changed the mask, which was accepted within the preservation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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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양주별산대놀이 상좌·옴중춤의 전승양상 고찰

저자 : 박인수 ( Park In-soo ) , 김지훈 ( Kim Ji-hoon )

발행기관 : 한국공연문화학회(구 한국고전희곡학회) 간행물 : 공연문화연구 41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85-320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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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양주별산대놀이의 주요배역 중 하나인 상좌와 옴중의 '춤'을 중심으로 전승양상을 살펴본 연구이다. 먼저 1929년부터 1942년까지 조종순, 정한규, 박준섭, 김성태 연희자를 토대로 조사된 자료들을 살펴본 결과, 현재 거드름춤으로 유명한 두 배역 모두 타령장단의 깨끼춤만 연행하였다. 상좌의 경우 다섯 종류의 깨끼사위를 중심으로 연희자의 재량에 맞춰 자유롭게 연행되었다. 제2과장에서 연행된 옴중은 춤보다는 재담이 주가 되는 배역이었다. 일제강점기의 연행을 살펴본 결과 두 배역은 물론 다른 배역의 춤에도 큰 변화가 보이진 않았다. 이는 당시 일제의 억압으로 인해 제한된 환경 속에서 탈놀이의 명맥만을 유지해왔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해방이후부터는 김성대를 중심으로 탈놀이의 복원에 많은 힘을 쓰게 된다. 한국전쟁 중에도 연희자들은 탈놀이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연희자들을 길러내는 등의 노력을 해왔다. 종전 이후 살아남은 연희자는 박준섭, 박상환, 김성태, 이장순이었으며, 이들을 중심으로 탈놀이 복원을 꾸준히 이어갔다. 이시기부터 두 배역에 거드름춤의 연행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상좌는 그간 타령장단에 행하던 벽사의식무가 염불장단에 연행되었고, 의식무였던 깨끼춤은 매우 활발한 춤으로 변모된다. 옴중도 용트림이라 불리는 거드름춤의 연행이 추가되어, 춤의 비중이 매우 높아졌다. 이때까지 거드름춤의 연행을 사위로 구분하지 않고, 행위만을 서술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춤사위가 완벽하게 정립되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 지정이후, 상좌춤의 연희자가 박상환에서 이병권으로 넘어가면서 이전의 연행을 중심으로 한층 더 정리된다. 당시 상좌가 연행한 거드름춤은 연잎이 연행하는 거드름춤의 구조와 같았으며, 본 구조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춤의 순서를 정립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옴중춤은 박준섭 이후의 연행부터 기존에 비해 장삼을 쓰는 전개가 조금 더 순차적으로 정리되었다. 정리된 옴중춤의 연행구조도 노장춤의 연행구조와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였다. 두 배역 모두 연잎춤과 노장춤의 구조를 직접 분석하여 안무하였다기 보다는 연희자가 춤을 연행해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 구조가 차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처럼 두 배역 모두 오랜 기간 보존해오는 과정에서 연행되는 장단과 춤사위가 늘어났으며, 사위가 장단에 맞게 정리가 이루어져 춤이 더욱 깔끔해졌다. 여러 연희자들의 노력 덕분에 상좌춤은 '상당한 경지에 오른 연희자만이 출 수 있는 춤'으로 옴중춤은 '양주별산대놀이를 대표하는 춤'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This study aims to examine the processes of changes of the two main roles, Sangjwa(the young Buddist monk) chum and Omjung(the monk with a boil on his face) chum, performed in Yangju Byeolsandae Nori, on the basis of Chumsawi (dance- movement).
Above all, having studied many artistic remains performed by Jo jong sun, Jung han gyu, Park jun seup, Kim sung tae from 1929 to 1942, two main roles, in which Geodeureum chum is now an essential part in almost all performances, were then played only in Kkaekki chum to Taryong Jangdan without performances of Geodeureum chum.
In case of Sangjwa chum, players had performed ad libitum and without restraint only on the basis of five sorts of Kkaekki chum's movements. In Omjung chum, witty remarks along with the drama had become more important factors than dances. Let alone two main roles, other parts then also showed no big changes in dance performance. Performers just tried to maintain its slender existence within stifling atmosphere because of oppressions and restraints during the Japanese imperialism.
After the restoration of independence in 1945, Kim sung tae and his disciples made a great effort on the restoration of Talnori. During the Korean war, many players also endeavored to keep a good track of Talnori, teaching and training their young followers. Especially performers such as Park jun seup, Park sang hwan, Kim sung tae, and Lee jang sun put much more efforts on restoring Talnori. From that time, Geodeureum chum began to appear in two main roles' performances. In Sangjwa's performances, Byeogsa ritual dance, which was performed to Taryong Jangdan, changed into performances to Yeombul Jangdan, and Kkaekki chum -originally slow and ritual dance, became very fast and active one. Geodeureum chum, called Yongteulim, was added in Omjung chum, so that dance had more important role in performance. Even at this time, dance movements were not clearly and completely organized and arranged, because Geodeureum chum's performance was not clearly defined as orderly dance movements but was regarded as just a movement.
After Geodeureum chum being designated as a cultural treasure, Lee byeong kwon took over the task from Park sang hwan, Sangjwa chum's performer, so Geodeureum chum became much more well organzied, arranged and orderly. Geodeureum chum played by Sangjwa had almost the same order of scenes and movements as Geodeureum chum played by Yeonnip. Based on this performance, the order of dances and movements was consistently arranged and settled. Following Park jun seup's performances, Jangsam was more widely applied and used in Omjung chum than ever before, so Omjung chum became much more organized and arranged. Well-arranged Omjung chum had also almost the same dances and movements as Nojang chum's. Yeonnip and Nojang's performances were not directly and intentionally studied and applied to two main roles in Yangju Byeolsandae Nori. Players seemed to borrow those parts naturally through many times of performances.
Through their persistent efforts, Jangdan and dance movements have more clearly and completely been organized, establied, and improved through many years' performances. And dance movement can be performed exactly to Jangdan, so we have more complete and orderly types of dance movements. Thanks to many performers' efforts, Sangjwa chum has been established as one that only top performer can play, and Omjung chum has become an integral part in Yangju Byeolsandae N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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