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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9)~40권0호(2020) |수록논문 수 : 444
한국실학연구
40권0호(2020년 1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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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상토지(桑土志)』 소재 무기의 유형과 전차 운용 전술

저자 : 강진선 ( Kang Jin-sun ) , 민선홍 ( Min Seon-hong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0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9-40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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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상두지』에 수록된 무기를 소개하고 유형별 무기의 특징과 활용 전술을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상두지』는 조선 후기 남인계 실학자 이덕리(1725∼1797)가 1793년 유배지에서 저술한 국방서로, 전체 분량의 절반이 청나라 기병 공략을 목적으로 한 무기의 제작법과 활용 전술로 구성되어 있다. 그 내용을 분석함으로써 이덕리 국방론의 실체를 파악하고 당시기 국방 관련 저술의 흐름 속에서 『상두지』가 갖는 의의를 밝힐 수 있다.
『상두지』에 수록된 무기는 총 21종이며, 용도와 형태에 따라 네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 전차이다. 전체 무기 중 절반의 숫자를 차지하며, 청군의 군사적 강점인 기마병에 대한 주요 대응책의 성격을 갖는다. 둘째. 유통식 화기이다. 전대화기의 장점을 발전적으로 수용한 면모가 두드러진다. 셋째. 냉병기이다. 전차와 유통식 화기에 결합하여 청군 기마병에 의한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넷째. 기타 무기이다.
이상의 무기를 활용한 이덕리의 대청 전술은 전차를 활용한 기병 전력의 제압을 핵심으로 한다. 이덕리는 요새의 구축과 도로 개통을 통해 전차 부대의 돌격에 적합한 환경을 구상했다. 더불어 전차의 기능을 극대화할 운용 전략으로서, 산비탈에서 전차를 돌격시키는 기습전을 통해 적의 접근을 원천 차단할 것을 제안했다. 기습에 실패할 경우 수성전으로 돌입, 판옥 안에 전투원이 탑승하는 전차 중심으로 기마병을 무력화할 것을 계획했다.
『상두지』에 나타난 이덕리의 무기 체계와 운용 전술이 갖는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정묘·병자호란 이후 존재했던 대청 국방 논의의 한 국면을 보여주는 주요한 자료이다. 둘째. 다양한 국방 관련 저술을 계승해 발전적으로 수용한 저술로, 각종 군기의 개발부터 근본적인 군제 개혁까지 국방론 전반을 단독으로 다룬 최초의 국방서이다. 셋째. 이덕리 스스로 가학의 성과를 가시화하고 관료로서의 경륜을 입증하고자 한 저술로서 의미가 있다.


This article aims to introduce the weapons in Sangduji(桑土志), and to analyze the characteristics of weapons by type. Sangduji is a military tactic journal written by Lee Deok-ri(李德履, 1725∼1797), one of the pragmatic scholars in the late Joseon dynasty, in 1793. Half of this journal consists of the method of making weapons and the tactics to use them which aims to attack cavalry of Qing(淸) Dynasty. By analyzing it, it is possible to grasp the theoretical substance of Lee Deok-ri's military tactics, and to clarify the significance of Sangduji in the flow of military related writings at that time.
There are 21 kinds of weapons in Sangduji, and they can be divided into four types according to their use and form. The first is a tank(戰車). It accounts for half of all weapons, and it is main countermeasure against cavalry, the military strength of Qing dynasty. The second is a cylinder style firearms. It is remarkable that it developed the advantages of the previous works. Third is a cold weapon. The main point is to minimize the damage to allies by combining it with tanks and firearms. Fourth, other weapons.
Lee Deok-ri's anti Qing dynasty tactics are centered on the tanks which can suppress cavalry. For that purpose, it is necessary to prepare an infrastructure suitable for the use of tanks. By building a fortress and roads, Lee Deok-ri designed an environment suitable for tank troops attack. In addition, an strategy that can maximize the functions of the tank is required. Lee Deok-ri proposed to block the approach of the enemy through an ambush which charges the tank on the slopes. In the event of failed surprise attack, he planned to neutralize the cavalry by using the tanks with defense structure which can hide the allies in it.
The significance of Lee Deok-ri's weapon system and operation tactics shown in Sangduji is as follows. First of all, it is an important data that shows a phase of the anti-Qing debate after Jeongmyohoran and Byungjahoran. Secondly, it is the first book that dealt with the defense theory in general, from the invention of weapons to the fundamental reform of the military system. Third, it is a book that shows Lee Deok-ri's attempt to prove his ability as a bureaucracy and the academic achievement of his 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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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상두지』의 둔전론 ―둔전의 조성과 둔졸의 운용을 중심으로―

저자 : 손균익 ( Son Kyun-ick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0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41-84 (4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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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두지』는 18세기 말 소론 계열의 실학자 이덕리가 진도 유배 시절에 저술한 국방 관련 저서이다. 이 책에는 서로 지역을 대상으로 한 둔전의 조성과 둔졸의 운용에 관한 내용이 책의 가장 첫머리에 전체 분량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할 만큼 비중 있게 다루어지고 있다. 그가 제안한 다양한 국방 정책 중 최우선 과제이자 그 모든 정책을 실현 가능케 할 토대로서 둔전의 문제에 주목한 것이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학계에 처음 소개되는 이덕리의 둔전론을 상세히 분석하는데 우선적인 목표를 두고, 그가 제안한 급가매득을 통한 둔전의 조성 원칙, 국가적 차 수출을 통한 토지 매입 비용의 조달 및 규모의 단계별 확대 방안, 서북 지역에서의 수전 농법 확산을 위한 이른바 '갈오인수법'으로 명명된 수리시설의 구상, 모병제에 준하는 둔졸의 모집 계획과 급료 제도, 각종 인사 규정 및 근무 지원 방안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아울러 이 과정에서 유형원·서영보·정약용·서유구·정시원 등 동시대 지식인들의 관련 주장과 비교·분석도 시도하였다.
그 결과, 이덕리의 둔전론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실무적인 접근 속에서 당대의 국가적 시책에 조응한 동시에 사회경제적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주장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울러 동시대 지식인들의 둔전론과 비교하여 전반적인 연속성 속에서 몇몇 차별화된 인식들을 포착함으로써 그 독창성도 살펴볼 수 있었다. 나아가 그의 둔전론은 18세기 소론 계열의 둔전론이 가지는 특징과 함께 그의 사상이 당대 영암·강진 지역의 지식인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음을 보여준다.


Sangdu-Ji is a book related to the military policy in the late eighteenth century Chosŏn period written by Yi Tŏk-ri during his years of exile on Jindo Island. This book focuses on the ways of making and administering garrison farms in the northwestern province. The content concerning garrison farms is located in the first part and comprises more than a quarter of the book. It indicates that Yi Tŏk-ri proposed making the garrison farm system as the concrete object of military policy and the major solution to the military problems faced in the late Chosŏn period.
Sangdu-Ji has not yet been introduced in Korean academia, so the primary purpose of this research is to scrutinize and explain the garrison farm theory in Sangdu-Ji. This paper covers the following subjects:the plan to make garrison farms based on the rule of bargain land by payout and its funding by tea exports to northern China;the siphon technique for irrigation facilities to spread rice transplantation farming methods in the northwestern province ; the idea to mobilize soldiers of garrison farms, which is similar to the volunteer military system;and the tactics of maintaining the military system, such as the salary system. Moreover, this research compares the garrison farm theories of Yi Tŏk-ri's contemporary intellectuals, such as Yu Hyŏng-wŏn, Sŏ Yŏng-bo, Chŏng Yak-yong, Sŏ Yu-ku, and Chŏng Shi-wŏn, with that in Sangdu-Ji.
In conclusion, the garrison farm theory of Yi Tŏk-ri was an argument corresponding to national policy with a practical approach, and it was a result of a preemptive reaction to socioeconomic changes in the next century. Furthermore, the comparison with the theories of his contemporary scholars who studied practical matters clearly shows that it not only shared commonalities with their thoughts but also had a distinct perspective. What is more, the theory had a considerable influence on the garrison farm theory of the Soron school and the thoughts of the new intellectuals in Yŏng-am and Kang-jin provi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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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상토지(桑土志)』의 국방 강화 재원마련 방안(方案) 『기다(記茶)』

저자 : 유동훈 ( Yoo Dong-hun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0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85-117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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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이덕리가 유배지 진도에서 저술한 국방 관련 전문서 『상두지』에서 제안한 국방 관련 기획을 실현하기 위해 소요되는 막대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방안으로 별도로 저술한 『기다』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 작성한 논문이다.
이덕리는 『기다』에서 국가가 차를 전매하여 중국과의 차 무역을 통해서 국방을 강화하는데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을 『다설』과 『다사』, 그리고 『다조』 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설명했다.
첫 번째 서론에 해당하는 『다설』에서는 『기다』를 저술한 의도를 설명하고 있다.
두 번째 본문에 해당하는 다사 에서는 차의 일반적인 내용에 관해서 설명하고 있다.
세 번째 다조 에서는 차 무역의 구체적인 실행 계획과 절차에 관해서 설명하고 있다.
『기다』는 차에 무지했던 당시에 차 무역을 통해 얻은 막대한 이익으로 백성들의 생활을 넉넉하게 하고 국방을 강화하는 재원으로 삼을 것을 주장하면서 그 실행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제안한 독창적이고 실용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실학적 저술이다. 또한 『기다』는 조선 시대에 저술된 茶書중 차 무역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유일한 저술이다.


Gida is a tea book written by Yijung(而重) Yi Deok-ri(李德履, 1725∼1797) around 1783 during his years of exile in Jindo to talk about creating national wealth through tea trade with China under state monopoly.
Yi Deok-ri wrote Gida to construct huge financial resources for putting a national defense plan proposed in his writing Sangduji into action. He mentioned that for Sangduji , he separately established 'Daeseol(茶說)', which was aimed at Gida.
Gida consists of five items of 'Daeseol(茶說)', which amounts to an introduction, 14 items of 'Dasa(茶事)' amounting to a text, and 7 items of 'Dajo(茶條).'
First, Daeseol amounting to an introduction explains his intention to write Gida.
Second, Dasa that is related to a text explains general things about tea.
Third, Dajo explains specific plans and procedures of tea trade.
Gida was first known to the general public when the sixth item of Dasa of Gida was cited under the name of Dongdagi(東茶記) in Dongdasong(東茶頌) written by Choeui(草衣) Euisun(意恂, 1786∼1866).
Gida is contained in Gangsim(江心), an anthology of Yi Deok-ri, and currently, there are three different versions of it, namely, Baekwoondongbon(白雲洞本), Beopjinbon(法眞本), and Euiambon(衣巖本).
Stating that enormous profits from tea trade under state monopoly should be used as financial resources for enriching lives of the people and reinforcing national defense, when people were ignorant about tea, Yi Deok-ri's Gida explains specific methods of putting it into action, and puts forward unique and practical contents. Moreover, Gida is the only tea book written during the Joseon Dynasty period to say about tea tr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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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세기 후반 이덕리의 국방관과 평안도 평지 성곽론 ―『상두지』를 중심으로―

저자 : 정해은 ( Chung Hae-eun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0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19-153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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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이덕리가 1793년에 유배지에서 펴낸 『상두지』의 저술 배경과 평안도 평지 성곽론을 검토한 글이다. 청이 망하지 않는 현실을 우려한 이덕리는 양근을 매개로 한 인적 교류 및 18세기 중·후반 무렵까지 논의된 무비책의 기반 위에서 『상두지』를 저술하였다. 이제신에서 비롯되는 북방 지역에 대한 관심과 경세학을 발전시켜온 소론의 학풍을 수용한 그는 평안도에서 서울에 이르는 평평한 직로에 성곽을 쌓자고 제안하였다. 청 사신이 묵는 숙소도 요고성 형태로 축조하여 비상시 성곽으로 활용하자고 주장하였다. 또 서울―의주의 연로에 지망을 설치하여 청 기병을 큰길로 유인한 뒤 대포로 성곽전을 전개하면 승산이 있다고 보았다. 그의 주장은 정약용을 만나면서 빛을 보았다. 정약용은 본인 저서들에서 『상두지』를 인용하고, 『비어고』에 대청 전략서의 하나로 『상두지』를 실어놓았다.


This paper is a review of the background of the writing of Sangduji published by Lee Deok-ri in 1793 and the theory of the castle in Pyeongan-do. Lee Duk-ri conceived the theory of defense of Pyeongan-do as a way to prepare for the invasion of Qing Dynasty, fearing the reality that Qing Dynasty does not fail. Lee Duk-ri wrote Sangduji on the basis of human exchange through Yang-geun and defense measures discussed until the mid-18th century. Accepting Soron's academic style, which has developed interest and economics in the northern region of the present, he proposed to build a castle and store cannons in 45 openings located on the direct road from Pyeongan-do to Seoul. He also insisted that the residence where the Qing envoy stayed should be built in the form of Yogoseong and used as a castle in case of emergency. It was believed that there was a chance to build a castle around the castle and the castle in from Pyeongan-do to Seoul, attract the enemy to the main road, and then build a castle with a cannon installed in the fore. His arguments were illuminated when he met Jeong Yak-yong, who quoted Sangduji in his books and In Bieogo(備禦考), Sangduji was selected as a strategic book to prepare for the Qing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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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7~19세기 동아시아 실학, 그 개념 비교론

저자 : 임형택 ( Lim Hyung-taek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0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57-179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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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실학을 동아시아적 차원에서 파악하는 논리적 기초를 세우기 위해서 작성한 것이다. 실학이란 요컨대 17∼19세기 동아시아의 한·중·일 삼국에서 동시적으로 발생, 발전한 신학풍이다. 이 실학의 역사적 기원을 외적 요인과 내적 요인으로 생각해 보았다. 외적 요인으로는 서세동점의 파장이 이 지역에 당도해서 일으키게 되는 세계관의 문제에, 내적 요인으로는 명청교체가 야기한 정신적 충격의 문제에 시선을 집중하였다. 당시를 살았던 지식인들은 사상적 각성으로 발본적인 개혁을 도모하는 학문을 추구한다. 그것이 새로운 학풍을 불러일으킨바 오늘날 실학으로 일컬어지는 이것이다. 그런데 이 새로운 학문 경향은 동시성을 띠고 있음에도 상호 같고 다름이 없을 수 없었다. 따라서 여기에 도입된 용어들 또한 다름이 있었다. 이 용어들의 개념을 상호 비교하는 논의를 중요한 논지로 잡았다. 본고가 동아시아 실학을 일국적 경계를 넘어서 통일적인 인식으로 가는 입문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Silhak is originated and developed in Korea, China and Japan simultaneously from 17th to 19th century and I attempt to suggest its logical foundation in East asian perspectives. I compare its exterior origin, matters about the world view affected by the wave of increasing West and decreasing East and interior factors caused by Ming-Qing Dynasty transformation. Confronting transformations, literati seek studies for fundamental reformation and their seeking bears fruits of Silhak. Since Silhak is originated from three countries, its terms and concepts from each countries have differences and similarities. I compare Silhak's terms and concepts among three countries to achieve East Asian perspect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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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유형원(柳馨遠)과 동인도회사(VOC)―근대성의 개념에 대한 단상(斷想)―

저자 : Boudewijn Walraven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0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81-196 (1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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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일본이 난학(蘭學. 네덜란드의 지식을 좇아 배움)을 통해 성취했던 것처럼 한국 역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와 접촉했던 기회를 이용하여 서구에 대해 습득했더라면, 아마도 좀더 빨리 근대화를 이루어내고 일본의 식민 지배도 막을 수 있지 않았겠는가 하는 의견이 때때로 있어 왔다. 17세기 제주도 해안에 난파되어 그 후로 13-15년 가량을 조선에서 살았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고용인들은 바로 그러한 기회를 제공하였다. 『磻溪隨錄』에 나타난 짧은 한 구절 덕분에, 우리는 반계 유형원이 이 네덜란드인들 중 일부를 만났으며 그들과 함께 동전의 사용에 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 외 가능성있는 토론의 주제들에 대해서는 어떤 상세한 정보도 찾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인과 서구의 이 짧은 만남은 조선이 서구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었을지에 관한 의문에 대해 고찰하게끔 해준다. 당시 동인도회사 직원들로 대표되는 서구 문화의 특성을 살펴보면, 그들의 상업적 통찰력만큼이나 군사적인 폭력과 대규모 노예화에 의존했던 회사가 대변하는 “근대성”이 우리가 지향하는 바람직한 목표는 아니라고 여길 만한 충분한 이유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것은 근대성을 단순히 진보와 등치시키는 습관적인 假定을 무력화한다.


It has sometimes been suggested that Korea would have been able to modernize more quickly and avoid colonization if, like the Japanese did through Rangaku (the pursuit of Dutch knowledge), Koreans too had made use of the opportunity contacts with the Dutch East India Company afforded to learn about the West.
In the seventeenth century a group of employees of the East India Company who had been shipwrecked off the coast of Cheju-do and thereafter lived in Korea for 13 to 15 years offered such an opportunity. Thanks to a brief passage in Pan'gye surok we know that Yu Hyŏngwŏn met some of these Dutchmen and had a serious conversation with them about the use of coins. Unfortunately, we do not have any detailed information about possible other topics of discussion.
Nevertheless, this brief Korean encounter with the West prompts us to reflect on the question of what there would have been to learn from the West. If we examine the nature of Western culture as represented by the employees of the East India Company, there are good reasons to believe that the kind of “modernity” represented by the Company, which relied as much on military violence and massive enslavement as on commercial acumen, cannot be regarded as having been a desirable goal to strive for. This undercuts the assumption that is habitually made that modernity simply equals prog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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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명청(明清) 실학(實學) 계몽사조(啓蒙思潮)와 유형원(柳馨遠) 사상(思想)의 새로운 이론의 관계(關係)

저자 : 祁志祥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0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97-209 (1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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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학계에서는 관습적으로 “실학”이라는 단어로 청나라 시대 학술의 특징을 개괄한다. 넓은 의미의 “실학”은 당연히 實事求是의 사유방법을 가리킨다. 이것으로 중국 고대 사상계를 비추어보면, 이 방법은 청나라 시기 이전에도 뚜렷하게 존재하여, 중국사상의 발전과 변화의 시작과 끝을 관통하였다. “실학”의 넓은 의미를 이해함에 기반하여, 청나라 시대뿐만이 아니라 명나라 시대까지 모두 “실학”이라는 단어를 써서 포괄할 수 있다. “明·淸 시대 실학계몽 사조”는 “실학”의 중요한 지점이고, 또한 중국 고대 사상사의 중요한 지점이다. 청나라 시대 사상가의 실학 계몽사상은 아래와 같이 몇 가지 주제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첫째, 정욕을 존중하면서, 감정에 통달하고 욕망을 이룰 것을 주장했다. 둘째, 인정과 사사로움을 인정하였다. 셋째, 독재 군주에 대한 비판을 제기했다. “實學啓蒙”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면, 이 용어는 본체와 작용을 합일하는 표현이므로 明·淸 시대 사상계 전체의 시대적 특징을 개괄하여, 더욱 적확하고, 실제와도 더욱 부합할 것이다. 17세기는 明·淸 교체기로, 중국 사상계의 실학계몽 사조가 주변의 동아시아 국가에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영향을 일으켰으며, 동아시아 지식인의 사상 변화를 발생하게 하였다. 柳馨遠은 한국 실학사조에서 대표적인 인물이며 그의 『磻溪隨錄』은 이 방면에서의 대표작이다.


中国学界习惯用“实学”概括清代学术的特征. 所以广义的“实学”当指实事求是的思维方法. 以此观照中国古代思想界, 这种方法在清代以前就鲜明地存在着, 它贯穿在中国古代思想史发展演变的始终. 基于对“实学”的广义的理解, 不仅清代, 而且明代, 都可以用“实学”去概括. “明清实学启蒙思潮”是“实学”的重点, 也是中国古代思想史的重点. 清代思想家继续明代的实学启蒙方向, 运用“征实求真”的方法, 倡导“经世致用”之学, 进一步掀起了对唐宋唯理主义思想启蒙的高潮. 清代思想家的实学启蒙思想, 集中体现在以下几个问题上:“一是尊重情欲, 主张达情遂欲二是肯定人情怀私三是对独裁君主的批判. 用“实学(用)启蒙(体)”这个体用合一的提法概括明清思想界的整体时代特征, 更为准确․更为符合实际. 17世纪是明清交替之际, 中国思想界的实学启蒙思潮对周边的东亚国家直接或间接地产生了影响, 使得东亚知识分子的思想发生了变化. 其中一个例证就是韩国的“实学”思潮. 而柳馨远就是韩国实学思潮中的一个代表性人物. 他的《磻溪随录》就是这方面的代表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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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부안 동림서원의 건립과 변천에 대한 연구―『동림서원지』를 중심으로―

저자 : 김승대 ( Kim Seung-dae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0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11-263 (5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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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림서원은 반계 유형원을 배향한 유일한 서원이었다. 최근 필자는 부안김씨 담계 종중에서 『동림서원지』 등 고문서 4건을 발굴하였다. 이를 통해 동림서원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동림서원은 1693년(숙종19) 부안 소산면 파산에서 반계를 배향한 남인 계열의 '반계사', '파산서원'으로 출발하였다. 1711년(숙종37) 유문원과 김서경을 추가 배향하였고, 1737년(영조13)에는 상서면 동림으로 이건하였다. 1789년(정조13) 김회신을 추가 배향하고, 1794년(정조18)에는 강당을 창건하였다. 동림으로 옮긴 후 동림서원은 부안김씨 문중서원의 성격을 많이 내포하게 되었다. 또한, 『재임안』·『서재 유생안』·『양사재 계안』은 19세기 동림서원의 양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1868년(고종5) 서원이 철폐된 후, 현재 1908년, 1939년에 세워진 '동림서원 유허비'와 건물 주초석만이 남아있다. 향후 고문서 번역, 본격적인 고증과 문화재 지정 검토, 인근 반계 유적과 연계한 활용방안 등이 검토된다.


Donglim Seowon(東林書院) in Buan was the only Confucian academy in the country to commemorate Bangue(磻溪) Yu Hyeong-won(柳馨遠). Recently, I discovered four ancient documents, including “Dongnim Seowonji(東林書院誌)”, from the Buan Kim Clan.
Donglim Seowon started in 1693 as 'Bangye-sa(磻溪祠)' and 'Pasan seowon(巴山書院)' in commemoration of Yu Hyeong-won in the Pasan village of Sosan-myeon, Buan-gun. In 1711 the Yu Mun-won and Kim Seo-gyeong were additionally commemorated, and in 1737 they moved to Donglim Village in Sangseo-myeon. In 1789, Kim Hoe-sin was additionally commemorated, and in 1794, an auditorium was established. After moving to Dongnim Village, Donglim Seowon was largely associated with the character of Buan Kim's Munjungseowon.
In addition, 'Jaeiman', 'Seojae Yusaengan' and 'Yangsajae Gyean' are documents that show various aspects of Donglim Seowon in the 19th century. The Confucian academy was abolished in 1868. Currently, only the monument and the foundation stone of the building erected in 1908 and 1939.
In the future, it is necessary to review the translation of ancient documents, the full-fledged review of historical records and cultural heritage designation, and the historical sites and utilization measures of nearby Bangue Yu Hyeong-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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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반계 유형원의 병농일치론(兵農一致論)과 군사제도 개혁안

저자 : 송양섭 ( Song Yang-seop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0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65-328 (6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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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란과 호란 이후 많은 문제를 드러내고 있던 군제를 배경으로 유형원은 민의 재생산 기반과 군제를 일체화한 병농일치적 군제개혁안을 구상했다. 여기에는 조선전기의 戶首保人制가 차용되었으며 束伍分軍法을 부대편성의 원칙으로 제시하였다. 병농분리의 대표적 군영인 훈련도감은 그 효용을 인정하여 그대로 존속하도록 하였다. 병농일치의 원칙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경험적으로 효용성이 증명된 제도는 그대로 채용하는 유연한 태도였다. 주력 병종은 正兵으로 이들은 公田制의 頃夫에 해당하는 균질적 소농으로 군역체계의 표준단위가 되었다. 공전제의 기반 위에 병농일치의 군호편성은 대략 5∼7배에 달하는 戶保數의 증가를 가져오도록 한 것으로 실로 '북벌'의 염원에 걸 맞는 획기적인 군사력 증강이라 할 만 했다. 중앙군제는 5위를 복설하고 騎兵과 步兵으로 병종을 단순화하였다. 입역방식은 어영청의 그것을 차용하였다. 훈련도감은 왕성수비의 정예병으로 일정한 독립성을 인정하고 금군과 도성치안을 위한 대책도 제시하였다. 지방군에 대해서는 鎭管體制의 복구와 營將制의 폐지를 주장했다. 특히 『紀效新書』의 分軍法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생활공간과 부대편제를 일치시켜 군현 단위의 자기완결적 방어시스템의 구축하고자 했다. 이러한 방안은 상당부분 유성룡의 주장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각읍은 자체의 수비전략과 관방시설 등을 갖춘 독자적 방어단위로 전국적으로 읍성을 축조하여 유사시 방어의 거점으로 삼도록 했다. 유형원의 구상은 고제의 취지를 살린 공전제의 바탕에 조선전기적 군제를 복구하면서도 당대의 제도를 적절히 참용하여 체계화한 종합적인 개혁안이었다.


Yu Hyeongwon designed a plan for military system reform based on farmer-soldier concurrence, which integrated reproduction base of the people and the military system, as the system had been showing various issues after the Hideyoshi Invasion in 1592 and the Manchu Invasion in 1636. Here Yu adopted the Hosu-Boin system of the early Joseon dynasty, and suggested a principle of unit organization called Sogobungunbeop (束伍分軍法). At the same time, Yu admitted the utility of Hullyeondogam, the representative military division based on the full-time soldier (兵農分離), and left it subsisted. In principle, Yu targeted the militia (兵農一致), but at the same time he showed a flexible approach to use the system proven useful experientially. The main forces consisted of Jeongbyeong(正兵;the regular soldiers), who were homogeneous peasants identical to Gyeongbu (頃夫) in Gongjeonje(公田制; Public Land system), and these soldiers were the standard unit of the military service system. Consisting the military household units(軍戶) based on Gongjeonje resulted in the increase of the number of the households responsible for the military service and its provision, around 5 to 7 times. It could be considered as an innovative reinforcement of the military force commensurate with the hope of so-called 'Bukbeol', the Northern Campaign. For the system of the central army, Yu planned to restore the Five Guards and simplified the type of the units into the cavalry and the infantry. The style of service resembled that of Eoyeongcheong. He also acknowledged the independence of Hullyeondogam as the elite forces defending the royal capital, as well as presenting alternatives for the security of the capital and the Royal Guards. For the local army, Bangye urged the restoration of Jingwan (鎭管) system and the abolishment of Yeongjang (營將) system. Especially, he sought to construct the self-perfecting defense system in every Prefectures and Counties, not only based on Jixiao Xinshu (紀效新書), but also coordinating the living space and the unit organization. The part of this plan was mostly influenced by that of Ryu Seongryong. Yu Hyeongwon set every local prefectures and counties as the strongpoint of the defense in emergency by constructing Eupseong, the local fortress, across the country, making it an independent unit of defense equipped with defensive strategies and facilities on its own. Yu's design was the comprehensive reformation plan, where based on Gongjeonje, he revived the ancient system, at the same time restoring the early dynastic model of the military system and utilizing his contemporary system.

KCI등재

10동아시아의 백과전서파 실학과 황윤석

저자 : 하우봉 ( Ha Woo-bong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40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331-368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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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는 지식 전체를 일정한 부문체계에 따라 재편해 독자에게 제시하는 저술 형식이다. 17세기 이후 동아시아 삼국에서는 의리와 이념에 치중된 성리학에 대한 반성과 함께 현실을 실용적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실학적 풍조가 일어나면서 유서의 편찬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유서와 비슷한 형태의 저술을 서양에서는 백과전서라고 부른다. 미세한 차이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유사한 형식과 내용을 지니고 있다. 양자의 공통점은 기존의 지식의 위계성에서 탈피하거나 해체를 지향한 점이다. 유서 편찬 자체가 지식의 집중과 분류를 통해 대중에게 쉽게 보급하고자 한 목적에서 나온 것이다. 상업적 출판의 발전과 함께 불특정다수의 독자를 위해 지식의 평준화를 지향하였고, 독자의 요구에 부응해 나갔다.
18세기 조선 사상계의 주요변화상은 도덕담론인 주자성리학에서 지식담론인 고증학·박학으로 변화해 간 것이다. 후자의 지식인들은 경학보다 박학을 중시하였고, 도보다는 기예(지식과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성리와 의리보다는 명물도수와 격물치지를 더 중시하였고, 연구방법에서는 고증과 실측을 강조하였다. 백과전서파라고 불리는 이들은 거대한 학술사적 전환을 수행하였다. 이들은 주자학일변도의 풍토에서 기존의 학문적 위계를 일부 해체하여 자연과학의 독자적 가치를 긍정하였고, 서학의 수용을 통해 독자적인 지식체계를 구축하려고 하였다.
현실에 대한 개혁을 도모하였던 실학파에게 나타나는 특징의 하나가 백과전서파적인 성향이다. 이것은 그들의 실용적인 학문적 지향과 직결될 뿐만 아니라 박학성 그 자체로서 이미 그것을 경시하였던 당시의 정통주의적 학문 경향에 대한 적극적 대응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즉 박학에는 단순한 지식의 집적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사상운동으로서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Ryuseo(=Encyclopedia) is a writing format in which the entire knowledge is reorganized according to a certain sector system and presented to the reader. After the 17th century, in the three countries of East Asia, a practical trend to grasp the reality as well as reflection on the theory of Sung Confucianism focused on loyalty and ideology arose.
Writings in the form of a ryuseo are called encyclopedias in the West. Although there are subtle differences, they generally have similar forms and contents. What they have in common is that they aim to break away from or dismantle the existing hierarchy of knowledge. The compilation of the ryuseo itself came from the purpose of distributing it easily to the public through the concentration and classification of knowledge. With the development of commercial publishing, it aimed to equalize knowledge for an unspecified number of readers, and responded to the needs of readers.
The major change in the Joseon ideology in the 18th century was the change from the moral discourse of Sung Confucianism to the knowledge discourse of bibliographical studies and erudition. The latter intellectuals valued erudition rather than philosophy, and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arts (knowledge and skill) rather than Tao. Those called the Encyclopaedia have undergone a huge academic and historical transformation. They affirmed the unique value of natural science by dismantling some of the existing academic hierarchies in the climate of Neo-Confucianism, and attempted to build an independent knowledge system through acceptance of the occidental science.
One of the characteristics that appears to the Silhak school, which has sought to reform the reality, is the encyclopedicism. This is not only directly related to their practical academic orientation, but also has a form of positive response to the orthodox academic tendencies of the time, which had already neglected it as erudition itself. In other words, erudition has a meaning as a more active and practical thought movement, not a simple accumulation of knowl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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