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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연구 update

Journal of The Society of Philosophical Studies

  • :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 : 인문과학분야  >  기타(인문과학)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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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반년간
  • : 1229-4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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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55)~62권0호(2020) |수록논문 수 : 532
철학연구
62권0호(2020년 10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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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아리스토텔레스 탐구에서 논리의 위상 문제

저자 : 노희천 ( Noh Huichon )

발행기관 :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간행물 : 철학연구 62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23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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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각 탐구들에서 논증들은 그 탐구 주제와 목적에 적합한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논증결과가 더 정확한 탐구가 항상 더 좋은 탐구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모든 탐구들에서 각 탐구주제(나 논증의 전제)가 허용하는 만큼, 그리고 그 탐구에 적합한 바로 그만큼의 정확성이 추구되며, 모든 탐구에서 똑같은 정확성이 추구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 지식 탐구의 주제들은 필연적인 보편과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그러한 것들'이고, 전자에 적합한 논증이 학적 연역논증이고, 학적연역에 의해 산출된 지식이 가장 정확하다. (2) 변증술적 탐구에서 논증은 대화 쌍방의 동의에 의하여 정립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견해들'을 전제로 하므로, 변증술적 논증(탐구)에서는 그 검토대상과 대화쌍방의 노력(동의)이 허용하는 만큼의 정확성이 추구된다. (3) 수사술적 탐구에서 논증은 청중이 받아들일 만한 증표나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견해들'을 전제로 하므로, 이러한 논증에서 그 전제나 연설자와 청중의 노력이 허용하는 만큼, 그리고 설득목적에 적합한 그 만큼의 정확성이 추구된다.
둘째, 각 탐구에서 추구되는 그 정확성에 우리는 만족해야 하고, 더 정확한 것이 더 좋다는 것이 항상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The main concern of this paper is that the arguments function properly for the subject and purpose of each inquiry(methodos, logos) and that Aristotle seems to think it is not always that the greater the inquiry the better. The grounds are as follows:
First, we do not look for the same degree of exactness in all areas, but the degree that accords with a given subject matter and is proper to a given line of inquiry. (1) In the inquiry of knowledge, since our subject and our premises are things that hold good usually or universally, we shall draw conclusions of the same sort. (2) The dialectical inquiry seeks to refute some of the contentious issues. Since the subject and premises of dialectical arguments are generally accepted things established by the consent of the answerer, we shall draw tentative true conclusions. (3) The rhetorical argument is aimed at persuading the audience. Since the subject and premises are things expected to be accepted by the audience, we shall draw probable conclusions enough to persuade the audience.
Second, we must be content to draw as much exact conclusion from premise as it is It is not always the case that the greater the exactness the b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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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운명적 사랑의 탐구 -고대 그리스적 운명 개념과 칸트의 우주론적 이율배반을 중심으로

저자 : 오흥명 ( Oh Heung Myung )

발행기관 :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간행물 : 철학연구 62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5-77 (5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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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적 사랑에 관한 세간의 통념은 이중적이다. 한편으로는 이 낭만적 서사의 무수한 변종들이 매스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별다른 저항 없이 일상적으로 소비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감정이 현실을 알지 못하는 미숙한 사춘기 시절의 감상적 환상이거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널리 소비되는 일종의 문화상품에 불과할 뿐이라는 자조적 냉소가 퍼져 있다. 이 글은 피상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운명적 사랑에 관한 이 같은 대중적 이해에 도전하면서, 운명 개념에 대한 형이상학적 해석을 바탕으로 하나의 철학적 대안을 제시한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이 글은 운명적 사랑이 자유롭고 존엄한 주체로서 인간 존재의 해방과 완성을 매개하는 가장 근원적인 연대의 형식이라고 주장한다.


Common notions of destined love are equivocal. On the one hand, innumerable variations of this romantic narrative are incessantly reproduced by mass media and consumed everyday without any resistance; Yet, on the other hand, such self-mocking cynicism is widespread that those are nothing but either sentimental fantasies of immature adolescence ignorant of reality, or a kind of cultural product consumed generally in capitalist societies. Challenging those popular understandings about destined love which remain superficial, this paper tries to propose a philosophical alternative on the basis of metaphysical interpretation of the concept of destiny. From this, this paper argues that destined love is the most fundamental mode of solidarity to mediates the liberation and completion of human being as free and dignified 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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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칸트의 우정론은 우정에 반하는가?

저자 : 강은아 ( Kang Euna )

발행기관 :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간행물 : 철학연구 62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79-99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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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 내가 다루는 질문은 '칸트 우정론이 현대에도 설득력을 갖는가'이다. 이를 위해 나는 현대의 관점에서 칸트 우정론에 제기되는 두 가지 의문을 검토한다. 첫 번째 의문은 '친구 간에 사랑과 존경의 상호성과 평등을 요구하는 것은 우정 관계의 친밀성을 파괴하는가?'이고, 두 번째 의문은 '정말로 우정에 사랑만큼이나 존경이 요구되는가?'이다. 첫 번째 의문에 답하기 위해 나는 칸트의 우정 규정에 대한 친밀성 반론들을 검토할 것이다. 이 반론들 중 일부는 칸트 우정론의 성격에 대한 오해에서 나온 것이고, 일부는 친밀한 관계에서의 감정에 대한 제한이 불필요하다는 생각에 기반한다. 이는 두 번째 의문에서 다뤄진다. 두 번째 의문에 답하기 위해 나는 인간관계에서 사랑과 존경이 반대 작용을 한다는 칸트의 이론을 검토하고, 존경이 인간관계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제시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정에 존경이 요구된다는 칸트의 입장을 평가해볼 것이다. 나의 결론은 칸트 우정론이 친밀성 및 사랑에 대한 현대인의 지나친 낭만화를 재고할 만한 설득력 있는 관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현대에도 설득력을 갖는다는 것이다.


The question I deal with in this essay is, 'Is Kant's friendship theory convincing to our contemporary age?' To answer this question, I examine two problems raised in Kant's friendship theory. The first is 'Does calling for the reciprocity and equality of love and respect among friends destroy the intimacy of friendship?' and the second is 'Does friendship really need respect as much as love?' To solve the first problem I will review counter-arguments based on intimacy against Kant's two friendship notions. Some of these counter-arguments come from misunderstanding about the status of Kant's friendship theory, while others are based on the idea that restrictions on emotions in intimate relationships are entirely unnecessary. This is addressed in the second question. To solve the second, I will present Kant's understanding of the dynamics of love and respect in human relationship, of the role of respect here, and, then, I would evaluate Kant's demand of respect in his friendship theory. My conclusion is that Kant's friendship theory is persuasive to our age, given that it provides a convincing perspective to reconsider the excessive romanticization of modern intimacy and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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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칸트의 “악으로의 성벽Hang zum Bösen”에서 자기기만의 문제

저자 : 강지영 ( Kang Ji Young )

발행기관 :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간행물 : 철학연구 62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01-127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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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연구자들은 다양한 논거에 의해 칸트 윤리학에서 자기기만이 악의 필요조건이라고 주장했다. 본 논문에서는 “악으로의 성벽”의 각 단계에서 자기기만이 일어나기 때문에, 자기기만은 악의 필요조건이라는 해석이 옳은지를 검토한다. 본 논문에서 나는 “악으로의 성벽”의 각 단계에 자기기만이 동반되지 않으며, 오직 세 번째 단계인 “타락성” 단계에만 자기기만이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칸트에서 “악으로의 성벽”이 언급된 원전 부분을 검토한 뒤, “악으로의 성벽”의 모든 단계에서 자기기만이 일어난다고 보는 헨리앨리슨의 해석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이어 3장에서는 앨리슨의 해석에 반대하는 대표적인 해석인 뤽가버와 패스터낙의 해석이 설득력이 있는지 따져본다. 이 과정에서 앨리슨, 뤽가버, 패스터낙의 해석이 원전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음이 드러날 것이다.
“악으로의 성벽”의 각 단계는 칸트에게 비도덕성의 일반적 범주들을 가리키므로, 각 단계에서 자기기만이 동반되지 않으면, 칸트에서 자기기만은 악의 필요조건이 아니다. “악으로의 성벽”의 세 번째 단계에서만 자기기만이 동반된다는 나의 해석은, 칸트 윤리학에서 자기기만이 악의 필요조건이 아님을 보여준다. 단 나의 결론은 자기기만이 인간적 악의 중요한 형태인 위선자의 악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원천임을 보여준다.


Many researchers argued that self-deception is a necessary condition of evil in Kant's ethics by various arguments. In this paper, I examine the plausibility of the interpretation according to which the self-deception is a necessary condition of Kantian evil since self-deception occurs at each stage (Stufen) of the “Hang zum Bösen”. In this paper, I argue that all stages of “Hang zum Bösen” are not accompanied by systematical self-deception, and that only in the third stage of “depravity” the self-deception occurs. In the second chapter, I interpretate the part of the phrases mentioned “Hang zum Bösen” in Kant's Works to support this argument. And I critically examine Henry Allison's interpretation, in which self-deception occurs at every stage of “Hang zum Bösen”. In the third chapter then I examine the interpretation of Rukgarber and Pasternak, as the representative counter-interpretations of Alison's interpretation. This process reveals the problems of the interpretations of Alison, Rukgarber, and Pasternak.
Each stage of “Hang zum Bösen” refers to the general categories of immorality for Kant, so if self-deception is not accompanied at each stage of “Hang zum Bösen”, self-deception is for Kant not a necessary condition for evil. However, my conclusion shows that self-deception is an essential source of hypocrisy, which is for Kant the crucial sort of human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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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행위자의 도덕적 진보에 대한 설명 가능성: 밀의 공리주의와 코스가드의 의무론

저자 : 강현정 ( Kang Hyun Jeong )

발행기관 :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간행물 : 철학연구 62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29-154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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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도덕적 진보와 관련해서 밀과 코스가드의 도덕 이론을 비교하며 도덕적 진보를 설명하는 데에 코스가드는 성공적이지만 밀은 실패하고 있음을 논증하는 데에 있다. 코스가드의 이론에 따르면 행위자의 도덕적 진보란 자신의 정체성에 반하는 것을 행하지 않는 방식으로 도덕적 책무를 이행해가는 것이다. 만약 지속적으로 자신의 도덕적 책무를 이행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그 행위들의 결과와 무관하게 행위자는 도덕적 진보를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밀에게서 행위자는 자신이 보다 나은 결과를 성취할 때에만 도덕적 진보를 이루게 되며, 공리주의에 따라 행위를 지속한 경우라고 해도 결과에 따라 행위가 잘못된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게 된다. 따라서 행위자가 더 나은 결과를 위해 욕구와 의도를 통제했다고 해도 도덕적 진보가 반드시 뒤따르지는 않게 되는데, 밀의 견해는 도덕적 진보와 관련해서 우연성 문제, 인식론적 문제, 정당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따라서 밀과 같은 공리주의 행위자는 자기 자신에 대한 도덕적 진보 개념을 형성하는 것이 어렵게 되며 공리주의 원리에 따라 지속적으로 행위를 결정하는 것이 어렵게 된다.


In this paper I argue that Mill's view fails to explain how an agent can make moral progress whereas Korsgaard's agent can. For Korsgaard, an agent can formulate her own concept of moral progress in terms of her actions. According to the view, she makes moral progress as long as she continues to act in the way not against her own moral identity. In other words, an agent who exerts to do moral obligations or duties makes moral progress regardless of the outcomes of the actions. For Mill, however, an agent makes moral progress only when she brings a better outcome based on her utilitarian calculation. This means that Mill's agent cannot make moral progress even when she continues to act with the motivations to bring better consequences. I delve into this issue by offering three aspects of the problem: contingency problem, epistemic problem, and justification problem. These problems make it clear that Mill's agent cannot formulate her own moral progress of her actions and will find it hard to continue to act upon the utilitarian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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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피아제의 발생학적 인식론에 의한 칸트 수학철학 비판

저자 : 문장수 ( Moun Jeansou )

발행기관 :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간행물 : 철학연구 62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55-194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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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헬름홀츠-피아제의 “운동학적 관점”(kinematical perspective)에서 칸트의 기하학 이론에서 직관의 역할에 대한 현상학적 해석과 논리적 해석의 종합 가능성을 해명한다. 이를 위해 헬름홀츠와 피아제의 “군 이론”의 토대인 운동학적 해석의 단서가 칸트의 기하학이론에 어느 정도 내재했다는 것을 해명한다. 이때, 필자는 특히 다음과 같은 사항을 강조한다. 직관이 정신적 능력을 지시하는 용어라면, 이러한 직관의 내용은 세마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세마 그 자체가 처음부터 주관에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조작(행동)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해명할 수 있다면, 결국 직관이라는 것도 처음부터 완성된 인지적 능력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발달한다는 것을 함의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처음부터 외적 경험적 지각과 선험적 개념을 종합하는 능력, 소위 칸트가 “상상력의 선험적 종합”과 연관시키는 직관 능력은 처음부터 완성되어 있는 생득적 능력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발달하는 능력이다. 사과를 만져보고 먹어보고 바구니에 담아보고 하는 행동을 통해서 “구”의 개념을 직관하거나 이해하지, 처음부터 “구” 개념에 대한 직관을 갖고 태어난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몸이 전후, 좌우, 상하로 이동하는 행동을 할 수 없었다면, 도대체 어떻게 3차원의 공간 개념을 직관적으로 가질 수 있었겠는가? 이런 점에서 세마와 직관에 대한 칸트의 선험주의적 해석은 피아제의 구조-구성주의적 해석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그러나 피아제의 세마 이론은 오직 논리-수학적 구조만을 중시한 나머지, 세마 형성에 있어서 기호학적 체계와 문화적 체계의 기여를 평가절하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In this article, I try to synthesize, from the kinematical perspective of Helmholtz-Piaget, the logical approach of Hintikka and the phenomenological of Parsons about the interpretation of the role of intuition in Kant's theory of geometry, analyzing critically Kant's and Piaget's concept of schema. To do this, I try to elucidate that there was in Kant's theory of geometry the clue of the kinematical perspective which was the foundation of the Group theory of Helmholtz-Piaget. I especially pay attention to these facts. If the intuition designates the cognitive faculty of mind, it should have its content which we call schema. The schema is not the given one completed from the beginning, but the one constructed through various operations. It implies that the intuition is not the cognitive faculty completed from the outset, but the gradually developed one. It is in this sense that the faculty connecting the sensible with the conception, whether we call it the transcendental synthesis of imagination or simply the intuition, should have been gradually developed. Through touching, eating and taking a apple in the bowl, we have an intuition or understand the conception of the sphere. If we could not move our body forward-backward, left-right and up-down, how could we have the intuition of the three dimension of space. It is in this sense that Piaget's structure-constructivism should replace Kant's apriorism. The former has, however, the limit that it underestimates the role of semiotic and cultural systems in forming the schema, because of emphasizing the logical-mathematical structure in its gene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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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칸트의 제3 경험의 유추가 지닌 의의와 한계

저자 : 백승환 ( Baek Seunghwan )

발행기관 :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간행물 : 철학연구 62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95-234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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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칸트가 _순수이성비판_에서 <제3 경험의 유추>(A211-218 / B256-265)라는 이름 아래 펼친 논증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후에 그러한 논증이 보이는 의의와 한계를 함께 짚어내는 것을 목표한다. 이를 위해, 첫째, 제3 경험의 유추의 가장 핵심이 되는 논증을 추려 단계별로 구조화해 나타낸다. 둘째, 그렇게 제시된 논증은 빈 공간의 실질적 배제를 결코 보이지 못하기 때문에 제3 경험의 유추가 꾀하는 상호성 도식의 현상에의 적용 가능성을 세우는 작업에는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음이 지적될 것이다. 셋째, 이러한 문제가 칸트의 경험 구성 기획에 끼치는 체계 내적 영향을 살피는 가운데 필자는 제3 경험의 유추가 앞선 제1 경험의 유추와 제2 경험의 유추에 관계되는 방식을 드러내며 논의를 마무리할 것이다. 필자가 지금껏 수행한 작업이 틀리지 않다면, 칸트의 경험 구성 기획은 제3 경험의 유추의 논의를 제대로 끝맺는 데 성패가 달렸음이 분명해질 것이다.


This paper aims to critically examine Kant's argument in the Third Analogy of Experience from the Critique of Pure Reason and then to assess its significance and limits. For this aim, firstly, I reconstruct Kant's argument in a progressive step-by-step manner. Secondly, it will be argued that because the argument so presented is powerless to establish what I call the nonempty space thesis, the Third Analogy of Experience cannot ground the applicability of the schema of community to appearances. Thirdly, I wish to close this paper by evaluating how then the project of constituting experience proceeds in the face of it and how the Third Analogy of Experience relates to the first two Analogies of Experience. If what I have discussed so far is correct, it turns out that the success of the constitution of experience indeed depends on bringing Kant's argument in the Third Analogy of Experience to comple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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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칸트 철학에서 최고선 촉진의 의무에 대한 고찰

저자 : 조성엽 ( Jo Sung-yeop )

발행기관 :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간행물 : 철학연구 62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35-272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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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칸트 철학에서 최고선 촉진의 의무에 대한 하나의 대안적 이해를 제시하는 것이다. 최고선 개념이 가진 다양한 의미로 말미암아 과연 칸트의 철학체계 내에서 최고선 촉진의 의무가 정당한 윤리적 의무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인간에게 부과하는 의무의 내용은 무엇인지 등이 이제껏 논의의 대상이 되어 왔다. 첫째로 본 연구는 최고선 촉진의 의무가 윤리적 의무의 형식적 조건을 충족하며, 따라서 칸트 철학의 체계적 완결성을 해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둘째로는 칸트가 제1비판서에서 최고선 촉진의 의무의 규범적 지위를 주장할 때 이미 합목적성 및 반성적 판단력의 개념에 의존하고 있으며, 따라서 칸트 윤리학의 틀만으로는 최고선 촉진의 의무의 의미를 온전히 새기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In this research, I attempt to suggest an alternative interpretation to settle the issue related with “the duty to promote the highest good” in Kantian philosophy. Due to the diversity of definitions of the highest good, there have been discussions about its status in Kantian Ethics, such as if it can be accepted as a proper duty in Kant's system and what it exactly obliges to human being. Firstly, herein I would argue the duty to promote the highest good satisfies formal conditions of moral duty, hence it does not undermine the integrity of Kantian philosophy. Secondly, I would argue that Kant relies on the concept of purposiveness and reflective judgment when he demonstrates its normative status already in the first Critique, thus its meaning cannot be fully comprehended within the bare framework of ethical form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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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삶의 공동체와 문화 공동체와 도덕 공동체인 사랑의 공동체 -후설의 도덕 철학에서

저자 : 조관성 ( Cho Kwansung )

발행기관 :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간행물 : 철학연구 62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73-326 (5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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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공동체이며 문화 공동체이며 도덕 공동체인 사랑의 공동체를 주제화하는 후설의 도덕 철학적 사유는, 사회 철학과 윤리학과 도덕 교육학을 그리고 철학적 신론이나 (계시 신학적 세계관과 구별되는) 이성 신학적 세계관 등을 포괄한다. 후설은 삶의 공동체와 문화 공동체와 도덕 공동체 등으로 나타나는 사회적 공동체 삶의 진정으로 좋은 모습을 또는 가장 바람직한 형태를 자기 반성하는 개체 자아의 존재론에 기초하며 자유 의지와 자율성의 주체로서 삶과 행위를 수행하는 개체 자아에서 출발하는 사회적 공동체에서 구한다. 이 점에서 후설은 전체주의에 정면으로 반대하며 자유 민주주의의 삶의 양식을 관통하는 개인주의에 뿌리를 두는 공동체주의를 옹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후설이 도덕 철학적 사유를 통하여 가장 바람직하며 진정으로 좋은 최고의 도덕 공동체로 주제화하는 사랑의 공동체는, 한편으로 가치 심리주의로서의 가치 주관주의를 거부하면서 가치 객관주의로서의 가치 실재주의를 그리고 이성이 배인 감정의 바른 사용과 지성이 스민 의지의 바른 사용을 곧 실천 이성의 바른 사용을 전제하며 주장하는 가치 감정의 윤리학과 자연법 윤리학 모형과 덕 윤리학 모형 안에서 다른 한편으로 칸트가 내세우는 이성주의 윤리학과 교육학과 도덕 교육학 모형 안에서 움직인다고 글쓴이는 본다. 더 나아가 사랑의 공동체에 관계하는 후설의 도덕 철학적 사유는, 흄이 대표하는 감정주의 윤리학과 칸트가 대변하는 이성주의 윤리학을 넘어서면서 이 두 가지 모형의 윤리학을 변증법적으로 종합하는 가치 감정의 윤리학의 길을 감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윤리학 모형들 가운데 특히 칸트가 보여주는 이성주의 윤리학 모형으로 기울고 있다고 해석될 수 있다.
후설은 사랑의 공동체를 주제 삼으면서 ①개체 자아가 사회화와 문명화로 그리고 문화화와 도덕화로 향하는 잠재적 이성의 소질들을 선천적으로 소유하며 ②개체 자아는 넓은 의미의 교학상장의 과정이 그 속에서 연속적으로 일어나며 이미 그 속에 문명 내용과 문화 내용을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관습과 전통으로 담고 있는 삶의 공동체 속에서 후천적 교육과 노력을 통하여 잠재적 이성의 소질들을 계발하고 완성할 수 있으며 실현해야 한다고 매우 함축적으로 내세운다. 이에 따라서 글쓴이는 본능과 이성의 융합체인 개체 자아의 타고난 잠재적 소질과 성향과 능력에 그리고 이것들의 계발과 완성과 실현에 관한 한 후설이 약한 선천주의의 길과 약한 경험주의의 길을 동시에 가고 있음을 주장한다.
후설은 철학적 신론과 이성 신학적 세계관을 품고 있는 목적론적 세계관의 관점에 서서 사랑의 공동체를 도덕 철학적 사유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하나의 보편적 삶의 세계 안에 자리하는 사랑의 공동체를 개체자아가 현실 세계에서 지향하면서 실현하고자 희망할 수 있는 최상의 삶의 공동체와 문화 공동체로 그리고 최고 형태의 도덕적 인류 공동체나 도덕적 세계 공동체로 밝혀낸다. 칸트가 설정하며 주장하는바 형이상학적 초감각계인 예지계에 속하는 목적의 왕국과 다르게 후설이 뜻하는 사랑의 공동체는 현실 세계 밖에 존재하지 않음을 글쓴이는 주장한다. 우리는 현실 세계 안에 구체적으로 존재하며 세계 평화 공동체의 유사체로 볼 수 있는 하나의 도덕적 세계 공동체인 사랑의 공동체의 점진적 연속적 발전과 진보에 착안하여 사랑의 공동체의 미완결성을 가리키는 불완전한 현재형에 관하여 뿐만 아니라 최고의 완결성을 함의하는 완전한 미래형에 관하여 말할 수 있으며 하나의 사랑의 공동체나 하나의 평화 공동체의 이 두 가지 형태를 주제화할 수 있다.
하나의 현실 세계 안에 자리하는 평화 공동체나 (이것의 유사체인) 사랑의 공동체의 현재형과 미래형에 주시할 때, 한편으로 현재 세계 안에서 미완성 형태로 존재하며 다른 한편으로 삶의 미래 지평 속에서 바로 눈앞의 이 세계 안에서 완전성을 갖추어 존재할 평화 공동체나 사랑의 공동체의 미래형은 우리가 올려 볼 수 있는 신의 이념을 가리킨다. 이 신의 이념은 특히 도덕화를 충분히 성취하지 못한 현대의 국가시민들과 세계 시민들에게 개체 자아의 내면성 속에 자리하는바 (천사의 소질이나 신을 닮을 수 있는 소질로 특징지어지는) 선으로 향하는 잠재적 이성의 소질로 시선을 내려서 이 선의 소질을 자기 반성 속에서 되돌아보며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것을 요구한다. 개체 자아는 자기의 내적 의식의 삶 속에 살아 있는 이 천사의 소질이나 신의 속성에 대한 자기 성찰에서 시작하여 이성이 배인 감정과 지성이 스민 의지의 바른 사용에 따르는 곧 마음을 곱고 바르게 쓰는 실천적 삶과 행위를 실행하면서 신의 이념으로 여겨지는 하나의 보편적인 도덕적 세계 공동체인 사랑의 공동체나 평화 공동체의 실현을 동경하며 염원하고 희망할 수 있다.


Diese Abhandlung geht von der uns anschaulich vorgegebenen konkreten Lebenswelt aus. Thematisch kreist sie um die in dieser Lebenswelt durch Habitualisierungen zu stiftenden und verwirklichenden und in einem hermeneutischen Zirkel verbundenen Gemeinschaftslebensformen. Methodisch geht diese Studie, die keine Dekonstuktion, sondern eine Konstruktion der zu behandelnden Thematik beabsichtigt, nicht logisch argumentierend, sondern phänomenologisch auslegend vor. Sie versucht anhand der Werke Husserls die der alltäglichen Lebenswelt entsprechende Lebensgemeinschaft als Kulturgemeinschaft und als Ethische Gemeinschaft bzw. als die von Husserl gemeinte und angestrebte Liebesgemeinschaft aufzuweisen, die im weitesten Sinne als Ethische Weltgemeinschaft auffassen und in Analogie zu der von mir angeführten Friedensgemeinschaft begreifen lässt. Sachgemäss führt diese Zugangs- und Bahandlungsmethode dazu, die Liebesgemeinschaft als den oben angegebenen Titel zu erweisen und zu charakterisieren. Mit Blick auf die Liebesgemeinschaft zielt dieser Aufsatz darauf ab, die vielfältigen moralphilosophischen Implikationen herauszuarbeiten, die sich im weitesten Umfang nicht nur auf Ethik und Pädagogik sondern auch auf Sozialphilosophie und -ontologie sowie auf philosophische Gotteslehre bzw. die am praktischen vernünftigen Glauben orientierte Vernunfttheologie thematisch beziehen. In diesem Artikel werden vor allem folgende Hauptthesen gegebenenfalls explizite oder implizite vertreten: ①Die Person als wertende und handelnde Funktionseinheit von Instinkt und Vernunft ist mit Vernunftanlagen begabt. ②Aufgrund dieser Begabung für die von fremder und eigener Vernunft motivierte habitualisierende Erziehung und Bildung im umfangreichsten Sinne, die auf die volle ganzheitliche Person hinzielt, sollten die individuellen Personen, auf die Lebensgemeinschaft sozialontologisch fundiert ist, in ihrem Gemeinschaftsleben sozialisiert, zivilisiert und kultiviert sowie moralisiert werden ③Die Vernunftanlagen sind anzusehen als Grundboden für die zivilisierte und kultivierte ethische Lebensform bzw. die Kulturgemeinschaft und Ethische Gemeinschaft. ④ Husserls moralphilosophisches Nachdenken über Liebesgemeinschaft, die als lebensweltlicher Bereich des konkreten Apriori betrachtet wird, ist einerseits an der z.B. von Aristoteles und Aquinas stammenden Naturrechtsethik und Tugendethik andererseits an der von Kant begründeten Ethik und Pädagogik (d.h. Moralpädagogik) orientiert. ⑤Die besonders mit Naturrechtsethik und Tugendethik verschmolzene Wertgefühlsethik Husserls setzt den Wertrealismus als Wertobjektivismus voraus, der sich vom Wertpsychologismus als Wertsubjektivismus unterscheiden lässt. ⑥Husserls Wertgefühlsethik, die in sich Wertlehre und Praktik hat, und die als eine dialektische Synthesis von Verstandesethik Kants und Gefühlsethk Humes gilt und für eine universale ethische Weltgemeinschaft bzw. Menschheitsgemeinschaft einsteht, fordert uns auf, im Gemeinschaftsleben dem richtigen mit Vernunft durchfärbten Fühlen und dem richtigen mit Intellekt durchtränkten Wollen (d.h. der richtigen praktischen Vernunft im formalen und materialen Sinne) zu folgen. ⑦Mit Bezug auf die Liebesgemeinschaft und Friedensgemeinschaft, die nicht in einem von Kank konzipierten extramundanen metaphysischen Reich, sondern in einer wirklichen Lebenswelt existieren, können wir von ihrer gegenwärtigen Form und ihrer zukünftigen Form reden. ⑧Die höchste und beste Form der Liebesgemeinschaft und der mit dieser in Analogie stehenden Friedensgemeinschaft, die zusammen als eine universale interkulturelle ethische Menschheitsgemeinschaft ausdeuten lassen könnten, deutet auf Gottesidee hin. ⑨Wenn diese Gottesidee thematisiert wird, sollten wir nicht nach oben auf das Himmelreich bzw. Gottesreich emporblicken, sondern nach unten auf unser inneres Bewusstseinsleben bzw. Seelenleben und die diesem Inneren innewohnenden potentiellen Vernunftanlagen besonders zum moralischen Guten reflexiv zurückblicken. ⑩Dies ermöglicht uns, ein neu gewecktes Leben zu führen, d.h. im Lebens- und Wirkungshorizont für Individual- und Sozialethik sowie universale Menschheitsethik auf richtiges Fühlen und richtiges Wollen bedacht zu leben und die in der wirklichen Lebensgemeinschaft zu realisierende Liebesgemeinschaft und Friedensgemeinschaft zu erhoffen.

KCI등재

10쇼펜하우어의 충분근거율에 대한 고찰

저자 : 이서규 ( Lee Seu-kyou )

발행기관 :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간행물 : 철학연구 62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327-359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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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는 세계를 표상(Vorstellung)으로서 파악한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이처럼 세계를 표상으로서 파악하는 것은 데카르트의 코기토철학과 버클리의 관념론 그리고 칸트의 선험철학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쇼펜하우어는 충분근거율이 인식주관으로 하여금 표상들을 결합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여기에서 충분근거율은 표상세계를 구성하는 원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쇼펜하우어는 전통철학이 충분근거율의 역할과 적용범위를 왜곡시키면서, 특히 인식근거와 원인을 혼동하면서 세계에 대한 왜곡된 해석을 야기한다고 비판한다. 쇼펜하우어는 _충분근거율의 네 가지 뿌리에 대하여_에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스피노자, 칸트에서 나타난 충분근거율의 형태를 분석하면서 충분근거율의 기원과 역할 그리고 한계를 명확하게 제시한다. 쇼펜하우어는 충분근거율의 역할에 대한 오해가 외부세계의 실재성에 대한 관념론(유심론)과 유물론(실재론) 사이의 논쟁을 야기한다고 본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충분근거율의 사용은 주관과 객관을 이미 전제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관념론은 주관에서 출발해서 객관을 제약하고 유물론은 객관에서 출발해서 주관의 존재를 설명하려고 한다. 여기에서 쇼펜하우어는 주관과 객관 사이에는 결코 충분근거율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렇게 충분근거율의 사용범위를 표상세계로 제한하는 쇼펜하우어의 입장은 표상세계의 실재성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게 한다. 또한 이러한 충분근거율의 제한적인 사용에 대한 논의는 표상세계 너머 의지의 세계를 강조하는 쇼펜하우어의 의지형이상학의 정초를 어렵게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쇼펜하우어의 의지형이상학은 지성이 두뇌의 산물이라는 점을 강조하지만, 이때 충분근거율은 두뇌와 지성 사이의 관계에 적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논문에서는 쇼펜하우어가 전통철학에서 논의된 충분근거율을 어떻게 비판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고, 이를 바탕으로 쇼펜하우어가 충분근거율의 기원과 역할을 어떻게 설명하는지를 고찰하도록 한다. 다음으로는 외부세계의 실재성과 관련된 관념론과 유물론의 주장을 쇼펜하우어가 비판하는 이유와 여기에서 생겨나는 문제점을 살펴보도록 하고 소위 두뇌-역설(Gehirn-Paradox)을 통해서 드러나는 쇼펜하우어철학의 문제점을 무엇인지를 고찰하도록 한다.


Schopenhauer sees the world as a representation, which can be seen in Descartes's Cogito-philosophy, Berkeley's idealism and Kant's transcendental philosophy. But Schopenhauer, unlike these, stresses that the representational world is an objectivation of will. This means that the representational world is a secondary world and that the subjective world has grasped through the principle of sufficient reason. According to Schopenhauer, the general form of the principle of sufficient reason is “Nothing exists without a reason why it exists.” Schopenhauer emphasizes that such a sufficient basis for rationalization is to combine representations. The principle of sufficient reason is a principle that constitutes the representational world, but the traditional philosophy provides a distorted interpretation of the world, overlooking the role and scope of such a principle of sufficient reason, in particular confusing cognitive evidence and causes. Schopenhauer examines the forms of the principle of sufficient reason in Plato, Aristotle, Descartes, Spinoza, and Kant, suggesting the origin, role, and limitations of the evidence.
According to Schopenhauer, the argument between the idealism and materialism about the reality of the outside world is meaningless when considering the role of the principle of sufficient reason. The use of the principle of sufficient reason already presupposes subjectivity and objectivity, since ideology constrains objectivity from subjectivity and materialism attempts to explain the existence of subjectivity from objectivity. Schopenhauer emphasizes that there is never the principle of sufficient reason rate between subjectivity and objectivity. However, Schopenhauer's discussion of the principle of sufficient reason undermines the foundation of his metaphysics of will. The so-called Zeller-paradox demonstrates this well. Schopenhauer's metaphysics of metaphysics claims that Understanding is the product of the brain, but since the causal relationship between the brain and the Understanding is due to a Understanding effect, the claim that Understanding is a product of the brain seems contradictory.
In this paper, we first look at how to understand the principle of sufficient reason in traditional philosophy, and then examine the origin and role of the principle of sufficient reason suggested by Schopenhauer. Next, let's look at the reason for Schopenhauer's criticism of ideology and materialism in the debate about the reality of the outside world and the problems revealed by the so-called Zeller-Paradox in relation to the limitation of the principle of sufficient reason. To discuss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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