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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TASAN Studies

  • : 다산학술문화재단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철학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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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반년간
  • : 1598-8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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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2000)~37권0호(2020) |수록논문 수 : 303
다산학
37권0호(2020년 1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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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역학서언易學緖言』의 성서成書 과정 연구 ― 가장본家藏本을 중심으로

저자 : 황병기 ( Hwang Byong-kee )

발행기관 : 다산학술문화재단 간행물 : 다산학 3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7-55 (4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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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본 연구는 새롭게 연구 자료로 제공된 가장본 『역학서언』을 중심으로 현재까지의 판본 및 필사본들을 비교하여, 제작의 선후와 필사의 경위 및 정고본의 여부 등을 판단하기 위해 작성된 글이다.
『역학서언』(1822)은 총 4책 12권 21편으로 최종 완성된 책으로, 1차적으로 『주역사전』 무진본(1808)의 성서 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12권 체재로 완성되었는데, 당시의 편목은 현재의 책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고, 적어도 4편은 1820년과 1821년에 추가로 저술된 것으로 추정된다.
가장본의 성서 시기와 그 가치 및 위상에 대해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본은 규장본과 필사의 형식과 판형의 행수, 자수 등에 있어 완전 동일하다. 문자의 출입과 행의 누락 등은 필사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니, 이런 차이를 제외하면 형식면에서는 완전히 같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츠쿠바대본과 버클리본과도 동일하다.
그러나 규장본은 가장본과 필사의 규모와 형식이 동일하고, 대부분 가장본의 교정 지시가 반영된 상태로 필사되어 있지만, 가장본의 교정지시가 반영되지 않은 것이 있다. 게다가 가장본은 주필朱筆로 정약용이 직접 교정한 내용들이 있다.
반면에 가장본에서 교정 지시된 문자들은 그대로 신조본에 반영되어 있다. 신조본은 가장본의 삭제 지시된 문자들이 사라지고, 두주에 부기된 문자와 여백에 부기된 문자 등도 가장본의 교정대로 수정되어 있다.
종합하자면, 가장본의 교정 사항이 일차 반영된 규장본이 동시에 존재하였으나 다른 경로로 유전되었고, 가장본에는 추가적인 교정이 가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가장본은 분명 현재 확인할 수 있는 여러 다른 본들에 선행하는 본으로서, 정약용의 직접 교정 또는 그의 지시에 의한 교정의 자취를 확인할 수 있는 본이다. 교정 이전의 가장본은 현재로서는 가장 이른 시기의 필사본이며, 교정 표시와 교정 문자가 있는 상태로도 현재로서는 가장 이른 시기의 본이라고 하겠다.


This paper was written to determine the predecessor of the manu- script, the history of transcription, and the existence of the original or finalized text by comparing the versions unearthed so far, focusing on the newly provided manuscript of Yeokhak Seo-eon in Collections handed down at home.
Yeokhak Seoeon (易學緖言, Collection of Critical Essays on Yi Studies, 1822) is a total of 21 books in 12 volumes. It was primarily completed in 12 volumes at the same time as the publication period of Juyeok Sajeon(周易四箋, Four Methods of Exposition on the Zhouyi, 1808). There seems to be a slight difference from the current book, and it is estimated that at least four books were added in 1820 and 1821.
The manuscript period of Yeokhak Seoeon in Collections handed down at home and its value and status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That one before proofreading is completely the same in the form of manuscript of Gyujanggak's collection and transcription, the number of rows in a page and the number of alphabets in a row. The entry and exit of characters and the omission of lines are common phenomena that appear in the process of transcription, so they can be said to be completely the same book except for these differences. This is the same as the collected manuscript in Zhukuba University and the collected manuscript in Berkeley University. In addition, there are contents directly edited by Jeong Yak-yong in Collections handed down at home as red color(朱筆).
The manuscript of Gyujanggak's collection is edited with the same size and format as that one in manuscripts handed down at home, and most of it reflects correction instructions of manuscripts handed down at home, but there are some that did not reflect them. On the other hand, the letters indicated for its correction are reflected in the book in print of Shinjoseonsa as they are. In the text in print of Shinjoseonsa, the characters instructed to be deleted by its correction have disappeared, and the characters added in the head notes and the characters added in the row blank have been revised according to its correction.
To sum up, it is presumed that the Gyujanggak's manuscript text in which that its corrections were first reflected existed at the same time, but it was inherited through a different path, and additional corrections were applied to the manuscript handed down at home. It is clearly a book that precedes several other versions that are currently available, and is a book that can confirm the traces of Jeong Yak-yong's direct proofreading or his instructions. That before proofreading is currently the earliest version of the manuscript, and even with proofreading marks and proofreading letters, it can be said to be the earliest version of the manu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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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가장본家藏本 『경세유표經世遺表』의 서지적 검토(1) ― 책제冊題 변화 전후의 집필 과정을 중심으로

저자 : 윤석호 ( Yoon Suk-ho )

발행기관 : 다산학술문화재단 간행물 : 다산학 3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57-119 (6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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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목적은 가장본 『經世遺表』에 대한 서지적 분석과, 이로써 확인되는 사실을 기초로 한 『경세유표』 성립 과정의 해명에 있다. 본문에서 밝힌 주요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먼저 가장본의 규모와 구성이다. 총 15책 44권인데, 그 중 제1책(제1권~제3권)과 제6책(제15권~17권) 전체, 그리고 제8책의 22권 결락되어 있다.
가장본 표지의 오른편에는 책제가 표기되어 있다. 13개의 책의 표지를 사진으로 확인한 바, 3가지의 형태가 있다. ① '邦禮艸本'과 '經世遺表'가 함께 쓰인 경우는 7개 책(제2책, 제3책, 제5책, 제7책~제10책), ② '經世遺表'만 쓰인 경우는 5개 책(제4책, 제12책~제15책), ③ 별도의 책제 없이 부속된 권들의 권제卷題만 쓰인 경우는 제9책이 해당된다.
다음으로 가장본 권수제의 표기방식이다. 가장본 37개 권의 권수제를 사진으로 확인한 바, 두 가지의 형태가 있다. Ⓐ 28개 권의 권수제에는 '經世遺表'라고 쓰인 덧지가 접지되어 있고, Ⓑ 나머지 9개 권에는 본지 위에 '經世遺表'라고 쓰여 있다. 이와 관련하여, 가장본 서근에는 '邦艸'라고 표기되어 있는 바, 가장본의 처음 서명은 '邦禮艸本'임이 재차 확인되었다. 이로써 볼 때, 가장본은 '邦禮艸本' 하에서 집필이 시작되었고, 이후의 어느 시점에 책제가 '經世遺表'로 변화되었다. 그리고 이상의 서지적 사실들과, 본고에서는 미처 소개하지 못한 본문 전체에서의 수정 및 접지 양상들에 근거할 때, 가장본 『經世遺表』는 다산의 수고본임이 확실하다.
위의 사실을 바탕으로 책별 집필시기를 비정해보자. ①에 해당하는 책들의 경우 부속된 총 21개의 권 모두에서는 권수제가 Ⓐ의 방식으로 표기되었다. 따라서 이들은 '邦禮艸本'이라는 책명이 유효하던 시점에서, 그리고 『邦禮艸本』의 체재 하에서 집필 및 성서되었다. ②에 해당하는 책들의 경우, 부속된 권의 권수제(=책제) 표기방식에는 Ⓐ의 사례 4종과, Ⓑ의 사례 9종이 확인된다. 전자는 '邦禮艸本' 단계에서 최초 집필되었다가 이후 '經世遺表' 단계에서 성서된 책으로 편입되었을 것이 확실하다. 한편 후자는 대체로 '經世遺表' 단계에서 최초 집필되어 '經世遺表' 단계에서 성서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③에 해당하는 제9책은 「田制別考一」~「田制別考三」에 해당하는데, 애초 『田制別考』라는 독립된 저서로 만들어졌다가, 이것이 '經世遺表' 단계의 어느 시점에 『經世遺表』로 편입되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한편 「田制別考」와 체재 및 내용이 매우 유사한 것으로 실학박물관 소장 『量田議』가 있는데, 이는 「田制別考」를 저본으로 하여 쓰인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저자 표기방식과 여타 필사본과의 관계이다. 가장본 『經世遺表』의 저자는 '負累臣 丁鏞 撰'으로 표기되었는데, 이는 여타의 다산 저작들에 비추어 이례적이다. 그리고 가장본이 다산 수고본인 바, 이와 같은 표기방식은 일러도 1822년까지는 유지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負累臣 丁鏞 撰'라는 저자 표기방식을 따르고 있는 필사본은 가장본 혹은 이것을 저본으로 필사한 판본을 저본으로 하여 필사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저자 표기방식이 다른 교토대본(1)은 이와 같은 다산의 의도가 유효하지 않은 시기, 혹은 그것을 수용하지 않은 누군가에 의해 생산된 필사본으로 추정된다.
이상의 논증을 통해 『邦禮艸本』은 실재했으며, 해배 이전 이미 상당한 분량이 집필되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다만 본고의 분석대상 외에도, 가장본 『經世遺表』에는 권차, 본문 등에 다수의 수정 및 접지 사례가 있다. 이와 같은 정보들에 대한 사실적 함의를 타당하게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여타 판본과의 폭넓고 치밀한 대조, 아울러 『經世遺表』의 내용에 대한 질적 분석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추후의 과제로 남기며, 관심과 조예가 있는 분들의 많은 질정을 거듭 부탁드린다.


The purposes of this paper are to analyze the bibliographic features of the family collection's manuscript of Gyeongse yupyo(經世遺表), and to explain the process of establishing Gyeongse yupyo(經世遺表) based on the facts identified herein. The main conclusions are as follows.
After checking the cover of thirteen books in photos, there are three ways of writing the title of the book: ① seven cases in which '經世遺表' and '邦禮艸本' are written together, ② five cases in which only '經世遺表' is written, ③ one case without book title.
Next, checking the volume primary title(卷首題) of thirty-seven volumes in photos, there are two ways of writing: Ⓐ twenty-eight cases in which a paper piece written '經世遺表' is attached on original paper, Ⓑ nine cases in which '經世遺表' is written on original paper. Also on the bottom of the book '邦艸' is written as the book title.
In view of the above facts, Gyeongse yupyo(經世遺表) was originally written under the title '邦禮艸本', and at some point afterwards the title of the book was changed to '經世遺表'. Also, since these modifications appear throughout the book, the family collection's manuscript of Gyeongse yupyo(經世遺表) is sure to be a manuscript owned and modified by Jeong Yak-yong(丁若鏞).
Based on the facts above, let's distinguish the timing of writing each volume and tieing each book. In case of ①, all volumes' volume primary title(卷首題) are written in Ⓐ's way. Therefore, these volumes were first written under the name of '邦禮艸本', and these books were also bound under the structure of Bangryechobon(邦禮草本).
Meanwhile, In case of ②, volume primary title(卷首題) are written in Ⓐ's and Ⓑ's way. It is certain that the former were first written under the name of '邦禮艸本' and annexed to Gyeongse yupyo(經世遺表) at some point after the title was changed to '經世遺表', and that the latter were first written under the name of '經世遺表' and bound under the structure of Gyeongse yupyo(經世遺表).
The case of ③ is the ninth book which is a series of Jeonjebyeolgo(田制別考). It is presumed to be written in an independent book and at some point afterwards annexed to Gyeongse yupyo(經世遺表). In addition, Yangjeoui(量田議) in the possession of the Silhak Museum is very similar to Jeonjebyeolgo(田制別考) in its framework and content. After checking various bibliographic information, it is certain that Yangjeoui (量田議) was written based on Jeonjebyeolgo(田制別考).
Finally, the author's notation, and the relationship with other manuscripts. The author is marked '負累臣 丁鏞 撰', which is very unusual notation compared with other manuscripts'. It is assumed that this style of notation would have been maintained until at least 1822, and that manuscripts in which the author's notation are written in different ways were transcribed at a time when Tasan's intention contained in the phrase '負累臣' were not valid, or by someone who did not accept that.
The above argument confirmed that Bangryechobon(邦禮草本) was a real book, and that a considerable amount was written before Tasan's releasing from exile. However, though this paper haven't dealt with, there are many cases of modifying manuscript by attaching paper-piece(洗補) in body text of the Family Collection's Manuscript of Gyeongse yupyo(經世遺表). In order to properly derive the realistic implications of these, a wide and detailed comparison with other versions and a qualitative analysis of the contents of Gyeongse yupyo(經世遺表) should be proceeded together. Leave these as a future assignment, and now I ask for a lot of teaching from those who have interest and knowl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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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동수경大東水經』의 이본과 서지적 성격 연구

저자 : 노경희 ( Rho Kyung Hee )

발행기관 : 다산학술문화재단 간행물 : 다산학 3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21-147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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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다산 정약용의 저술 『대동수경』의 이본들을 검토하고, 그 유전流傳 현황과 서지적 성격을 고찰한 것이다. 『대동수경』은 『아방강역고』와 함께 다산의 대표적인 지리서이다. 이제까지 알려진 『대동수경』의 이본으로는 필사본 자료 규장각 소장본과 단국대 소장본 2종, 일제강점기에 출판된 신식활자본 여유당전서본까지 이렇게 총3종이 있었다. 이번에 새로 공개된 가장본(필사본) 2종을 더해 모두 5종의 이본들을 대상으로 그 서지적 성격을 검토하고 이를 통해 저술의 선후 관계와 유전流傳 현황을 고찰하였다. 본문에서는 1) '조선수경'과 '대동수경'의 제명, 2) 이본의 종류 및 권차, 3) 이본들의 선후와 계열, 4) 주석자 이청의 역할 등에 대해 정리하였다.


This paper reviews the various editions of Daedong sugyeong, written by Tasan Jeong Yak-yong, and examines its transmission and its bibliographical character. Daedong sugyeong , along with Abang gangyeokko , is a representative geography book of Tasan. There were three versions of Daedong sugyeong known so far: the two manuscript versions of Kyujangkak edition and Dankook University edition, and one print version of Yeoyudangjeonseo edition. Two new manuscripts from the family's collection were released this time. In this paper, I examine the bibliographical characters of all 5 types of editions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predecessors of the editing and the status of transmission. There are the matters of 1) the titles, 'Choseon sugyeong ' or 'Daedong sugyeong', 2) the types and volumes, 3) the precedence and sequence of each text, and 4) the role of commentator Yi Ch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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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한역 서학 신학서의 신정론神正論 수용과 정약용의 인격적 천관

저자 : 이숙희 ( Lee Sug-hee )

발행기관 : 다산학술문화재단 간행물 : 다산학 3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51-189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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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조선 유학 지식인들 중 일부가 한문 서학서를 읽은 후 천주를 신앙하게 되었고 자발적으로 집회를 만들어 민중에게 전교했다. 본 논문은 정약용의 텍스트에서 그 단서가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정약용은 한 때 천주를 신앙했기 때문에 그의 경전 해석에는 서교의 영향이 남아 있다. 정약용은 선한 이가 겪는 고통에 관심이 깊었다. 그의 개인적 서사에서 비롯되었을지 모르는 이 관심은 그의 경전 해석에서도 볼 수 있었다. 선한 이가 고통 받고 악한 이가 영화를 누리는 경우가 있다. 이같은 삶의 모순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보편적 경험이다. 유학의 상선벌악으로는 이 모순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반면 한문 서학서에는 신정론神正論으로 이 모순을 설명한다. 현세에서 실현되지 않은 선인과 악인에 대한 정의로운 판결은 내세에서 실현되며, 그래서 천주의 심판이 있다고 선교사들은 말했다. 서교의 교리를 유학에 접목했다. 정약용은 하늘은 영명하기에 사람의 행동과 생각에 있는 선악을 다 살펴 보고, 관여한다고 해석했다. 그의 영명주재천을 신정론의 맥락에서 본다면 그 의미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정약용의 인격적 천관의 의미를 확장해서 보면, 동시대 유학자들과 민중이 한문 교리서를 읽고 회심을 하게 된 일련의 과정에서 신정론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을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18th-centuries some of Korean Confucian intellectuals had read the Chinese Christian Texts, then began to worship Deus(God) and voluntarily formed ecclesia, trying to missionize to the people. This paper aims to quest for that reason why they would have ones faith or religion. I searched for a reason in Tasan Jeong Yak-yong's texts, because he had worshiped God when he was younger, so his interpretation of the Confucian scriptures had been remain a view point of Christianity.
Jeong Yak-yong was deeply interested in the Righteous sufferer. The good person suffers in his life, while the bad one enjoys. This is a tragic irony in human's life. This irony is general experience. In Confucian texts could not fully analyze this irony. By comparison, the theodicy in Chinese Christian Texts to explain this seriously.
Jeong Yak-yong interpreted 償善伐惡 in Confucianism with theodicy. He interpreted that Heaven was a wise Being, actively engage to all the good and bad deeds of human and the good and bad thoughts in one's mind and heart. His interpretation of Personal Heaven as a wise Being, and if we look at the reason in the context of theodicy, we can better understand its mea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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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茶山丁若鏞的《大學》解釋特徵研究

저자 : 张悦 ( Zhang Yue )

발행기관 : 다산학술문화재단 간행물 : 다산학 3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91-215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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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一書以“修己”和“治人”作為中心概念, 闡述了儒家的基本思想內涵, 具有充當儒學者“治心修養之書”以及帝王尋求政治哲學理念的“政治之書”的雙重作用。
朱熹所構建的《大學》體系以及他的《大學》解釋雖然也是始於儒家思想的宗旨—修己治人, 但卻側重於心性修養的修己工夫, 把關注的核心問題集中於個人的“修身”上, 將治人歸結為“無為之治”。 但在當時的朝鮮, 在政治理念上占主導地位的朱子學空談心性的弊端日漸凸顯, 茶山作為當時實學的集大成者具有強烈社會危機意識, 他排斥朱子性理學強調思辨和觀念的解釋, 立足于自身試圖向洙泗學複歸的觀點, 廣泛地吸收漢代、唐代的注疏以及清代重視考證學的經學注釋, 從經世學的需求和立場解釋《大學》, 提出了獨具創意性的《大學》解釋觀點, 試圖由此探索“經世致用”的治國方案。 也就是說, 由於所處社會背景和需求的不同, 兩者分別側重了《大學》雙重功能中的不同方面。 即朱子更突顯了《大學》作為“治心之書”的作用, 而茶山則更突顯了《大學》作為“政治之書”的作用。
在《大學》的解釋過程中, 茶山提出了自身的政治哲學, 直觀地體現在他所構建的《大學》觀理路和所提出的治國平天下的實踐路徑中, 進而言之, 主要集中體現在如何處理為政者與百姓的關係, 如何對兩者進行配置的問題上。 為了解決這一問題, 茶山試圖回歸傳統儒學中的核心觀點—“恕”和“絜矩之道”中尋求答案, 主張通過修德, 即道德教化可以實現齊家、治國、平天下, 而要實現這一目標, 首先需要為政者從社會的基本構成單位—家庭出發, 由家庭中的孝悌慈等倫理關係推而廣至君臣上下等政治關係。 茶山《大學》解釋中的這種政治哲學既繼承了儒家傳統中的德治理念, 同時又突破了傳統的觀點, 既強調為政者的的主體能動性和積極性, 同時還追求通過為政者的政治行為影響感化百姓, 激發百姓本身的倫理實踐積極性, 從而經過共同的努力實現國治、天下平的願望。 凸顯出了茶山學說同時具有倫理性和現實性的鮮明特徵, 是一種實踐倫理學說。


Daxue takes "self-cultivation" and "governing people" as the central concepts, and expounds the ideological connotation of Confucianism, which plays the dual role of "the book for governing the mind and cultivating" and "political book for emperors to seek political philosophy ideas.
Although the system of Daxue constructed by Zhu Xi and his interpretation of Daxue also started with the aim of Confucianism - self-cultivation and governing people, they focused on the cultivation of the mind and spirit, focused on the core issues of individual "self-cultivation", and summed up the governance of people as "the governance of doing nothing ". However, in Joseon Dynasty at the time, the disadvantages of Zhu Zixue which played a leading role in political concept are becoming more and more prominent, as a master of practical learning at that time, Tasan had a strong sense of social crisis, he rejected Zhu Zi's neo-Confucianism which emphasises on speculation and conceptual explanation, and based on his view of trying to return to Zhu Sixue, he widely absorbed the notes and commentaries of Han Dynasty and Tang Dynasty and Qing Dynasty. He also proposed creative views of Daxue basing on actual needs and attempted to explore the methods of governing the country. In other words, due to the different social background and needs, the two explanations focus on a different aspect of the dual functions of Daxue. That is to say, Zhu Xi highlights the role of Daxue as a book of governing the mind, while Tasan highlights the role of Daxue as a book of politics.
In the process of the interpreting Daxue, Tasan proposed his political philosophy, which is directly reflected in his view of Daxue and the practical approach of governing the country. Further on, it mainly focused on how to deal with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politicians and the people, and how to allocate the two. In order to solve this problem, Tasan tried to return to the core points of traditional Confucianism -- "forgiveness" and "the way of justice", and advocated that the family, the state and the world could be regulated through moral cultivation. To achieve this goal, it is necessary for the politicians to start from the family, the basic unit of society, and expand the ethical relations such as Filial piety, fraternity and kindness in the family to the political relations. This kind of political philosophy in Tasan's Daxue interpretation not only inherited the idea of rule by virtue in the Confucian tradition but also breaks through the traditional viewpoint. It not only emphasised the subjective initiative and enthusiasm of the politicians but also looked forward to influencing the people through their political behaviours and stimulate the people's ethical practice enthusiasm. This prominent that Tasan's theory has both ethical and realistic characteristics, which is a practical ethics the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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