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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orean journal of history of education

  • : 한국교육사학회
  • : 사회과학분야  >  교육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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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계간
  • : 1225-1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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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2권0호(1978)~42권2호(2020) |수록논문 수 : 667
한국교육사학
42권2호(2020년 06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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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1'라이시테'를 통해서 본 19세기 프랑스의 교육 근대화와 도덕·시민교육

저자 : 김세희 ( Kim Saehee )

발행기관 : 한국교육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육사학 42권 2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24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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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라이시테에 초점을 맞춰 19세기 프랑스 교육 근대화의 역사를 조명하고 국가교육의 형성과정을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프랑스의 교육 근대화는 라이시테 개념이 등장하기 이전의 '소극적 세속화'의 시기와 학교를 통해 공화주의의 이념을 전파하는 '적극적 세속화'의 시기로 구분된다. 전자가 교육의 주도권을 교회로부터 국가로 회수하는 제도적 발판을 구축한 시기였다면, 후자는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 교회와 분리하여 프랑스의 공립학교를 '공화국의 학교'로 재정립한 시기였다. 쥘 페리의 '학교법'으로 대표되는 제3공화국의 교육개혁은 두 시기를 나누는 기점이 된다. 특히 1882년 선포된 '학교 라이시테' 법은 기존의 종교교육을 도덕·시민교육으로 대체하고 '공화주의적 가치'와 '프랑스적 요소'를 결합한 내용을 보급함으로써 국민적 단결과 통합에 이바지하는 국가교육의 골조를 놓는다. 이런 맥락에서 '학교 라이시테'는 곧 '도덕의 라이시테'를 가리키며, 현대에도 여전히 프랑스 국가교육의 근간을 차지하는 정신이자 작동 원리임을 알 수 있다.


This article consists in inquire into the education modernization and the State education system in France, bringing to a focus on its laïcité. The modernization of the french education can be divided into “passive secularization”, which is prior to appearance of the concept of laïcité and “active secularization”, which spreads the Republican ideology through the school. The former is the period in which the state builds the institutional steppingstone by retrieving the initiative of the education from the Church. Whereas the latter is the period in which the french public school is reestablished as “the school of the Republic” by standing alone from the church, formally as well as substantially. The educational reform of the third Republic, generally represented by Jules Ferry's school laws, can be considered as the starting point which divides two periods. Particularly, the law of the school laïcité, declared in 1882, forms the framework of the State education, by substituting the moral-religion instruction into the moral-civic instruction, and by combining the values of the Republic and the study of France. The perspective that the school laïcité equals the moral laïcité is born in this context, and the laïcité is still the foundation of France national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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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세기 예안현 사족, 금난수와 과거시험: 『성재일기』를 중심으로

저자 : 박청미 ( Park Cheongmi )

발행기관 : 한국교육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육사학 42권 2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5-50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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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일기』를 주된 전거로 삼아, 16세기 중후반, 예안현의 한 사족인 금난수가 과거시험에 어떻게 대응하며 살았는지, 선택과 행위의 동인을 유추해 가며 살펴보았다. 금난수는 생애 전반에 걸쳐 자신과 아들들의 과거시험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살았고 이황의 학맥 속에서 많은 혜택을 입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50세 나이에 고향을 떠나 서울 도성을 오가며 관직생활을 한 것은 아들들을 관료 중심의 '신분 사회'에 편입시키고 했던 열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아들의 죽음을 애도해 마지않을 시기임에도 남은 아들들을 시험장에 보냈던 것은 사족 사회에서 과거급제가 상례에 버금가는, 통과의례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I examined, with a Focus on < Seongjae Diary >, how GeumNansu as a sajok of Yaean-hyeon in 16th century responded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 And I inferred and investigated the drivers of choices and actions through his response. He lived actively in response to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s of himself and his son throughout his life. I was able to confirmed that he had benefited greatly from Lee's academic community in the process. The fact that he left his hometown at the age of 50 and traveled to and from Seoul's city of Doseong could be attributed to his desire to join the "privileged system society" and exercise legal privileges. It could be considered the fact that even when the family had to mourn death, the fact that the father sent his son to the test site shows that passing the civil exam in the sajok society was recognized as a rite of passage comparable to funeral ri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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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해방 이후 유아교육 정책 변천에 관한 고찰: 사립유치원을 중심으로

저자 : 이윤진 ( Lee Yunjin )

발행기관 : 한국교육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육사학 42권 2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51-74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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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이하, 한유총)-우리나라 사립유치원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사인(私人)유치원의 대변인 역할을 한 이익단체-으로 대표되는 사립유치원들의 반대 속에서 '유치원3법'이 산통(産痛) 끝에 통과되는 과정을 목도하였다. 본 연구는 이 사건의 원인을 사립유치원의 파행적 행태의 역사성에서 찾고자 우리나라 유아교육 정책 변천사를 고찰하였다. 유치원은 1908년「高等女學校令」에 처음으로 명시되었고, 해방 이후 지금까지 학교의 일종으로 법적 지위를 가져왔으나, 유아교육의 공교육화는 1980년대 접어들어 비로소 추진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유아교육 진흥정책에서 사립유치원은 국가 보호 하에 있었으며 1990년 중후반 이후 교육계의 주요 화두였던 '유아교육의 공교육화' 정책은 한유총 주축의 사립유치원들이 추진하였다. 요컨대 유아교육의 공교육화 정책에서 사립유치원들은 (기득권을) 보호 내지는 오히려 주도권을 가졌던 아이러니를 확인하였다. 다시 말해서 유아교육의 공교육화 정책 추진과정에서 사립유치원의 재정지원은 현실화되었고, 대다수의 원아들이 사립유치원에 다니는 구조는 고착화되는 등 사립유치원의 이익은 점점 충족되었고, 정부는 늘 주변부에 있었다. 우리나라 유아교육정책 변천사의 큰 흐름에서 볼 때, 유치원3법 통과는 유아교육의 사사화(私事化)에 종지부를 찍고 정부가 실질적으로 유아교육 공교육화 정책의 주도권을 잡은 최초의 사건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This study examined the history of Korea's early childhood education policy changes to find the cause of this event in the history of the catastrophic behavior of private kindergartens. Kindergarten was first identified in 1908 in 高等女學校(godeung-yeohaggyo)Act, and since liberation it has brought legal status as a kind of school until now, but public education of early childhood education was promoted only in the 1980s. In the 1980s, however, in the early childhood education promotion policy, private kindergartens were under the protection of the state, and the 'pre-education of early childhood education' policy, which has been a major topic of education since the middle and late 1990s, was promoted by private kindergartens at the head of the Korea Kindergarten Association. In short, in the government's public education policy of early childhood education, private kindergartens identified the irony of protecting or rather taking the initiative. In other words, as a result of promoting the public education policy of early childhood education, the financial support of private kindergartens has become a reality, and the structure of the majority of children attending private kindergartens has been fixed, so the benefits of private kindergartens have been gradually satisfied. The passage of the Kindergarten 3Acts could be evaluated as the first event that ended the privatization of early childhood education and the government actually took the initiative in the public education policy of early childhood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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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조선시대 성균관의 예악교육: 석전제례악을 중심으로

저자 : 장재천 ( Chang Jaecheon )

발행기관 : 한국교육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육사학 42권 2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75-90 (1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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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음악교육이라고 하면 대개 서양식 개념이 머릿속에 있어서 실기교육이 자꾸 떠오르게 된다. 하지만 성균관의 음악교육은 지금과는 많이 다른 예악교육으로서 그 큰 특징이 있다고 생각된다. 실기도 많이 가르쳤던 주나라의 학교와 비교하면 실제 음악 실기교육으로서는 약화되었지만 대신 석전제례악을 통해 실현시키는 적극적인 활동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따라서 성균관의 기초적인 예악교육은 선진유가와 주자학의 악론이 바탕이 되었으며, 시와 악서교육에 대한 교육은 예악정치 실현을 위한 의례의 제정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성균관 사예가 주도해 만든 악장은 조선 초기에 정재에 수용되어 예악을 형상화하는데도 기여했고, 『예기』, 『율려신서』와 같은 악서 및 『시경』 교육은 아악의 정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석전제례를 지극한 정성으로 준비하고 겸양과 공경의 예로 참여함으로써 제관과 유생들뿐만이 아니라 백성들에게도 예악에 대한 교육적 의미를 전달했으며, 백성들이 다함께 정서적으로 즐길 수 있는 마당이 되도록 했던 것이다. 성균관 예악교육의 목표는 유생들이 예악을 통해 인격수양과 덕성을 함양해 군자가 되고 사회교화를 달성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감성적인 음악을 통해 지나치게 현재의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오늘날에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다고 생각된다.


Yeak education in Sungkyunkwan in Joseon Dynasty has significant meaning until today. In terms of music education, we have a western term concept in my head, so the practical education is coming up again. Actually, the term “Akgyo(樂教)” is more appropriate. Compared with the school of the Joo(周) Dynasty which taught a lot of practical skill, it was weakened by actual music education activity, but it was led to the active activity to realize it through the musical ritual. The basic music education of Sungkyunkwan was based on Confucius festival. The education about the poetry and the instrument education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formation of the ritual for the realization of the ruling politics. By preparing for the festival of the martial arts in an exquisite manner, participating as an example of humility and honor, it conveyed educational significance to the audience as well as to the people of the Sungkyunkwan and Sungkyunkwan cultures, and made it possible for the people to be emotional will be. The goal and content of Sungkyunkwan Yeak education was to achieve Sungkyunkwan life through social harmony of harmony and cultivation of personality and morality. Therefore, I think that I can give many suggestions to the day when I am pursuing only the joy of music through the music because I was devoted and served for the nation and the society ideally by polishing the mind of my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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