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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orean Journal of Art and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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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반년간
  • : 2005-5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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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4권1호(2005)~17권1호(2018) |수록논문 수 : 325
예술과 미디어
17권1호(2018년 05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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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스 하케(Hans Haacke)의 『게르마니아(GERMANIA)』(1993) - 국가 사회주의 이후 의식의 매니저로서 베니스 비엔날레-프로젝트 -

저자 : 김승호 ( Kim Seung-ho )

발행기관 : 한국영상미디어협회 간행물 : 예술과 미디어 17권 1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1-34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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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하케(Hans Haack)는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에 「게르마니아(GERMANIA)」 작품을 선보인다. 하케의 베니스 비엔날레 설치작품은 미술과 정치, 미술과 광고, 미술과 경제, 미술과 산업 사이의 연관관계를 다양한 오브제로 가시화한 공간설치작품이다. 하케는 이 설치작품으로 '예술가로서 뒤샹 보다 더 파괴적이다'라는 평가도 받는다. 한스 하케는 '시스템을 지닌 레드메이드를 다루고 현시함으로써 마침내 미술사에 적응하게 하고 나아가서는 인간과 실제적 본질 사이의 완충작용을 하기 때문이다'라고 프라이(Edward F. Fray)는 화답한다. 하케에게 있어서 작업의 조건은 시스템에서 사고하는 것이고 시스템을 생산하고 현존하는 시스템을 파악하고 그것을 가시화하는 것이다. 페트라 키프호프 (Petra Kipphoff)는 주간지(Die Zeit)에 “독일 파빌리온의 메인 공간에서 읽게 되는 게르마니아라는 작품제목은 차갑고 과격한 개명의 예술가적 행위로서 하케의 이전의 작업이나 비엔날레에서 비교조차 어려운 것이다”라고 평가한 반면, 그라스캄프(Walter Grasskamp)는 주간지 (Die Woche)에 “정치가 더 개념적 일수록 개념미술은 더 정치적이 된다”라고 종합한다.
이 연구는 개념작가인 한스 하케의 「GERMANIA」설치작품을 분석하여 21세기 미술전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제시하고자 한다. 100년이 넘는 베니스 비엔날레라는 제도로서의 미술전시에서 나치시대에 설립된 전시공간이 미술작품으로 전환되어 21세기 미술사 서술과 비판적 학문으로서 미학에 소중한 화두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미술제도로서 베니스 비엔날레와 비엔날레의 미술작품에 대한 연구논문이 속속들이 출간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박사학위논문 (2008년 출간된 Marylene Malbwert의 Les realtions artistiques internationals a' la biennale de Venise, 1948-1958; 2009년 출간된 Jan May의 La Biennale di Venezia. Kontinuität und Wandel in der venezianischen Ausstellungspolitik 1895-1948)를 들 수 있다. 그리고 최근에 설립된 동유럽의 베니스 비엔날레 참여국가관(유고슬라비아, 폴란드, 루마니아, 헝가리, 러시아) 연구소(Schweizerisches Institut fur Kunstwissenschaft “Focus Projekt”)는 서유럽과 북미중심이던 미학적 논쟁에 구)동구권까지 포함한다. 냉전시대의 종식에도 불구하고 베니스 비엔날레는 백여년간 국가관을 지속한다. 최근에는 아프리카 (국가)관과 동아시아관이 첨가되어 2017년 제57회 베니스 비엔날레는 73개 국가관이 참여한 글로벌전시로 발전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20세기 유럽과 미국이 주도하던 미술계가 와해되기 시작했고, 글로벌 경제와 글로벌 미술은 글로벌전시를 요구할 뿐만 아니라 예술개념에 국가개념 그리고 정치개념이 미술제도에 첨가되어 의미의 층이 다채로워진다.
이 연구에서는 베니스 비엔날레가 촉진시킨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에 두고 한스 하케의 「GERMANIA」(1993) 설치작업에 초점을 맞춘다. 한스 하케는 백남준과 함께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작가로 참가하여 그들의 독일관(Deutscher Pavilion)은 제45회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여 받는다. 하케는 다양한 오브제와 파괴한 메인 전시장의 건축적 상황을 설치작품으로 전환하여 가깝게는 통독 이후 독일국가와 민족의 정체성, 역사적으로는 나치시대의 예술정치와 20세기 말 경제개념을 내포한다. 나치시대에 세워진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파빌리온(1934)이라는 측면과 분단된 국가에서 통일된 국가(1989/90), 베니스 비엔날레의 역사 사이의 상호작용은 베니스 비엔날레 국가관 전시의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사례에 포함된다.
이 연구의 본문에서는 하케의 「GERMANIA」에 구조화된 예술가적 방법론과 그 설치 작품에 은닉된 예술, 정치 그리고 경제의 상호관계를 분석하여 베니스 비엔날레의 국가관을 예술가적 프로젝트로서 해석할 조건을 구체화한다. 이 연구는 부연설명조차 필요 없는 미술사적 방법론의 부재에서 출발할 뿐만 아니라 이벤트 행사로 남을 수밖에 없는 비엔날레에 대한 미학적 연구가 제외되어있다는 사실-비엔날레에 대한 비평을 초월하거나 비엔날레에 대한 제도적 연구도 포함-도 전제한다. 그리고 이 연구는 하케의 「GERMANIA」는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기간이 끝난 후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소장품이 아니라 기억과 기록으로만 남아 있다는 시간적 문제도 고려한다. 베르너 스피스(Werner Spies)가 일간지(FAZ)에 한스 하케의 「GERM ANIA」를 “명작”으로 평가한 반면에, 라즐로 글로저(Lazlo Gloser)는 언론(Suddeutsche Zei tung)에 “스팩터클한 역사극복” 그리고 페터 이덴(Peter Ideen)은 신문 (Frankfurt Rundsc hau)에 “비엔날레의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한다. 그들은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에 출품된 작품을 비교-특히 Ilja Kabakov의 “Red Pavillon”와 비교-한 평가이지만 이 연구의 핵심작품인 게르마니아는 하케가 1960년도 후반부터 추구한 정치, 경제 그리고 예술개념의 관계망을 확장하고 그 의미의 층을 다층화한 설치작품이다. 나치시대의 건축물인 독일관을 활용한 요셉 보이스(Joseph Beuys),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와 라인하르드 무차(Reinh ard Mucha)와 비평적 비견을 넘어 하케의 경우는 아우슈비츠 이후의 설치미술로서 미술전시의 역사적 사례로 평가 받아야 할 것이다.
이 연구는 생존작가의 설치작품에 내포된 파괴와 역사, 정치와 미술, 산업과 미술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도상학적 분석을 통해 아우슈비츠 이후 하케의 베니스 비엔날레-프로젝트(1993)에 대한 미학적 위상을 현재화하여 우리의 현실에서 바라보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작가의 주관심사인 '의식의 매니저'가 나치즘 이후 개념미술에서 어디까지 해석될 수 있는지, 미술사의 방법론인 작품분석은 더욱더 세밀해져야 할 것이다.


Since the beginning of the 21st century, the Biennale di Venezia has often been the subject of art historical investigations and technical discussions in regard with the exhibition system and the contributions to the national pavilions. Most recently, the doctoral thesis of Marylène Malbert of 2006, "Les relations artistiques internationales à la Biennale de Venise (1948-1958)," and Jan Andreas May's dissertation in 2009, "La Biennale di Venezia. Continuity and change in Venetian exhibition politics 1895-1948". Meanwhile, a research project entitled Focus Project at the Swiss Institute for Art Research in Zurich, is dedicated to the contributions from Eastern European countries such as Yugoslavia, Poland, Romania, Hungary or Russia. The long history of the Biennale over one hundred years provides for a discussion regarding its role as an institution of international art and cultural policy in addition to the importance of national pavilions as the places for national, cultural and representational strategies. It is not just about the issue of artistic confrontation, but also focuses on art historical methodologies which would not occur any longer, especially after the end of the Cold War period and the reunification of Germany.
Unlike Joseph Beuys, Georg Baselitz or Reinhard Mucha, all of whom exhibited at the Venice Biennale, the German conceptual artist Hans Haacke (*1936) addresses the cultural policy with art politics of National Socialism and the German National Pavilion in his contribution 「GERMANIA」 in the 1993 German Biennial Pavilion as a unit of the Federal Republic of Germany. To this end, the artist incorporated the representation building characterized by Naziism since 1934 as well as a black-and-white photograph by Adolf Hitler and Benito Mussolini into his work. The marble floor of the main exhibition room was completely smashed by Haacke, so that the visitor could only enter the location with a caution due to the uneven ground.
In this way he makes his installation dependent on the architectural conditions. Hitler had specially designed the floor of the German pavilion in 1934 with marble, and had the lettering "GERMANIA" and a swastika with an eagle attached to the building entrance. With his political partner Mussolini, he visited the exhibition in the German pavilion on 14 June 1934. A souvenir photo can be found in Haacke's installation with the note "LA BIENNENALE DI VENEZIA 1934" again. Overall, the artist chose the marble floor, the inscription, the photograph and a 1-DM coin with minting year 1990 for his work. The connections among National Socialist art policy, German pavilion, the globalization of the economy and art after the reunification of Germany, become visible and tangible in Haacke's work.
The present study does not focus on the reference of the individual exhibition objects to the German pavilion of 1934, whereby Haacke transforms the visualization of the past into the critically questioning of the present and makes it so tangible. His installation is, according to the Italian philosopher and German philosopher Angelo Bolaffi, to be understood as a symbol of the historic mortgage of the Federal Republic "which Auschwitz has as a founding myth."
In the context of this essay, Haacke's art contribution for the 1993 Biennale di Venezia is conceived as a spatial arrangement after Auschwitz, and regarded as a novel interpretation approach to the German pavilion. However, a new method of interpretation for the internationally oriented Biennale, which concerns its function as a place of primary national representation, should not be worked out. In view of the more than 100-year history of the renowned art exhibition, the installation is to be interpreted in contrast to a spatial representation of Joseph Beuys' < Demonstration Auschwitz > (1956-64).
The marble floor, the lettering, the black-and-white photograph and the modified 1-DM coin were deliberately included in the overall concept for 「GERMANIA」 as fixed components of the work. The question whether promoters and critics of the artist are in dialectical relation to each other-this was emphasized by Haacke himself in his written statement < remarks on cultural power > in 1970-can be indeed discussed in the discussion about 「GERMANIA」 as a national contribution at the Biennale di Venezia initiated. It can be broadened and substantiated precisely, however, by analyzing the connection between cultural and art policy of Nazi propaganda and contemporary art exhibitions as well as between national identity and the globalization of art and business. The work 「GERMANIA」(1993) is indispensable as a remembrance of the artist Hans Haacke after the end of national soci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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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데미안 허스트의 '비신화화'된 박물관 - <믿을 수 없는 난파선의 보물>전(展)의 기호학적 전략 -

저자 : 이재걸 ( Lee Jaegeol )

발행기관 : 한국영상미디어협회 간행물 : 예술과 미디어 17권 1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35-58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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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두개골 작업처럼 화려하게 장식된 허스트식 죽음 이미지는 이제 물질적 현실의 영역을 지나 역사의 구조라는 기호적 현실로 향한다. '아피스토스 호'라는 난파선에서 건져 올린 유물들이라는 가공의 설정에서 출발하는 허스트의 <믿을 수 없는 난파선의 보물(2017)> 전시는 기독교에서 힌두교나 불교는 물론, 이집트·그리스·로마의 신화적 인물들부터 디즈니와 할리우드 영화의 캐릭터들까지 한데 모아 자신만의 독특한 박물관을 건설한다. 가공의 유물들과 더불어 허스트가 직접 모은 몇몇 실제 유물들이 뒤섞여있는 이 박물관은 진짜와 가짜의 구분을 모호하게 정의하면서 '반-박물관' 혹은 '유사 박물관'의 형식을 띤다. 카시러가 정의한 바와 같이 '역사란 지성과 상상에 의한 종합'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허스트는 역사적 텍스트의 신화적 작동을 드러내어 그것의 의미작용 과정에서 나타나는 기호의 자의성과 우리 지식의 불안정성에 대해 말한다. 우리는 박물관이 제공하는 신화의 내용을 하나의 현실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그래서 박물관은 현실과 맥이 닿아있는 인공 환경 즉, 가상현실이 된다.
<믿을 수 없는 난파선의 보물>은 역사와 저자의 죽음을 주장하는 탈구조주의적 담론의 연장선에서 '신화-박물관'이란 '가상화'의 결과이자 랑그가 아닌 발화된 파롤이며, 하나의 만들어진 의사소통 체계, 자의적으로 발화된 메시지일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자본의 힘과 쇼맨십이 결합한 이 전시는 무분별한 키치와 장식적 충동이 난무하며 다시 한 번 논란을 낳고 있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펙터클한 기획과 미학적 영민함을 토대로 역사의 통일성과 정합성(整合性)을 '탈-진실'의 영역으로 되돌리려는 허스트의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한 듯 보인다.


The Hirst-esque imagery of death, like the splendidly ornamented skull with numerous diamonds, passses the realm of physical reality and into semiotic reality. Beginning from the fictional set-up of the artifacts having been recovered from the wreckage of the Apistos ship, Hirst's < Treasures from the Wreck of the Unbelievable(2017) > exhibition constructs a unique museum of its own, gathering of course Protestant, Hindu, Buddhist, as well as Egyptian, Grecian, and Roman mythological figures to Disney and Hollywood movie characters all in one space. The museum, in which the fictitious artifacts along with the authentic artifacts that Hirst has collected himself, are mixed up and ambiguously defines the division between the real and the false while appearing in the form of a 'half-museum' or a 'quasi-museum'. Beginning from the premise that, as Cassirer has defined, 'history is the amalgamation of intellect and imagination', Hirst reveals the mythical workings of historical text to speak of the sign's arbitrariness and the instability of our knowledge, which are revealed in the process of application in meaning. We naturally accept the story of myth that the museum provides as a fact, and therefore the museum becomes an artificial environment that is in touch with reality, in other words, a virtual reality. At the extension of the Post-Structuralist discourse that proposes the death of history and its authors, < Treasures from the Wreck of the Unbelievable > while being a result of 'virtualization' as a 'myth-museum', is not a langue, but an enunciated parole, and makes a clear point that it is a created system of communication, and merely an arbitrarily enunciated message. With a combined power of capital that exceeds the imagination and showmanship, this exhibition, despite being rampant with indiscreet kitsch, decorative impulse, and is once again causing controversy, Hirst's intentions of returning the unity and exactness of history back into the realm of post-truth on the foundation of art historical intelligence and spectacular planning seems to be successful to a certain deg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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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작품 안에 있는 관객'에 대한 철학적 사유 - Christian Boltanski의 《Personnes》을 중심으로 -

저자 : 김성하 ( Kim Seongha )

발행기관 : 한국영상미디어협회 간행물 : 예술과 미디어 17권 1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59-74 (1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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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앙 볼탕스키(Christian Boltanski)는 2010년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Grand Pala is)에서 《모뉘망따2010-빽손 Monumenta2010-Personnes 》을 통하여 '작품 안에 있는 관객'을 강조하였다. 관객이 작품 앞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작품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 안으로 들어가도록 유도하였다. 볼탕스키는 《빽손 Personnes 》을 찾아온 사람들이 작품과 일정한 거리를 두지 못하도록 누군가 입었던 수많은 옷, 누군지 알 수 없는 수십 명의 심장박동 소리, 추위, 거중기의 거대한 기계소음이라는 조형적 장치를 설치하였다.
볼탕스키는 이러한 조형적 장치를 통하여 관객이 작품 앞이 아닌 작품 안에 있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관객이 작품 앞에 있다는 것은 보는 주체로서 관객과 보여 지는 대상으로서 작품의 관계를 의미한다. 이런 관계에서 '본다'라는 것은 관객이 작품의 의미를 파악하고 내면화하는 지성적 행위를 의미하며, 이러한 '봄'을 메를로-퐁티는 정신 작용으로서 봄이라고 말한다.
반면 작품 안에 있는 관객은 작품을 정신작용이 아닌 지각을 통하여 보는데, 이러한 지각을 통한 봄을 메를로-퐁티는 의식의 내면화가 아닌 사물과의 접촉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볼탕스키의 '작품 안에 있는 관객'은 우선 주체-대상의 관계가 와해된다는 측면에서 주체의 부재를 의미하며, 또한 작품의 의미를 파악하고 내면화 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로서 작품과 접촉을 통한 만남의 경험을 의미하는 무-의미를 가리킨다. 여기서 무-의미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작품과 관객이 주체-대상의 관계를 벗어나 무한한 만남의 관계로 들어감을 뜻한다.


In 2010, Christian Boltanski exhibited 《Monumenta 2010-Personnes》in the Grand Palais Paris, France. He emphasized “the spectator in the works of art”, not “the spectator in front of the works of art.” It means that Boltanski didn't want to make a place for the spectator. Because the spectator in front of the works of art have to be in his proper place in front of the painting, the sculpture, the photography, etc. in the gallery, in order to catch the meaning that the works of art imply. But the spectator in the works of art does not need to be in position in front of the painting or the sculpture. Because there is not any distance between the spectator and the works of art.
To eliminate the distance between the spectator and the works, Boltanski installed the used clothes, the heartbeat, the cold, the noise in the 《Personnes》.This elimination would bring the spectator into the experience with the things as the works of art, like the clothes, the heartbeat, the noise, etc. in 《Personnes》. In this experience, the vision of the spectator would be regarded as a kind of the contact between the spectator and the things.
This experience or this contact would make the spectator as a subject disappear. In other words, it means the absence of the subject. And also, the “non-sens.” The non-sens does not say that it does not have any meaning. The non-sens is the experience and the contact between the spectator and the t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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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동시대 미술을 통한 '관용'의 증진 가능성에 대한 연구

저자 : 정수경 ( Chung Sukyung )

발행기관 : 한국영상미디어협회 간행물 : 예술과 미디어 17권 1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75-105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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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는 차이의 형이상학을 정체성 담론의 토대로 삼고, 차이 나는 정체성에 대해서는 관용의 태도로 수용할 것을 윤리적 정언명제로 삼는 다원주의의 시대이다. 그러나 차이의 형이상학과 다원주의는 소수자들의 정체성 표명의 자유를 증진시키는 것만큼이나 혐오 표현의 자유도 허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논리적 난제를 지니며, 이는 논리적 난제로 그치지 않고 현실에서도 원리주의자들 사이의 충돌과 폭력적인 테러 사태를 초래하고 있다.
본 논문은 차이 수용의 어려움 혹은 관용의 작동 오류라는 우리 시대의 문제적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차이를 관용할 수 있는 의식의 역치에 대한 고려가 필요함을 제안한다. 오랫동안 자신의 정체성을 있는 모습 그대로 재현할 수 없었던 억압의 역사에 대한 당연한 반발의 양상으로 소수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가식 없이 있는 그대로 재현하기를 선호한다. 그것은 존재론적으로 정당하고 윤리적으로 타당하다. 그러나 그것은 이상적으로만 그러하다. 차이는 언제나 '알 수 없음'으로 인간의 의식에 다가오기 때문에 결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수용될 수 없다. 차이의 수용에는 의식의 노력이 개입하는데, 이 의식화의 과정과 용량이 기대만큼 무한하지 못하다는 데 관용이 생각만큼 잘 작동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정체성의 차이와 그에 대한 관용의 태도 사이의 관계는 프로이트의 쾌락원칙과 현실원칙 사이의 관계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 쾌락원칙이란 외부적 자극을 불쾌한 스트레스로 간주하여 최소화하려는 태도를 가리킨다. 차이에 대해서도 인간의 의식은 우선 쾌락원칙을 따르며, 가능하면 차이를 적게 받아들이고자 한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현실원칙이 쾌락원칙을 제어하여, 현실 속에서 공동체적 삶을 이어가기 위해 외부자극의 고통을 견딜 것을 요구한다고 설명한 것과 마찬가지로, 현실적 삶은 차이의 고통을 공동체적 삶의 윤리를 위해 관용하고 수용하도록 요청한다. 그러나 현실원칙이 쾌락원칙에 제어를 가한다고 해서 그것이 외부자극의 고통을 무한적 수용하게 만들 수는 없다. 의식의 방어 능력 자체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정한 조정이 필요하다.
이 조정에 대해 주디스 버틀러는 '박탈'(dispossessi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박탈'에 강제로 빼앗기는 유형 외에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 소유하지 않는 유형이 있음을 제안하면서, 버틀러는 자신의 차이 나는 정체성을 설명하고자 하는 누군가는 설명의 대상에게 자신이 정체성 재현이 이해 가능한 것이 되도록 상대도 이해할 수 있는 어휘로의 '번역'을 시도해야 하며, 그런 가운데 생겨나는 정체성의 '분산'(dispersion)을 감수해야만 한다고 제안한다.
본 논문은 박탈을 통한 분산을 감수하는 정체성 번역이야말로 차이의 형이상학이 극단적 갈등을 초래하는 시대에 관용의 증진을 도모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판단하고, 성적, 민족적 소수자였던 동시대 미술가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의 작품들을 버틀러가 제안하는 문화번역의 좋은 사례로 제시한다.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는 버틀러와 유사한 인식적 지평 속에서 의식적으로 자신의 소수자 정체성을 일정하게 탈각시키고 은유적으로 번역하여 작품으로 구현함으로써 차이를 보편적 감성에 실어 성공적으로 전달해내었다.


Now is the age of pluralism whose spiritual foundations are the metaphysics of difference and the attitude of tolerance. But the metaphysics of difference and the pluralism have their own aporia, or a deadlock in that they cannot but to allow the same amount of freedom to the expression of hatred as to the expression of identical differences of the minority. And it causes the actual crash and violent terrors between the opponent fundamentalists.
This paper suggests that we should consider the limit of tolerance to solve this problem of malfunction of tolerance in the actual life, not in theory. As a just and natural reaction to the long history of suppression of their genuinely different identities, the minorities prefer the frank and straight representations of their identities. This is existentially proper and ethically right. But it is only ideologically. Someone's differences cannot be accommodated comfortably enough for they always become kind of 'the unapprehensible' to someone else's consciousness. So the effort of the conscious is called for the reception of the existential differences. But the capacity of this effort has its own limit, so the tolerance also cannot be limitless.
This kind of relationship between the existential differences and the attitude of tolerance to those differences can be explained by the principle of pleasure and the principle of the reality. The basic setting of our mind attitude to the external stimulus is the repulsion and the displeasure, so we don't like the reception of the differences. But on behalf of the community, we are required to endure the pain. It's tolerance. But for intrinsic limit of the consciousness, we cannot be forced to endure too much. Moderation is needed.
Judith Butler's own notion of this moderation is 'dispossession.' According to her, dispossession has two different modes, one voluntary, the other forced. The voluntary dispossession means we should translate our representation of ourselves with the words of the others to make it communicable, meanwhile should sacrifice some portion of our existential identities in its representation. It's the identical dispersion.
This paper regards the translation of identical/existential differences through the voluntary dispossession can be a viable solution to the malfunction of tolerance caused by the fundamentalist modes of the metaphysics of difference. This paper suggests the works of Felix Gonzalez-Torres as a good example of the culture translation Butler conceived. As a double minority in his sexual and ethnical identity, Gonzalez-Torres chose a metaphoric way of representation rather than a straightforward way, well recognizing the difficulties in communicating the identical differences, finally achieved his goal to be sympathiz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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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아도르노의 여성성 사유와 에코페미니즘 - 차이의 여성성을 위한 시론 -

저자 : 유현주 ( Yu Hyunju )

발행기관 : 한국영상미디어협회 간행물 : 예술과 미디어 17권 1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07-129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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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목적은 기술문명과 가부장제 사회가 결합해 낳은 생태적 문제들이 역사적으로 여성의 삶을 악화시켜왔다는 인식을 토대로 아도르노의 여성성 사유와 에코페미니즘의 만남을 시도하는 데 있다. 이 글은 아도르노의 오디세이 신화분석에 대한 페미니즘적 독해를 통해, 자연지배의 역사에서 형성된 '자연-여성' 개념에 내재된 남성중심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규정을 드러내고자 한다. 에코페미니즘이 여성과 자연을 동일시하게 된 근원으로 본 것은 근대 기계론적 세계관에서 나온 이분법적 인식론이다. 이러한 이분법적 인식론에서 여성은 자연의 개념과 연결되고 남성은 자유의 개념과 연결되며, 이에 따라 기계적 물질에 불과한 자연과 마찬가지로 여성 역시 사회의 재생산의 역할을 담당하는 존재로 인식된다. 유사한 맥락에서, 아도르노는 여성이 가부장제 문화에 순응하는 비주체적 존재로서 자연의 이미지를 갖는다고 본다. 그러나 아도르노의 비동일적 사유에서 바라보았을 때, 신화 속 여성들인 사이렌, 키르케, 페넬로페는 자연과 같이 비주체적 여성이 아니라,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하며 가부장적 사회에서 규정한 '자연-여성'이라고 하는 획일화된 여성성 개념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주체적 여성들이다. 아도르노의 비동일성 사유를 통해 읽는 신화에 대한 아도르노의 이러한 독해는 기술문명과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구속된 여성성 개념을 극복하려는 에코페미니즘적 관점을 반영할 뿐 아니라, 여성 본질주의와 구별되는 '차이'의 여성성 담론을 내포한다. 아도르노의 미적 미메시스를 통해 본 신디 셔먼의 작품에서 우리는 남성중심사회에서의 '자연-여성'으로 정의되는 여성성에 대한 비판과 '차이'의 여성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essay is to attempt the meeting of Adorno's thought of femininity and ecofeminism on the basis of recognition that ecological problems caused by the coupling of technological civilization and patriarchal system has made historically woman's life worse and worse. This essay tries to disclose an ideological regulation of the m ale-dom inated society inherent in the concept of 'nature-wom an' form ed in the history of dom inating nature through fem inistic reading on Adorno's analysis of the Odyssey myth. In this dichotomous epistemology, women are connected with the concept of nature, men are connected with the concept of freedom, therefore women are recognized as being responsible for the reproduction of society, just like nature, which is just a mechanical substance. In a similar context, Adorno sees that as a non-independent existence which women conform to patriarchal culture has pictures of nature. However, in the perspective of Adorno's non-identity thought, Siren, Circe, Penelope in the myth are not non-subjective women like dominated nature, but subjective women to keep their own identity and get out of standardized fem ininity defined by patriarchal society. Adorno's reading of myths not only reflects the ecofeminist view of overcoming the concept of femininity constrained by the ideology of technological and capitalism, but it also implies discourse of feminity of 'difference' distinct from female essentialism. Cindy Sherman's work, which is seen through Adorno's aesthetic mimesis, criticizes the definition of femininity defined as 'nature-woman' in male-centered society and can be interpreted as femininity of 'dif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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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이트헤드의 존재론을 통한 표현론의 확장 가능성

저자 : 조경진 ( Cho Kyungjin )

발행기관 : 한국영상미디어협회 간행물 : 예술과 미디어 17권 1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31-155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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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예술에 관한 본질주의적 정의 중 하나이자 오늘날까지 예술을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관점을 제공하고 있는 표현론(expression theory of art)을 화이트헤드의 미학적 존재론의 관점에서 재검토하고 나아가 표현론의 외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대안적 방식의 예술의 특성화를 시도하고 있다. 표현론의 핵심, 그러니까 표현론을 다른 이론과 분명하게 구별해 주는 지점은 예술에서 표현되거나 감상되는 것은 곧 정서에 관한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 핵심 테제는 표현론을 다른 이론과 구별해주면서 동시에 그런 한에서 예술의 다른 측면을 포함하지 못하는 한계를 노출한다. 이를테면, 표현론은 정서의 표현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 작업, 혹은 정서가 아니라 개념적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작업들을 마주할 때 설명력을 잃고 만다. 그럼에도 이 논문은 표현론의 핵심 전제, 즉 정서적 측면이 예술에서 본질적이라는 점을 화이트헤드의 철학적 관점을 통해 방어하려고 했으며, 나아가 그 정서적 측면이 어떠한 절차로 명제적(개념, 아이디어) 측면까지 정당하게 포섭할 수 있는지를 논하였다.
이 논문의 핵심 과제 중 하나는 정서적인 반응과 비정서적인 반응에 관한 자의적 구별을 넘어 모든 경험이 근본적으로 정서적 경험임을 보임으로써 예술작품에 대한 경험이 본질적으로 정서적임을 주장하는 데 있으며, 다른 하나는 개념적, 명제적 요소라 할지라도 언제나 정서적 경험으로 주어지고, 나아가 개념적, 명제적 요소는 원초적인 정동적, 물리적 정서와 조화롭게 대비되는 한에서 미적 경험의 강도를 고양할 수 있다는 점을 화이트헤드의 체계안에서 논하는 것이다. 이 논문에서는 끝으로 감각과 명제가 의식 안에서 종합되는 특징적 방식을 통해 예술을 특성화하려고 하였다.


The expression theory of art, which is one of the essentialist definitions of art and provides the most basic view of understanding art until now. The purpose of this paper lies in exploring the possibility of expansion of it and characterizing art in an alternative way from the viewpoint of Whitehead's aesthetic ontology. The point of distinguishing the expression theory from other theories is that expressing or appreciating in art is about emotion. But this crucial thesis distinguishes expressionism from other theories and at the same time exposes the limits of not including other aspects of art. For example, the theory loses explanatory power when it faces artworks that do not focus on expression of emotions, or display conceptual ideas rather than emotions. Nevertheless, in this paper I attempted to defend the core premise of expression theory of art, that is, the emotional aspect, as essential in art, through the philosophical view of Whitehead, and furthermore argued the way in which its propositional(concept and idea) aspects can be legitimately subsumed to emotional aspects. One of the key tasks of this paper is to show that all experiences are fundamentally emotional experiences, beyond the arbitrary distinction of emotional and non-emotional, and the other is to discuss that even conceptual or propositional elements in the works of art are always given as emotional experiences, and furthermore, they can enhance the intensity of aesthetic experience insofar as they are in harmonious contrast with the underlying affectional and physical emotions through Whiteheadian metaphysical system. Finally, in this paper, I tried to characterize art in the specified way which experience integrates senses and propositions in conscious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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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들뢰즈-라이프니츠의 모나드와 영화 '겟 아웃'

저자 : 김연환 ( Kim Yeonhoan )

발행기관 : 한국영상미디어협회 간행물 : 예술과 미디어 17권 1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57-176 (2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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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규정불가능성은 뇌-이식 수술의 결과로부터 나타나는 이상한 얼굴의 표정과 신체의 태도, 몸짓, 행동들과 회상-이미지 너머의 알 수 없는 심층에 기인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표현들의 내생적 이유와 그 내적 무한으로서의 심층이 해명된다면 영화는 제한적으로 규정가능성 또는 정의가능성을 얻게 될 것이다. 이러한 가능성은 충족 이유, 상호 포함, 일방적 포함을 분석하면서 도출되는 주어-술어와 연관하여 물질적 심층으로서의 무한 속에서 발견된다. 우선 그 내생적 이유는 내적 무한으로 향하는 술어=사건=세계=미분적 비율과 주어=물질적인 질의 정도들과 그 변이성, 그리고 이를 표현하는 모나드에 있다.
그러나 뇌-이식 수술에 의해 한 사람의 모나드는 내적 무한으로 향하는 자신의 신체의 심층 속에 갇혀있으며, 이식된 다른 사람의 뇌의 '모나드-집적체'는 이 신체 전체를 자신의 소유물로 지배하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두 모나드 간에 충돌과 균열이 발생하며, 이 균열에 의해 표현은 이상한 표정과 신체의 태도, 행동으로 나타난다. 즉 두 모나드의 충돌과 균열사이에서 얼굴과 신체의 표현이 이상하게 변형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 논문은 하나의 신체 속에 두 모나드가 포함되는 원인으로서의 부분적 뇌-이식 수술의 조건과 그 가능성을 탐색하면서 회상-이미지와 그 아래의 신체적 심층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한다.


The film's undeterminability arises from the odd facial expressions and bodily attitude, gestures, and actions as well as the unknowable depths that go beyond reminiscence-images resulting from brain-implant surgery. Thus, when the endogenous reasons for these expressions and their inner-infinite depths are revealed, the film gains a limited determinability or definability. These possibilities are found within the infinity of material depths derived from an analysis of definitions, sufficient reason, mutual inclusion, and unilateral inclusion. The endogenous reason for the facial and bodily expressions is the predicate= event=world=differential ratio oriented towards inner infinity, as well as the subject=the material quality and variability of the degree of that quality and the monad that expresses them.
However, after the brain-implant surgery, the person's own monad is locked within the depth of the body's internal infinity, and the transplanted other's 'monad-aggregate' owns the entire body. Within this process, cracks occur between the two monads, and the expressions appear at that boundary through odd expressions on the face, body attitudes, and actions. That is, facial and physical expressions are oddly transformed between the two monad's conflicts and cracks. This paper attempts to explore the conditions of the brain-implant surgery as a cause from the point of view of its possibilities, and to discuss the reminiscence-images and the physical depths below t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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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미술관 회의론을 극복하기 위한 단초로서의 존 듀이의 '경험으로서의 예술'

저자 : 최정은 ( Choi Jeongeun )

발행기관 : 한국영상미디어협회 간행물 : 예술과 미디어 17권 1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77-197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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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단편적이지만 꾸준히 제기되어온 미술관에 대한 다각도 회의론의 비판들을, 크게 두 가지 논점, 즉 19세기로부터 제기되어 온 '맥락 제거에 대한 비판'과, 1990년대 이후 등장한 '정치 이데올로기적인 공간이라는 비판'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이론적 단초로서 존 듀이의 예술론을 검토해 보았다. 특히 본 논문은 듀이의 예술론에 있어서, 삶과 예술의 연속성 회복, 인간과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으로서의 예술, 그리고 작품의 의미와 가치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논의를 통하여 회의론을 넘어서고자 하였다.
필자는 듀이의 주장과 같이, 예술이 삶과의 연속성을 회복할 수 있다면, 예술 역시 그것의 맥락성을 되찾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회의론의 '맥락 제거에 대한 비판'은 극복될 수 있음을 논하였다. 그리고 듀이의 이론에 따라 삶과 예술이 다시 통합될 수 있다면, 예술은 권력과 자본의 이데올로기적인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고, 미술관도 정치와 자본에 의해 통제되는 공간이라는 1990년대 회의론의 비판을 극복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본 논문은 예술의 본질을 경험으로 여기는 듀이의 예술론이 작품의 의미와 가치의 변화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는 점을 살펴봄으로써, 미술사적 배치가 작품 해석에 있어서 미술관의 교조적 권력으로 작용하고 관람자를 이데올로기적으로 구성한다고 주장하는 현대 회의론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본 논문은 미술관에 관한 논의에 있어서 듀이의 예술론의 중요성을 밝힐 수 있었다. 듀이는 미술관에 대한 회의론의 입장을 취하면서도 자신의 이론 내에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단초를 심어둠으로써 오히려 미술관이 근대적인 전형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초기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미술관 회의론의 주요 논점들을 포괄하는 듀이의 미술관에 대한 비판과 경고는 오히려 미술관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하도록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This paper criticized skepticism about the art museum which has been presented in a piecemeal but steadily, two direction: criticism about the removal of the context which has been raised from the nineteenth century and criticism art museum as political ideological space. In particular, this paper sought to overcome skepticism on the basis of Dewey's art theory by discussing the restoration of continuity between life and art, the art as an transaction between man and environment, and the possibility of change in meaning and value of work.
I would argue that if art restored continuity with life, as Dewey argues, then art could regain its context and that skepticism's critique of the removal of the context could be overcome. If life and art were reintegrated according to Dewey's theory, art could overcome criticism of the' 1990s skepticism that museum was a space controlled by politics and capital ideologically.
Finally, this paper examined that Dewey's art theory, which considers the essence of art as an experience, opened up the possibility of changing the meaning and value of the work. As a result, this paper tried to overcome the arguments of 1990s skepticism that art historical arrangement of work in the museum serves as the doctrinal power in interpreting the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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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90년대 초 중국 아트 빌리지 형성에 관한 연구 - 원명원(圓明園) 아트 빌리지와 동촌(東村)을 중심으로 -

저자 : 정진링 ( Zheng Jinling ) , 정연심 ( Chung Yeonshim )

발행기관 : 한국영상미디어협회 간행물 : 예술과 미디어 17권 1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99-221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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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는 1990년대 초기, 중국의 경제 개혁과 더불어 문화적·정치적 중심지인 베이징에서 형성된 아트 빌리지 현상을 고찰한다. 1980년대 개혁개방 이후 호구(戶口)제도의 완화로 인구이동이 가능하게 되자 기존 체제에서 벗어난 일명 '망류(盲流)' 예술가들이 출현하게 되었다. '망류' 예술가들은 '원명원' 아트 빌리지와 '동촌'을 바탕으로 전업 예술가로의 생존과 활동의 새 방향을 모색해갔다. 1990년대 초, 아카데미 미술에서 발전한 신생대(新生代) 미술, '망류' 예술가들로 구성한 원명원에서 팡리줜, 웨이민줜, 양사오빈 등을 위시로 하는 냉소적 사실주의 미술(Cynical Realism), 원명원 이외의 작가 왕광이를 비롯한 정치적 팝아트(Political Pop) 그리고 동촌의 퍼포먼스 아트로 대표되는 개념미술 등이 미술계의 다원화를 이루었다. 1990년대 미술계의 격변기에 존재한 두 아트 빌리지는 비록 같은 시기에 베이징에 존재하였지만 서로 상이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원명원 아트 빌리지가 체제의 속박에서 벗어난 작가들이 지향하는 자유적인 삶의 방식과 미술시장의 구축에 일조하였다면 동촌의 작가들은 실제 생존 환경에 입각하여 신체로 개인과 급변하는 사회 환경의 갈등을 보여주는 아방가르드적인 작품을 선보였다. 두 아트 빌리지는 1995년, 당국에 의해 강제 철거당하였지만 현재는 베이징의 798예술구 등을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의 집단 거주 모델이 되었다. 두 아트 빌리지 지니고 있는 '호모사케르(Homo Sacer)'적 특징은 중국의 동시대 미술에서 아트 빌리지가 자생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This paper examines the phenomena and critical contributions of art villages established in Beijing, the center of culture and politics as well as economic reformation in China during the early 1990s. The household registration system being loosened during the 1980s after the reformation and opening did allow the movement of population. This led to the emergence of artists being freed from the existing system, so-called 'Mangliu' artists. They formed 'Old Summer Palace' Art Village and 'East Village' and sought new paths to survive and work as independent artists. Meanwhile, the two art villages existing in the same period were characterized differently. In Old Summer Palace Art Village, the artists being freed from the constraints of the system played roles in establishing liberal lifestyles and art markets they pursued. While in East Village, the artists were grounded on the actual environment for survival and introduced avant-garde works showing conflicts between individuals and rapidly changing social environment with their own body. The two art villages were forcibly torn down by the authority in 1995, but they formed the dwelling model for the current community living of many artists including 798 Art Zone in Beijing. At the end of this paper, the authors explore the two art villages' homo sacer characteristics laid the foundation of art villages spontaneously developing in the contemporary art of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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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차원 가상공간의 스튜디오를 활용한 스마트프린트 - VR360을 활용한 판화예술공방의 혼합현실 창작 모듈 구성 -

저자 : 임장훈 ( Lim Janghoon )

발행기관 : 한국영상미디어협회 간행물 : 예술과 미디어 17권 1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223-246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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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스마트 모바일의 환경에서, 판화 제작자와 매체 미술가들이 자신들의 예술적 자율의지로 창작한 창작물들을 자유롭게 창작―출시―판매―전시를 할 수 있는 기반으로 3차원 가상공간의 혼합현실 스튜디오를 구성하고자 한다.
본 연구의 목적은 스마트환경에서 3차원의 실재가 증강된 가상현실 방식을 활용하는 디지털 프린트의 판화 제작자와 매체 미술가의 창작을 위한 풍족한 스마트환경을 구축하는데 있다.
본 연구에서는 판화 제작자와 매체 미술가가 자신들의 예술적 자율의지로 자유롭게 창작해 나갈 수 있는 스마트환경에서 창작을 위한 3차원 실재가 증강된 가상현실의 패키지를 구성하고 어플리케이션스토어의 3차원의 가상공간에서 혼합현실의 창작 모듈을 구성한다.
이를 구성하여 판화 제작자와 매체 미술가가 마음껏 창작한 창작물을 무한한 온라인상에 창작―출시―판매―전시를 진행할 수 있도록 현재의 판화예술공방을 3차원 가상공간의 스튜디오로 구성하여 어플리케이션 사용자들의 사용자조사를 해보고 어플리케이션스토어에서 개인 창작-개발의 환경에 적용하여본다.


In the context of user smart mobile, this study intends to construct a mixed reality studio of 3D virtual space as a basis for creating, replicating, exhibiting and selling creative works created by printmakers and media artists with their a rtistic autonomy.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build a smart environment for the creation of digital printmakers and media artists who utilize a virtual reality system with three - dimensional reality enhanced in a smart environment. In this paper, I propose a virtual reality package that enhances the 3D reality for creation in a smart environment where printmakers and media artists can freely create their own artistic volition, consist of a realistic creative module. In order to create, reproduce, display and sell the works created by the printmakers and media artists on an infinite online basis, the current print arts studio is composed of studios in 3D virtual space, and apply it to the environment of personal creation- development in the application st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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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연안해역에서 석유오염물질의 세균학적 분해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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