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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학(구 호남문화연구) update

THE JOURNAL OF HONAM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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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호남문화연구(~2018) → 호남학(2019~)

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63)~68권0호(2020) |수록논문 수 : 562
호남학(구 호남문화연구)
68권0호(2020년 1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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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1공동체의 지속과 변화에 관한 체험주의적 해석

저자 : 표인주 ( Pyo¸ In-ju )

발행기관 :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간행물 : 호남학(구 호남문화연구) 6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33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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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회적 존재로서 다양한 인간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것은 기호적 활동으로 이루어지고, 의사소통이라는 의미 만들기 과정을 통해 세계와 존재를 경험하고 인식해 온 것이다. 여기서 인간이 경험의 유폐성을 극복하기 위해 의사소통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유기체적 생존의 문제이다. 의사소통이야말로 인간이 갈망하는 욕구 실현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에게 욕구의 실현은 의사소통을 통해 이루어지고, 의사소통이 경험의 유폐성을 극복해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사소통으로서 기호적 활동은 다양한 인간관계를 구축하도록 해주고, 그것이 가족공동체와 마을공동체 형성으로 전개된 것이다.
가족공동체가 생업방식에 따라 변화된다. 농경사회에서 농업노동은 생산과 삶의 방식이었고, 시간 인식에 따라 결정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농사에서 중요한 것은 계절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하고, 그에 따라 충분한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대가족을 선호했다. 대가족은 부계 중심의 수직적 구조에 근거한 의사소통 방식의 가족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전환되면서 많은 변화가 이루어진다. 산업노동에서 시간은 물질적으로 개념화되어 노동이 상품화되고, 농촌 인구의 감소와 도시화가 생산적 공간보다도 건조물적 공간의 가치를 확대시키며, 그에 따라 핵가족이 확산되었다. 핵가족이 계층 간의 수평적 의사소통을 다양하게 이루어지게 한다. 그러면서 정보통신의 발전과 정신노동이 급격히 증가하여 조작노동이 확대되는 지식정보산업사회로 전개된다. 시간의 속도를 강조하고 유통공간과 가상공간의 가치가 확대되는 삶의 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그것은 물리적 공간의 경계를 극복하고 통합적 삶을 확대하는데 중요하게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등장한 것이 수정가족이다. 수정가족은 핵가족이 갖는 물리적 경계를 극복하여 정서적 공감장으로 연대하는 가족을 말한다. 가족의 연대가 정보화에 따른 쌍방의사소통을 통해 이루어진다.
마을공동체가 노동방식에 따라 변화된다. 마을공동체는 공통의 생활공간을 물리적 기반으로 삼고, 구성적 공동체와 도구적 공동체로 구분된다. 농업노동이 중심이 되는 농촌마을의 구성적 공동체가 촌계이고, 두레와 상부계는 도구적 공동체이다. 이러한 공동체는 공통의 생활주거공간과 농업노동이라고 하는 공통의 생업방식을 물리적 기반으로 삼고 있다. 1970∼1980년대 새마을운동은 산업노동이 기반인 산업사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농촌마을이 새마을로 변화되는 중요한 계기이었다. 새마을의 구성적 공동체는 노인회, 청년회, 부녀회를 하위조직으로 구성하고 있는 마을총회이고, 도구적 공동체가 작목반이다. 작목반은 두레의 공동노동조직이 기호적 전이를 통해 변형된 원예농업의 생산조직이다.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농협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농협 또한 마을공동체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지방자치가 본격화되는 1995년 이후에도 지속되고, 문화마을 만들기 사업이 농촌과 도시에서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문화마을의 구성적 공동체는 마을총회이고, 도구적 공동체가 작목반이 기호적 전이를 통해 영농법인으로 전환되고 협동조합으로 확대된다. 그것은 마을에서 지역으로 확대되고, 구성원의 결속도 중요하지만 연대를 강조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공동체 변화의 중요한 요인은 노동방식과 공공정책이다. 노동방식이 농업노동→산업노동→조작노동으로 변화되어 확대되자, 가족공동체는 대가족→핵가족→수정가족으로 변화되고, 마을의 구성적 공동체인 촌계가 노인회-청년회-부녀회를 포괄한 마을총회로, 친목 및 의례적 기능의 도구적 공동체는 약화되지만, 공동 노동과 생산의 기능을 수행하는 도구적 공동체가 두레→작목반→영농법인으로 변화되었다. 이것은 시간과 공간 관념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시간은 공간 이동적 시간관념→물질 중심의 시간관념→속도 중심의 시간관념으로 변화되고, 공간이 생산적 공간→건조물적 공간→유통 공간/가상공간의 가치로 변화된 것이다. 그리고 공동체가 생산조건의 변화에 따라 영향을 받게 되고, 생산조건의 변화는 국가나 지자체에서 추진하는 공공정책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공공정책은 기본적으로 농촌마을의 경제성을 향상시키는데 주안점을 두고, 산업사회와 지식산업사회의 새마을운동과 <마을 만들기 사업>이 대표적인 예이다.


Human makes an effort continues to build various relationships as a social being. Symbolic action as communication, which is composed of symbolic action, build a variety of human relationship and develop family and village communities.
The family community is changed from the occupation. Because extended family, nuclear family, the modified family have based on agricultural, industrial, modified labor from agricultural, industrial, and modified knowledge-information society. As the method of labor has been extended for agricultural labor, industrial labor, and modified labor, the family community has changed from extended family to the nuclear family and modified family.
The village community is changed from the method of labor. The constructive community of the agricultural village being central to agriculture labor is Chongye, and the instrumental community is Durae and Sangbugye. Saemaeul constructive community from 1970 to 1980 is a village council composed of senior citizen association, young adult group, women's association as a subsystem, and commodity unit is the instrumental community. After 1995, a general meeting of a village is the constructive community in a cultural village. Also, the cooperative unit changed to a farming corporation from symbolic transmission has expanded cooperative as an instrumental co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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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나덕헌(羅德憲)의 『북행일기(北行日記)』 연구

저자 : 한의숭 ( Han¸ Eui-soong )

발행기관 :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간행물 : 호남학(구 호남문화연구) 6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35-62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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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초상은 기록의 흐름 속에서 윤곽이 그려진다. 이를 통해 한 인간에 대한 표폄이 후대에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는 그만큼이나 기록의 객관성과 엄정성의 확보를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측면에서 일기는 개인 기록이긴 하나 역사의 공백을 보충하는 사료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본고는 호남 지역 출신 인물인 羅德憲(1573∼1640)의 『北行日記』를 주목한 것에 해당된다. 나덕헌의 『북행일기』는 춘신사로 1636년 2월 9일부터 4월 29일까지 수행한 여정을 기록한 사행일기에 해당된다. 해당 사행에서 나덕헌은 후금 황제의 남교 즉위식에 하례 문제와 황제참칭의 국서를 받아온 것으로 인해 곤란을 겪게 되었으나, 이후 청나라의 문서 자료를 통해 누명이 벗겨지기도 하였다. 이후 나덕헌에 대한 전기 자료가 다수 창작되었는데, 이것들의 기초적 자료라 할 수 있는 게 바로 『북행일기』이다.
『북행일기』는 단순한 사행 여정에 대한 기록에 중점을 두기보다 조선과 후금 사이의 외교를 중심으로 팽팽한 긴장 관계를 진술한 보고서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때문에 『북행일기』에서는 지역 문화와 지역민의 생활 및 풍경에 대한 묘사나 서술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또한 『북행일기』는 여타 실기와 달리 장황한 세부 묘사나 자기 변명적 논설에서 한걸음 비껴나 있다. 대화 방식에 바탕을 둔 서술을 통해 현장감을 살리는데 중점을 두고 있는 게 그것이다. 이와 함께 기록이 조작이나 왜곡의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담백하게 사실을 진실성 있게 기록하는 형태를 강조하였다.
『북행일기』는 후대 문인들에 의해 다수의 나덕헌 전기가 창작될 수 있었던 중요한 원천이었다. 나덕헌은 병자호란 전후에 걸쳐 후금과의 관계 속에서 조선의 節義를 표상하는 상징으로 존재가 부각되었다. 『북행일기』의 기록은 나덕헌이란 인물이 현양되는 과정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북행일기』는 사적 일기 또는 춘신사행의 기록으로 단순히 취급될 수 없다. 일기임에도 공적 기록의 성격을 띄고 한 개인의 삶에 절대적 영향력을 미치며, 후대에 표상될 수 있는 증명 자료로 소환되었다는 점에서 그 위상을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다.


The portrait of man is outlined in the flow of records. This will lead to denigrating of a human being in the future, which also calls for securing objectivity and strictness of records. In this respect, the diary is a personal record, but it plays an important role as a feed to fill the void in history. This paper corresponds to the attention of Na Deok-heon(羅德憲, 1573-1640)'s 『Buk-haeng-il-gi』, a figure from the Honam region. Na Deok-heon's 『Buk-haeng-il-gi』 corresponds to the record of his journey from February 9, 1636 to April 29, 1636. Na Deok-heon was in trouble for attending the royal ceremony of Namgyo and receiving the royal books of Emperor, but he was later cleared of the charge through documents from the Qing Dynasty. A number of biographical materials about Na Deok-heon were created, and the basic material of these was the 『Buk-haeng-il-gi』. Rather than focusing on the record of a simple journey, 『Buk-haeng-il-gi』 is important as a report that states the tense relationship between Joseon and Who-Geom, focusing on diplomacy. Therefore, in 『Buk-haeng-il-gi』, the statement and the description of local culture, the life of local people and its scenery are rarely noticeable. In addition, 『Buk-haeng-il-gi』 is a step away from lengthy detailed descriptions and self-evident editorials. The focus is on reviving the sense of realism through descriptions based on dialogue methods. And, it emphasized the form of recording facts in a simple and sincere manner so that the records could be free from charges of manipulation or distortion. 『Buk-haeng-il-gi』 was an important source of many Na Deok-heon's biographies for later writers. Na Deok-heon's existence was highlighted as a symbol of Joseon's integrity before and after the Manchu invasions. The record of 『Buk-haeng-il-gi』 is very important in the process of Na Deok-heon being enshrined. Therefore, 『Buk-haeng-il-gi』 cannot be simply treated as a private diary or a record of Chun-shin-sa-haeng. Although it is a diary, it is necessary to establish its status in that it has the character of a public record, has an absolute influence on a person's life, and has been summoned as a proof that can be reflected in future gener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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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이주(移住)의 서사(敍事)와 고려인 공동체의 미래 ― 광주 고려인마을 거주 고려인의 구술생애담을 대상으로 ―

저자 : 한정훈 ( Han¸ Jeong-hoon )

발행기관 :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간행물 : 호남학(구 호남문화연구) 6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63-115 (5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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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광주 고려인마을에 거주하는 이주민 고려인의 구술생애담을 대상으로 개인과 공동체의 문제를 다양한 층위에서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고려인은 강제 이주 후에 소비에트 체제에 철저히 동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려인은 '소비에트 인민'으로서 집단의 정체성을 구성하면서 구소련 사회에 나름의 입지를 구축했다. 구소련이 해체된 이후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정치·경제·사회적 측면에서 불안정이 계속되었고, 고려인은 기존의 정체성과 사회적 지위를 유지할 수 없었다. 경제 발전을 이룩한 한국은 고려인이 이주하기에 매력적인 장소였다. 하지만 한국은 낭만적으로 상상했던 '조상의 나라'가 아니었다. 신자유주의 체제와 각종 효율성이 일상을 지배하는 장소였다. 고려인은 외모가 비슷할 뿐, 현대의 한국인과 동일할 수 없는 위치에 있음을 깨닫는다. 끊임없이 접촉해 오는 타자적 시선은 한국 사회에서 나름의 사회적 정체성 정립을 고려인에게 요구했다. 고려인의 한국 이주가 시간이 지나면서 세대를 달리하며 이어지고 있다. 본 연구는 고려인의 한국 이주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진행되었고, 그 과정에서 고려인 개인과 그들의 공동체가 어떤 대응을 하였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나아가 고려인의 이주 세대가 바뀌어감에 따라 어떤 문제들이 새롭게 적층해 가고 있는 살펴보고자 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problems of individuals and communities from various levels focusing on oral life narratives of migrants, Goryeo people living in the Goryeo people village in Gwangju city. Goryeo people began to assimilate thoroughly into the Soviet system after the forced migration. And Goryeo people, as 'Soviet People', formed their own position in the former Soviet Union, establishing an identity of the group. After the dissolution of the former Soviet Union, Central Asian countries continued to be unstable in terms of politics, economy and society, and Goryeo people were unable to maintain their existing identity and social status. Korea, which achieved economic development, was an attractive place for Goryeo people to migrate. But Korea wasn't the 'country of ancestors' that was romantically imagined. The country is where the neoliberal system and various efficiencies were the dominance of everyday life. Goryeo people realize that their appearances are similar, and that they cannot be identical to modern Koreans. The constant contact with people with third-party eyes demanded Goryeo people to establish their own social identity in Korean society. Goryeo people's migration to Korea continues over generations as time goes. This study attempts to examine how Goryeo people's migration to Korea has progressed, and in the process, how Goryeo people and their communities responded. Furthermore, this study attempts to investigate what problems are newly stacked up as the migration generation of Goryeo people chan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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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재 박광옥의 의병활동과 추숭

저자 : 김만호 ( Kim¸ Man-ho )

발행기관 :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간행물 : 호남학(구 호남문화연구) 6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17-143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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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초기 호남의병의 창의를 주도했던 인물은 고경명과 김천일이 대표적이다. 고경명은 광주출신으로 담양에서 거의하였으며 호남 최대 규모인 6,000여명의 의병을 이끌었다. 김천일은 나주출신으로 호남의병 중 가장 빠른 시점에 의병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주목되었다. 두 의병장에 대한 생애와 의병활동에 대해서는 기존연구에서 이미 검토된 바 있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 호남의병 창의를 가능케 했던 박광옥(朴光玉, 1526∼1593)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
물론 박광옥은 임진왜란 당시에 이미 고령이었기 때문에 실제 전투에 참여하지 못했으며, 1593년이라는 이른 시점에 사망하였기 때문에 그의 활약상이나 관련 기록이 충분치 못한 점은 인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 초 호남의병의 성군(成軍) 과정 및 후방에서 끊임없이 지원했던 박광옥의 활동을 살피는 것은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본고에서는 박광옥의 의병활동 및 그와 함께 활동했던 주변 인물들을 검토하였다. 또한 박광옥 사후에 진행된 지역 사림들과 후손들의 추숭활동을 살펴 조선후기 호남 지역의 사회 분위기 이해에 도움을 주고자 했다. 싸우다가 죽은 유명한 의병장들 뿐만 아니라, 그들을 지원하는 데에 전력을 다 했던 박광옥을 통해 호남의병에 대한 이해의 폭이 조금 더 넓혀졌으면 한다.


The key figures who took the lead in raising righteous army in Honam(湖南) during the early days of the Imjin War were Go Gyeong-myeong(高敬命) and Kim Cheon-il(金千鎰). Go, hailing from Gwangju, raised righteous army in Damyang and led the region's largest 6,000-strong army. Kim, who came from Naju, raised righteous army, the earliest such instance in the region. The two leaders' lives and their role in the righteous army have been discussed in previous studies. However, little is known about Park Gwang-ok(朴光玉 1526-1593) who, along with Go and Kim, made it possible to raise righteous army in Honam.
Of course, Park could not participate in the actual action as he was too old when the Japanese invasion occurred. As he died in the early years of the war, in 1593, historical records of his leadership remain meager. Nonetheless, it should be significant to scrutinize the formation of the righteous army in the early days of the war and Park Gwang-ok's endless support on the home front.
Thus, this paper has reviewed Park's righteous army activities and those of the people who worked with him. The study further aims to help understand the social ambience in Honam in the late Joseon Dynasty period by researching the worship of Park by the region's Confucian scholars and his descendants after his death. In addition to our understanding of famous righteous army leaders who fought to their death, revisiting the life of Park Gwang-ok who went all out to support them should deepen our understanding of the righteous army that rose in Ho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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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節義'와 '節義之士' 그리고 '杜門洞 72현'

저자 : 김병인 ( Kim Byoung-in ) , 이성원 ( Lee Sung-won )

발행기관 :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간행물 : 호남학(구 호남문화연구) 6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45-196 (5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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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의(節義)'는 “신념을 굽히지 않는 꿋꿋한 태도와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뜻한다. 고려말 조선초 절의의 상징적 인물은 이색, 길재, 정몽주 등이며, 이들을 '절의지사(節義之士)'라고 부른다. 그런데 고려시대 '절의'의 용례를 살펴보면, 이런 뜻으로 사용된 경우를 찾을 수 없다. 고려시대 '절의자'는 '절부(節婦)'와 '의부(義夫)'의 합성어로서, 국왕의 진휼 대상이었다. '절의지사'는 조선 초 권근이 태종의 정치적 입장을 반영하여 새로운 인재 등용을 위해 '절의있는 선비'를 추숭하면서부터 등장한다. 당시 태종의 입장에서는 신왕조 개창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새로운 인재가 필요하였다. 이에 '불사이군'을 내세워 은둔해 있던 고려왕조의 신료들을 자신의 세력으로 포섭하기 위하여 그들을 '절의지사'로 격상함으로써 괸직에 진출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한 것이다.
'두문동 72현'은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끝까지 관직에 나가지 않고 충절을 지킨 72인의 고려 유신”을 뜻한다. 두문동 72현이 세상에 구체적 모습을 드러내며 '역사화' 된 것은 조선후기 영조 16년(1740)이다. 이때 '경신처분'으로 정국을 주도하게 된 영조가 '의리명분'을 강조하여 왕권을 강화하고 세력을 규합하기 위한 방편으로 '두문동 72현'을 '절의를 지킨 인물'로 추앙하면서 역사적 존재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72현'은 '공자 제자 72현'처럼 상징적인 것이며, 이에 대한 구체적인 명단은 처음에는 존재하지 않다가 조선 후기에 이르러 자신의 조상을 72현의 명단에 넣으려는 후손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졌다. '두문동 72현'의 명단과 관련해서 다양한 문헌 자료가 존재하는데, 이것은 자신의 선조를 '절의지사'로 추앙함으로써 현실적인 이익을 취할 수 있는 당파, 가문, 후손의 영향력이 작용한 것이다.


'Jeolui (integrity)' means “a strong attitude that does not bend the convictions and the moral principles that a person should keep as a person. The symbolic figures in the late Goryeo dynasty and the early Joseon dynasty were Lee Saek, Giljae, and Jeong Mong-ju, and they are called 'Jeoluijisa' meaning a scholar of integrity. However, when we examine the usage of 'jeolui' in the Goryeo Dynasty, we cannot find a case where it was used in this way. In the Goryeo Dynasty, 'jeoluija' was a compound word of 'Jeolbu (faithful wife)' and 'Uibu (faithful husband)', and was the subject of the relief from the king. The word of Jeoluijisa' appeared in the early Joseon Dynasty when Kwon Geun praised a 'scholar of integrity' to recruit new talents, reflecting the political position of King Taejong. At that time, in his position, King Taejong needed new people with talents who could help him even though they had not participated in the opening of his new dynasty. Accordingly in order to attract the officials of the former dynasty who had been secluded with the principle called 'Bulsaigun (meaning refuse to serve two kings)', he praised them by elevating to 'Jeoluijisa', which gave them a justification for the political position.
“Dumundong 72Hyun” means “72 Goryeo officials who kept their integrity for the former king without going to the new dynast until the end when Goryeo dynasty fell and Joseon was founded. It was in the 16th year of King Yeongjo (1740)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at Dumundong 72Hyun became “historical” by revealing their concrete appearance to the world. At this time, King Yeongjo who led the government through the 'Gyeongsin-cheobun' strengthen the royal power by emphasizing 'Uiri-myeongbun (loyalty and justification)', and prased 'Dumundong 72Hyun' calling 'those who keep their integrity', which was a way to attract his power group. As a result, 'Dumundong 72Hyun' came to appear as historical. 72Hyun is symbolic like '72 Hyun of Confucius' disciples', and its specific list did not exist at first, but in the late Joseon Dynasty, it was created with the efforts of descendants who wanted to put their ancestors on the 72 Hyun list. In relation to the 'Dumundong 72 Hyun' list, there are lots of literature sources, as there exist various influence by the factions, families, and descendants who want to make realistic profits by honoring their ancestors as 'Jeoluiji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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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성금연류 가야금산조 조현법 연구 ― 1950년대 음원을 중심으로 ―

저자 : 추정현 ( Chu¸ Jeong-hyun )

발행기관 :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간행물 : 호남학(구 호남문화연구) 6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97-232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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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1950년대에 발매된 성금연의 세 음원 King Star K5955, Oasis 5560, 킹스타 KSM-1085 진양조를 채보하여 조현법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살펴보았다. 또 최초로 가야금산조 음원을 남긴 김해선과 성금연의 스승인 안기옥의 진양조 음원을 성금연의 King Star K5955 음원과 비교해 보았다. 이를 통해 성금연류 가야금산조의 변화양상을 살펴볼 수 있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가야금의 '지'줄을 'B'음으로 조현하는 현재의 조현법과 달리 King Star K5955 음원에서는 단2도가 높은 'c'음에 맞춰 조현하였는데, 이러한 현상은 1920년대 유성기 음반에 전하는 김해선과 안기옥의 산조 음원, 1960년대 김윤덕의 산조 음원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둘째, 킹스타 KSM-1085 음원 중 진양조와 Oasis 5560 음원에서는 '지'줄을 'B'음과 'c'음 중간 높이의 음으로 조현하여 산조를 시작하였다. 이는 King Star K5955에 비해 '지'줄이 낮아진 것인데, 이렇게 조현하는 현상은 성금연이 연주한 가야금산조의 다양한 음원과 그 딸들의 음원에서도 나타났다.
셋째, King Star K5955 음원과 Oasis 5560 음원에서는 13현 가야금으로 겹청조현법을 사용하였는데, 맨 아랫줄을 '흥'(G′)줄보다 한 옥타브 아래인 '청'(G″)줄로 조현함으로써 산조가야금으로 연주하는 것보다 음역이 확대되었다.
넷째, 성금연의 King Star K5955 음원에서는 평조로 진양조를 시작하였는데, 이는 성금연의 스승인 안기옥이 남긴 진양조 음원이 평조로 시작하는 것과 동일하다. 또 성금연과 안기옥의 평조는 최초로 가야금산조 음원을 남긴 김해선의 평조와 조현법이 동일하고, 같은 선율을 연주하고 있어 성금연의 King Star K5955 음원이 초기 가야금산조의 모습을 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늘날의 조현법보다 '지'줄을 단2도 높게 조현했던 성금연이 후에 '지'줄을 낮게 맞춰가며 산조를 만들어간 현상은 음계에까지 변화를 주는, 말하자면 산조의 음악적인 구성 체계를 바꾸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This study investigated how tuning methods had been changed by transcribing Jinyangjo of three recording sources: King Star K5955, Oasis 5560, and King Star KSM-1085 by Seong Geum-yeon released in the 1950s. In addition, this paper compared Jinyangjo of Kim Hae-seon, who left the Gayageum Sanjo recording for the first time, and Ahn Gi-ok, the teacher of Seong Geum-yeon, with the King Star K5955 by Seong Geum-yeon. Through this analysis, it was possible to examine the aspect of transition of Seong Geum-yeon Ryu Gayageum Sanjo. The results are as follows.
First, unlike the current tuning method in which the Gayageum's ji string is tuned to the 'B' sound, the King Star K5955 recording was tuned to the 'c' sound as a minor second higher tone, and this method was also confirmed in the Gayageum Sanjo of Kim Hae-seon and Ahn Gi-ok in the 1920's gramophone records, and the Sanjo recording by Kim Yoon-deok in the 1960s.
Second, Jinyangjo in King Star KSM-1085 and Oasis 5560 started Sanjo tuned with the ji string as sound in the middle of the 'B' and 'c'. Compared with the King Star K5955, the ji string was lowered, and this method was also revealed in the various recording sources of Gayageum Sanjo played by Seong Geum-yeon and their daughters.
Third, the Sanjo of the King Star K5955 and the Oasis 5560 used a double-cheong tuning method with 13-string Gayageum, which extended tone register, compared with the playing of Sanjo Gayageum, by tuning the bottom Heung (G′) string to an octave lower Cheong (G″) string.
Forth, in Seong Geum-yeon's King Star K5955 recording, Jinyangjo was started with Pyeongjo, which is the same as the Jinyangjo left by Ahn Gi-ok, Seong's teacher. In addition, the tuning method of Pyeongjo by Seong Geum-yeon and Ahn Gi-ok was the same as that of Kim Hae-seon, who left the first Gayageum Sanjo recording, and they played all the identical melody. Therefore, it was confirmed that the recording source of Seong Geum-yeon's King Star K5955 contained the shape of the early Gayageum Sanjo.
The fact that Seong Geum-yeon tuned the ji string as a minor second higher sound than today's tuning method and later composed the Sanjo by adjusting the ji string lower might have been an important turning point in changing the scale, namely musical composition system of San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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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나주 남평주조장 소장자료의 가치와 활용방안

저자 : 고정서 ( Ko¸ Jeong-seo )

발행기관 :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간행물 : 호남학(구 호남문화연구) 6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33-260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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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나주 남평주조장 소장자료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 가치를 살펴보았고 이 자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논하였다. 나주 남평주조장은 1932년 5월 15일 남평주조주식회사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다. 조선 탁주 제조 및 판매가 목적이었고, 1대 대표는 나가사코쿤이치로(長迫訓一郞)로 이사 4명, 감사 2명의 운영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1938년 5월 31일 주식총회 결의로 해산되었다. 토지대장에 의하면 남평주조주식회사 소유토지와 건물은 1938년 1월 22일 박창환에게 이전되어 양로양조장으로 운영되었다. 이후 그의 아들인 박재기가 인수하여 운영하였고, 박재기의 아들 박순호에게 증여되어 1988년 남평주주장으로 이름이 바뀌어 운영되었다. 남평주조장은 2000년대 초반 대표자가 이광열로 바뀌었고 2015년 10월 소유권이 윤태석 현 자료 소장자에게 이전되어 운영되어 오다가 현재 영업이 중단된 상태이다.
남평주조장 소장자료는 2018년 5월 현지 조사 시 1차로 수집된 것으로 총 1,288종 2,318점이 정리되어 목록화하였다. 정리된 자료는 크게 도면/지도류, 도서류, 문서류, 사진/필름류, 신문/잡지류, 유물류 등 5개의 대분류로 분류하였고, 이는 내용의 특성상 다시 21개의 중분류로 분류하였다. 자료의 시기는 근·현대이고 남평주조장에 대한 운영, 인사채용, 주조 등 직접적인 관련 자료 뿐만 아니라 소송, 편지, 사진 등 지역의 생활문화 관련 자료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정리된 남평주조장 소장자료의 가치는 다음과 같다. 먼저 근·현대 기록문화유산로서의 가치이다. 둘째는 남평주조장 막걸리 주조 기술과 주조방식에 대한 활용 가치이다. 셋재는 지역의 주류제조와 판매 및 유통에 대한 자료적 가치이다. 넷째는 근대 건축물로서 공간의 복원과 활용적 측면에서의 가치이다. 마지막으로 남평주조장이 지역에서 가지는 생활문화사적 연구자료의 가치이다.
이러한 남평주조장 소장자료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 가치는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로 생각해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근·현대 기록문화 유산에 대한 분류 및 정리방식의 표준안 마련이 필요한데 현재 진행하고 있는 남평주조장 소장자료 정리 및 목록화작업은 표준안을 만드는데 하나의 지표로써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남평주조장의 건물 복원과 함께 남평오일장, 근대 건축물 등을 아우르는 남평지역의 근·현대역사문화 공간으로 재탄생을 구성하는데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지역민과 함께하는 지역문화콘텐츠 개발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으며, 마지막으로 지역의 기록화 작업을 진행하는데 중요한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The study reviewed of the meaning and value of the materials held by Naju Nampyeong Brewery and discussed how to utilize them. Naju Nampyeong Brewery was established on May 15, 1932 with the name of Nampyeong Brewery Co., Ltd. Its business purpose was manufacture and sales of Joseon unrefined rice wine. Its first CEO was Nagasako Kunichiro and management included four executive directors and two auditors. Then, somehow, it was dissolved on May 31, 1933 by a resolution at the general meeting of shareholders.
According to Land Registration, the land and building of Nampyeong Brewery Co., Ltd. were transferred to Chang Hwan Park, who ran the company as Yangro Brewery. Later, Jae Gi Park, his son, acquired and operated it and turned it over to Sun Ho Park, Jae Gi Park's son, who ran the company under a new name of Nampyeong Brewery in 1988. Nampyeong Brewery got a new CEO of Gwang Yeol Lee in early 2000s and again, was transferred to Tae Seok Yun, current owner of the materials in October 2015, after when the business was halted.
The materials held by Nampyeong Brewery are what have been collected in May 2018, by an on-site survey for the first time. A list was made of the materials comprising a total of 1,288 kinds of 2,318 items. They were classified into five large categories of drawings/maps, books, documents, photos/films, news papers/ magazines, and keepsakes, which, in turn, were reclassified into 21 medium categories. The time of the materials is modern and contemporary times. They include not just those materials related to the operation of the brewery such as management, employment, brewery, etc., but also the materials related to the living culture of the area such as lawsuits, letters, photos, etc.
Those materials in the survey and held by Nampyeong Brewery have following value: Firstly, they have the value as recorded cultural heritage for the modern and contemporary times. Secondly, they have the value to utilize the brewing technique and methods for Makgeoli (unrefined rice wine) of the Nampyeong Brewery. Thirdly, they have the value as materials on the manufacture, sales and distribution of Makgeoli in the region. Fourthly, they have the value in the aspect of restoration and utilization of the space as a modern building. Lastly, they also have the value as research materials for the living culture history in th region of Nampyeong Brewery.
These meaning and value of the materials held by Nampyeong Brewery can be considered as a subject about the way of utilization of those materials. Basically, we need a standard for the classification and arrangement of the recorded cultural heritages of modern and contemporary times. Current task of sorting and listing the materials held by Nampyeong Brewery can be utilized as a guide to prepare the standard. And, the task can be used for the restoration of the Nampyeong Brewery building as well as planning for the rebirth of the space as a place of modern and contemporary times in Nampyeong area. The materials can also be utilized as a resource for developing regional cultural contents along with local community people, and lastly, as an important resource for proceeding with records restoration work in the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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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초고령사회 지역 노인여가문화의 지리적 특성 연구 ― 전라남도를 중심으로 ―

저자 : 박종천 ( Park¸ Jong-chun )

발행기관 :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간행물 : 호남학(구 호남문화연구) 6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61-296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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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초고령사회 지역인 전라남도 동부지역 내곡성군, 구례군, 고흥군, 보성군을 연구지역으로 노인 여가시설의 현황과 여가 프로그램 참여비율 및 운영 실태를 지리적 측면에서 검토하였다.
연구결과 각 지역별 노인여가복지시설의 유형과 여가프로그램의 유형과 참여정도는 서로 상이하였다. 연구지역에서 운영하는 32개 여가프로그램을 건강교실, IT교육, 교육교실, 음악교실, 취미교실로 5개로 유형화하여 확인하였다. 전체 참여율이 높은 여가프로그램은 취미교실, 건강교실, 교육교실, 음악교실, IT교육 순으로 나타났다.
고흥군은 건강교실, 보성군은 교육교실, 곡성군은 취미교실, 구례군은 건강교실과 취미교실을 중심으로 여가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지역적 차이를 보였다. 이는 지역의 특성과 참여자의 요구와 더불어 관련 교육기자재의 보유 여부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확인되었다. 특히 곡성군은 종합사회복지관 같은 시설이 존재하지 않아 IT교육이 어려웠고, 보성군은 노인들의 단체 참여형태의 평생대학원과 행복교실을 운영하는 특징을 보였다.
지역의 노인복지관이나 종합사회복지관의 유무에 따라 여가프로그램의 양적 질적 차이가 현저하게 나타났으며, 여가복지시설의 운영프로그램 참여요인으로는 교통 접근성이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와 지방정부는 여가복지시설에서 운영되는 노인여가 프로그램을 정부가 개발하여 지역에 보급하고, 지역 특성에 맞는 여가프로그램을 추가하여 지리적으로 편차를 보이는 노인의 여가 프로그램에 누구나 참여하여 소외받는 노인이 없는 여가활동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제도적 정비와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This study examines the current status of leisure facilities for the elderly, the participation rate of leisure programs, and the actual status of operation over Gokseong-gun, Gurye-gun, Goheung-gun, and Boseong-gun in the eastern region of Jeollanam-do, which is a representative super-aged society in Korea.
The result shows difference in the type of leisure welfare facilities for the elderly and the type and the degree of participation of leisure program depending on the regions. The 32 leisure programs operated in the research area could be categorized into 5 types: health class, IT education, education class, music class, and hobby class. Leisure program with the highest participation rate in all regions is hobby class, and health class, education class, music class, and IT education follows.
The highest participating leisure program in each region, which is health class in Goheung-gun, education class in Boseong-gun, hobby class in Gokseong-gun, and health class and hobby class in Gurye-gun respectively. This is affected by retention of educational tools and material as well as regional characteristics and needs of participants. In particular, Gokseong-gun does not have facilities such as a general social welfare center, having a difficulty to proceed IT education, and Boseong-gun is characterized by operating lifelong graduate schools and happiness classes in the form of group participation of the elderly.
Depending on the presence of a local elderly welfare center or a general social welfare center, the difference of leisure programs is remarkable quantitatively and qualitatively in both, and the transportation access significantly affects on the participation of the program operated in leisure welfare facilities. This result suggest that the central and local government should develop and distribute the leisure program for the elderly operated in leisure welfare facilities and add appropriate leisure program considering regional characteristics, which encourages whoever to participate leisure program without exclusion by supporting institutional maintenance and policy sup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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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군산과 목포화교의 비교연구 ― 초기 이주과정과 일제 강점기 상업활동을 중심으로 ―

저자 : 양세영 ( Yang¸ Se-young )

발행기관 :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간행물 : 호남학(구 호남문화연구) 6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97-333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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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고는 호남의 대표 항구이자, 개항과 일제강점기의 유사한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며 호남지역에서 화교의 진출과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군산과 목포를 대상으로 화교사회에 대한 비교연구를 시도하는데 목적이 있다. 연구의 초점은 두 도시에 거주했던 화교들의 이주와 상업활동에 있어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굴하고 그 이유를 규명하는데 두고자 하였다.
본 연구의 결과는 이러한 예상과 부합되는 많은 공통점을 보여주었으나 동시에 차이점도 상당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공통점으로는 먼저 개항이후 적어도 1937년 중일 전쟁 이전까지는 지속적으로 화교인구가 성장세를 보였다는 점이다. 또한, 포목점을 비롯한 상업활동이 화교사회의 핵심 사업이었다는 점이다. 셋째, 일제의 견직물 고관세 조치에 사업구조를 개편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상업활동을 지속하였다는 점이다. 넷째, 금융활동 측면에서 적극적인 대출과 아울러 높은 저축률을 통해 건실한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사업활동을 영위하였다는 점이다.
차이점은 먼저 군산이 도시 전체인구는 목포 보다 적었지만 대부분의 시기에 화교인구는 2배 이상의 규모를 유지했다는 점이라 할 수 있다. 둘째, 군산은 포목업과 잡화점을 함께 운영하였고 판매방식도 도매와 소매를 겸업하는 형태인데 반해 목포는 상대적으로 도매와 소매가 구분되는 방식으로 영업을 하였다는 점이다. 셋째, 포목업의 경우 군산은 서울과 인천에 있는 대형상점의 지점형태가 주류를 차지한 반면 목포는 지역상인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사업형태를 보였다는 점이다. 넷째, 금융활동면에서 목포는 군산과는 다르게 예금액이 대출액을 능가하거나 균형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보다 튼튼한 재무구조를 형성했다는 점이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공통점과 차이점이 나타난 이유에 대해 시대적 및 지역적 배경을 통해 분석을 시도하였다. 향후 이 부분은 보다 다양한 차원에서 분석이 이루어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try comparative research on the society of Overseas Chinese(Hwagyo) in Gunsan and Mokpo, which were the most active ports in the Honam region and shared similar historical experiences in the period of opening ports and Japanese colonial eras, and in which Overseas Chinese activities were most activated. The focus of the study was to find common ground and differences in the migration process and commercial activities of Hwagyo in the two cities and to find out why.
The results of this study showed many commonalities consistent with these expectations, but at the same time, the differences were significant. In common, the population of Hwagyo continued to grow until at least the Sino-Japanese War in 1937 after the opening of the port. In addition, commercial activities, textile sales in particular were the core business of the Hwagyo society in two cities. Third, they continued their commercial activities by actively responding to the Japanese government's high tariff measures on silk fabrics, including the reorganization of the business structure. Fourth, the companies of Hwagyo engaged in business activities based on a sound financial structure, as evidenced by its active lending and high savings rates in terms of financial activities.
The difference is that though the entire population of Gunsan was smaller than Mokpo, the population of Hwagyo was more than doubled in most times. Second, The textile companies of Hwagyo in Gunsan operated a wholesale and retail store together, while in Mokpo operated separately. Third, the textile business of Hwagyo in Gunsan was running by the branch types of large stores in Seoul and Incheon, while in Mokpo by their own business style centered on local merchants. Fourth, in terms of financial activity, Mokpo, unlike Gunsan, has formed a stronger financial structure in that deposits exceed or balance loans.
This paper attempted to analyze the reasons for these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through historical and regional backgrounds. In the future, this part needs to be analyzed at a more diverse le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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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해남윤씨(海南尹氏) 재실(齋室)건축 연구 ― 강진 추원당과 영모당을 중심으로 ―

저자 : 최정미 ( Choi Jung-mee ) , 천득염 ( Cheon Deuk-youm ) , 이효원 ( Lee Hyo-won )

발행기관 :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간행물 : 호남학(구 호남문화연구) 6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335-368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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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강진군 도암면 계라리와 강정리에 위치한 해남윤씨추원당(海南尹氏追遠堂)과 영모당(永慕堂)은 우리에게 어부사시사로 널리 알려진 고산 윤선도(1587-1671) 문중의 재실(齋室)이다. 강진은 해남윤씨 재실 중에 건립년도가 가장 오래된 추원당과 시조부터 7대조를 모신 묘역이 조성된 영모당이 있는 곳으로 다른 지역과는 의미가 다르다. 재실건축은 문중의 입향조나 중시조를 모시고 이를 중심으로 제향 공간을 구성하는 것으로 향교나 서원과 같은 유교관련 건축과는 조영의미가 다르다. 재실이 다수 건축되는 것은 이 공간이 향촌을 중심으로 형성된 씨족사회의 구심점이 되는 건축이며, 그 공간 안에서 문중의 결집이 형성되고 발현되는 결과이기에 그 건립 이유를 유추 해볼 수 있다. 재실을 일구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동력으로 문중의 조직력과 경제적 능력이 따라야 하며, 조영의 방법도 영향을 받는다. 본 연구는 강진 해남 일대 60여개에 이르는 재실건축을 이루어낸 해남윤씨 문중을 중심으로 가장 구심점이 되는 두 건물인 추원당과 영모당을 비교 분석한 연구이다. 두 건물 사이에 어떠한 건축인자가 존재하며 변화하는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건축 구성요소를 분석 정리한 결과이다.
문중 내 건축조영은 기본 모델이 되는 건물을 중심으로 계승되는데 의장형식과 규모는 시간의 흐름과 조영의 주체, 경제력에 따라 변화한다. 본 연구는 재실건축의 공간구성과 구성요소의 변화와 정착의 과정을 두 건물을 중심으로 비교 분석하며, 그 차이를 분석하였다. 또한 기본 모델이 되는 건물에서 어떠한 건축 구성 인자가 변화하여 완성되는지를 분석하는 것이 연구의 목적이다. 연구 분석 방법은 분석대상의 개요를 살펴 본 후 조성의 배경, 배치 및 입지여건, 공간구성, 공포 및 가구구성 등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고찰된 결과는 주연구방법인 비교와 차이분석을 통해 건축적 특성 규명을 하고자 하였으며 문중 내 건축 조영에 영향을 주는 관계적 요인까지 분석하고자 하였다. 이 연구를 통해 해남윤씨가의 재실 건축 조영에 있어 추원당이 기본모델이 되고 영모당으로 계승 되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선대의 건축을 따르며 보완 발전하는 것은 재실뿐만 아니라 주거건축에서도 나타나는데 이는 해남윤씨가의 큰 특징이다. 본 연구는 실측조사를 통한 실증적 연구로 형태 분석을 통한 문중내의 재실건축 구성인자를 정리 한 것으로 제례, 사회사와 같은 요인을 반영하지 못하였다. 본 연구가 연구의 대상이 확장되고 종합적으로 문중과 재실의 건축적 특성을 제시해 나가는 지속적 연구의 기초 자료가 되기를 기대한다.


Located in Gyerari-ri and Gangjeong-ri, Doam-myeon, Gangjin-gun, Jeollanam-do, HaeNam-Yoon's Chuwondang(追遠堂) and Yeongmodang(永慕堂) are the Jaesil architecture of the family of Gosan Yoon Seon-do(1587-1671), which are famous for traditional poetry ubusashisa. Gang-jin is a place where Chuwondang, the oldest of the Haenamyun clan's residences, and Yeongmodang, where the tombs enshrined from Haenamyun's ancestors to the 7th generation, are located. Jaesil architecture enshrines the clan's ancestral group or ancestral ancestral group and organizes the space for the ancestral rites around it, and has a different meaning from Confucianrelated architecture such as Hyang-gyo and Seowon. Jaesil is an architecture that is the central point of the clan society formed around Hyangchon, and it can be inferred that it has become a lot of architecture because it is the result of the formation and manifestation of the cult in the space. In order to operate, the clan's organizational power and economic ability must follow as the fundamental driving force, and the method of building construction is also affected. This study compared and analyzed the two buildings, Chuwondang and Yeongmodang, which were the most central points, centering on the clan of Haenam-yoon, who built more than 60 buildings in Haenam, Gangjin. And it is the result of analyzing and organizing architectural components to find out what architectural factors exist and change.
Architecture related to the clan affects the building that becomes the basic model, and the design style and size change according to the passage of time, the subject of contrast, and economic power. This study compares and analyzes the spatial composition and changes of constituent elements and settlement process of the Jaesil architecture centering on two buildings, and analyzes the differences.
In addition, the purpose of the study is to analyze which architectural factors change and complete in the building that becomes the basic model. The research analysis method was conducted focusing on the background, arrangement and location conditions, spatial composition, Gong-po, and wood structure composition after examining the outline of the analysis target. The reviewed results were intended to identify architectural characteristics through comparison and difference analysis, and also to analyze relational factors affecting the construction work. Through this study, it was confirmed that Chuwondang became the basic model for the construction of houses in HaeNam-Yoon's and later had an effect on the construction of the Yeongmodang building. Building according to the ancestral architecture, complementing and developing its method can be found not only in Jaesil architecture but also in the residential architecture of the Yun clan of Haenam. This study is an empirical study through field investigation. It was a detailed study of the form and the architectural characteristics of the Jaesil architecture, which did not reflect factors such as rites and social history. In the future, it is expected to become the basic data for continuous research that comprehensively presents the architectural characteristics of the Jasil architecture related to the c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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