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행물

민족음악학회> 음악과 민족

음악과 민족 update

Journal of Society for Music and Korea

  • : 민족음악학회
  • : 예체능분야  >  음악
  • : KCI후보
  • :
  • : 연속간행물
  • : 반년간
  • : 1225-7834
  • :
  • :

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1)~60권0호(2020) |수록논문 수 : 1,018
음악과 민족
60권0호(2020년 10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 | | |

KCI후보

1한국음악학의 사회적 소통을 생각한다.

저자 : 김희선

발행기관 : 민족음악학회 간행물 : 음악과 민족 60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5-16 (12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키워드 보기
초록보기

KCI후보

2근대음악사의 분단 극복하기: 월북 음악가를 통해 본 1940년대 음악계

저자 : 허지연 ( Jeeyeon Huh )

발행기관 : 민족음악학회 간행물 : 음악과 민족 60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7-56 (40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이 연구는 월북 음악가들 중 기존 연구가 주목하지 않은 성악가와 연주가들이 1940년대에 보여준 음악 활동을 해방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추적함으로써,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의 한국양악사 서술에서 사각지대로 남겨진 부분을 드러내고 20세기 전반기 한국 음악계의 전체상에 한 걸음 더 다가서려는 기획이다. 월북 음악가 중에서는 강장일(성악, 생몰년 미상), 문학준(바이올린, 1914-1988), 박은용(성악, 1919-1985), 이강렬(첼로, 생몰년 미상), 이유성(트롬본, 1915-1991), 최창은(성악, 1913-1991)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이 글에서는 먼저 월북 음악가 6인의 1930년대 동안의 행적을 살펴보고, 다음으로 1940년대의 활동을 주요 이슈별로 구분하여, 8.15광복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고찰하였다. 필자는 이 연구를 통해 1930년대 식민지 양악계의 성과가 일제 말의 전쟁기와 해방 이후 6.25전쟁에 이르는 혼란기에 걸쳐 단절 없이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1940년대 말과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각각 남과 북에 정착하게 될 음악가들이 협력하여 새로운 무대를 시도하였음을 확인하였다. 이 연구가 한국 근대음악사 연구에 깊이 드리운 냉전 이데올로기의 그늘을 거두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This study aims to reveal the activities which the performers who crossed to the north accomplished in the 1940s. Their activities were not noted in previous studies and thus remains as a blind spot in Korean modern music history. Among the musicians who crossed to the north, I focus on Gang Jangil(vocal), Mun Hakjun(violin, 1914-1988), Bak Eunyong(vocal, 1919-19 85), I Gangryeol(cello), I Yuseong(trombone, 1915-1991), and Choe Change un(vocal).
Here I investigate the biographic information of the six musicians during the 1930s. Then I trace their musical activities in the 1940s, dividing them before and after the liberation from the Japanese rule.
I confirmed, through this research, that the musical scene of the 1940s Se oul was evolved without interruption from the achievements of the colonial musical circle in the 1930s, surviving the severe circumstances caused by wars and political turmoils, with the cooperation among musicians who were to settle down in South and North Korea.

KCI후보

3김순남의 인민 가요에 나타난 정치성

저자 : 황수임 ( Hwang Soo Im )

발행기관 : 민족음악학회 간행물 : 음악과 민족 60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57-86 (30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본 논문은 김순남의 인민 가요에 나타난 정치성에 관한 논의이다. 김순남의 인민 가요가 어떠한 목적으로 창작되고 어떠한 양상으로 보급되었는가를 살펴, 거기에 내재한 정치적 의도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에 목적이 있다.
김순남의 인민 가요를 집중적으로 공급하였던 노동현장과 근로자들의 음악동아리 활동을 살펴 강력한 정치적 세력 확장을 위한 실천적 측면을 탐색하였다. 아울러 유격대원들을 대상으로 창작 공급한 군가형식의 인민 가요를 통해 애국심과 전투력을 고취하고 승리를 위한 사상결속 강화에 공헌한 점을 살펴보았다. 이데올로기를 표현할 수 있는 극도의 음악 장르가 군가라고 한다면 그의 정치 중심적 예술관을 고찰할 알맞은 자료라 생각한다.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살펴보게 될 곡들은 학계에서 아직 갈무리 되지 않은 작품들이라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김순남의 인민 가요를 정치적 요소에 기대어 논의함으로써 김순남의 예술관을 이해하는데 보탬이 되기를 기대한다.


This paper is a discussion on the political nature of Kim Soon Nam's people's song.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what purpose Kim Soon Nam's People's Song was created and what aspect it was spread, and to clarify what political intentions it has.
The study explored the practical aspects of the expansion of strong political power by examining the labor field and the music club activities of workers who concentrated on the people's songs of Kim Soon Nam. In addition, it was examined that the song of the military song form created and supplied to the guerrillas inspired patriotism and combat power and contributed to strengthening the ideological solidarity for victory. If the extreme musical genre that can express ideology is a military song, it is a suitable material to consider his politically centered art view.
It is of great significance that the pieces that will be examined in the course of the discussion are not yet in the academic world. I hope that it will be a contribution to understanding Kim Soon Nam's art view by discussing Kim Soon Nam's people's songs based on political element.

KCI후보

41960-1970년대 음악정치: 박정희체제의 음악정책과 노래운동을 중심으로

저자 : 김은영 ( Kim Eunyoung )

발행기관 : 민족음악학회 간행물 : 음악과 민족 60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87-118 (32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본 연구는 박정희체제하에서 전개된 국가주도 노래운동을 통해 박정희 정권의 음악정치의 실상을 고찰한 것이다.
첫째, 제1기 국민개창운동 '노래의 메아리'는 재건국민운동의 하나로 국민무용강습회, 국민개독운동과 동시에 실시되었다. 이는 국민의 전 일상을 국가가 통제하여 건전한 국민을 만들겠다는 국가주의적 발상이었다.
둘째, 제2기 국민개창운동 '다함께 노래부르기'는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사업추진에 이바지하겠다는 목적으로 추진되었다. 매스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고 대중에게 친숙한 인물을 배치하여 1기에 비해 호응을 얻었다. 이때부터 건전가요는 국민가요와 동의어로 정착한다.
셋째, 제도권 음악가들이 참여한 합창운동은 새마을운동이 확산되는 1970년대에 집중적으로 전개되었다. 이 시기 음악 엘리트들은 정부의 정책에 이론적 지식을 제공하고 운동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담론을 만들면서 협조한다. 한편 국내 합창운동의 형성에는 문화냉전의 국제적 힘이 작용한 측면이 있다.
넷째, 박정희 정권은 국악을 전면에 내세워 정권의 홍보제로 사용하였다. 국악은 조국근대화와 민족문화유산을 홍보하는 국가기획 프로젝트였고 그 결과 국악이 관광문화상품으로 소비된 측면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박정희 체제하 음악정책의 폐해는 국가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음악만이 선별기획되었고 건전의 잣대로 국민의 일상을 통제함으로써 창작의욕과 건강한 음악문화를 위축시켰다. 또한 한국음악의 고질적 병폐인 입시부정, 정치적 편가르기, 해외유학 선호 등 부작용이 발생했고 그 결과 음악문화의 획일화로 이어졌다. 박정희체제가 남긴 전체주의적 획일주의 음악문화의 극복은 음악계에 남겨진 숙제이다.


This study examines the music politics through the National Movement of Sing along conducted under the Park Jung Hee regime.
First, the first National Movement of Sing along, 'Echo of Song', was developed to achieve the national reconstruction with the National Dance Class and the National Reading Movement. It could be an idea of statism to create a wholesome nation by controlling the entire daily lives of the Korean.
Second, the Second National Movement of Sing along, 'Singing Together', was promoted to contribute to the promotion of the Second Five-Year Economic Development Plan. By forming a more popular approach with media, the term 'national song' is transformed into 'wholesome song' and settled down.
Third, the Chorus Movement involving musicians from the institution was intensively conducted in the 1970s when the Saemaul Movement was spreading. During this period, the music elite class actively cooperated with the Park Jung Hee regime's music politics by providing the theoretical knowledge and creating a discourse advocating the legitimacy of movement, while the formation of the choir movement is partly due to the international power of the cultural cold war.
Fourth, the Park Jung Hee regime, which spotlighted the modernization of Korea and the cultural heritage of Korea, used Gugak(Korean traditional music) as propaganda. As a result, Gugak was consumed as a tourism and cultural product.
In conclusion, the music policy under the Park Jung Hee regime selected and planned only music that can be used effectively to achieve regime's goals, which resulted in constricting musicians' creativity and healthy music culture. Besides, side effects such as admission fraud, political bias, and preference for studying abroad, which are long-term problems of the Korean music field, have occurred, leading to the uniformity of music culture.
Overcoming the totalitarian uniform music culture left by the Park Jung Hee regime remains as a task in the music industry.

KCI후보

5근대 어린이문학과 신고송의 동요

저자 : 김정호 ( Kim Joung-ho ) , 이순욱 ( Lee Soon-wook )

발행기관 : 민족음악학회 간행물 : 음악과 민족 60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19-158 (40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이 논문은 식민지시대 신문이나 잡지 등 매체활동을 통한 어린이문학의 실상과 신고송의 어린이문학의 의미를 규명하고 그의 창작동요의 악곡을 분석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동요가 근대적 장르로 빠르게 안착되어 간 것은 신문 잡지라는 매체의 역할이 가장 컸다. 이전의 구전으로 창작되고 향유되었던 동요가 근대에 와서는 신문이나 잡지 등 활자화 된 매체를 통해 창작되고 향유되었다. 대중적 보급 역시 이러한 매체에 의해 이루어졌다. 즉 어린이문학 잡지의 독자투고란이나 일간지의 학예면 등을 통해 독자와 만나면서 동요의 위상을 확립하게 된 것이다. 당시 『어린이』의 경우 '동요란'을 독자적으로 개설할 만큼 동요에 대한 독자들의 열망이 높았으며, 『동아일보』의 경우도 학예면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장르는 동요였다. 따라서 이러한 매체가 동요의 대중화에 가장 큰 역할을 한 매체인 것이다. 이러한 당시의 현실적 토대에서 전문적인 동요작가들이 탄생하였으며 울산에서도 정인섭, 서덕출, 오영수, 신고송 등이 탄생하였다. 이들에 대한 '동요'의 문학사적 위치를 다시금 실증적으로 추적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신고송의 어린이문학 가운데 가장 활발한 창작활동이 동시이다. 신문과 잡지에 발표한 그의 동시 39편 가운데, 외국번역 동시는 2편에 이른다. 그리고 여러 명의 작곡가에 의해서 그의 동시가 작곡되어졌으며, 자신이 작곡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신고송의 동시는 크게 세 가지로 생활체험에서 우러나는 순수세계, 민족의 처지를 통한 현실인식 세계, 계급대립과 의식성장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동화, 동극, 평론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으며 미술, 음악, 사진 분야에도 재능을 보였으며 경남 최초의 창작아동극 <꾀바른 톡키>를 발표하였다. 그의 동요작품은 홍난파 작곡의 8작품, 박태준 작곡의 6작품, 김순남 작곡의 2곡, 강신명 작곡의 1작품, 이석봉 작곡의 1작품, 조광호 작곡의 1작품이 있으며, 자신이 8작품을 작곡하였다.
신고송은 울산지역 출생이지만 지역에 머물지 않고 어린이잡지와 언론매체를 통한 동요보급에 앞장서는 등 전국적인 어린이문화운동에 참여하였으며 정인섭, 서덕출, 오영수 등과 함께 서울과 부산, 대구 등 각 지역과의 교류를 통해 어린이문학의 발달에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 reality of children's literature through media activities such as newspapers and magazines in the colonial era and the meaning of children's literature in Shingosong and analyze his creative songs.
The most important part of the media was that the agitation quickly settled into the modern genre. The children's songs, which were created and enjoyed by the previous oral tradition, were created and enjoyed through the typed media such as newspapers and magazines in modern times. In other words, it established the status of agitation by meeting with readers through the readers' texts of children's literature magazines and the curricula of daily newspapers. At that time, readers' desire for children's songs was high enough to open 'swaying' independently, and Dong-A Ilbo also had the most part of the genre of the curriculum. Therefore, this media is the media that played the biggest role in popularizing the agitation. In this realistic foundation of the time, professional children's songs were born, and Jung In-seop, Seo Deok-chul, Oh Young-soo, and Shin-Song were born in Ulsan. It is very important to empirically track the literary history of 'single' about them.
Among the 39 poems published in newspapers and magazines, two poems of foreign translation were published. And his poems were composed by several composers and he composed them. These poems of Shingosong are mainly three, showing the pure world from life experience, the real world through the situation of the nation, and the world of class confrontation and consciousness growth. He has also performed various activities such as fairy tales, dramas, and criticism. He has also shown talents in art, music, and photography. He also presented Gyeongnam's first creative children's drama “Fucky Tokki”. His children's songs include 8 works of Hong Nanpa composition, 6 works of Park Tae-joon composition, 2 works of Kim Soon-nam composition, 1 work of Kang Shin-myeong composition, 1 work of Lee Seok-bong composition, and 1 work of Cho Kwang-ho composition.
Shin Go-song was born in Ulsan, but he participated in the nationwide children's culture movement, such as taking the lead in spreading children's songs through children's magazines and media, and played a central role in the development of children's literature through exchanges with Seoul, Busan and Daegu along with Jung In-seop, Seo Deok-chul and Oh Young-soo.

KCI후보

6대구 줄풍류 『서봉 국악보』에 대한 논의(1) -거문고 줄풍류 중심-

저자 : 김순진 ( Soun-jin Kim )

발행기관 : 민족음악학회 간행물 : 음악과 민족 60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59-188 (30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대구 지역의 풍류 문화가 성행하였던 1960년대를 전후로 풍류방 문화를 주도하였던 서봉 허순구가 편저한 『서봉 국악보(曙峯 國樂譜)』에 대한 생성배경과 연원을 밝히기 위해서, 1960년대를 전후로 대구 풍류객들과 교류하였던 정경태 『국악보』와 『서봉 국악보』의 거문고 악보 ≪가즌회상≫을 비교하였으며,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 『서봉 국악보』와 『국악보』의 장단 비교에서는 다른 향제 줄풍류에서 사라지거나 사용하지 않는 장단 꼴을 유지하고 있다.
둘째, <상현도드리>와 <염불도드리>를 제외한 다른 곡에서는 악장의 분장 구조가 같았다.
셋째, 두 악보는 거문고의 조현법과 표기 음 등을 도설(圖說)로 기술하였는데, 설명 양상이 같았으며, 단어와 문장도 매우 흡사하였다.
넷째, 『서봉 허순구』의 거문고 보 ≪가즌회상≫을 『국악보』와 비교한 결과 15곡 중 동일 가락으로 진행하는 곡은 <대여음>·<세령산>·<가락덜이>·<하현도드리>·<세환입>·<염불도드리>·<타령>·<군악>·<계면가락도드리>·<양청도드리>·<우조가락도드리> 등이었으며, 유사·상이 가락이 나타난 악곡은 <상령산>·<중령산>·<상현도드리>·<굿거리> 등이었는데, <굿거리>외의 악곡에서는 『서봉 국악보』와 『국악보』가 상호연관성이 깊었다.
이상과 같이 『서봉 국악보』는 악보를 편저하는 과정에서 채보 방법과 수록 악곡의 양상, 이론적인 설명, 거문고의 가락 등은 정경태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1960년대 전후의 대구 풍류계는 호남 풍류인들의 영향을 상당 부분 받았으며, 『서봉 국악보』의 거문고 보 ≪가즌 회상≫의 생성 배경과 연원은 호남 풍류계열로 보아야 한다.


In order to reveal the background and origin of the production of the “Seobong Gugakbo”, which was compiled by Heo Soon-gu, who led the Pungryubang culture around the 1960s when the culture of Pungryu in Daegu was prevalent, Jeong Gyeong-tae's Geomungo sheet music < Gajinhoesang > and “Seobong Gugakbo” were compared with the following conclusions.
As a result, “Seobong Gugakbo” was greatly influenced by Jeong Gyeong-tae in the process of compiling the sheet music, the aspects of the music, the theoretical explanation, and the rhythm of Geomungo. Therefore, the Daegu Pungryu system in the 1960s and early 1960s was greatly influenced by Honam Pungryu people, and the background and origin of the Daegu Pungryu “Seobong Gugakbo” should be regarded as Honam Pungryu.

KCI후보

7칼 아마데우스 하르트만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참회의 음악'(Bekenntnismusik) 연구

저자 : 차호성 ( Ho Sung Cha )

발행기관 : 민족음악학회 간행물 : 음악과 민족 60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89-216 (28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작곡가가 하나의 작품을 통해 자신이 처한 시대적 상황을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예술가로서의 기본적인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작품이 단지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경향을 가질 수도 있지만, 하르트만과 같은 작곡가들의 작업은 불편하고 비참했던 상황을 참회하고 기억하게 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자신의 조국에서 같은 민족에 의해 자행된 만행을 스스로 참회하는 작업은 반인륜적인 행태를 표현하는 유사한 경우에 깊은 고민과 감동을 줄 수 있다.
본 글에서는 하르트만의 창작에서 이와 같은 '참회의 음악'으로 여겨지는 작품들의 창작배경을 중심으로 작곡가의 사상이 작품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주었는가를 주로 조망한다. 작품의 구체적인 분석보다는 창작배경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작품의 분석이나 이해에 있어 작곡가가 의도한 바를 올바르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취지에서 <교향곡 1번>, <심플리키우스 심플리키씨무스>, <콘체르토 푸네브르>, < 피아노소나타 제2번 “27. April 1945” > 등 4개의 다른 장르의 작품들을 통해 그의 음악적 사고와 경향이 일관적으로 유지되는 모습을 확인한다. 이러한 작업은 궁극적으로 하르트만의 창작에서의 포괄적인 학술적 접근 외에 '참회'라는 주제로 더 많은 예술가들의 창작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By objectively expressing the situation of the times in which himself is through a piece of work, a composer is fulfilling his basic social responsibilities as an artist. While art works may have a tendency to merely seek artistic beauty, the work of composers such as Hartmann plays a role in repenting and remembering uncomfortable and miserable situations. A task of self-repentance for the atrocities committed by the same people, especially by one's own country, can be deeply troubled and touching in similar cases of expressing anti-humanitarian behavior.
This article mainly takes a view of how the composer's ideas influenced the work, focusing on the background of the works considered to be "music of penance" in Hartmann's creation. Understanding the creative background first rather than analyzing the specific work will ultimately lead to the correct finding of the composer's intention in analyzing or understanding the work. To this effect, four works of different genre such as < Symphony No. 1 >, < Simplicius Simplicissimus >, < Concerto funebre >, and < Piano Sonata No. 2 “27, April, 1945 >, confirm that his musical thoughts and tendencies are consistently maintained. This work could ultimately serve as an opportunity to look at the creative world of other artists under the theme of 'repentance', in addition a comprehensive academic approach to Hartmann's creation.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키워드 보기
초록보기
1
권호별 보기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

(자료제공: 네이버학술정보)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
| | | |
1연안해역에서 석유오염물질의 세균학적 분해에 관한 연구

(2006)홍길동 외 1명심리학41회 피인용

다운로드

2미국의 비트코인 규제

(2006)홍길동심리학41회 피인용

다운로드

가장 많이 참고한 논문

(자료제공: 네이버학술정보)

가장 많이 참고한 논문

다운로드

2미국의 비트코인 규제

(2006)홍길동41회 피인용

다운로드

해당 간행물 관심 구독기관

서울대학교 동아대학교 성신여자대학교 연세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138
 126
 80
 44
 44
  • 1 서울대학교 (138건)
  • 2 동아대학교 (126건)
  • 3 성신여자대학교 (80건)
  • 4 연세대학교 (44건)
  • 5 한국예술종합학교 (44건)
  • 6 부산대학교 (34건)
  • 7 이화여자대학교 (30건)
  • 8 경희대학교 (27건)
  • 9 한국교원대학교 (26건)
  • 10 중앙대학교(서울) (24건)

내가 찾은 최근 검색어

최근 열람 자료

맞춤 논문

보관함

내 보관함
공유한 보관함

1:1문의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