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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민족 update

Journal of Society for Music and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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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1)~58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1,004
음악과 민족
58권0호(2019년 10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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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다시, 공정(公正)을 생각한다

저자 : 이은진

발행기관 : 민족음악학회 간행물 : 음악과 민족 5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5-10 (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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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삼현의 의미에 대한 연구 - 현악기와 곡명을 중심으로 -

저자 : 김성혜 ( Kim Seonghye )

발행기관 : 민족음악학회 간행물 : 음악과 민족 5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1-42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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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삼현육각(三絃六角)'이란 용어에서 '삼현(三絃)'의 의미를 찾고자 시작한 글이다. 삼현이란 용어는 고대 신라 때부터 사용되었고, 현재에도 사용하고 있는 장수(長壽) 낱말이다. 신라 때 현악기 3종인 거문고·가야금·비파를 지칭하는 의미에서 비롯되었지만 오늘날 이 의미와 다르게 삼현영산·삼현장단·삼현타령·삼현삼죽·삼현굿거리·삼현풍류 등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런 경우 삼현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녔는가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이 글을 시도하였다.
먼저 삼현이 현악기를 지칭하는 사례를 검토한 결과 모두 다섯 가지 의미가 있음을 밝혔다. 첫째는 신라시대 3종의 현악기인 거문고·가야금·비파를 총칭하는 의미다. 이것은 이미 학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둘째, 중국 고대 현악기 중 세 줄로 구성된 '삼현금(三絃琴)'을 지칭하며, 이것의 준말로 '삼현'이라 했다. 셋째, 중국 고대 현악기 금(琴)의 세 번째 현을 지칭하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넷째, 일본의 현악기 3종 즉 비파(琵琶)와 쟁(箏) 그리고 화금(和琴)을 총칭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다섯째, 유구국(流球國)이나 일본에서 사용하는 샤미센(三味線)을 지칭할 때 '삼현'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삼현이란 용어는 신라 때 생성되어 신라의 현악기 3종을 지칭하는 의미에서 비롯된 낱말이다. 이것이 고려와 조선 전기에는 중국 삼현금의 준말을 뜻하거나, 현악기 금(琴)의 세 번째 현을 지칭하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일본의 현악기 3종 즉 비파와 쟁 그리고 화금을 총칭하는 의미로도 사용되었고, 유구국와 일본의 샤미센을 지칭하기도 했다. 이렇게 같은 용어가 시대가 변하면서 다른 의미로 확장되어 다양하게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은 삼현이 15세기 조선 관료층의 잔치에서 연주된 향악곡의 곡명(曲名)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하였다. 예컨대 조선 태종 때 의정부(議政府)에서 주최하는 중국 사신(使臣)을 위한 잔치, 우리의 사신을 위로하는 잔치, 대장(大將)을 전송하는 잔치, 대장을 위로하는 잔치, 그리고 1품 이하 대부(大夫)와 사(士)의 공사(公私) 잔치에 두루 연주된 악곡으로 <삼현>이 있었음을 밝혔다. 이때 <삼현>은 서민들이 향유한 향악곡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이때 악곡 삼현이 구체적으로 어떤 곡조이며, 어떤 악기 편성으로 연주된 곡인지는 당시 악보나 관련 기록이 전하지 않기 때문에 상세히 알기 어렵다. 그렇지만 이 삼현은 신라 때 3종의 현악기를 뜻하는 삼현의 의미와 또 다른 의미를 지녔고 조선 후기 '삼현곡' 혹은 '삼현영산'과 관련 가능성이 있는 데 주목된다.
이와 같이 '삼현'이란 용어는 고대부터 사용된 낱말이므로 고려와 조선을 지나면서 다양한 의미로 확산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처음에는 신라 현악기 3종을 지칭했으나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중국이나 유구국 혹은 일본의 현악기 및 현명을 지칭하는 의미로 다양화되었다. 뿐만 아니라 조선 초기 15세기에는 삼현이라는 향악곡의 악곡명으로까지 확산되어 사용된 용어임을 확인하였기에 삼현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였다.


This research aims to find out what samhyeon really means in the term 'samhyeonukgak'. The term 'samhyeon' has been used since the ancient Silla. It is a long-lived word that is still being used. Back in the Silla era, it meant the three stringed instruments, geomungo, gayageum and bipa, but it seems to mean something different these days as it is shown in the words like samhyeonjangdan, samhyeontaryeong, samhyeonsamjuk and samhyeon. What does it really mean if it is not about the three stringed instruments?
It turned out that there are 5 different meanings when samhyeon is used to indicate stringed instruments. First, it meant the three stringed instruments of Silla, geomungo, gayageum and hyangbipa, which are well-known so far. Second, it was the abbreviation of samhyeonguem which is an ancient Chinese stringed instrument that had three strings. Thirdly, it was used to indicate the third string of guem, an ancient Chinese stringed instrument. Fourthly, it was used to mean the three Japanese instruments, bipa, jaeng and hwageum. Lastly, syaisen, an instrument of Uguguk and Japan was also called 'samhyeon'. In conclusion, samhyeon not only meant the three stringed instruments of Silla, but also has been used in four more ways to indicate different instruments.
In addition, it was newly discovered this time that samhyeon in the 15th century of the Joseon dynasty had been employed as a title for hyangak music performed in the feasts for the government officials. According to the records, the music called samhyeon was performed in the occasions such as the feast for the Chinese ambassador in Uijeongbu during the Taejong period, the ones to comfort our ambassadors, the farewell or comforting parties for generals and for the government officials. In this context, samhyeon is interpreted as a specific hyangak music. However, it is hard to figure out what its melody was like because there is no related records or musical notes available any more. But it is obvious that samhyeon in this context doesn't indicate the Silla instruments. It is also noteworthy that samhyeon may have something to do with samhyeongok or samhyeonyeongsan of the late Joseon dynasty. Accordingly, the research into its relation with them is expected to be carried on in near future.
Since the word 'samhyeon' has been used for a long time that it's natural to assume that its meaning must have expanded over time as it went through the Goryeo and Joseon dynasty. At first, it must have been a name for the three stringed instruments of the Silla dynasty. But in the Goryeo and Joseon dynasty, its meaning expanded to include the names of the different stringed instruments and their particular string of the neighboring countries such as China, Japan and Uguguk. In the 15th century, it was even extended to be used as the title for the hyangak music. However, samhyeon's association with music will have to be covered later after the other terms combined with samheon are throughly studied and understood.
Unfortunately, there is no clue to the relation between samhyeonukgak and samhyeon mentioned in the beginning of the thesis. Because, though samhyeon appears in the records, there's no trace of samheonukgak in them. For this reason, it is inevitable to leave this matter to the researches that will fol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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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경성악대의 음악활동 연구

저자 : 이수정 ( Lee Sujoung )

발행기관 : 민족음악학회 간행물 : 음악과 민족 5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43-84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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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이왕직양악대가 해산되자 양악대원들이 모여 경성악대를 결성하였다. 대한제국에 도입된 양악이 군악대-제실음악대-이왕직양악대로 이어지면서 국가 또는 왕실에서 의례를 담당하며 조선식 연주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았다면, 민간악대로 변모한 경성악대는 과거 궁중음악대라는 명성을 등에 업고 다양한 공간에서 더 많은 대중과 만나 폭넓게 서양음악을 보급할 수 있었다.
경성악대는 사회 각계 인사의 지원과 이왕직·조선총독부·일본 국책회사 등에서 자본금을 기반으로 시작하였다. 민간악대로 재출발하였기 때문에 수익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여 경성의 학교, 공원, 기념식, 행사장, 운동장, 거리 등 다양한 장소에서 출장연주를 하였으며, 무료공연, 찬조공연, 자선공연 등에도 출연하였다. 양악대 해산 이후 첫 연주는 1919년 10월 28일 종로청년회음악회였는데 당시는 '해산된 이왕직양악대'가 찬조 출연하였다. 경성악대라는 명칭을 정하고 1919년 11월 28일 경성악대가 주최한 '제1회 경성악대음악연주회'를 열어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10년 동안 수백 건의 연주 활동을 했는데, 그중 직접 주최한 연주회는 약 10회가량 된다. 제1회·제2회 경성악대 음악연주회를 비롯하여 2주년 기념 연주회, 경성악대를 위한 음악회, 경성악대 원찬음악대회 등이었다. 흑인성악단이나 해삼위조선학생연주단 등의 공연을 직접 주최하면서 음악으로 동서 음악과 교류 및 조선동포의 어려움을 알리고 돕는데에도 앞장섰다. 경성악대가 주최하거나 출연한 음악회는 경성악대 단독연주가 아닌 다른 단체나 음악가들과 합동으로 공연하였고, 브라스 밴드 음악의 특성상 음악회 시작과 끝 곡을 연주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경성악대의 대표적인 연주 활동의 하나인 납량연주회는 1920년부터 시작되었다. 경성악대 단독으로 공연한 연주회로서 초창기에는 동아일보사의 후원으로 탑골공원에서 진행되었다. 1923년부터는 경성부에서 주최하면서 '부민위안음악회'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경성 시내곳곳의 공원 및 명소와 거리, 신사 등에서 진행되었다. 공연장소 중 대부분은 당시 경성 시내에 새롭게 지어진 일본의 근대건축물이 보이는 장소 즉, 광화문과 조선총독부, 삼각지와 조선총독 관사, 경성역과 남대문, 경성부청과 덕수궁, 서대문경찰서와 서대문처럼, 일제의 대표적인 근대건축물과 조선의 옛 건축물이 대비되는 장소에서 공연이 이루어졌다. 경성악대의 연주 레파토리는 이왕직양악대 시절의 것과 유사하였으며, 간혹 새로운 곡이 추가되었다.


Gyeongseong Band is a Western music performance group that was active during the 1920s. The civilian band was formed by the former members of the Yi Dynasty Western Music Band that was disbanded in 1919. Western music band began in Korea when Western music was introduced to the Military Band of the Korean Empire. As Western protocols were introduced to the royal court and royal family rituals, many changes were made to the royal protocol. On the other hand, Gyeongseong Band contributed to the popularization of Western music because it was operated as a civilian organization. Even though Gyeongseong Band was highly active from 1919 to 1930, the group has not been widely studied. The current study summarizes the history of Western music bands in Korea that flow from the Military Band of the Korean Empire to Imperial Household Band, Yi Dynasty Western Music Band, and Gyeongseong Band. In addition, it analyzes the musical activities of Gyeongseong Band in detail.
Military Band of the Korean Empire played “Korean Empire Aegukga,” as well as national anthems and banquet music during national events, diplomatic receptions, treaty signing ceremonies, and royal banquets, serving as the national band. Meanwhile, as the Japanese Empire began taking away the sovereignty of Korea, the military band was mobilized to play in events related to Japan as well. The same goes for the Imperial Household Band.
Yi Dynasty Western Music Band was not very active because the ruined Joseon royal household rarely had internal events, but it performed in external events occasionally. One example is the Tapgol Park Concert hosted by Yi Dynasty Western Music Band that was held from 1913. The concert featured a combination of Western music and Japanese music. This demonstrates Japan's colonial cultural policy, which was to depoliticize the residents of colonial Korea through government-sponsored entertainment.
Gyeongseong Band performed in a variety of locations, and was maintained with the support of various elements of the society. While their activities were for profit, they also performed in regular concerts, free concerts, and charity concerts. In addition, they also performed in residents' music concerts hosted by the municipal government of Seoul. The repertoire of Gyeongseong Band was similar to that of Yi Dynasty Western Music Band, but some new music pieces were added sometimes. The current study also reveals that the residents' music concerts hosted by the municipal government of Seoul were held in places that compare the modernity of Japan and the pre-modernity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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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50년대 양악작곡가들이 상상한 국민음악: '국민'과 '민족' 사이에서

저자 : 김은영 ( Kim Eunyoung )

발행기관 : 민족음악학회 간행물 : 음악과 민족 5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85-114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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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50년대의 음악계에 대한 고찰이다. 해방 후 일제잔재의 청산과 민족국가 수립을 염원하며 제기된 민족음악론은 분단과 전쟁을 겪으면서 냉전의 논리로 변화하고 있었다. 분단 후 남한에서는 1948년 정부수립을 기점으로 국민가요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국민가요의 내용은 국민국가의 건설과정에서 국민에게 요구되는 애국심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1949년 공보처는 박태현, 윤용하, 이흥렬 등 우익 입장의 작곡가들이 쓴 국민가요를 당선시키고 학교 및 군대에 보급시킨다. 그러나 이 시기에 주창된 국민음악은 일제강점기 국민개창운동을 재활용한 것이다.
전쟁은 과거 제국에 봉사하던 음악가들이 남한의 악단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게 된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전시체제하 만주에서 제국의 후생음악에 봉사하던 이흥렬, 박태현, 김동진 등은 한국전쟁 중에는 종군 문화반원으로 활약하며 호전적인 이승만 정권의 충실한 문화선전대 역할을 수행하였다.
한편, 피난지 부산에서는 '전시작곡가협회'가 결성되어 전시(戰時)동요작곡과 가극 등을 창작하였는데 이들의 주요 목표는 군당국과 긴밀히 결합하여 전선에서 일어난 일을 음악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전시작곡가협회 작곡가들은 1950년대 중반부터는 국민개창운동추진회에서 활동하며 재즈와 왜색 유행가 대신 국민가요 창작과 보급에 앞장선다. 국민가요 작곡가들은 멸공과 북진을 강조했던 정권의 정책에 충실히 따름으로써 남한 악단의 중심적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 그러나 1950년대 주요작곡가들에 의한 국민가요 창작은 이후 남한의 악단에서 전개될 이분법적 분단음악사의 시작이 된다.
특히, 우익진영 음악가들은 이승만 정권의 반공주의와 북진통일, 종교적으로는 기독교적 정체성을 갖는 경우가 많아 정권의 구미에 맞았다. 이들에 의해 창작된 국민음악은 호전적 성격의 노래가 많았는데 이와 같은 편중된 정치성이 순수주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고 있었다.
그러나 국민개창운동에 참여한 음악가들이 이와 같은 이분법에 모두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나운영, 윤이상의 이후의 삶은 1950년대 그들의 활동이 시대적 상황 속에서 굴절되어 나타난 시대적 산물이었음을 확인하게 한다.
민족음악을 위한 열망은 1980년대의 민족음악론으로 다시 제기되었고 이와 같은 역사를 통해 '민족'과 '음악'을 연결하고 융합하려고 노력하면서 당대의 시대정신에 민감했던 선배 음악가들의 고뇌와 실천이 과거의 역사로만 남지 않게 하는 것은 변화된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음악인에게 주어진 과제이자 새로운 '시대정신'이라 할 수 있다.


This paper will be an attempt to examine the music scene of the 1950s in Korea, the era of anti-Communism and the Cold War. A discourse on national music that was raised during the period of liberation led to the music history of the Cold War in the course of division and the Korean war. The attempt to attain national Integration by achieving the national state was taking place since the establishment of the government in 1948, when 'Kukmingayo(songs for the nation)' were created and disseminated. These songs called 'Kukmingayo' or 'Aegukgayo(songs for patriotism)' were produced by recycling the 'National singing campaign' and national music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Furthermore, a song of the national memorial day was made by the government and music was attempted to emphasize nation than ethnic over the people, such as anti-communism and patriotism.
The Korean war, meanwhile, was a golden opportunity for musicians who served the Japanese empire to settle down reliably in the South Korean music scene. Lee Heung-ryul, Park Tae-hyun and Kim Dong-jin began to play a more active role in cultural propaganda for the North Korean regime.
On the other hand, in Busan, the 'Wartime Song Writers Association' was formed to create wartime children's song and lyric plays. Besides, they were combined closely with the military authorities to produce music. their goal has been embodied in the formation of the 'Military Composers Association.' Composers of the 'Wartime Song Writers Association' have been active in the national singing campaign since the mid-1950s. Also, they have been taken the lead in distributing national songs that could achieve national unity instead of jazz and Japanese-style songs. However, such activities were the beginning of a dichotomous divided Korean music history based on the premise of anti-communism and division. These activities were led by right-wing composers who faithfully followed the positions of the then regime.
In particular, the combination of anti-communism, northern unification and pro-Americanism under Rhee's government was reflected in the creation of musicians. Christian musicians, especially those who defect from North Korea, were perfectly matched by the regime and were hiding their militant and divided music history under the slogan of purism.
Nevertheless, not all musicians who participated in this dichotomy agreed. The later lives of Na Un-young and Yun I-sang, who have acted in the 'Wartime Song Writers Association' and the national singing campaign, could indicate the fact that their activities in the 1950s were reflected in refraction in the context of the times.
Desires for national music was re-collected into the national music theory of the 1980s, and through this history, it would be a task given to all musicians living in this changed era. Moreover, it could be a new age spirit to ensure that the suffering and practice of senior musicians who were critical to the zeitgeist of the times did not remain the only history of the p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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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오르페오 신화의 대항 음악서사, 자크 오펜바흐의 「지옥에 간 오르페」 - 제2제정기의 프랑스 사회와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

저자 : 신혜승 ( Shin Hye Seung )

발행기관 : 민족음악학회 간행물 : 음악과 민족 5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15-152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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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페오 신화는 '잃어버린 사랑을 찾아 목숨을 걸고 모험을 떠나는 오르페오의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라는 메시지를 바탕으로 각 시대와 지역의 사회문화적 성향을 반영하며 수천 년에 걸쳐 다양한 예술 장르로 재생산되어 왔다. 하나의 신화가 시대를 넘나들며 예술적으로 다양하게 재생산되는 모습을 통해 신화를 통한 시대읽기가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오르페오 신화의 서사가 19세기 프랑스에서 어떠한 예술적 표현형식으로 재현되는지를 살펴보고, 예술적 표현형식이 프랑스 정치권력 체계를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를 고찰해 보고자 하였다.
이처럼 신화의 예술적 변용을 통해 각 시대가 추구하고 있는 신념이 무엇인지를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하면서, 오르페오 신화의 기존 각본이 19세기 프랑스 제2제정기 하에서 어떻게 다르게 수행되는지를 살펴보았다. 이어 오르페오 신화가 기존의 비극 오페라라는 범주를 넘어서 풍자와 해학의 역할을 하는 '오페라 부프'(opera bouffe)라는 장르로 등장하게 되는 배경과 함께, 음악적 관습은 어떻게 해체되어 나타나는지에 대해 자크 오펜바흐의 「지옥에 간 오르페」(Orphee aux enfers)를 통해 증명해 보고자 하였다.


Orpheus myth has been reproduced in various art genres over thousands of years, reflecting the socio-cultural tendencies of each age and region, based on the message, 'Orpheus's most innocent love story, which risks his life in search of lost love.' It is possible to read the times through myths through the fact that a myth is reproduced variously through the times. Therefore, I would like to examine how the narrative of Orpheus myth is reproduced in nineteenth-century France and how the artistic form describes the system of French political power.
Starting from the assumption that the artistic transformation of myth can be used to derive what beliefs are pursued by each era, I look at how the existing scripts of Orpheus myth are performed differently under the second empire of France in the nineteenth century. In addition to the background in which Orpheus myth emerges as an 'opera bouffe,' which plays a role of satire and humor beyond the traditional tragedy of opera, I try to prove how the customs of music were disintegrated through Jacques Offenbach's Orphee aux enf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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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우조 초수대엽'의 연주음원에 나타난 박 단위에서의 미시적 타이밍(micro timing)에 대한 분석

저자 : 이미경 ( Lee Mikyung ) , 송현주 ( Song Hyeonjoo )

발행기관 : 민족음악학회 간행물 : 음악과 민족 5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53-184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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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적 타이밍은 사람들이 시간적으로 다른 차이를 느끼지만 이 시간차를 리듬형의 변화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같은 리듬인데 다른 뉘앙스를 가진 어떤 것으로 이해하는 시간차를 이른다. 본 연구가 박의 미시적 타이밍 분석을 통해 얻고자 하는 바는 연주자가 박의 흐름을 서로 맞추어 가며 연주함에 있어 기계적으로 박을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의 흐름을 타며 박을 짚을 것인데, 이 때 그 유동성, 즉 박의 길이의 변화가 완전히 임의적인가 아니면 어떤 규칙이 있는가, 있다면 그 규칙은 음악의 시간적 구조 형성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를 보고자 함에 있다. 연구대상으로 한국 전통 가곡 중 「우조 초수대엽」의 대금, 거문고, 장구의 삼중주를 선택하여 동일한 연주자들에 의한 네 번에 걸친 연주를 비교·관찰하였다. 연구결과로, 박의 IOI 값의 변화는 장의 구분, 어절구분, 박자적 구조 중 박자적 구조와 관련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연주자들이 16박장단을 하나로 의식하고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11박과 5박이 교대로 나타나는 시간적 구조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도 확인되었다. 이 구조가 선율의 그루핑과 부딪힐 때에는 선율의 그루핑이 더 우선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 박씩 묶여질 때 어떤 특정한 패턴이 나타나는가에 대한 조사에서는 세 박씩 묶여질 때 첫 박의 길이가 긴 패턴(약 1.14:1)이 나타난다는 점도 발견되었다.


Micro timing refers to time differences when people feel differences in time, but they do not feel this time difference in a different rhythmic pattern, but rather they understand the same rhythm as something with different nuances.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alyze micro-timing at beat level in the performance of instrumental version of the Korean traditional song, Ujo Chosudaeyeop. At this point, we ask whether the change in the length of the beat, is completely arbitrary or there is any rule for how it relates to the temporal structure of music. For this study, four times performances of Daegeum, Geomungo, and Janggu trio by the same performers were compared and investigated. The results showed that the change in the IOI value of beats was related to the metric structure composed of 11 beats and 5 beats. This can be interpreted a 16-beats of gagok-jangdan as a metric structure in which 11 beats and 5 beats are alternating rather than consciously playing the 16-beats as one unit. In addition, when this metric structure collides with the grouping structure of the melody, the grouping of the melody has a higher priority. Investigation of what specific pattern appears when three or two beats are tied up reveals a pattern with the longer first and the shorter second beats (about 1.1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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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음악학자 일해(一海)의 세월-Ⅲ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얽힌 구구절절한 사연 -

저자 : 송방송

발행기관 : 민족음악학회 간행물 : 음악과 민족 5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85-224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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