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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67)~58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453
사학지
58권0호(2019년 06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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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신석우(申錫愚)의 『입연기(入燕記)』를 통해 본 조선의 국제정세인식

저자 : 이지은 ( Lee Ji-eun )

발행기관 : 단국사학회 간행물 : 사학지 5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21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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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錫愚(1805-1865)는 哲宗11년(1860년) 11월 冬至使行을 통해 제2차 아편전쟁 이후 北京의 혼란한 상황을 직접 체험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겼다. 이를 통해 당시 조선지배층의 현실인식 일면을 살펴볼 수 있었다.
신석우가 연행을 떠난 것은 哲宗11년(1860년) 겨울이다. 연례적으로 파견하는 동지사행의 정사로 임명되었다. 신석우 일행은 1860년 11월 26일 압록강을 건너 중국 땅에 들어섰다. 동지사행은 12월 24일 북경에 도착했으며, 다음해(1861년) 2월 6일까지 체류하다가 북경을 떠났다. 3월 27일, 동지사행 일행은 귀국하여 국왕에게 복명하였다.
신석우가 사행을 떠난 시기의 청은 대내외적인 정세가 매우 불안정하던 때였다. 제2차 아편전쟁이 발발하였고 이로 인해 청은 1858년 6월 天津條約을 체결하였다. 조약 체결 후, 다시 영불연합군과의 충돌이 일어났고 그 결과 10월 24일 영불연합군은 천진조약을 계승 확대한 北京條約을 체결하였다. 소위 말하는 '北京事變' 이후 중국인들은 서구열강과의 전쟁에서 패배했다는 자괴감과 각종 재난으로 인해 불만이 생겼다. 이는 빈번한 반란의 원인이 되었다. 신석우는 이러한 청의 정세에 대해 김경수의 <手本>을 통해 파악하고 현지에서 직접 보고 들은 내용을 중심으로 기록했다.
그러나 신석우는 귀국 후 국왕에게 복명하는 자리에서 청의 현실을 축소하거나 안정된 상황만을 강조하여 보고하였다. 이는 조선지배계층의 대외인식과 대응방식을 반영한 보고였다. 당시 조선 지배층은 청조의 안정이 국내의 안정을 보장해 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에 있었다. 이러한 태도는 권력이 독점되면서 안주할 수 있는 世道政治의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다. 국제적인 변혁의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보다는 기존 체제를 유지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었다. 따라서 신석우는 국제정세에 대한 뛰어난 인식능력과 분석력을 갖고 있었으나 권력구조 안에서 정권의 안보를 고려해 정치적 의도에 맞춰 정보를 해석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Shin Seok-woo participated in the Dongji Sahaeng(冬至使行) in January, 11th year of King Cheoljong's reign. He experienced the chaotic situation in Beijing after the Second Opium War. And he left it on record. This shows the perception of the times of the Joseon's ruling class at that time.
It was in the winter of 1860, the 11th year of King Cheoljong's reign that Shin Seok-woo left for the envoys traveling to Beijing. He was appointed a regular member of the annual dispatch to the governor's office.
Shin Seok-woo and his party crossed the Yalu River(鴨綠江) to enter Chinese soil on Nov. 26, 1860. They arrived in Beijing on Dec. 24. The following year, he stayed until Feb. 6, 1986 and left Beijing. When they returned Joseon on March 27, they immediately reported to the king.
At that time, the international situation surrounding Cheong and the domestic situation were very unstable. The Second Opium War broke out and Cheong signed the 'Tianjin Treaty' in June 1858. After signing the treaty, there was another clash with the Anglo-French forces. As a result, on October 24, the Anglo-French Union Army signed the Beijing Treaty, which inherited and expanded the Tianjin Treaty. After the so-called "Beijing Incident(北京事變)," the Chinese people developed a sense of self-destruction that they had lost the war against the Western powers. In addition, complaints arose when various disasters occurred. As a result, rebellions occurred frequently.
Shin Seok-woo identified the situation in Cheong through Kim Kyung-soo's <手本> and recorded it based on what he saw and heard in person. However, when he reported to King Cheoljong after returning Joseon, he only reported the reality of the Qing Dynasty with emphasis on the stable situation. His report reflects the Joseon ruling class' perception of the international situation and response attitude.
At that time, the ruling class of the Joseon Dynasty thought that the stability of the Qing Dynasty would guarantee domestic stability. This attitude stems from a sedo-politics structure in which power is monopolized and reassuring. Rather than actively responding to international changes, they were more interested in maintaining the existing system. Therefore, Shin Seok-woo had an excellent awareness and analysis of the international situation, but he interpreted the information according to his political intentions in consideration of the stability of the regime within the power structure.

2『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를 통해 본 신채호의 고구려사 연구방법과 인식에 대한 연구

저자 : 조선옥 ( Jo Seon-ok )

발행기관 : 단국사학회 간행물 : 사학지 5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3-88 (6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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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상고사』의 고구려사 서술과 인식에 대한 연구를 통해 신채호의 역사연구 방법론과 역사 인식 체계를 살핀 것이다. 신채호는 망명 이전부터 활발한 역사 저술 활동을 펼쳐 왔는데, 국권피탈에 의해 폄훼된 민족정신의 회복이 역사저작을 통한 민족의식 고취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신채호의 역사 인식은 중국 망명 이후 1924년 북경에 머무르면서 다양한 자료들과 양계초의 사회진화론에 영향을 받으면서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따라서 『조선상고사』는 신채호가 북경에 머무르며 쓰인 고대사 연구서로서, 그의 역사인식 체계와 고대사 연구방법론의 발전 과정을 보여주는 역사 연구방법론의 총론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상고사』 서술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내용이 고구려와 중국 간의 전쟁사였다. 신채호는 고구려의 전쟁사를 투쟁사적 관점에서 인식하였는데 역사를'我와 非我의 투쟁'이라고 인식한 것이 그 예시이다.
신채호의 고구려사 서술의 특징적 면모는 한국과 중국 정사에 기록된 고구려사를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야사에 서술된 고구려사를 신뢰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채호가 한국 정사의 고구려사 기록을 비판적으로 인식한 이유는, 고려-조선의 사가들이 고구려의 역사를 외세 의존적인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신채호는 중국 정사에 기록된 한국의 고대사와 고구려사 기록들을 대부분 불신하거나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신채호의 관점이 한사군 재요동설로, 신채호가 외부 세력의 유입과 지배 자체를 부정적으로 인식한 것에서 기인했다.
정사에 대한 신채호의 부정적 평가와 비판적 인식은 사료 찬자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했다. 『三國史記』와 김부식에 대한 인식과 평가, 『晋書』와 당태종에 대한 인식과 평가가 그것이다. 이러한 기존 사서와 사가들에 대한 불신은 야사를 사료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된 시발점이 되었다.
신채호의 고구려사 서술의 또 다른 특징적 면모는 인물과 사건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채호는 연개소문과 차대왕, 강이식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데 연개소문과 차대왕은 『삼국사기』 등의 기존 문헌에서 부정적인 인물로 평가받고 있으며, 강이식은 정사의 기록에서 전혀 언급된 바 없는 새로운 인물이었다. 그는 위 세 인물들을 중국과의 전쟁에서 고구려를 수호한 전쟁 영웅으로 묘사했으며, 이에 대비되는 인물로 당태종을 언급해 연개소문과의 대결구도로 기술한 점이 특징적이다.
신채호의 고구려사 서술의 마지막 특징적 면모는 고고학적 연구 방법론을 제시함으로써 근대 역사학 연구 방법론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피력했다는 것에 있다. 망명 초기였던 1910년대 초반 일제에 의해 비밀리에 행해지던 광개토왕릉비를 직접 답사하였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시도라고 일컬어 질만 하다.
본고는 기존에 소홀히 여겨졌던 『조선상고사』의 고구려사 서술을 통해 신채호의 고구려사 인식과 역사 연구 방법론의 체계를 되짚어 보았다. 신채호가 백제와 신라에 비해 고구려의 역사를 비중 있게 다룬 이유는 6-7세기 강대한 제국이었던 수·당에 맞서 승리한 고구려의 역사가 외세의존적인 당시의 경향을 탈피하고 극복할 수 있는 방편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는 신채호가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제시한 투쟁론이었으며 강한 열망의 표현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This paper aims at examining Shin Chaeho's methodology of historical research and perception through his historical description and understanding of Goguryeo in Joseon Sanggosa. he'd shown an active writing about history books since before his exile. Because he thought that national spirit can be restored by writing history books that improve the national consciousness undermined by the Japanese annexation of Korea in 1910. And he was influenced by the doctrine of social evolution through Liang Qichao when he was in Beijing in 1924 after his exile to China. Since then, his view of history is different than in the past. Joseon Sanggosa was written by Shin Chaeho while he was staying in Beijing. Thus, this book can be understood as the overview suggesting his historical recognition system and the development process of ancient history methodology.
The one of the features of his historical descriptions is that he had a doubt about records of the official historical books in Korea and China, and trusted other sources and materials in unofficial historical books. According to his opinion, these official historical books, written during the Koryo and Joseon Dynasties, were affected by historians having the perspective of dependence on foreign power.
Besides, he distrusted the authors and disbelieved the records about ancient Korean history of the official historical books in China. Especially, this critical perception is shown through his historical estimations of the Busik Kim`s Samguksagi, Jin-shu and emperor Taizong of Tang. In addition, Han Sa Gun Yo-Dong theory, one of Shin Chaeho's unique arguments, is from his perception that regards foreign influences and dominance as negative ones. After all, this distrust about existing research and old historians made him use unofficial history books as historical materials actively.
Another distinctive aspect of his writing is an emphasis on the historical characters and events. He estimated highly Yeon Gaesomun, King Chadae and Kang Yisik. Yeon Gaesomun and King Chadae received a negative evaluation in existing literature, such as Samguksagi. Moreover, Kang Yisik was a historical figure who had not been mentioned in official historical books before. On the other hand, Shin Chaeho described these historical people as the war heroes who defended the Goguryeo and made a confrontational structure between Yeon Gaesomun and emperor Taizong of Tang.
Lastly, He emphasized the necessity of research method on the modern history by presenting archaeological research methodology. For example, Surprisingly, he explored the Gwanggaeto Stele that was forbidden to the general public in the early 1910's under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Above all, he consider Goguryo's victories over Sui and Tang Dynasty, two strong empires in the 6-7th century, as the means to overcome the tendency of dependence on foreign power at that time. Therefore, he treated heavily the history of Goguryo among the three kingdom. In conclusion. all this is the struggles and strong desire to achieve the independence for his country.

3고등학교 『국사』·『한국근·현대사』·『한국사』의 노동운동 서술 분석-1980년대 이후를 중심으로-

저자 : 김주안 ( Kim Ju-an )

발행기관 : 단국사학회 간행물 : 사학지 5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89-175 (8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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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현재 역사학과 역사교육학에서 소외된 노동운동사를 현행 교육과정과 교과서에서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분석하여 문제점을 확인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개선방안을 제시하였다.
우선 연구자는 7차 교육과정과 현행 2009년 개정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노동운동에 대한 서술을 분석하였다. 다음으로 각 교육과정에 따라 발행된 『국사』, 『한국근·현대사』, 『한국사』에 서술된 노동운동에 대한 서술을 분석하고 비교하였다. 본 연구에서 다루는 노동운동 시기는 노동운동사 중 현재와 가장 가깝고 급진적 변화가 있었던 1980년대 이후 노동운동이다. 마지막으로, 위 내용을 기반으로 역사교과서가 다룬 1980년대 이후 노동운동에 대한 서술 상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방안을 제시하였다.
이상과 같은 연구를 통해 본 연구자는 노동운동의 교육적 가치를 살리는 내용구성 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안하였다. 첫째, 노동운동 및 관련 내용이 교육과정 내에 보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수록되어야 한다. 둘째, 교과서는 나열식 서술이 아닌, 시기별로 주요 흐름이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충분한 배경을 서술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본문 외 보조 자료를 활용할 경우 본문과 연계되거나 본문을 보완해서 활용할 수 있는 자료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여야 한다.
본 연구를 통해 연구자는 노동운동이 민주주의 교육을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함을 확인하고 활용방안을 모색하였다. 이를 통해 학생들이 노동운동을 학습함으로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과 태도를 함양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This study analyzed how labor movement history, which is neglected in current historical science and history education, is handled in current curriculum and textbooks to examine problems, and suggested improvement plans to overcome such problems.
First, the 7th curriculum and the current 2009 revised curriculum were examined for an analysis on the description of labor movement. Next, the narratives on labor movement described in 『National History』, 『Korean Modern History』, and 『Korean History』, which were published according to each curriculum, were analyzed and compared. The period of labor movement dealt with in this study is after 1980s when rapid changes were made but is still the closest to the present. Lastly, based on above results, the narrative problems on labor movement after the 1980s that history textbooks dealt with were pointed out, and improvement plans were suggested.
Based on above, this study suggests the following plans that revives the educational value of labor movement. First, contents related to labor movement should be contained more aggressively and more in depth within the curriculum. Second, textbooks should describe sufficient background information about the key factors of historical factors chronologically, rather than reciting narratives.
Through this study, the possibility of realization of democratic education by the labor movement was confirmed and the utilization plan was examined. Lastly, It is expected that students will be able to develop their qualities and attitudes as democratic citizens by learning the labor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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