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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와 깃발 - 저항 주체 형성의 문화사를 위하여 -

Rallies and Flags-For the Cultural History Focusing on the Constitution of the Subjects of Resistance in Korea

이기훈 ( Lee Kihoon )
  • : 연세사학연구회( 구 연세대학교 사학연구회 )
  • : 학림 39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17년 02월
  • : 163-198(36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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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 사회 운동의 문화적 기반을 좀 더 깊이 있게 천착하기 위해서는 개인 차원이 아니라 저항과 운동의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내면`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집회와 시위 현장에서 등장하는 깃발은 이를 위해 중요한 분석의 대상이 된다. 정치적 의사 표현과 집단적 의지로서 깃발은, 전통사회에서도 널리 쓰였다. 그러나 그 깃발들은 개별적인 개인이나 마을 공동체 등을 상징하고 대표하는 것이지, 국민이나 계급과 같은 정치적 주체들을 표상하는 집단적 대표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개항 이후 태극기가 대표하듯, 깃발은 점차 국민, 시민, 민중 등 근대적 정치 주체들을 상징하게 되었다. 하지만 근대 이후 집회나 시위에서 사용된 깃발 속에도 전통적 요소들은 남아 있었다. 상징이나 기호보다, 문장으로 주장이나 요구를 명확히 제시하는 쪽을 선호한 것이 대표적이다. 해방 이후 집회의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전체적으로 한국 근대의 깃발들이 내포하는 상징성의 역사나 문화적 함축은 그다지 깊지 못하다. 정치적 저항을 용인하지 않았던 근대 한국 지배 권력의 폭압성에 기인하는 바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름의 문화적 전통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이 있는 천착과 해석이 필요하다. 이 글은 한국 근대의 또 다른 측면을 문화사적 시각에서 해명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장기적으로 깃발을 포함한 저항 문화의 상징 체계 전체를 해석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For more in-depth research on the cultural foundation of the social movements in modern Korea, the collective and social `inner nature` of resistances and campaigns needs to be understood first. In doing so, flags that appeared in these scenes of rallies and protests can be an important subject of analysis. As a tool to express political demands and collective wills, flags were widely used in traditional societies. However, these flags were merely a symbol to represent a certain individual or a village community, not a collective subject of politics. Like Taegeukgi (the national flag of Korea) used after Korea opened her ports to trade or the Red Flag (赤旗) in Korean Liberation Days(1945~1948), flags gradually began to symbolize the modern subjects of politics such as Koreans, citizens, or people. However, a part of traditional elements still survived in the flags used in the rallies or protests that took place since the modern times. This is best represented by the fact that these flags had a penchant for clearly expressing the demand or message of the rallies in written sentences, rather than displaying a certain symbol or mark. As appeared in the history of rallies and protests since Korea gained independence, the overall history and cultural implications of the flags in modern Korea seem to lack in depth. It is mainly due to the brutal nature of the prevailing authorities in modern Korea they never allowed any political resistance. However, we still need to do more in-depth research on the cultural traditions involved in these flags. To this end, this study aims to explain less known aspects of modern Korea from the perspectives of cultural history. In the long term, I hope this approach may serve as a starting point of interpreting the whole symbol system (including flags) of the resistance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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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410-ECN-0102-2018-900-000454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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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서(日書)를 통해 본 고대 중국의 질병관념과 제사습속

저자 : 문정희 ( Moon Chung Hee )

발행기관 : 연세사학연구회( 구 연세대학교 사학연구회 ) 간행물 : 학림 39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7-42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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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토문서 『수호지진묘죽간(睡虎地秦墓竹簡)』 일서(日書)를 통해 고대인들의 질병관념과 제사습속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일서는 시일을 점치는 택일서로서, 복을 바라고 재앙을 피하고자 하는 인간의 원초적 욕구가 반영된 산물이다. 고대과학과 의학이 발달하지 못하였을 때 질병은 신이 내린 재앙이요 공포였음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출토문서 중 『포산초간(包山楚簡)』, 『망산초간(望山楚簡)』 등에 보이는 이른바 `질병정(疾病貞)` 혹은 `제도간(祭禱簡)`은 질병의 진행상황과 치유 가능성, 그리고 병의 원인에 관한 점복이 복서(卜筮)와 일점(日占)에 의해 행해졌음을 보여준다. 특히 일점(日占)은 『운몽진간』에 포함된 일서 『병(病)』 편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일서 『병(病)』 편은 발병 시일에 따라 병의 진행상황과 병의 원인이 된 대상 즉 작수자(作?者)가 누구인가를 점쳐 병을 치료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이 논문은 일서『병』 편의 기사를 통해 질병의 원인이 되는 대상과 질병의 구체적인 매개체 그리고 치병을 위한 제사 의식 등을 분석하여 중국 고대인들의 질병 관념과 제사 습속의 일면을 그려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운몽진간』일서 갑종 병 편과 을종 유질, 십이지점복 편 등을 주요분석 대상으로 삼았고, 유사한 출토 문서로 전국시대 『포산초간(包山楚簡)』, 『망산초간(望山楚簡)』 등의 `질병정(疾病貞)` 혹은 `제도간(祭禱簡)` 그리고 당대 돈황유서인 발병서(發病書) 의 `추득병일법(推得病日法)`을 비교 검토하였다. 그 결과 일서 병 편 등은 병의 발생 날짜에 따라 병을 일으킨 원인제공자(작수자)를 점치며, 병의 예후와 진행상황을 점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수자의 경우, 조상과 무(巫), 이사(里社)의 사신(社神)으로 정리된다. 무와 사신 등 작수자가 당시 사회에 영향력을 가졌던 자들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민간 사회의 세속 권력의 지형을 엿볼 수 있다. 또한 내용 중`(제사)고기에 병을 얻어오다(得之於肉)` 구절을 통해 병을 야기한 작수자 외에 외부로부터 들여온 음식물이 발병의 구체적 매개체임을 확인하였다. 특히 병 편에 열거된 `육(肉)`, `웅계(雄鷄)`, `주(酒)`, `삭어(索漁)`, `견육(犬肉)`, `포(脯)`, `수(脩)` 등이 제사에 올린 제물이란 점에서 당시 이(里) 공동체 사회에서 행해진 제사 관행 이른바 `갹(출)`(醵出)의 구체적 실상을 추측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질병이 기본적으로 각종 귀신의 빌미로 인한 것이지만 구체적으로는 음식물을 통해 야기된다고 본 점은 고대 사회에서 제사 후 주육(酒肉)을 공유하는 관습에 비추어볼 때 일종의 공중 위생개념에 대한 고대인들의 초보적인 인식으로 볼 수 있다. 『사상례(士喪禮)』 에서 병이 났을 때 집의 안팎을 청소하고 더러워진 옷을 갈아입는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2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전란기 삼년상(三年喪)의 변례(變禮)와 국법(國法) 운용

저자 : 김선민 ( Kim Sun-min )

발행기관 : 연세사학연구회( 구 연세대학교 사학연구회 ) 간행물 : 학림 39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43-72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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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의 喪禮는 평시를 전제로 한 원칙이나 계속된 전란과 정치적 분열은 정상적인 喪禮실천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본고는 위진남북조 전란기 三年喪실천을 둘러싼 사회적 문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禮學者들의 대안제시와 국가권력의 노력을 살펴보았다. 첫째, 전란기에는 부모의 사망을 듣고도 葬事에 임하지 못하거나 시신 수습이 불가한 경우가 많다. 禮에서는 `시신을 葬事지내기 전에는 喪服을 벗을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이 조문에 따르면 남은 가족들은 평생 상복을 벗지 못하고 혼인과 出仕도 할 수 없다. 이에 317년 東晋元帝는 과거 曹魏때의 東關故事를 재천명함으로써 葬事에 임하지 못한 자라도 삼년상을 마칠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 둘째, 전란기에는 生死不明의 이산가족들이 대량 발생한다. 생존가능성이 없는 부모를 위해 삼년상을 치러야 할지 혼인과 관직을 포기한 채 평생 부모를 찾아다녀야 할지는 인간의 情理상 매우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이에 대한 조정 禮官들의 의론을 대별하면, 생존가능성이 없다면 삼년상의 종료와 더불어 바로 혼인과 出仕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에 평생 素服을 입고 心喪으로 지내야 한다거나 혼인까지는 허용해도 仕宦만큼은 안 된다는 주장이 있다. 합의 도출의 실패로 國法제정은 無爲로 돌아갔고 이 사안의 경우는 결국 각자의 현실적인 선택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원칙과 현실간의 괴리를 해소하기 위한 變禮의 신축적 운용은 禮의 경직성에서 오는 사회적 불안과 긴장을 완화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국가권력이 喪禮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喪禮문제에 대한 국가 개입의 배후에는 喪禮의 통일적 기준을 필요로 하는 당시 사대부들의 요구도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孝治를 표방하는 西晉조정에 의해 강력한 법률적 뒷받침을 받고 있었던 喪禮는 단순한 도덕규범을 넘어 淸議에서 가장 중시된 평가방식의 하나였고 淸議는 곧 법률적 제재로 연결되었다. 전란으로 원칙적인 喪禮실천이 어려워짐에 따라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했던 사대부들은 國法에 의한 공인된 變禮만이 안전과 정당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판단하에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과 결단을 요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생사불명과 같은 미묘한 사안에 대해 조정 禮官들이 최종적인 결론을 유보한 것은 그들 역시 사대부들과 마찬가지로 윤리적 도덕적 책임에서 자유롭고 싶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3일그러진 초상 -조선지배층의 강희제상(康熙帝像)-

저자 : 하정식 ( Ha Jung-shik )

발행기관 : 연세사학연구회( 구 연세대학교 사학연구회 ) 간행물 : 학림 39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73-120 (4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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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연행사신의 견문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康熙帝像은 실제에 가까운 영명하고 위대한 군주일까, 아니면 무능하고 부패한 昏君이나 夷狄의 왕일까? 정신적으로 저항하면서 조공에 참여한 사신은 강희제의 사람됨과 거둥, 정책이나 치적, 청조사회의 안정과 번영 등 현지에서 견문한 사실에 대하여, 실상을 왜곡하거나 비판적인 언어로 아주 짧게 기록하였다. 또 청조 멸망을 기원하는 사신의 의식과 바람[所望]도 투영하였다. 그렇게 강희제와 청조 사회에 대한 이미지는 만들어졌고, 일그러졌다. 어린 강희제는 황제 역할을 못하는 허수아비로, 청년 강희제는 방탕, 무절제하고 불안정한 군주로, 장년 강희제도 황음하고 유희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는 昏君으로 묘사하였다. 황제의 순행은 유람이라고 비판했다. 황제의 소박한 복장이나 검소한 생활, 간편한 거둥은 군주의 위엄과 君臣의 分을 모르는 오랑캐의 추장으로 해석하였다. 드물게 황제의 통치 능력과 치적을 인정하는 경우에도 부정적인 요소를 함께 끌어다 희석시켰다. 金昌業과 부베는 같은 시기, 같은 환경과 다른 환경에서 강희제를 소개하였다. 김창업은 강희제가 자질과 능력, 성실성으로 청의 번영을 일궈낸 위대한 군주이지만 夷狄의 왕이라고 묘사, 평가를 제한했다. 부베는 강희제가 타고난 자질, 열성적인 수양과 연마, 근검절약과 성실성 등 제왕의 덕을 두루 갖춘 영명하고 위대한 군주라고 다소 부풀려 표현했다. 둘 다 연행사가 왜곡한 이미지를 수정하기에 족하다. 연행사절은 어떤 환경에서 견문하고 기록하였을까? 실제와 거리가 먼 일그러진 皇帝像은 제도의 한계에서 오는 제한된 정보 때문일까, 아니면 특정한 의식의 소산일까? 연행사절의 정보 탐지에 일정한 제약은 있었지만, 황제상을 왜곡할 만큼 정보가 부실하거나 부족하지 않았다. 聞見을 결정짓는 요소는 주자학적 명분론에 바탕을 둔 崇明反淸論과 小中華의식이었다. `인조반정`은 원죄였고 견고한 굴레였다. 사신의 의식으로는, 청조중국은 결코 中華일 수 없고, 夷狄의 세계이어야 했다. 이런 反淸·自尊意識은 청국에 대한 탐구나 학습의 동기를 억제했다. 현지의 견문은 중화 멸망의 확인이거나, 황제와 청나라가 얼마나 非中華인가에 대한 탐색이었다. 中華를 구현해가는 청국이란 실제를 견문하고 나서, 기록에는 관념 속의 청국, 胡·夷狄의 나라 청국[當爲]으로 바꾸어 기록, 전파하였다. 강희제의 인품과 업적, 그리고 청조정권의 안정과 번영이라는 실제는 긴 시간 속에서 점차 뚜렷해졌다. 선명해진 실제 앞에서 `청국=이적의 나라`라는 당위는 점차 희미해져 갔다. 숙종은 崇明反淸의식의 유지, 강화를 위한 기억의 장치로 大報壇을 설립하였다. 그러나 청조 문물이 내뿜는 빛과 바람은 시간과 함께 쌓이면서 반청의식을 퇴색, 풍화시켜갔다. 뒷날 英祖는 대보단 의례를 확대, 강화하지만, 기억과 장치의 老朽化가 진행되면서 淸朝大國觀이 형성되어갔다. 개방과 팽창이라는 세계사적 조류를 조선은 작은 우물 안에 의지하여 막아내고자 하였다.

4일본의 울릉도·독도 인식과 이마즈야 하치에몽(今津屋八右衛門)의 울릉도·독도 도해사건

저자 : 이계황 ( Lee Gye-whang )

발행기관 : 연세사학연구회( 구 연세대학교 사학연구회 ) 간행물 : 학림 39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121-160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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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7세기 이래 일본 사료에 나오는 마쓰시마(독도)가 어떠한 성격을 나타내고 있는가를 검토하고자 한다. 일본 사료 속에 독도가 어떻게 나타나는가는 독도가 일본에 속하는 영토인가를 가늠하는 주요한 지렛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치에몽의 울릉도 도해사건의 전말을 소상히 밝히고, 이에 대한 막부의 대응 등을 살펴 이 사건이 함의하는 역사적 의의. 특히 에도시대의 독도 영유권을 명확히 하고자 한다. 17~18세기에 걸쳐 일본 사료에 나타나는 독도는 조선인의 일본 연행과 관계되거나, 일본에서 울릉도 도해 여정을 기록할 때 병기되어 있다. 이것은 일본인의 독도 도해는 어업으로나 영토로나 무의미함을 나타낸다. 1720년대 막부가 울릉도 독도 조사는 울릉도 독도에 대한 조사로 보기보다는 무기류 밀무역과 관련되어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 해상 운송과 해상 운송로 발전으로 울릉도 독도가 해상 운송도중에 해상 운송업자들에게 발견되었을 가능성은 존재한다. 그리고 19세기에 오면번 재정 악화 타개 모색과 어업을 하기 위해 울릉도 도해를 고려하기 시작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가운데 하치에몽의 울릉도 도해사건이 발생한다. 하치에몽의 울릉도 도해사건은 하마다 에도 번저, 하마다번, 그리고 하치에몽으로 대표되는 해상 운송업자와 주로 오사카 상인들이 조직적으로 관여해 계획한 것으로,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나타내고 있다. 한편 막부는 이 사건을 매우 엄중히 다루어 마쓰다이라 야스토에게 영구 칩거, 하마다번 관리들의 자살, 하치에몽과 하시모토산베에에게 사형을 명하였다. 막부가 이렇듯 중형을 선고한 것은 당시 서양선박, 특히 러시아선이 일본에 도항하고 있었고, 그에 대해 이국선 무조건 격퇴정책(異國船無二念打拂令)이 시행되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이며, 특히 총포의 해외유출과 밀무역과 관련되어 있다. 한편 막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울릉도 도해 금지령을 전국에 내리고 있다. 그러나 이 명령의 주요 내용은 전국의 방방곡곡에 내려진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인민의 원해 도해 금지령의 성격이 강하다. 막부가 지적하듯이 항해 중에 이국인과의 조우를 피하기 위한 것이다. 이 명령은 단순히 일본 인민만 관련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독도에 대한 모든 권리-원래 존재했던 것은 아니지만-를 완전히 포기한 것으로 보아도 좋다. 왜냐하면, 일본 인민의 연안 항로 이용은 더 이상 울릉도 독도에 대한 접근을 차단한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울릉도 독도가 조선령이라는 막부 입장은 안용복 박어순의 일본 연행 사건의 처리 과정에서도 동일하며, 하치에몽의 울릉도 도해사건의 처리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메이지(明治)정부에서도 관철되어 1878년 독도가 적어도 일본령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하고 있다.

5집회와 깃발 - 저항 주체 형성의 문화사를 위하여 -

저자 : 이기훈 ( Lee Kihoon )

발행기관 : 연세사학연구회( 구 연세대학교 사학연구회 ) 간행물 : 학림 39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163-198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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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 사회 운동의 문화적 기반을 좀 더 깊이 있게 천착하기 위해서는 개인 차원이 아니라 저항과 운동의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내면`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집회와 시위 현장에서 등장하는 깃발은 이를 위해 중요한 분석의 대상이 된다. 정치적 의사 표현과 집단적 의지로서 깃발은, 전통사회에서도 널리 쓰였다. 그러나 그 깃발들은 개별적인 개인이나 마을 공동체 등을 상징하고 대표하는 것이지, 국민이나 계급과 같은 정치적 주체들을 표상하는 집단적 대표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개항 이후 태극기가 대표하듯, 깃발은 점차 국민, 시민, 민중 등 근대적 정치 주체들을 상징하게 되었다. 하지만 근대 이후 집회나 시위에서 사용된 깃발 속에도 전통적 요소들은 남아 있었다. 상징이나 기호보다, 문장으로 주장이나 요구를 명확히 제시하는 쪽을 선호한 것이 대표적이다. 해방 이후 집회의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전체적으로 한국 근대의 깃발들이 내포하는 상징성의 역사나 문화적 함축은 그다지 깊지 못하다. 정치적 저항을 용인하지 않았던 근대 한국 지배 권력의 폭압성에 기인하는 바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름의 문화적 전통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이 있는 천착과 해석이 필요하다. 이 글은 한국 근대의 또 다른 측면을 문화사적 시각에서 해명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장기적으로 깃발을 포함한 저항 문화의 상징 체계 전체를 해석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6인문학의 `위기`와 역사학의 좌표

저자 : 김성보 ( Kim Seong Bo )

발행기관 : 연세사학연구회( 구 연세대학교 사학연구회 ) 간행물 : 학림 39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201-220 (2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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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사회인문학`의 관점에서 한국 인문학의 위기의 본질을 해명하고, 그 극복을 위해 역사학은 어떤 기여를 해야 하는지를 제시해보는 하나의 시론이다. 1987년의 제도적 민주화 이후, 한국의 인문학은 한편으로는 냉전과 독재 속에서 극단적으로 억제되었던 인문학의 비판정신을 회복하되, 1980년대의 편향되고 도식화된 사회과학 일변도의 비판적 자세까지도 비판하면서 인문적 관점에서의 비판정신을 창출할 시점에서 있다. 그런 점에서 현 시점은 인문학의 위기이면서 동시에 기회이지만, 그 기회를 살리기보다는 오히려 외적 환경에 영향을 받으며 그 위기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오늘날 인문학계는 경쟁력 향상이라는 명분 아래 산업화, 시장화가 촉진되고 있다. 이는 학문의 표준을 장악한 미국 중심의 국제적 학문권력 속에 종속되는 학문의 식민화로 귀결되고 있다. 그 속에서 한국의 역사학은 미래를 위해 과거를 성찰할 여유도 없이, 현실의 정치적 파당성 경쟁에 휘말리며 기억의 정치도구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인문학계는 안으로는 인문정신의 회복을 통해 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역할을 회복하고, 밖으로는 동시적으로 위기에 처한 다른 동아시아 국가·지역들의 인문학계와 연대하여 학문 활동의 새로운 탈시장적, 탈중심적 규범을 만들어내어야 할 것이다. 한국의 역사학에는 현재를 정당화하는 도구로서가 아니라, 권력에 의해 억압되고 왜곡된 과거에 대한 기억을 권력으로부터 해방하는 기억의 민주화와 그를 통한 사회의 민주화를 지향하는 `기억의 정치`가 요청된다. 그리고 동아시아의 역사대화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구 학문담론의 한계를 뛰어넘어 보다 보편적인 학문 담론을 창출함으로써 학문의 식민화를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다.

7구석기 분야 학제간 연구의 모범 사례 - 프랑스 테라 아마타 유적 종합연구서 완간에 즈음하여 -

저자 : 공수진 ( Kong Sujin )

발행기관 : 연세사학연구회( 구 연세대학교 사학연구회 ) 간행물 : 학림 39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223-234 (1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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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해 2016년 완간된 테라 아마타유적 종합연구서의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한 것이다. 테라 아마타 유적은 프랑스 남부 니스 시에 있는 구석기시대 유적이다. 주택 공사 과정에서 유적이 있는 것이 확인되면서 1965년에 앙리 드 룸리 교수의 지도 아래 긴급하게 발굴조사가 이뤄졌다. 발굴 조사가 완료된 이후, 니스시의 도움으로 건축공사는 예정대로 진행하고 대신에 건물 1층을 시립박물관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결정되었으며, 이후 매장문화재 보존과 개발이 상충될 때 모범 사례가 되었다. 당시 발굴단은 조사하기에 좋지 않은 여건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자료들을 꼼꼼하게 기록하여 자료로 남겼다. 이것이 바탕이 되어서 2009년부터 2016년까지 5권의 방대한 종합연구서를 발간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 사용되고 있는 다양한 연구 방법 및 결과, 특히 구석기시대 사람의 삶에 대한 고찰은 한국의 구석기연구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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