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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민국학연구원> 국학연구론총> 탁영(濯纓) 제문(祭文)의 양상(樣相)과 미학(美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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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영(濯纓) 제문(祭文)의 양상(樣相)과 미학(美學)

The Aspects and Aesthetics of Takyeong Kim Ilson's funeral orations

鄭炳浩 ( Jeong¸ Byeong-ho )
  • : 택민국학연구원
  • : 국학연구론총 26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0년 12월
  • : 9-29(21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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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濯纓 祭文의 樣相
3. 濯纓 祭文의 美學
4.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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濯纓 金馹孫의 祭文은 형식에서 대상인물에 따라 일정한 경향성을 보이고 있다. 형식은 四言, 산문, 楚辭體로 이루어져 있는데 4언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스승과 벗에게 올린 제문은 모두 4언, 중형에게 올린 제문은 모두 산문, 祭神文에 해당하는 首露王에게 올린 제문은 초사체로 이루어져 있다.
탁영의 제문은 다양한 편폭을 지니고 있다. 100자 미만, 100자 이상-200자 미만, 200자 이상-400자 미만, 400자 이상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일인물에 대한제문에서도 편폭이 상당히 큰 편이다. 이러한 편폭의 차이는 작자의 제문 창작의 특성, 망자와의 친밀도, 제문의 성격, 창작시 상황 등 복합적인 요인의 결과로 보인다.
탁영은 亡者와의 추억을 소환하여 망자의 형상을 구체적으로 각인시키는 방식으로 제문을 구성하였다. 망자는 사라졌지만 추억 속 망자의 형상은 더욱 뚜렷이 부각된 것이다. 이 지점에 주목하여 탁영은 망자와의 추억 소환을 망자의 형상화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도드라진 미학적 효과를 거두었다. 탁영의 제문에 나타난 슬픔은 망자, 절대자, 작자 자신에 대한 怨望으로부터 연유된 것이다. 망자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다양한 대상을 향해 원망이라는 정서로 변주하여 표출한 것이다. 탁영의 제문에는 슬픔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慣用 어구도 등장한다. 그런데 이런 직설적인 표현보다 오히려 우회적 또는 변주적 표현이 슬픔의 정서를 더욱 고조시킬 수 있다. 다양한 대상을 향한 원망이라는 감정을 통해 망자에 대한 비애를 극대화시키는 방식은 탁영의 제문이 지닌 도드라진 미학이다.
This thesis is an examination of Takyeong Kim Ilson's funeral oration Specifically, We look at the aspects and aesthetics in Takyeong's funeral oration.
Takyeong's funeral oration show a certain tendency according to the character in the form. The form consists of four words, prose, and chosa-style(楚辭體), with a relatively high proportion of four words.
Takyeong's funeral oration had various length. The length of the funeral oration for the same person is also quite different. The difference appears to be the result of complex factors such as the nature of the author's writings about funeral oration, the closeness of the deceased, the nature of the funeral oration, and the circumstances of the writings.
Takyeong composed the funeral oration by recalling the memory of the deceased and imprinting the image of the deceased in detail. The dead have disappeared, but the image of the dead in the memory is more pronounced. Takyeong actively recalled memories of the dead to create an aesthetic effect.
The sorrow shown in Tak-young's funeral oration was caused by resentment against the dead, the absolute, and the author himself. The sadness of the deceased's death was expressed by transforming it into resentment towards various objects. Takyeong's funeral oration features phrases that directly revealsadness. However, rather than direct expression, indirect or perverted expression can further heighten the sentiment of sadness. Tak-young's writings maximize his sorrow for the dead through his feelings of resentment toward various pers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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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정보

  • : 인문과학분야  > 기타(인문과학)
  • : KCI등재
  • :
  • : 반년간
  • : 2005-1999
  • :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2008-2020
  • :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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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탁영(濯纓) 제문(祭文)의 양상(樣相)과 미학(美學)

저자 : 鄭炳浩 ( Jeong¸ Byeong-ho )

발행기관 : 택민국학연구원 간행물 : 국학연구론총 2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9-29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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濯纓 金馹孫의 祭文은 형식에서 대상인물에 따라 일정한 경향성을 보이고 있다. 형식은 四言, 산문, 楚辭體로 이루어져 있는데 4언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스승과 벗에게 올린 제문은 모두 4언, 중형에게 올린 제문은 모두 산문, 祭神文에 해당하는 首露王에게 올린 제문은 초사체로 이루어져 있다.
탁영의 제문은 다양한 편폭을 지니고 있다. 100자 미만, 100자 이상-200자 미만, 200자 이상-400자 미만, 400자 이상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일인물에 대한제문에서도 편폭이 상당히 큰 편이다. 이러한 편폭의 차이는 작자의 제문 창작의 특성, 망자와의 친밀도, 제문의 성격, 창작시 상황 등 복합적인 요인의 결과로 보인다.
탁영은 亡者와의 추억을 소환하여 망자의 형상을 구체적으로 각인시키는 방식으로 제문을 구성하였다. 망자는 사라졌지만 추억 속 망자의 형상은 더욱 뚜렷이 부각된 것이다. 이 지점에 주목하여 탁영은 망자와의 추억 소환을 망자의 형상화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도드라진 미학적 효과를 거두었다. 탁영의 제문에 나타난 슬픔은 망자, 절대자, 작자 자신에 대한 怨望으로부터 연유된 것이다. 망자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다양한 대상을 향해 원망이라는 정서로 변주하여 표출한 것이다. 탁영의 제문에는 슬픔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慣用 어구도 등장한다. 그런데 이런 직설적인 표현보다 오히려 우회적 또는 변주적 표현이 슬픔의 정서를 더욱 고조시킬 수 있다. 다양한 대상을 향한 원망이라는 감정을 통해 망자에 대한 비애를 극대화시키는 방식은 탁영의 제문이 지닌 도드라진 미학이다.

2탁영(濯纓) <속두류록(續頭流錄)>의 산수담론(山水談論)과 그 도학적(道學的) 성격(性格)

저자 : 신태수 ( Shin¸ Tae-soo )

발행기관 : 택민국학연구원 간행물 : 국학연구론총 2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31-67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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濯纓의 賦와 記와 跋을 들여다보면, 山水에 대한 화자의 조망 방식과 일체화 방식을 발견할 수 있다. 화자의 조망 방식과 일체화 방식은 <續頭流錄>에서도 발견된다. 창작 연대로 보아, <속두류록>이 賦와 記와 跋에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 <遊頭流錄>으로부터는 화자의 조망 방식을 수용했고 <智異山日課>로부터는 화자의 일체화 방식을 수용했다고 보아야 옳다. 先行 山水遊記의 두 방식을 수용한 까닭은 새로운 산수담론을 구축하기 위함이다. 새로운 산수담론이란 '인간이 주체가 되어 산수 본성을 체인해야 하는가, 산수가 인간에게 본성을 체인하도록 해야 하는가?'라고 하는 문제제기이다. 이 산수담론은 그야말로 거대 담론이다. 후대 여러 선비들이 참여하여 각자의 견해를 피력할 정도로 넓고 깊은 문제의식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탁영의 산수담론은 도학적 측면이 강하다. 도학적 측면은 두 가지다. 人文地理탐색과 治人의 논리가 그 한 가지요, 인간과 산수의 우주적 성격 탐색이 그 다른 한 가지다.

3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의 신원(伸冤)과 추존(追尊)

저자 : 박미선 ( Park¸ Mi-sun )

발행기관 : 택민국학연구원 간행물 : 국학연구론총 2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69-103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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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탁영 김일손의 죄과, 신원, 추존 양상을 검토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김일손이 쓴 사초에 대한 신뢰성을 약화시키기 위해 사초 관련자들에 대한 심문과 진술을 확보하였으며, 김종직의 弔義帝文과 이를 '忠憤'의 발로로 보는 판단이 김일손의 죄목을 구성하는 결정적 근거였다. 이후 김일손의 복권은 사화 발생의 본질이 붕당과 능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적 원한과 사초열람의 원칙 붕괴에 있었다는 논의의 전개로 가능했는데, 이러한 변화는 유자광의 정치적 몰락에 연유하였다. 당시 김일손의 복권은 개인이 아닌 사관의 역할에 대한 복권이었으며, 공론 정치의 부활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복권 이후 김일손에 대한 추증 및 증시, 묘역 조성, 서원배향, 문집간행 등의 추존 작업은 조선 중기이후 중앙과 지역의 사림, 김일손 가문의 정치적 관계망 속에서 이루어졌다.

4점필재학단의 분화와 탁영 김일손의 인물평가 ― 「조의제문」 사초수록과 그에 대한 탁영 김일손 평가의 실증적 검토를 중심으로 ―

저자 : 정석태 ( Jung¸ Seok-tae )

발행기관 : 택민국학연구원 간행물 : 국학연구론총 2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05-136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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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손은 사관으로서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사초에 실을 정도로 적극적인 활동을 벌여 무오사화를 초래하였지만, 그 무오사화가 도리어 조선이 후일 도학의 시대를 열어가는 큰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그 도학의 시대에 그가 사관으로서 소임을 깊이 자각하고, 또 스승 김종직에 대한 지극한 존모의 마음을 가지고 사초에 실었을 「조의제문」이 이제는 역으로 그를 포함한 스승 김종직을 文人으로 평가하는 결정적인 증빙자료가 되고 말았다. 도학의 시대를 출발시킨 이황이 「조의제문」과 관련한 출처의리의 흠결을 우회적으로 지적해서 그와 그의 스승 김종직을 문인으로 단정하고 난 뒤, 그러한 평가는 이황의 후학들인 남인세력의 퇴계학파에서만이 아니라 서인세력, 후일 노론세력의 송시열 계열에서도 변함없었다. 송시열이 그에 대해 文章과 節行이 한 시대의 으뜸이라고 평가를 내린 것은 영남 강우지역에 자신들의 세력기반을 부식하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에서 이루어진 일시적인 것이었다. 특히 송시열은 그에 대한 이러한 평가와 추숭에 이어 조식의 신도비를 찬술한 다음, 김종직의 시호복구를 추진하였는데, 그 과정에 그때까지 남인으로 전향하지 않은 잔존 북인세력이 다시 노론으로 전향을 하게 되자, 영남 강우지역 어디에도 북인세력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영남 강우지역에서 북인세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남명학파의 소멸에만 그치지 않았다. 남명학파의 원류이자 표준이 되었던 그와 그의 스승 김종직의 학맥도 함께 소멸되면서, 이제는 더 이상 그와 그의 스승 김종직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나올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송시열의 평가와 무관하게 그는 여전히 문인으로 평가되었고, 그의 스승 김종직에 대해서도 노론세력에 의해 '文忠'으로의 시호복구가 이루어진 뒤 허울만 도학과 문장과 은일과 절행의 원류이자 표준으로 높여진 채 여전히 그 실질, 다시 말하면 그에 합당한 예우인 문묘종사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5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 전승물의 양상과 문화콘텐츠화 방향 -청도를 중심으로-

저자 : 권영호 ( Kwon¸ Young-ho )

발행기관 : 택민국학연구원 간행물 : 국학연구론총 2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37-170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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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영 김일손의 자취는 고향인 청도에 다양한 전승물로 남아 있다. 김일손은 굵직한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 있고 삶의 비극성을 지니고 있다. 지적 호기심을 견인하고 정서적 긴장감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문화콘텐츠로 개발될 때 현대인에게 교훈과 감동을 동시에 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김일손의 삶에서 보편적인 의미를 끌어내는 일이 필요하다. 김일손은 고려말 節義의 정신사적 흐름을 계승하는 신진사류 가문에서 태어나 뛰어난 능력과 김종직의 후원에 힘입어 중앙정계로 진출해 사림파로 성장했다. 언관과 사관의 직분에 충실해 직간하고 직필하면서도 줄곧 사직하고자 했다. 이러한 삶의 과정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하나의 키워드를 발견할 수 있다. 김일손의 삶을 관통하는 핵심은 그의 호인 '濯纓'이다. '濯纓'은 치세에는 벼슬길에 나아가고 난세에는 물러난다는 의미이다. 김일손은 성종 대에는 '탁영'을 능동적으로 적용해 적극적으로 직간과 직필에 충실함으로써 이상적인 군주를 지향하려는 성종을 추동하고자 했다. 연산군 대는 '탁영'을 원래의 의미대로 적용해 세상에서 물러나 처사로서의 삶을 살고자 했으나, 훈구파의 공격으로 인해 불행한 비극을 겪었다. '탁영'이 삶의 중심이었던 만큼 김일손 전승물의 의미는 '탁영'을 중심으로 해석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탁영기념관을 짓거나 전승물들을 하나의 관광루트로 묶거나 탁영 기념물을 제작하는 등의 방향으로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다. 이러할 때 '탁영'은 OSMU(one source multi use)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6자계서원의 풍수지리학적 특성과 공간구성에 관한 고찰

저자 : 양동주 ( Yang¸ Dong-ju )

발행기관 : 택민국학연구원 간행물 : 국학연구론총 2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71-202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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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의 교육제도는 지방의 향교, 중앙의 사부학당, 성균관으로 이루어지는 관학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고려 말부터 대두하기 시작한 소규모 서재의 사학도 인정되었으며 국가에서 그러한 사학을 장려하기도 했다.
2019년 7월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이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서원은 9곳이며 紹修書院(경북 영주), 玉山書院(경북 경주), 陶山書院(경북 안동), 屛山書院(경북 안동), 道東書院(대구 달성), 灆溪書院(경남 함양), 武城書院(전북 정읍), 筆巖書院(전남 장성), 遯巖書院(충남 논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이다. 이로서 우리나라는 14개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되었다. 유네스코는 한국 성리학의 문화적 역사적 증거로서 서원이 지닌 탁월하고 보편적 가치를 인정한 것이다.
경상북도 청도군에 있는 탁영 김일손 생가로 알려진 자계서원을 중심으로 지리적 특성과 서원의 공간구성을 분석하였다. 자계서원은 대원군 때 훼철되었으나 탁영선생의 학풍을 이어가고자 인근 지역의 유림과 후학들의 노력으로 서원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 유학의 정통을 계승하였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자계서원은 입지와 경관, 그리고 건축에서 한국서원을 대표하는 서원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 서원을 대표한다는 의미는 서원의 지리적 입지나 서원의 공간구성 및 건축양식에서의 전형성뿐만 아니라 그 내용적 섬세함도 포함된다.
풍수지리사상은 기본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한 天氣 · 地氣 · 大氣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따라서 풍수지리학은 사람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근원적 주체 학문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정주공간(堂)에 좋은 에너지(氣)를 받고 地氣가 전달되어 좋은 양기가 모이는 곳이다. 따라서 陽宅의 입지로는 물과 먹거리를 쉽게 얻을 수 있고 자연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한 '藏風得水'지를 말한다.
본 연구에서는 탁영선생의 생애와 자계서원을 風水地理學的으로 분석함으로써陽宅의 입지와 정주공간의 중요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자계서원이 있는 뒤 주산(구릉지)은 낮으면서도 서원을 감싸 안은 형국을하고 있어서 외부로부터 삭풍을 잘 막아주고 있다. 또한 앞에는 청도천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고 뒤에는 산이 잘 감싸고 있어서 풍수지리학적으로 배산임수 터다. 자계서원을 지리적 특성으로 분석해 보면, 조종산으로부터 주산에 이르기까지 龍脈의 연결이 좋고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어지는 脈은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案山의 照應과 水勢도 합당하여 풍수지리 조건이 좋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둘째, 서원 건물의 배치와 구조적 공간구성은 주 건물인 보인당이 主山이 되고 동재(운계정사)가 靑龍, 서재가 白虎, 영귀루가 案山이 된다. 따라서 풍수적으로 四神砂의 특성이 잘 적용된 건물로 주산격인 보인당이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고, 동재와 서재가 조금 낮은 곳에서 보인당을 보필하고 있으며, 안산격인 영귀루가 보인당을 마주보는 앞쪽에서 배치되어 있다. 서원 공간의 中央에 보인당을 배치함으로써 건물구조, 즉 家狀에 의한 主山 案山 靑龍 白虎가 風水地理 이론에 맞게 설계하여 건축하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風水地理的으로 자계서원의 입지와 정주공간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서원의 입지 선택이나 각 전각의 구조적인 특성으로 볼 때, 보인당을 중심으로 기운이 집중되도록 설계한 면에서 풍수지리학이 철저하게 적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자계서원의 風水地理學的 분석을 통하여 현대에도 생활학문으로서 풍수지리학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적용이 필요하며, 風水地理學이 실천과학이며 합리적으로 적용되기를 기대한다.

7영남 지역 춘향전 필사의 전통과 필사자의 문학적 대응

저자 : 김재웅 ( Kim¸ Jae-woong )

발행기관 : 택민국학연구원 간행물 : 국학연구론총 2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03-234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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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지역 <춘향전> 11종은 <별춘향전> 계열의 국문 필사본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1804년부터 1944년까지 필사된 <춘향전> 필사자는 남성보다 여성이 풍부하다. 그 중에서도 가난한 선비집안 여성들이 농한기에 작품을 필사하고 향유했다. <춘향전> 11종은 한문본 <춘향신설>을 제외하면 모두 국문으로 존재한다. 영남지역 필사자는 이도령 중심으로 서두가 진행되는 <별춘향전> 계열의 필사본을 선호하고 있다. 이러한 <춘향전>은 상주의 조경이, 문경의 이유천, 울진의 임호연 등 경북 지역의 선비집안 여성들이 작품을 필사하고 향유했다.
<춘향전> 필사의 전통과 필사자의 문학적 대응은 영남 지역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첫째, 영남 지역 필사자는 이야기 중심의 서사 전개와 독서물적 성격이 강화되는 <춘향전>을 선호하고 있다. 왜냐하면 <춘향전>에는 판소리 창본에 수록된 창과 아니리, 장단 구분이 생략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서두와 결말을 통해 본 필사자의 욕망은 춘향의 정절에 대한 보상이 풍부하게 나타난다. 춘향에게 정열부인의 직첩을 내리고 춘향 내외는 부귀영화를 누린다. 셋째, <춘향전>은 사랑가 대목이 축약된 반면에 이별가 대목이 대폭 확장되어 있다. 노골적인 사랑 대목을 생략하고 이별대목을 확장한 것은 춘향의 정절을 강조하는 유교문화적 전통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넷째, 영남 선비집안에서는 허봉사가 춘향의 몸을 더듬는 장면을 삭제했다. 경남 사천의 목태림과 경북 선비집안의 여성은 춘향의 몸을 더듬는 허봉사의 욕망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섯째, 영남 지역 필사자는 이몽룡이 과거에 급제하여 암행어사로 관직에 진출하려는 욕망을 투영하고 있다. 또한 암행어사가 춘향을 구출하기 위해 하늘에 기원하는 대목을 통해서 선비집안 여성이 대리만족을 했을 것이다.
이러한 영남 지역 <춘향전> 필사의 전통과 필사자의 문학적 대응을 살펴보는 작업은 호남 지역과 충청 지역의 문학적 특성을 상호 비교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생각한다.

8백제(百濟)의 정치적 추이와 영산강(榮山江) 유역 정치세력(왕국)의 동향 - 근구수왕(近仇首王) 대(代)~개로왕(蓋鹵王) 대(代)를 중심으로 -

저자 : 신정훈 ( Shin¸ Jung-hoon )

발행기관 : 택민국학연구원 간행물 : 국학연구론총 2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35-269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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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한성 시대인 백제 근구수왕 대 부터 개로왕대 까지의 정국과 대외관계를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영산강 유역에 있던 정치세력(왕국)들의 동향을 검토했다.
이와 관련하여, 영산강 유역에 있는 옹관고분이 주목된다. 옹관고분은 대형의 봉토를 갖추며 독자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나주 신촌리 9호고분 乙호 甕棺에 부장 되어 있는 금동관은 왕의 상징물로 이해된다. 대체로 4세기-6세기 초까지 영산강 유역에서 발견되는 30-40m의 옹관(고총)고분들은 이 지역에 지배자가 존재했음을 말한다. 이러한 점들로 보아 영산강 유역에는 백제와는 관련이 없는 독자적인 정치세력(왕권)이 있었다.
한편으로 백제의 정치적 추이를 통해서도 영산강 유역에 정치세력(왕국)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것이 백제의 지정학적 특성이다. 백제는 북으로 고구려, 말갈과 동으로 신라, 남으로 마한과 국경을 접하고 있었다.
백제는 近肖古王(346~375)대부터 久尒辛王(420~427)대까지 육지로 접한 국경선 대부분에서 적대적이거나 비우호적인 세력과 맞서고 있었다. 고구려, 말갈과는 전쟁이 있었다. 침미다례, 신라와도 근초고왕 대에 충돌이 있었다.
毗有王(427~455)대에 들어와서야 신라와의 화친으로 동남쪽의 국경선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辰斯王(385~392)대부터 蓋鹵王( 455~475)대까지 지속된 왕위를 둘러싼 고질적인 투쟁은 내정의 지속적인 불안을 초래하였다.
영산강 유역에 있던 정치세력(왕국)들은 백제의 이러한 대외관계와 불안한 내정으로 인해 그 침략을 크게 의식하지 않아도 되었다.
주목되는 것은 한성 시대 백제는 줄곧 고구려와 긴장관계였다는 점이다. 이는 백제의 내정에 심각한 영향을 주었다. 이와 관련되어 아신왕 대와 개로왕대의 기록이 주목된다.
아신왕 대에 고구려와의 전쟁으로 인한 役의 고통으로 백성들이 신라로 도망하고 戶口가 쇠감하였다. 후대인 개로왕 대에 고구려와 원한을 맺고 화가 이어진 지 30여 년이 되어, 재정은 탕진되고 힘은 고갈되어 나라가 점점 쇠약해졌다. 아신왕 대와 개로왕대의 공통점은 고구려와의 긴장관계로 재정이 열악하고 국력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영산강 유역의 정치세력(왕국)들은 백제의 내정 불안과 재정의 궁핍, 고구려와의 전쟁으로 독자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9지산(芝山) 조호익(曺好益)의 부(賦)에 나타난 고통(苦痛)과 그 치유방식(治癒方式)

저자 : 정순태 ( Jeong Soon-tae )

발행기관 : 택민국학연구원 간행물 : 국학연구론총 2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71-303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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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芝山集> 권1에 2편의 부가 실려있다. 그 하나인 〈西征賦〉는 유배의 시작부터 도착까지의 과정을 적었다. 〈幽居賦〉는 유배 생활에서 느끼는 심정을 기록했다. 이 논문은 이 두 편의 賦를 통해서 그가 겪는 고통과 그것을 치유하는 방식 그리고 그 기제는 무엇인지 찾기 위해 시도되었다. 지산의 賦는 科體賦나 道學賦가 아닌 述懷賦로 볼 수 있다. 자기가 겪은 유배 생활을 자기 성찰과 치유의 과정으로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西征賦〉에서는 고통의 연속에서 그것을 극복하고 치유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幽居賦〉에서는 치유의 과정에서 받는 고통을 그리고 있다.
그의 賦에는 고통의 유형에 따라 다른 대처방식이 나타난다. 억울한 감정의 고통은 내적으로 소화하면서 인내로 이겨낸다. 이별의 고통은 상대가 주는 위로와 격려로 이긴다. 생활에서의 고통은 그간에 닦은 儒家的 사고로 극복하고 있다. 이러한 대처방식은 道學者로서 仁을 실천하고, 청렴한 생활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또 다른 하나의 기제는 글쓰기를 통한 자기발견과 발설이었다. 인간으로서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감정을 여과 없이 토로하면서 자기치유에 이른다.
그의 술회부는 회고를 통한 자기발견과 발설의 치유 효과 그리고 도학적 교훈을 수용하는 글쓰기였다. 이 연구로 賦에 녹아있는 자기서사성을 발견하고, 문학적 위상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오늘날 글쓰기에서 사상과 문학의 연관성에 대한 함의를 발견하는 계기로의 의의가 있다.

10초·중등 학생들의 독서 실태와 주자(朱子) 독서법 활용 방안

저자 : 박성미 ( Park¸ Seong-mi )

발행기관 : 택민국학연구원 간행물 : 국학연구론총 2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305-345 (4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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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을 읽는 것은 인성함양의 직·간접적인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 동·서양 어디에서나 독서를 통한 인성함양을 가장 중요한 독서의 목적으로 여겼다. 시대가 바뀌면서 독서의 목적이 정보와 지식의 획득과 진학·취업으로 변질되기 시작하면서 '훑어 읽기', '빨리 읽기' 독서법이 유용한 독서법이 되었다. 이에 독서의 진정한 목적을 다시 회복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전통 독서법, 그 중에서도 朱子의 독서법에서 해법을 찾아보았다. 인성함양을 위해 虛心靜看·反復熟讀·體認切己를, 분석적 읽기를 위해 抉開縫罅·迎刃而解·一段一階를 제안했다. 더불어 독자· 학습자로서, 교수자로서 활용 가능한 독서법 시안도 구안해 보았다. 현대인들 특히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들이 선조들의 '천천히 깊이 읽기'를 통해 마음도 지키고 인간의 본성도 지킬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리기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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