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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문화연구 up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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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권0호(2021) |수록논문 수 : 16
간행물 제목
115권0호(2021년 09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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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의 생애(生涯)와 저술(著述) 및 교유관계(交遊關係)

저자 : 朴徹庠 ( Park¸ Chul-sang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38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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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정 이정직은 조선 말기의 書畵家이자 學者이다. 그에 관한 많은 연구가 이뤄졌고, 그의 서화를 소개하는 전시회 또한 여러 차례 열렸다. 그러나 이들 연구와 전시회에 소개된 이정직에 관한 정보는 많은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게다가 이정직이 주로 전주와 김제 지역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그의 교유 인물들에 관한 정보도 빈약했다. 이는 이정직 연구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본 논고에서는 먼저 이정직의 생애와 저술에 관해 검토하였다. 새로운 자료를 통해 이정직에 관한 보다 정확하고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다음으로 이정직의 교유관계를 살펴봤다. 기존에는 黃玹과 李沂를 중심으로 이정직의 교유관계를 다뤘지만, 여기서는 이들을 제외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소개하였다. 특히 이건창과의 교유는 새롭게 소개되는 부분이다. 이 밖에도 이정직의 교유 인물을 지역별로 간략히 정리하였다.


Seokjeong(石亭) Lee Jeong-Jik(李定稷) was a calligrapher, painter and scholar of the late Joseon Dynasty. A lot of research was done on him, and exhibitions introducing his paintings were also held several times. However, the information about Lee Jeong-Jik introduced in these studies and exhibitions contains many errors. Furthermore, information on Social Intercourse was poor as he was mainly active in Jeonju and Gimje. This is a stumbling block to the research of Lee Jeong-Jik. In this essay, I first reviewed the life of Lee Jung-jik and his writings. I used new data to provide more accurate and rich information about Lee Jeong-Jik. Next, I looked at the social intercourse of Lee Jung-jik. Previous studies focused on the relationship of Lee Jung-jik with Hwang Hyeon(黃玹) and Lee Ki(李沂), but I introduced people except them. In particular, it introduced the relationship with Lee Geon-chang(李建昌) for the first time. In addition, a brief summary of social intercourse of Lee Jung-jik was compiled by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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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연석산방미정고(燕石山房未定藁)』와 간본 『석정집(石亭集)』의 문헌학적 검토

저자 : 金榮鎭 ( Kim¸ Young-jin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9-82 (4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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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이정직(1841~1910)의 시문 자료에 대한 연구로 크게 다음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는 석정 이정직의 필사본 『연석산방미정고』(후손가장본)와 간본 『석정집』(6권 3책)에 대한 비교이다. 필사본에는 한시 927제 1,279수와 문 273편이 수록되어 있고, 간본 『석정집』에는 한시 512수와 문 123편이 수록되어 있어 필사본에서 간본으로의 선택율은 대략 절반 가량된다. 다만 간본은 '잡저'를 전혀 수록하지 않았다. 또 하나는 석정 이정직의 시문, 잡저, 편서 등을 추가 발굴하여 자료의 輯逸 작업을 진행한 것이다. 금번 자료조사 과정 중에 『연석산방미정고』가 현재 통용되는 권질(20책)보다 더 많은 분량(최소 30책 이상)이 있었음을 추정·확인하게 되었고, 그 중 새로 발굴한 고려대 육당문고본(新舊折衷內篇, 外篇)은 석정의 제자 송기면의 『裕齋集』에 잡저 「망언(妄言)」으로 잘못 편입되었다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정직의 잡저 논설들은 송기면의 「망언」 1, 2에 거의 다 수록되었음을 확인하였다(다만 「망언」 1의 가장 마지막 글인 <금일동서> 한편만은 송기면의 글임). 요컨대 향후 석정 이정직의 자료 휘집의 필요성이 전면적으로 대두된다 하겠다.


This article is divided into two parts: the one is a comparative philological research between the manuscript 『Yeonseoksanbangmijunggo』 and a published edition of 『Seokjeongjip』 by Seokjeong Lee Jung-jik (1841~1910). The manuscript contains 1,279 Chinese poems and 273 proses, while the published edition contains 512 Chinese poems and 123 proses. So the selection rate from manuscript to a published edition is about half. However the 『Seokjeongjip』 did not adopt “Essays” at all. The other is to conduct additional excavation of poems, essays, and compilation of Seokjeong Lee Jung-jik and to collect scattered and lost materials. During the current data survey, it was confirmed that the manuscript of 『Yeonseoksanbangmijunggo』 was much larger than the current quality. Also the newly discovered manuscript of 『Yeonseoksanbangmijunggo』 in YukdangMungo of Korea University was incorrectly incorporated into 『YuJaejip』 by Songgi-myeon, a disciple of Seokjeong. The essays of Lee Jung-jik is mostly included 「Mang-un 1,2」 at 『YuJaejip』. We need to collect scattered data in the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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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석정 이정직의 『시경』론에 대한 해석학적 접근 ― 『시경일과(詩經日課)』 삼권(三卷)의 분석을 더하여

저자 : 金秀炅 ( Kim¸ Su-kyung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83-112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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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詩經日課』 三卷의 분석을 더하여 석정의 『시경』 관련 저술 양상과 『시경』 인식의 특징을 개관하는 데 주요 목적을 두었다. 구체 분석에 있어서는 주석자의 해석 맥락에 주의를 기울이는 석정의 접근에 특히 주목하였다. 해석학적 각도에서 볼 때, 석정 『시경』론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석정은 『시경』학의 맥락에서 해석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시경』 해석의 계승과 변천 과정에서의 맥락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 과정에서 석정은 주자 『시경』 해석의 가치를 '獨創'에서보다는 '折衷'에서 찾고자 하였다. 이러한 관점은 주자 『시경』학을 漢代 『시경』학과 대립시키며 그 독창적인 면을 부각하고 다른 면을 배격하는 학문 태도와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는 곧 진정한 獨創의 원동력이 전통과 기존설의 정밀한 비교, 분석을 통한 융합적 '折衷'에 기인한다고 보는 것으로, 석정이 근대 전환기에도 왜 여전히 전통 학문과 시각을 중시하였는가를 이해하는 데 유효하게 참고될 수 있다. 둘째, 석정은 『시경』 해석의 타당성 여부와 내원을 세밀하게 추적하려는 면모를 보였는데, 이는 특정 주석가의 해석을 맹신하거나 배척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셋째, 석정은 해석자(주석자)의 인식 맥락에 초점을 두어 『시경』 해석의 同異를 변별하였다. 주석의 是非, 正誤에 대한 판단보다는, 주석자가 왜 이렇게 주석하였는지에 대한 의식의 흐름에 주목하였다는 점에서, 한국 『시경』 해석학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고 생각된다.


The main purpose of this paper is to analyze the aspects of Sŏkchŏng's writings related to the Book of Songs and the characteristics of the perception of the Book of Songs by analyzing of the three volumes of Shigyŏngilgwa(詩經日課) which have not been made public yet. This paper pays special attention to the fact that the commentators' intention has a very important weight in Sŏkchŏng's commentary on the Book of Songs, and the related interpretation has a unique approach angle. From a hermeneutic angle, the significance of Sŏkchŏng's perception of the Book of Songs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while recognizing the diversity of interpretations of the Book of Songs in its historical context, Sŏkchŏng paid attention to grasping the grounds and origins of the succession and transition process of the Book of Songs. In this process, Sŏkchŏng wanted to find the value of Zhuxi's interpretation of the Book of Songs in its 'eclectic character' rather than in its 'originality'. This view is in stark contrast to the academic attitude that emphasizes its original side and rejects its opposite side. This is attributed to the compromise through precise comparison and analysis of tradition and existing theories, which can be effectively referenced in understanding the reason why Sŏkchŏng still valued traditional learning and perspective even during the modern transition period. Second, Sŏkchŏng's approach to trace the validity and origin of the interpretation of the Book of Songs is significant in that he pursued an academic approach that did not blind or reject the interpretation of specific commentators. Third, Sŏkchŏng differentiated the interpretation of the Book of Songs by focusing on the context of the interpreter(or commentator)'s perception. It is considered to be of great significance in the history of interpretation of the Book of Songs in Korea in that he showed interest in capturing the flow of the interpreter's consciousness about the way he commented, rather than in judging whether the commentator's contents were right or wr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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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의 저술(著述) 『소시주선(蘇詩註選)』 연구(硏究)

저자 : 白丞鎬 ( Baek¸ Seung-ho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13-134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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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石亭 李定稷의 저술 『蘇詩註選』에 대한 개괄적인 정리와 소개의 성격을 띤 글이다. 『蘇詩註選』의 구성과 체계를 정리하여, 이 책이 『增刊校正王狀元集註分類東坡先生詩』를 모본으로 하여 주석을 중점적으로 초록한 성격의 책임을 밝혔다. 다만 책의 편차와 내용 구성을 고려할 때, 李定稷이 모본에 해당하는 책을 부분부분 다른 시기에 입수하여 주석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초록 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시 이해를 위한 類書로서 시가 아니라 주석을 중심으로 초록하였다. 李定稷은 시학 연구 과정에서 모본이 되는 원서를 자신의 관점에서 다시 이해하고 재편집하여 새로운 저술을 편찬하였다. 그는 『律髓刊誤精選』에서 方回의 『瀛奎律髓』, 紀昀의 『瀛奎律髓刊誤』의 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비평”을 초록하여 『律髓刊誤精選』을 편찬한 바 있다. 이와 유사한 저술 방법으로 『蘇詩註選』은 『分類東坡先生詩』 주석에서 의미 있는 정보를 추출하고 이를 분문 아래 초록하여, 시 이해를 위해 유용한 정보들을 모아 놓은 筆記 내지 類書의 성격을 지닌 저술이 되었다. 李定稷은 평소 시를 엄밀하게 분석적으로 이해하였는데, 詩法에 대한 관심, 두보시에 대한 치밀한 이해 추구 경향이 『蘇詩註選』에서 보인다. 그는 본인의 관점을 세우고 제가의 설을 두루 참조하는 과정에서 『蘇詩註選』을 편찬하였다. 이러한 그의 시학 연구 방법론은 「六絶義解」에서 언급한 “遞相祖述과 轉益多師”의 과정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다.


This paper is a comprehensive summary and introduction of Seogjeong Yi Jeongjig's Sosijuseon. By analyzing the composition and system of Sosijuseon, the book was modeled after Bunlyudongpaseonsangsi and abstracted it with focusing on annotations. However, considering the deviation and content structure of the book, he obtained Bunlyudongpaseonsangsi at different times in part. It seems that the annotations were carefully reviewed and the abstract work was done. This book is a kind of notebook for understanding poetry. The abstract was centered on the commentary, not the poem. In the course of his poetic research, he re-understood and re-edited the original manuscript from his point of view and compiled a new work. He critically reviewed Banghoi's Yeonggyuyulsu and Giyun's Yeonggyuyulsugano, and By abstracting the words of criticism. He wrote Yulsuganojeongseon. A similar case is the case with Sosijuseon, meaning that meaningful information is extracted from the commentary. Yi usually understood poetry rigorously and analytically, Yugjeoluihae is a prime example. He compiled the Sosijuseon in the process of establishing his own point of view and referencing the poetic theories of various scholars. His poetic research methodology can be summarized as a process of alternately going back and exploring the source with finding more and more teac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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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이당(彛堂) 조병헌(趙秉憲)(1876~1938) 집안 전래 회화(繪畫) ― 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1841~1910)과 전북 근대 화단의 일면

저자 : 閔吉泓 ( Min¸ Gil-hong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35-156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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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서화 전통의 맥은 전라북도 근대 서화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까지는 전북 지역에 서화로 이름난 인물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石亭 李定稷(1841~1910)은 마땅히 그림을 배울 스승을 찾지 못해 독학을 했던 것이다. 오늘날 '藝鄕'으로 전라북도를 꼽게 된 것은, 이정직이 그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제자가 되고자 이정직을 찾아왔고, 그렇게 점점 커진 물결은 근대 전북 화단을 만들었다.
彛堂 趙秉憲(1876-1938)은 김제 출신으로, 이정직의 제자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왔지만, 다른 제자들에 비해 생애에 대해 알려진 기록이 많지 않고 현전하는 작품도 거의 없어, 그동안 조명받지 못했던 서화가다. 족보와 관련 기록을 통해, 서울로 올라가 서화가들과 官界 인물들과 교유를 했고 느즈막히 고향 김제로 내려와 聲慶廟 參奉에 제수되었다는 점 정도가 알려져 있었다.
본고에서는 집안에 전래되어 온 유물들을 통해 전북을 넘어서 서울화단까지 이르는 조병헌 일가의 교유관계를 확인하고, 조병헌이 서예와 묵죽에 특장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소장내력이 확인되는 유물들이라는 점에서 유물 자체가 가지는 미술사적 의미를 넘어서 시공간적으로 서로 관계맺음 속에서 작품이 가지는 의미를 고찰해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컬렉션 전체를 통해 조병헌과 조송 부자의 서화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전북 예술사의 큰 흐름에서 한 조각 비어있던 부분인 조병헌을 찾아내어 퍼즐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본 연구의 의의를 찾고자 한다.


It can be said that the tradition of calligraphy and painting in the Joseon Dynasty was carried on to modern calligraphy and painting in Jeollabuk-do. There was no one famous for calligraphy and painting in Jeollabuk-do in Joseon Dynasty. Therefore, Yi Jeong- Jik would have been self-taught because he could not find a teacher to teach painting for him.
At the beginning of the selection of Jeollabuk-do as 'Art town(藝鄕)', there was Yi Jeong-jik(1841~1910). Many people came to him to become a disciple, and the growing wave created the modern Jeonbuk art history.
Jo Byeong-heon趙秉憲 (1876~1938) was born in Gimje and has been known as one of Lee Jeong-jik's pupils. According to genealogy records and related records, it was known that he went to Seoul to interact with calligraphers and related officials, and he in later years, came down to his hometown of Gimje and enjoyed his life reading books and so on.
In this paper, through the relics handed down through the family, it was possible to confirm the extensive relationship of the Jo Byung-hun family from Jeollabuk-do to the Seoul art gallery and it was found that Jo Byung-hun was specially good at his calligraphy and bamboo painting.
The importance of this study lies in solving the puzzle in the large flow of art history in Jeonbuk from the modern era to the present, by finding the missing piece, Cho Byung-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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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청록(靑綠), 도가의 선약, 선계의 표상 ― 청록과 청록산수화의 행위자성(Agency)

저자 : 劉美那 ( Yu¸ Mi-na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57-188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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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청록산수화의 녹·청색 안료를 이루는 남동광과 공작석이 예로부터 의료용 약재이기도 하고 도가의 단약에 쓰이는 仙藥이기도 했던 점을 문헌을 토대로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청록의 색채와 안료, 그리고 청록산수화에 함축된 도가적 상징을 고찰하였다. 石靑·石綠으로 대별되는 청록의 안료는 주요 本草書에 空靑·曾靑·扁靑·白靑 등의 石類 약재로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輕身, 延年, 不老 등의 효능과 심지어 神仙으로 화한다는 효능이 명시되어 있어 예로부터 仙藥으로 인식되었음을 말해준다. 실제로 金丹을 연조해서 수명을 연장시키고자 한 금단도에서 주요 선약으로 일컫는 五金八石에 空靑이 포함되어 중시되었던 점이 주목된다. 또한 조선시대 문학에서 선경을 묘사한 修辭 중에 유독 '碧'·'翠'·'蒼'·'靑'·'綠'의 색채어가 적극 사용된 점이 주목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청록산수화에 표현된 청록의 산과 바위는 공청·증청 등의 선약과 불로장생과 우화승선의 약효를 연상시켰을 것이고, 선계의 시각적 재현으로 이해되었을 것이다. 이 연구는 미술의 사회적 관계망(Art Nexus) 속에서 물질 지표(Index)인 청록 안료와 청록산수화가 능동적 주체로서 화가와 감상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행위자성(agency)에 대한 고찰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The Azurite and the Malachite consist the major pigments for the Blue-and-green Landscape, but they have also been the drugs and medicines for remedy and at the same time the Daoist Elixir to attain immortality. This paper tries to track the ancient records related to the azurite and the malachite and see how and when they were associated with the Daoist connotation. The study began with examining the color names and pigment names in the ancient writings, and then the medicine names in the classic medical books. The names kongqing(空靑)·zengqing(曾靑)·pianqing(扁靑)·baiqing(白靑) were listed in such medical books as Shennong-bencaojing(神農本草經)·Bencaojing-jizhu(本草經集注)·Materia Medica(Bencao gangmu, 本草綱目). They were cited as having such medicinal effects as 'light body', 'prolonged life', 'eternal youth' and even 'the transcendence to an immortal being'. This attests to the understanding that the above mentioned medicinal stones were also major ingredients for the Daoist Elixir. Moreover, in the poems and proses during the Joseon Dynasty, the characters belonging to blue and green such as bi(碧)·cui(翠)·cang(蒼)·qing(靑)·lu(綠) were frequently used to describe the immortals' land. In such circumstances, the blue and green colors applied on the mountains and rocks in the blue-and-green landscape must have been associated with the mystical medicines such as kongqing(空靑) and zengqing(曾靑) and their longivity effect, as well as the representation of the immortals' land. This study was designed to find out the material index blue-and-green pigments and the blue-and-green landscape serving as Agent in the Art Nexus and affecting the Recipients; painters and vie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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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와전(瓦塼)을 그리다 ― 한국 근현대 예술과 와전(瓦塼)의 에이전시(Agency)

저자 : 金素延 ( Kim¸ So-yeon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89-218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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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古代의 건축부재였던 瓦當과 塼이 20세기 다양한 형태의 예술 작품으로 우리 문화에 새롭게 등장하여 행위력, 즉 에이전시(agency)를 발휘했음을 고찰하는 시도이며, 분석을 위해 알프레드 겔(Alfred Gell, 1945~1997)의 이론을 적용하고 있다. 근현대 미술에서 瓦塼은 특히 文字瓦와 文字塼을 중심으로 재해석 되었다. 문자, 고동기의 金文을 임모·임서한 와전임모도는 그 대표적인 例이며, 본고는 와전임모도의 유형 및 제작배경을 거론하고 임모도의 직접적 원형(prototype)으로 淸代 『金石索』(1821)과 같은 금석관련 圖解書를 제시해 보았다. 와전 수집과 감상의 결과물인 와전탁본도를 논의하고, 吳世昌(1864~1953)의 경우에서 秦漢 와전의 모사형식을 우리 와전으로 확대하여 적용한 의의를 찾아보기도 했다. 덧붙여 해방 이후에는 와전이 자수병풍의 대표 도안으로 채택되어, 산업발전기 수출전선의 선두에서 한국 전통을 상징하는 기표로써 기능했음을 살펴보았다. 와전자수병풍은 와전임모도의 양식적 특징과 길상성을 계승하여 대중성과 보편성을 획득한 것인데, 역설적이게도 일부 작품들은 문자와를 묘사했음에도 서양인 구매자라는 수령자(recipient)를 고려해 더 이상 한문 표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게 된다. 즉, 구매자가 지표(작품, index)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며, 따라서 본래 와전임모의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던 와전문의 가치가 변형되고 문화적 맥락이 흐릿해지는 과정을 목도할 수 있다.


This paper, with the help of Alfred Gell's theory, aims to examine how the components of ancient architecture, roof-end tile and brick specifically, came to the fore in the 20th century of Korea as material agent that mediated agency in various artistic fields. Roof-end tile and brick and their inscribed letters became the object of re-investigation in the modern, contemporary art of Korea. Imitated paintings of roof-end tile and brick, which copied letters from the ancient bronze objects, stand as an exemplar. This paper provides the types and background of imitated paintings of roof-end tile brick, and further finds the prototype of these imitated paintings from the ethnography guide books―such as『Jinshisuo(金石索)』 (1821)―published during the Qing dynasty. Roof-end tile and brick were admired in various ways; while valuable collection of such objects gave birth to rubbed painting, O Se-chang 吳世昌(1864~1953) newly featured the Jin and Han dynasties' rubbed-inscription with the elements that comprise the cultural identity of Korea. Moreover, after Korea's liberation from Japanese rule, roof-end tile and brick became a primary subject of embroidered folding-screen, which was usefully exported abroad as a signifier that ultimately represents Korean traditionality. Although embroidered folding screen of roof-end tile and brick was originally rendered to pursue auspiciousness by its letters, the buyers abroad, hence the recipient to which the screen's calligraphy is illegible, transforms the index into a medium of simple ornamentation. This demonstrates how the meaning and the cultural context of the letter inscribed within the roof-end tile and brick imitation have changed and waned in the course of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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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녹동 최연택의 언론출판활동과 딱지본 대중소설 연구 ― '사회소설' 『단소』와 『죄악의 씨』를 중심으로

저자 : 裵定祥 ( Bae¸ Jeong-sang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19-249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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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동 최연택은 1920년대 식민지 서적출판문화의 장 안에서 나름의 개성 있는 행보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는 신문 매체에 수많은 글을 기고한 언론인이자, 출판사를 직접 설립하여 경영한 출판인이었으며, 몇 편의 특색 있는 소설 작품을 남긴 문학인이기도 했다. 예컨대, 그는 신문이라는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담은 다양한 글쓰기 방식을 시도했으며, 문창사라는 출판사를 설립·운영하며 출판활동을 통한 사회적 소명을 다하고자 했다. 또한 『단소』, 『죄악의 씨』 등 '사회소설' 연작을 통해 이윤추구에 몰두하는 딱지본 대중소설의 한계를 극복하고, 사회 현상에 대한 비판 및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다. 이처럼 경계인 녹동 최연택의 언론·출판 및 소설 창작 활동은 식민지 시기 서적출판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흥미로운 사례가 된다.


Nok-dong Choi Yeon-taek is a character who shows his own unique course in the colonial book publishing culture of the 1920s. He was a journalist who contributed numerous articles to newspapers, a publisher who founded and managed a publishing company himself, and was also a literary man who left several distinctive novels. For example, he tried various writing methods that contained his thoughts and philosophy through the media of newspapers, and tried to fulfill his social vocation through publishing activities by establishing and operating a publishing house called Munchangsa. He also attempted to overcome the limitations of Ttakjibon popular novels that were immersed in the pursuit of profit through a series of 'social novels' such as 『Danso』 and 『Seed of Sin』, and to present criticism and alternatives to social phenomena. As such, Marginal man Nokdong Choi Yeon-taek's media, publishing, and novel creation activities are an interesting example for understanding the book publishing culture during the colonial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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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식민 권력의 통제, 우회 전략으로서의 개작 ― 『아동가요곡선 삼백곡』을 중심으로

저자 : 康泳美 ( Kang¸ Young-mi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51-281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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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에서는 小竹 姜信明(1909~1985)이 편찬한 『兒童歌謠曲選 三百曲』의 세 종의 판본을 비교하여 일제의 검열을 우회하기 위해 일부 노래를 삭제하고 다시 수록하는 일련의 과정을 살폈다. 『아동가요곡집 삼백곡』은 일제의 검열 지침에 의해 일부 노래가 삭제된 것이 아니다. 불온 창가라는 일제의 외적 규정 속에서 기독교계 관련자들이 자체 검열을 통해 일부 노래를 삭제한 것이다. 삭제곡은 대부분 조선을 환기하는 단어가 있는 노래였다. 식민지인에게 조국을 환기하는 단어가 일제의 검열 당국에게는 불온한 것으로, 반일의 상징으로 읽히리라 판단한 것이다. 기독교계에서 일반적으로 부르는 금주 금연 등의 절제가 류의 노래도 식민지 조선에서 발생하는 특수한 의미에 주목하여 삭제했다. 이처럼 일제가 규정한 '불온 창가'의 내포를 상상하며 미국인 선교사와 교회 관련자가 일부 노래를 삭제하는 과정, 식민지 평양에서 제국의 동경으로 지역을 옮겨 삭제곡의 일부를 편찬자 강신명이 직접 복구하는 과정은 1936~1940년까지의 시차, 미국인과 조선인이라는 국적의 차이, 식민과 제국이라는 공간의 차이, 아동가요 운동을 전개하는 지향의 차이가 '불온'의 해석에 영향을 끼쳤음을 드러낸다. 그 결과 일제가 규정하고 조선인이 구성한 아동가요의 불온성은 일시적이고 자의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In this study, I compared the editions of Kang Shin-myeong's 'Three hundred songs for children's songs(『아동가요곡선 삼백곡』)'. Through this, I examined a series of processes of deleting and re-publishing some songs in order to bypass the censorship of the Japanese Empire. I looked at the process of voluntarily deleting some of the songs while imagining the meaning of 'resistance' defined by the Japanese Empire. And the process of restoring some of the deleted songs by changing the publishing area from colonial Pyongyang to Tokyo, the capital of the empire, was investigated. The difference between the original version of the first edition and the restored version of the second edition revealed that the process of deleting some songs by an American missionary and church related people imagining the connotations of the 'resistance' stipulated by the Japanese imperialists, and the process of moving the region from colonial Pyongyang to the Imperial Tokyo and recovering part of the deleted songs by the editor Kang Shin-myeong himself. It reveals that the time difference between 1936 and 1940, the difference in space between colonization and empire, the difference in nationality between Americans and Koreans, and the difference in orientation to develop a children's song movement influenced the interpretation of 'resistance' influenced the interpretation of 'resistance.' It was confirmed that the 'resistance' defined by the Japanese imperialism and reconstructed by the Koreans was temporary and arbitr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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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혼혈아 외부화 프로세스와 대중문화 ― 경제성장기 일본사회의 혼혈아 표상

저자 : 朴利鎭 ( Park¸ Yi-jin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5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83-311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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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1952년 '혼혈아논쟁' 이후부터 1960년대 일명 '혼혈 붐'의 시대를 거쳐 '하프 담론'이 등장하는 1970년대까지 20년간 일본사회에 유포된 혼혈아 표상은 그들에 대한 고착된 인식을 대중들에게 심어주었다. 특히 1960년대 중후반부터는 일본인론이 크게 유행하면서 일본인에 대한 새로운 의미화가 이루어짐과 동시에 단일민족으로서의 인종화가 강화되며 혼혈아들은 외부화되어 간다. 이러한 흐름을 본고에서는 현대 일본의 인종주의가 갖는 '전후적 기원'으로 파악하여 그 구체적인 특징을 다양한 대중문화를 통해 살펴보았다.
그 결과 1970년대 혼혈아들이 하프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재탄생되는 구조에 작용하고 있는 대중들의 심급에 주목할 수 있었다. 점령의 기억이라는 과거의 상흔이 혼혈아의 상징체계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고, 일본사회의 재건과 경제성장, 그리고 일본인론의 유행처럼 사회문화적 자신감의 회복이 혼혈아 표상의 변주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본식 인종주의를 이루고 있는 기원적 문제를 통해 현대 일본에서 나타나고 있는 인종주의적 차별과 편견이 단순히 서양식 인종주의를 답습한 형태라고 설명하는 시각을 비판하는 근거로 제안해 보았다.


The mixed-race representations which is disseminated in Japanese society for 20 years from the 1952 'Mixed-Race Controversy' to the 1970s, when the 'Half Discourse' appeared after the 'Mixed-Race Boom' in the 1960s, have instilled in the public a fixed perception of mixed-race children. Especially from the latter half of the 1960s, when the theories about the Japanese(Nihonjinron) became very popular, a new meaning was given to the Japanese. At the same time that racialization as a single ethnic group was strengthened, mixed-race children were externalized. This paper grasped such a trend as the 'postwar origin' of racism in contemporary Japanese, and examined its specific characteristics through various popular cultures.
As a result, this paper was able to focus on the public sympathy acting on the structure in which mixed-race children were reborn with the new concept of half in the 1970s. The memory of the occupation, which is a scar of the past, was deeply involved in the symbolic system of mixed-race children. Like the reconstruction and economic growth of Japanese society and the epidemic of Japanese theory, the restoration of sociocultural self-confidence was dominated by changes in the representation of mixed-race children. Through these originating issues of Japanese racism, this paper attempts to refute the argument that racist discrimination and prejudice in contemporary Japan just follows Western rac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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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유리건판 사진으로 보는 고미술 ― 세키노 타다시(関野貞)의 고적조사사업을 중심으로

저자 : 金桂園 ( Kim Gye-won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36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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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일제강점기 고적조사에서 유리건판 사진이 고미술에 대한 새로운 지식과 정보 생산에 개입했던 방식을 탐색한다. 제국 일본 학자들의 식민지 고적조사에서 사진은 유물을 기록, 조사하는 방편이었을 뿐 아니라, 바로 그 새로운 기록과 조사의 방식을 체계화, 제도화하는 방법론이었다. 이러한 사진의 수행적 역할은 사진 매체의 내적 속성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조사사업이라는 담론 복합체를 구성하는 외재적 요소들과의 접촉과 연동을 통해 발현되어지는 것에 가깝다. 논문은 세키노 타다시의 고적조사에 초점을 맞추어 사진의 의미가 촉탁 연구자, 모사도, 촬영자라는 세 요소들과의 관계망 속에서 생성되는 과정을 짚어본다. 이를 통해 사진이 어떻게 양식주의와 선형적 역사관을 뒷받침하는 표상을 제공하는지 고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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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축(詩軸)을 위(爲)한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저자 : 高蓮姬 ( Kho Youen-hee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7-62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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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軸이란, 여러 문사들의 시가 적혀진 두루마리[詩卷]에 軸이 장식되어 있는 卷軸이다. 알프레드 겔(Alfred Gell)의 인류학적 예술론으로서의 '에이전시(Agency)'론에 입각하여 '시축'이라는 물건의 에이전시를 상정하고 세종조 시축의 제작과정을 조명한 결과, 시축은 제작을 의도한 사람의 신분, 의도 등에 의하여 그 주제와 규모 등이 설정되면서 등장하여, 시축의 제작자(artist)인 문사 혹은 화가로 하여금 시축의 요구사항을 숙지하고 따르도록 조율한다. 시축은 그 자신의 주제와 규모와 품격이라는 지배력으로 화가와 문사의 제작활동에 강력하게 간섭한다. 세종대 제작된 '夢遊桃源圖詩軸'도 그러하다. 〈夢遊桃源圖〉는 시축의 에이전시 아래서 제작된 피동적 소산이며 시축의 부가물이었다. 그 당시 시축의 성장에서 시축의 완성을 기대하는 문사들에게 이 그림이 시축의 핵심요소로 여겨지지 않았던 이유이다. 시축이 기념하는 대상은 安平大君의 '夢遊桃源'이었고 주제는 '몽유도원'을 통한 안평대군에 대한 칭송이었다. 〈몽유도원도〉는 이 주제를 부각시켜주는 기능으로 요구되었고 그림의 주제, 규모, 수준 등이 시축의 주제와 형태에 맞추어 결정되었으며, 시축의 격조있는 모양새를 도와주는 장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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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예술과 행위자성(Agency) ― 이성계(李成桂)(1335~1408) 관련 회화, 유물과 사적을 중심으로

저자 : 徐胤晶 ( Seo Yoon-jung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63-99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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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고는 예술을 둘러 싼 다양한 존재의 활동을 주체와 '행위자성(agency)'이라는 개념을 적용하여 그 유효성과 유용성을 물질문화까지 확장시켜, 예술의 주체가 물질적 매개체(material agency)를 통해 어떻게 발현되며, 그 결과물이 관람자에게 어떠한 시각적 경험과 심리적 영향을 끼치는지, 특정한 예술품과 대상이 예술적 행위자를 어떠한 방식으로 상기시키는지를 李成桂(1335~1408)라고 하는 조선의 창업주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본 연구에서는 이성계와 관련된 회화, 유물과 사적 등을 이성계의 '행위자성(agency)'이라는 관점에서 고찰하고자 한다. 즉, 이러한 수많은 예술품과 유적에서 이성계의 행위자성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관람자들은 이러한 작품들을 대면할 때 얼마나 이성계의 존재를 의식하게 되는지, 이성계의 명성과 역사적 평가가 이러한 작품에 대한 가치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이성계 사후 이성계와 관련된 유품들과 사적지들은 어떤 주체에 의해 이용되며 변화되는지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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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움직이는 어진 ― 양란(兩亂) 전후(前後) 태조(太祖) 어진(御眞)의 이동과 그 효과

저자 : 劉宰賓 ( Yoo Jae-bin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01-127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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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兩亂 前後 太祖(재위: 1392~1398) 어진의 이동을 통해 어진이 가진 사회적 영향력을 살펴보았다. 태조 어진은 조선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왕실의 권위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그 중에서도 지방에 있는 어진이 이동하여 한양에서 국왕과 조우하는 영접 의례는 가장 강력한 시각적 효과를 가진 왕실 행사였다. 그러나 태조 어진이 단지 의도대로 움직여 준 것은 아니었다. 특히 국내외 이변이 잦았던 양란 전후의 시기에 태조 어진의 이동은 그 성공 여부에 따라 전란의 극복이나 폐해의 상징이 되기도 하였고, 현왕의 권위를 강화하거나 도리어 실추시키기도 하였다. 본 논문은 宣祖 ~ 仁祖연간 태조 어진의 이동을 복원하고 역사적 맥락에서 어진의 이동이 가진 의미와 영향력을 분석하였다는데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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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지위·서열·책무의 표상 ― 조선 왕실 연향에서의 병풍의 기능과 의의

저자 : 金秀珍 ( Kim Soo-jin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29-166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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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조선 왕실의 연향에 배설됨으로써 왕실 구성원 자체를 표상하는 한편 그 사람의 지위, 서열, 책무를 시각화 했던 병풍의 기능과 의미를 논의했다. 왕실의 연향에는 연향을 받는 이〔왕, 왕비, 왕대비, 대왕대비〕와 연향을 바치는 이〔왕, 왕세자〕가 참석했고, 그것은 의궤를 통해 행사의 전반이 기록되는 한편 稧屛을 통해 기록화로 그려졌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현재 남아 있는 15건의 연향 관련 의궤와 10건의 연향 기념 계병을 분석함으로써 각기 어떤 왕실 구성원을 위해 일월오봉병, 십장생병, 문방도병, 백동자병, 서병 등의 병풍이 사용되었으며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궁극적으로는 본 연구를 통해 왕실 행사를 기록하고 재현한 일종의 三部作으로서 裝屛·의궤·계병의 역할을 구명하고, 이를 통해 조선 왕실이 구축했던 禮治의 시각화 방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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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에도(江戶) 초기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 이미지의 형성과 위력

저자 : 李姃恩 ( Lee Jungeun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67-199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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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에도시대 초기 조선통신사 이미지의 형성과정을 통신사를 둘러싼 관계 구조 속에서 파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조선후기 일본에 파견된 공식 외교사절인 통신사의 이미지는 에도시대 다양한 매체로 제작되었는데, 본고에서는 17세기, 통신사 이미지의 형성기에 초점을 맞추어, 都市圖 병풍, 緣起 두루마리, 通信使歡待圖라는 세 종류의 그림을 중심으로 통신사 이미지의 제작 및 수용을 둘러싼 제 양상을 고찰한다. 통신사 행렬은 에도 초기에는 주로 도쿠가와 막부의 권력과 그들의 위상을 과시하는 맥락에서 여러 이미지로 시각화되었다. 막부의 의도대로 보고 인지한 공가와 무가 상류층들과 달리, 다수의 일반인에게 조선통신사는 이국인 행렬이자 하나의 축제로 수용되는데, 특히, 가이초(開帳)와 마쓰리(祭)를 통해 어떻게 통신사 이미지가 변용되어 확산되는지 살펴봄으로써, 통신사 이미지를 시각화하는 다양한 맥락을 고찰하였다. 이 과정에서 에이전시 이론이 지니는 가장 큰 효용성은, 후원자 혹은 예술가가 만들어낸 결과물로서 예술품, 그 안에 담긴 제작자의 의도를 파악하려는 단선적인 시도를 넘어서, 예술품의 제작과 수용, 감상을 둘러싸고 서로가 발하는 힘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라 할 수 있다. 에도시대 통신사 이미지 형성과정에서 1차 주체인 제작자 혹은 후원자의 분명한 목적과 의도가 반영된 행위력(agency)은 감상자 혹은 수용자들의 계층, 배경, 시대, 관심사에 따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제2, 제3의 변용이 발생함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방법론은 향후 각종 민간 문화를 포함한 통신사 이미지 연구의 확장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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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근대 광고를 통해 본 신사의 시대

저자 : 金芝慧 ( Kim Ji-hye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01-222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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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근대 한국의 광고를 통해 신사에 대한 근대의 인식과 이미지를 재구하고 있다. 새로운 시각매체이자 대중미술로 기능한 근대기 광고에서 신사는 텍스트와 이미지로 광고되고 소비되며 다양하게 시현되어왔다. 근대의 신사는 근대의 이념과 이상을 표상한 인물상이었다. 광고는 신사 이미지에 개화와 유행, 미의식, 문화생활, 시대상 등의 근대적 가치를 개입시켰으며, 이를 통해 근대의 신사 이미지가 적극적으로 구축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들 사이에 작용하는 양방향의 행위력을 읽을 수 있다. 신사는 문명과 개화의 상징으로 시대적 이념과 이상이 요청된 인물이었으나, 시대적 정황 속에서 매국의 표상으로 혹은 사치와 허영의 대상으로 비난받았으며, 관리와 계몽가 소비자, 황국신민 등으로 호명되었다. 이처럼 근대화의 이상과 식민지 현실, 계몽과 소비의 가치 가운데에서 부유했던 신사와 이를 둘러싼 기표를 통해 한국의 근대와 근대성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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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신라 경덕왕대 백제 고지 정책의 시행과 그 배경

저자 : 金康勳 ( Kim Kang-hun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23-253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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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신라 경덕왕대 백제 고지 지역을 대상으로 시행된 정책을 검토하고, 그것의 시행 배경을 신라인의 발해 인식과 관련하여 살펴본 것이다.
신라 지배층은 발해에 대해 말갈이 주도하여 건국한 국가로 인식하였는데, 752년 김태렴이 이끈 대일 사절단이 귀국하면서 발해를 고구려계승국으로 파악하는 인식이 왕경에 확대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발해에서 시작하여 일본을 거쳐 신라로 유입된 것이다. 신라는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처지에 있던 백제 고지 지역민이 이러한 인식에 영향을 받아 백제부흥의식을 표출하는 것을 억제할 필요가 있었다.
웅천주정에 장군 3인을 두어 반란에 효율적으로 대처하는 체계를 갖추는 동시에 반란을 억제하는 효과를 노렸으며, 효행을 실천한 향덕을 포상하여 국왕에 대한 충성을 유도하였다. 경덕왕은 통제책과 회유책을 병행하여 백제 고지 지역을 안정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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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요~금대 발해인 장호 가계 인물의 행적과 통혼 사례 분석

저자 : 朴淳佑 ( Park Soon-woo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55-289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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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요~금대 張氏 가계 인물의 사회적 행적과 수대에 걸친 통혼의 사회사적 의미를 규명하기 위해 관찬 자료, 묘지, 금석문 기록을 집중적으로 검토하였다. 그 결과 장호 가계의 先代는 늦어도 요대 전·중기 이후 사로에 나아가 대를 이어 봉직하면서 점차 가계를 키워냈음을 확인하였다. 그간 연구가 미진했던 (장호의 아들) 張汝爲와 張汝猷의 관력과 행적도 검토하였는데, 일전에 알려진 것보다 다양한 관력과 행적을 확인하였다. 장씨 가계 성원들의 불교 신행에 대해서도 검토를 진행하였는데, 장행원-장호 부자 모두 死後 불교 도량에 모셔진 점, 장호의 형과 여형제가 모두 출가하여 승려가 된 사실, 장호가 승려를 극진히 禮遇한 사실, 아들 장여위가 남긴 기록들을 통해 장씨 가계가 요~금대의 독실한 불교 신자였음을 확인하였다. 마지막으로 장씨 가계 구성원들의 통혼 상대를 전수 검토하여 그들의 통혼 상대가 (일방향의) 한 부류(族屬)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했음을 확인하였다. 이는 당시 장씨 가계가 족속을 가리지 않고 사회 상층부 인사들과 교류 및 통혼한 것은 가세와 명망을 유지하려는 노력의 소산으로 추정된다. 동시에 이러한 결과물은 장씨 가계의 구성원들이 수대에 걸쳐 왕조와 사회로부터 끊임없이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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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김부식(金富軾)의 북송사행(北宋使行)과 『봉사어록(奉使語錄)』

저자 : 鄭墡謨 ( Jung Sun-mo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91-318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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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식은 隨行員, 書狀官, 正使의 직함으로 3차에 걸쳐 북송에 사행했다. 그중 예종 11년(1116)에 李資諒·李永 사절단의 서장관으로 참여한 제2차 사행에서 지은 表·狀 30여 편이 『東人之文四六』에 수록되어 현존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사절단의 사행 노정 및 북송 汴京에서의 활동 등이 비교적 상세히 드러나고 있다. 한편 『宋史·藝文志』에는 '金富軾『奉使語錄』一卷'이 저록되어 있으나 일찍이 실전되었다. 본고에서는 김부식의 『봉사어록』을 그가 서장관으로 참여한 제2차 북송사행 때 작성한 사행보고 서임을 논증했다. 그리고 崔瀣가 『동인지문사륙』을 편찬하면서 『봉사어록』에 수록된 表·狀을 그대로 전재하면서 김부식의 북송사행 관련 자료가 현존하게 된 것으로 추정했다.
김부식의 『奉使語錄』은 문헌상 확인할 수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행록이며, 『동인지문사륙』에 재수록되어 전하는 이들 表·狀은 고려사절단의 노정과 북송에서의 제반 활동, 그리고 당시 여·송관계에 대해 생생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중요한 문헌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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