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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The Honam Archaeological Society Honam KoKo - Hakbo

  • : 호남고고학회
  • : 인문과학분야  >  인류학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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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연3회
  • : 1229-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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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3)~68권0호(2021) |수록논문 수 : 356
호남고고학보
68권0호(2021년 06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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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1해상교류를 통해 본 호남지역 마한 성립기 매장문화와 사회변동의 다양성

저자 : 허진아 ( Heo Jina )

발행기관 : 호남고고학회 간행물 : 호남고고학보 6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4-38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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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목적은 호남지역 마한 성립기 매장문화가 지역권마다 어떻게 그리고 왜 다른지 설명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먼저 초기철기-원삼국시대 철기문화 유입의 역동성을 살펴 외래문화의 유입이 다원적·다발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논하였다. 다음, 전환기 사회변동의 다양성을 살피기 위해 마한의 해상교역품이자 무덤부장품 가운데 하나인 유리구슬을 검토하여 외래문화 유입 단계를 설정하였다. 이를 토대로 성립기 무덤의 종류와 부장품을 분석하여 크게 4개 지역권에서 2단계에 걸친 사회변동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하였다. 해상교류망의 변화와 접근성에 따라 사회변동의 과정과 그 결과물인 매장문화에서 동시기 지역권마다 세부적인 차이가 관찰되었다. 궁극적으로, 필자는 호남지역 마한사회 성립이 해상교류를 통해 다양한 철기문화가 유입되는 과정에서 다발적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전개과정 또한 지역에 따라 속도와 내용면에서 다양하므로, 마한의 사회정치적 발전을 이끌어낸 원동력 역시 다원적일 수 있음을 제안한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plain how and why the burial culture of the Honam region during the establishment of Mahan was different at the local level. First, I discussed that the influx of foreign cultures was pluralistic and multiplicative by examining the dynamics of the influx of iron culture in the early Iron Age and Proto-Three Kingdoms period. Next, in order to examine the diversity of social changes during the transition period, the influx of foreign cultures was set by examining the glass beads, one of maritime trade items and burial items of Mahan. Based on this, I analyzed the types and burials of tombs, and confirmed that social changes took place over two stages in four local areas. The process of social change and burial culture can be seen as a result of the change, and the accessibility of the maritime exchange network showed differences in each local area at the same time. In other words, the Mahan society in the Honam region was formed in the process of introducing various iron cultures through maritime exchanges, and the process of development also varied in terms of speed and content depending on the local society. Therefore, I propose that the driving force behind Mahan's socio-political development can also be pluralis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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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영산강유역 옹관묘의 장제와 피장자 검토

저자 : 김은정 ( Eun-jung Kim )

발행기관 : 호남고고학회 간행물 : 호남고고학보 6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40-64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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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영산강유역 옹관묘 분석을 통해 옹관에 시신을 안치했던 방식과 피장자의 성격을 밝히고자 했다. 먼저 기존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영산강유역 옹관묘의 분기를 설정하고, 그에 따라 옹관묘의 합구된 장축 길이와 인골의 신장, 발견된 옹관과 그 안에 남아 있는 인골의 상태, 옹관묘의 축조 위치와 배열, 부장품 등의 분석을 시도하였다. 그리고나서 분석결과를 바탕으로 옹관묘에 시신을 안치했던 방식, 그 안에 묻힌 사람들의 성격을 추론해 보았다.
영산강유역의 옹관묘를 분석한 결과, 첫 번째로 옹관에 시신을 안치하는 방식에서 신전장과 세골장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Ⅰ기에는 어린아이의 시신을, Ⅱ기부터는 옹관의 장축 길이가 점점 길어지는 것을 통해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성인의 시신을 펴서 눕히는 방법으로 안치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나주 장동리고분, 나주 복암리고분 등의 옹관에서 확인된 인골의 배치 상태는 신전장 이외에도 세골장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강하게 보여주었다.
두 번째로 단일 유적 내 옹관묘가 배열된 상태, 단일 무덤 안에서의 축조 위치, 묘제 간 부장품의 차이는 옹관묘 조성당시의 사람들이 보유했던 매장 방식, 피장자의 사회적 지위와 성 등의 차이가 반영된 결과물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Ⅰ기의 옹관묘가 동일한 장축방향으로 군집되어 발견되는 것은 선축된 무덤의 존재를 알 수 있도록 무덤을 조성했음을 보여주고, 강 또는 구릉의 능선을 따라 열상으로 배치되는 양상은 그들이 갖고 있었던 내세관과 관련됨을 보여주었다. Ⅱ기 이후에는 복수의 매장시설을 갖는 단일 무덤에서 옹관묘의 위치가 무덤의 가장자리에서 중심(목관중심-옹관주변(a)→목관·옹관 중심(b)→옹관 중심(c) 배치 구조)으로 변화한 것, 옹관묘에 부장된 물품이 토기류 중심에서 철기와 금동관·금동신발·금제팔찌·환두대도 등의 위세품으로 변화한 것을 통해 옹관묘 피장자의 사회적 지위가 변화했음을 알 수 있었다. 한편, 나주 덕산리 옹관에서 출토된 동천은 그 무덤의 주인공이 여성이었을 가능성을 보여주어 시사하는 바가 큰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This study aimed to reveal the way in which the body was placed in jar coffins and the character of the occupants through the analysis of the jar coffins in the Yeongsan River basin. First, this study determined the quarterly period of jar coffins based on the existing research results and accordingly attempted analyze the length of the long axis of combined jar coffins, the height of human bones, the condition of the excavated jar coffins and the human bones left therein, the construction location and arrangement of the jar coffins, and burial items. Then, based on the analysis results, it deduced the way the body was placed in the jar coffins and the character of the people buried therein.
The results of the analysis on the jar coffins in the Yeongsan River basin are as follows. First, the way in which the bodies of the dead were placed was Sinjeonjang and Segoljang. In particular, young children's bodies were buried during the period Ⅰ, and since the long axis of jar coffins became longer from the period Ⅱ, both children and adults were regarded to be buried by spreading and laying the body from the period Ⅱ. Meanwhile, the placement of the human bones in the jar coffins in Jangdong-ri, Naju and Bogamri, Naju is the strong evidence to show the possibility of not only Sinjeonjang but also Segoljang
Second, the difference in the arrangement of jar coffins within the same site, the construction location within the same tomb, and the burial goods in tombs were reflected by the difference in the burial method of the people at the time of the establishment of jar coffins, the social status and the gender of the occupants. In particular, the fact that the jar coffins were clustered in the same long axis direction during the period Ⅰ showed that the tombs were constructed in a way to make the previous tombs known, and the pattern of arrangement in straight rows along the river or the hilly ridge is related to their afterlife view. After the period Ⅱ, the location of the jar coffins in a single tomb with multiple burial facilities was changed from the edge of the tomb to the center (the center of wood coffin-around jar coffin (a) → the center of wood coffin·jar coffin (b) → the center of jar coffin (c)). And the burial goods in the jar coffins were changed to prestige items such as ironware, gilt-bronze crowns, gilt-bronze shoes, gold bracelets, and hwandudaedo (Ring-Pommeled Sword), which suggest that the social status of the occupants of the jar coffins changed. Meanwhile, Dongcheon excavated from the jar coffins in Deoksan-ri, Naju has great implications because it implies that the occupant of the tomb might be a wo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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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마한·백제권 고분 출토 외래경의 부장 배경

저자 : 김지은 ( Kim Ji-eun )

발행기관 : 호남고고학회 간행물 : 호남고고학보 6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66-89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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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목적은 삼국시대 마한·백제권 고분에서 확인된 외래경의 부장배경을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다. 마한·백제권 고분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외래경이 확인되지만, 가야권에서 출토된 외래경에 비해 단편적인 자료 검토에 한정되어 있다.
현재까지 마한·백제권에서 확인된 외래경은 문양대에 따라 총 8가지 종류로 구분할 수 있으며, 세부적으로 중국경 6형식, 일본경(왜경) 2형식으로 확인된다.
앞서 검토한 형식을 바탕으로 거울의 제작연대와 동일 고분에서 동반되는 부장유물의 연대를 비교한 결과, 중국경은 연대가 비슷하거나 최대 3세기의 전세기간이 확인된다. 그러나 일본경은 중국경과 달리 동반되는 유물의 연대가 일치하거나 차이가 적기 때문에 전세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보인다.
외래경의 부장배경은 거울이 출토된 유구와 동반유물의 성격을 통하여 추론하고자 하였으며 이를 3시기로 구분하였다. Ⅰ기는 4세기 후엽~5세기 전엽 이른 시기에 해당하며 아산만권에서 확인된다. 외래경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있었던 중국 강남지역과의 교역 과정에서 유입되었고, 지역 내에서 전세되었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판단된다. Ⅱ기는 5세기 전엽 늦은 시기~중엽에 해당하며 남해안권을 중심으로 외래경이 부장된다. 외래경은 매장시설의 성격을 보았을 때, 왜5왕 견사와 관련된 북부 큐슈세력과 연관이 깊고 이들과의 교섭과정에서 외래경이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Ⅲ기는 5세기 중후엽~6세기에 해당하며 금강유역권·남해안권·영산강유역권에서 외래경이 확인된다. 금강유역권 외래경은 백제중앙정권이 중국 남조와 일본과의 교섭과정 중에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남해안권·영산강유역권 외래경은 현지세력이 다양한 계통의 유물을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과정에서 유입된 것으로 해석된다.
마한·백제권 고분 출토 외래경은 시기에 따라 집단들 간의 다양한 접촉과정에서 유입되었고, 각 지역의 정치·사회·문화 이해관계 속에서 출현한 결과물로 보인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grasped the background of exotic mirror burial in Mahan and Baekje Area during Three Kingdoms Period. Although various types of exotic mirror have been identified in Mahan and Baekje, they are limited to reviewing exotic mirrors compared to those excavated in the Gaya region.
The exotic mirror were found to have been produced in China and Japan, and a total of 8 types were divided according to the designated stand. So far, the exotic mirror of Mahan and Baekje has been identified as 6 types of Chinese and 2 types of Japanese.
Based on the type of mirror i looked at earlier, the analysis together with the burial relics identified in the ancient tomb, the mirror of china was likely to have had the hereditary period of at least a century to a maximum of 3rd centuries. However, the mirror of japan showed that the hereditary period was shorter than the mirror of China or that it could see that it had entered immediately without a hereditary period.
The background of exotic mirror burial was to be inferred from the characteristics of the remains and companion relics. The exotic mirror burial of Asan Bay area is between the late 4th century and the early 5th century, it was suggested that it might have been introduced through the southern of China. In addition, a comparison between the production period and burial period of exotic mirror, cofirmed that exotic mirror was hereditary. The exotic mirror burial of the westsouth coast is between the middle 5th century and the late 5th century, Considering the nature of the burial facilities with mirrors and mirrors, it is highly likely the mirror was assumed to related the Dispatch of Japanese 5 King`s to China. The exotic mirror burial of the Yeongsan River basin is between the mid- to late 5th century and the early 6th century, It was interpreted that local forces selectively accepted artifacts from various systems. The exotic mirror burial of Geumgang River basin area is the early 6th century, It saw the influx of Baekje during negotiations with China's Southern Dynasties or Japan.
The exotic mirrors burial in Mahan and Baekje Area were accepted in various ways through negotiation and trade of various forces depending on the ti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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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백제 한성기 횡혈식석실분의 매장과정 복원

저자 : 임영재 ( Youngjae Lim )

발행기관 : 호남고고학회 간행물 : 호남고고학보 68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90-114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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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혈식석실분은 추가장을 염두에 두고 무덤 내부로 출입이 가능한 구조로 조성된 묘제이다. 따라서 그 구조와 형태뿐만 아니라 추가장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발생하는 제반 행위도 중요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연구경향은 석실분의 연대와 계보, 형태적인 특성을 통한 역사적 해석에 집중되었으며, 추가장과 의례 흔적에 대한 해석은 부차적 설명에 그칠 뿐 상대적으로 관심이 미진하였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발굴조사로 확인된 한성기 백제 횡혈식석실분의 매장과정과 추가장, 의례에 이르는 매장과정 전반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복원을 시도하였다. 시신을 안치하는 관은 설치형 목관을 사용하였고, 전반적으로 다인장(多人葬)을 기본으로 한다. 한편 주구와 봉토 혹은 연도 폐쇄부 의례흔적 등이 확인되는데, 이는 종래의 주구토광묘나석곽묘에서 행해지던 의례 행위가 계승되거나 석실분이라는 묘제와 함께 새로운 의례행위가 도입된 결과로 구분하였다. 특히 습골과 개수장 행위로 석실 내 매장 기능을 더욱 확장하기도 하였다. 이를 염두에 두고 볼 때 일부 한성기 횡혈식석실분에서 행해졌다고 여겨지는 소위 '신라인에 의한 재사용'은 사실은 '추가장'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점을 피력하였다.


Corridor-style stone chamber tombs served as memorial service structures constructed to allow access to the tomb for possible additional burials. Therefore, it is important not only the structures and forms of the tombs, but also various pertinent behaviors that occurred in the process of additional burials. Nevertheless, research trends heretofore have focused primarily on historical analysis based on the eras, genealogies, and morphological characteristics of the stone chamber tombs, while the analysis on the remains of additional burials and memorial rituals have been topics of relatively lesser interest, restricted to secondary explanations.
Given this background, this study attempts a comprehensive review and recovery of the burial process as a whole, including the additional burials and memorial rituals of corridorstyle stone chamber tombs from the Hansung period of the Baekje kingdom discovered by excavation research. Installation-type wooden coffins were used, with multi-burial systems being the norm. Meanwhile, traces of memorial rituals were identified in soil ditches and mounds as well as tomb entrances. They were interpreted to be the results of either a succession of rituals performed in soil ditch tombs or stone coffin tombs, or new rituals introduced along with stone chamber tombs. In particular, the burial functions of the stone chambers were expanded as a result of remodeling burials or the collection of bones. Taking this into consideration, this study argues that it is reasonable to interpret the so-called "reuse by Silla," which is deemed to have occurred in certain Hansung-period corridor-style stone chamber tombs, from the perspective of “additional buri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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