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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Korean-Japanese Military and Culture

  • : 한일군사문화학회
  • : 사회과학분야  >  정치/외교학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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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연3회
  • : 1598-8732
  • : 2734-0155
  • :

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2003)~32권0호(2021) |수록논문 수 : 407
한일군사문화연구
32권0호(2021년 08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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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국과 일본의 북핵 억제와 방어 태세 비교

저자 : 박휘락 ( Park Hweerhak )

발행기관 : 한일군사문화학회 간행물 : 한일군사문화연구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5-33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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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한국과 일본의 북핵 대비태세를 비교하여 한국에 대한 함의를 찾아보기 위하여 작성되었다. 북핵 위협과 미국과의 동맹 공유로 한일 간의 유사성이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하여 미국과 동맹국이면서 비핵상태인 국가가 핵위협에 대응하는 방법을 이론적으로 살펴본 다음에 일본과 한국의 대비태세를 각각 설명하였고, 서로의 유사성과 상이성이 큰 부분을 비교한 후 한국에 대한 교훈을 제시하였다.
분석 결과, 한국과 일본이 미국의 확장억제 의존, 선제타격을 비롯한 공세적 방어, 탄도미사일방어, 민방위 등의 기본방향에서는 유사하지만, 내용에 있어서 차이가 적지 않았다. 특히 탄도미사일 방어에 있어서 일본은 매우 체계적인 노력을 기울여 상당한 역량을 구비한 데 반하여 한국은 미흡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또한 핵민방위에 대해서도 일본은 법까지 제정한 상태이지만 한국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는 상태이다.
이제 한국은 일본보다 낮은 북핵 대응태세는 곤란하다는 인식하에 미국과의 핵공유를 추진함으로써 한반도에서의 핵균형을 도모하고, 지체된 탄도미사일방어를 보강할 수 있도록 미국은 물론이고, 일본과도 적극적으로 협력하며, 민방위도 핵위협 상황에 부합되도록 격상시킬 필요가 있다.


This paper is written to compare the preparedness of South Korea and Japan, which have been commonly exposed to North Korea's nuclear threat and maintain alliance relations with the US. For this purpose, it introduces key measures that the US non-nuclear allies take in dealing with a nuclear threat, examines the nuclear preparedness of South Korea and Japan respectively and compares preparedness of both countries and draws a few implications for South Korea.
As a result, this paper found that South Korea and Japan had taken similar concepts to defend their people from North Korean nuclear threat such as dependency on the US extended deterrence, offensive defense including preemptive strike concept, ballistic missile defense (BMD) and civil defense. However, the quality of the measures were considerably different. Especially, Japan achieved comprehensive and sophisticated BMD capabilities whereas South Korea stopped at very limited capabilities. Japan put more effort in the civil defense than South Korea.
South Korea may need to review the nuclear sharing option with the US seriously to make a quick nuclear balance on the Korean Peninsula. It should reform its BMD concept and capabilities by cooperating with the US and Japan. It should also level up its civil defense pos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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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전장 효율성 이론의 한계와 보완 방향

저자 : 문은석 ( Moon Eunseok )

발행기관 : 한일군사문화학회 간행물 : 한일군사문화연구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5-61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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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 국가의 전장 효율성 이론을 제시한 탈마지의 연구는 군사 효율성 이론의 한계를 극복한 중요한 연구였다. 그의 이론은 권위주의 정권이 직면한 위협 환경에 따라 특정 형태의 군사 조직 관행을 채택하고 이것이 전장 효율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었다. 이는 일국의 군대가 갖는 효율성의 변이를 군사 조직 관행을 통해 분석하였으며, 이를 통해 전술적 관점에서의 전장 효율성을 평가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학술적 의의를 갖는다.
그러나, 그의 이론 또한 명확한 한계를 노정한다. 그것은 군사 조직 관행만으로 전장 효율성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전쟁 준비단계에서 설득력을 갖는 군사 조직 관행에 더하여 전쟁 수행단계에서 전장 효율성을 결정하는 새로운 변수의 개발을 필요로 한다. 그 중 하나로 현장 지휘관의 전투지휘능력을 제시한다.
전장 효율성 이론이 보다 적실성을 갖기 위해서는 탈마지 이론의 인과 메커니즘을 보완함과 아울러 연구의 대상을 민주주의 국가로 확장시킬 수 있는 새로운 연구의 방향을 모색하여야 한다.


The study of Talmadge, which presented the theory of battlefield effectiveness in an authoritarian regimes, was an important study that overcame the limitations of the theory of military effectiveness. His theory was that authoritarian regimes adopt certain types of military organizational practices depending on the threat environment they face, which affects battlefield effectiveness. This has important academic significance in that it analyzed the variation in the effectiveness of a national military through military organizational practices and evaluated the battlefield effectiveness from a tactical point of view.
However, his theory also exposes clear limitations. That is, military organizational practices alone do not explain battlefield effectiveness. In order to supplement this, in addition to the persuasive military organizational practices in the war preparation phase, it is necessary to develop new variables that determine the effectiveness of the battlefield in the war execution phase. As one of them, the field commander's combat command ability is presented.
In order for the battlefield effectiveness theory to have more relevance, it is necessary to supplement the causal mechanism of the Talmadge theory and find a new research direction that can expand the research target to a democratic cou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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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반대학교 군사학과 운영 현황과 발전을 위한 함의 -비협약대학교를 중심으로-

저자 : 김용주 ( Kim Yongjoo ) , 김국현 ( Kim Gukhyoun )

발행기관 : 한일군사문화학회 간행물 : 한일군사문화연구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63-101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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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일반대학교에 군사학과가 처음 개설된 이후, 기존의 사관학교, ROTC, 학사장교로 육군 장교의 수급을 담당하던 것에서, 군사학과가 새로이 한 축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그 설치목적을 상당부분 달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신생학문인 군사학의 학문적 위상 정립에 대한 연구와 논란 속에서도 다수의 일반대학교에서 군사학과를 개설하여 운영 중인바, 이는 군사학이 이미 교육제도권 내에 속하여 많은 발전을 이루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학문으로서의 군사학의 자리매김과 군사학과의 설치를 연혁 위주로 살펴보고, 일반대학교의 군사학과 운영 현황을 검토한 후, 비협약대학교 군사학과 발전을 위한 함의 순으로 알아보았다. 이를 통해 다음과 같은 연구결과를 도출하였다.
첫째 한국연구재단의 “학술연구분야 분류표”에는 군사학이 “사회과학”으로 분류되어 있고 군사학이 공식적 학문으로 인정되어 학위를 수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군사학의 고유성ㆍ정체성에 대한 논란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따라서 군사학의 개념, 대상 및 연구범위에 대한 심도있고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둘째 일반대학교의 군사학과 설치 유형은, 육군본부와 일반대학교 간 협약을 통하여 군사학과에 합격하면 졸업 시 임관이 보장되는 유형, 역시 육군본부와 일반대학교 간 협약을 통하여 군 장학생 선발 간 가점을 받고 합격 시 장교로 임관하는 유형, 이와는 달리 육군본부와 협약을 맺지 않은 일반대학교 군사학과 학생이 군 장학생 선발시험을 거쳐 합격 시 장교로 임관하는 유형이 있다. 이 중 비협약대학교일수록 신입생 충원 및 장교 임관에 있어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다양하고 적극적인 지원정책으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일반대학교 군사학과 교과과정 편성을 보면, 최초 육군사관학교 교과과정을 모범(模範)으로 하여 동일하거나 유사한 교과 과목으로 편성되어 있는바, 군사학의 다(多)학문성, 종합 학문성, 융ㆍ복합성을 고려하더라도 너무 많은 과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제 육군의 핵심가치를 구현하는 유능한 장교 양성에 적합한 교과과정으로 재편성되어야 한다. 또한 전공교수 편성도 어느 한 전공에 편중되기 보다는 군사학 분야의 다양한 전공과목을 담당할 수 있는 교수가 포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넷째 군사학과 학생들에게 다양한 병영ㆍ병과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되어야 하고, 다양한 비교과 과목을 통해 군사 전문성뿐만 아니라 장교로서 인성 함양을 위한 정책지원, 그리고 애정 어린 관심을 갖고 교육과 지도가 이루어져야 한다.
유능한 장교, 군사전문가 양성을 교육목적으로 하는 군사학과 운영의 성패(成敗)는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것임을 명심하고, 일반대학교의 강점과 경쟁 우위요소를 발굴하여 이를 교육과정에 반영함으로써, 군이 요구하는 장교상에 부합된 장교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으로 도약하여야 한다.


Since the establishment of the military department at a general university in 2004, the military department has achieved much of its purpose in establishing itself as a new pillar, from being in charge of the supply and demand of army officers as military academies, ROTCs, and bachelor's officers. This can be seen from the fact that many general universities have established and operated military departments despite the research and controversy over the establishment of the academic status of military science, a fledgling academic, which is already under the educational system.
In this paper, we focused on the establishment of military science as an academic and the establishment of military departments, reviewed the military and operational status of general universities, and examined the implications for the development of non-agreement universities. This results in the following studies.
First, controversy over the uniqueness and identity of military science is still ongoing, although military science is classified as “social science” by the Korea Research Foundation and military science is officially recognized as a study. Therefore, in-depth and continuous research into the concepts, subjects, and scope of military science is needed.
Second, the type of military department installation of a general university is guaranteed if it passes the military department through an agreement between the army headquarters and the general university. Among them, non-agreement universities are having relatively difficulties in recruiting new students and commissioning officers, but they will be able to overcome difficulties with various and active support policies.
Third, the military curriculum of a general university consists of too many subjects, even considering the multidisciplinary, general academic, convergence, and convergence of military science, which is the same or similar curriculum. It must now be reorganised into a curriculum suitable for training competent officers that embodies the core values of the Army. In addition, rather than focusing on one major, efforts should be made to have professors who can take charge of various majors in the field of military science.
Fourth, military students should be given the opportunity to experience various barracks and soldiers, and various comparative subjects should provide policy support for their character development as officers as well as military expertise, and education and guidance with loving interest.
Keep in mind that the success or failure of military operations aimed at fostering competent officers and military experts is directly related to national security, and shall be established as an educational institution that trains officers required by the military by discovering strengths and competitive advant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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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의문점 고찰(考察)을 통한 제2차 진주성 전투 재조명

저자 : 서정규 ( Seo Jeongkyu ) , 서상국 ( Seo Sanggook )

발행기관 : 한일군사문화학회 간행물 : 한일군사문화연구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03-142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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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최대의 전투였던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진주 관군ㆍ의병 등 약 4천~5천8백여 명(추정)이 9만3천여 명의 왜군과 맞서 9일 동안 사투를 벌인 끝에 결국 모두 전사하였고, 전투에 대한 기록은 매우 적다. 그러나 『선조실록』 등과 같은 관련 사료를 살펴보면, 당시의 전투장면들이 증언한 사람들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세히 묘사되어 있었고, 특히 진주목사에 대한 평가가 너무나도 부정적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이러한 기록에 의문을 가지게 되어 총 4개의 의문점을 도출, 당시의 실상을 추론해 보고자 하였다.
당시 기록들을 살펴본 결과 백사 이항복이 8년 뒤에 남해안을 순시하면서 지은 傳(지어낸 이야기)인 『오성일기』 에 제2차 진주성 전투내용이 들어있었다. 그 내용을 보면 너무나 구체적으로 전투상황을 묘사하고 있었고, 특히 의병장 김천일 등은 전투의 주역으로, 진주목사 서예원은 심하게 폄훼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료 비교 과정에서 이 『오성일기』의 2차 진주성 전투내용이 원문 그대로 『선조실록』 무진조에 수록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이유를 추정해 보면 ① 당시 『오성일기』가 여러 문집에 인용되다 보니 실록청에서 그 내용을 어떤 의도 없이 그대로 수록하였거나, 또는 ② 당파 간의 당쟁이 극심했던 시대임을 고려할 때 실록청에서 어떤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남인인 서예원을 비하한 『오성일기』내용을 그대로 실록에 실은 것으로 추정할 수도 있고. ③ 너무나도 비극적인 패전의 책임은 실질적으로 외부 지원을 하지 않은 왕과 조정의 책임인데, 이 책임을 진주목사 서예원에게 씌우기 위해 그렇게 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여러 사료들을 분석한 결과 ③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하였다.
그러나 일본 측 기록 『음덕태평기』 등에서 왜군은 서예원을 『대장목사』라고 칭하고 있었고, 그는 최후까지 싸우다가 전사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었다.
이 전투는 호남을 지키기 위해 관군들과 의병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협력하여 싸운 전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가장 치열한 전투였고, 왜군은 전투의 피해가 너무 커서 전라도로 진출하지 못하고 부산으로 철수하였다. 객관적으로 볼 때 이 전투는 실질적으로 승리한 전투이고 그 주역은 1차 진주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진주 관군이다. 당시에 그들에 대해 여러 가지 이유로 포증은 못했더라도 더 이상 그들이 폄훼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리고 당시 진주목사와 진주 관군들, 그리고 김천일 등 의병들이 보여준 불굴의 정신력은 오늘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과 국군들에게 귀감이 되어야 한다.


In the second battle of Jinjuseong, about 4,000-5,800 people, including Jinjuseong main army and volunteer soldiers, fought against 93,000 Japanese troops for 9 days, and eventually all were killed. But the remaining records of the battle are very few. However, historical records such as Annals of Seonjo depicted the battle scenes rather in detail without any data source, and the evaluation of Seo Ye-won, Jinju Province Governor, who was the commander at the time, was done very negatively. Through interrogative research approach at these records, we have drawn a total of four questions about the 2nd battle of Jinjuseong. The 2nd Battle of Jinjuseong record in the Annals had been known to have been adapted from diverse historical resources, one of which was the Oseong Ilgi. It was a fictitious story that Seo-in, Baeksa Lee Hang-bok wrote while patrolling the southern coastal area eight years after the battle. According to the detailed battle scene in the Ilgi, Seo-in leaders of the volunteer soldiers, such as Kim Cheon-il, etc. were mainly the main heroes of the battle, while Seo Ye-won, Jinju Province Governor, was severely degraded. Knowing that the 2nd Battle of Jinjuseong record in Oseong Ilgi was almost copied in the Mujin-jo of Annals of Seonjo as it was., we could presume the following possible reasons. First, since the Oseong Ilgi was cited in various writings, the battle scene also was recorded in the Annals without any intention in the Sillokcheong (Annals office). Secondly, considering that the party hegemony between the factions was severe, it can be assumed that the contents of the Oseong Ilgi were put in the Annals for political reasons. Thirdly, assuming that the king and the court were actually responsible for the tragic defeat of the Jinjuseong battle for their having failed to provide external support. presumably they needed someone to pass the buck of failure. In the Japanese record EumDeoktaepyung-gi, the Japanese military referred to Seo Ye-won as “Captain Warrior,” and Seo Ye-won was recorded as having been killed with the vice governor Seong Soo-kyung fighting until his death.
The 2nd battle of Jinjuseong was the most fierce battle that is hard to find in the war history where main army and volunteer soldiers fought together until death to protect Honam region. Close study on the historical records of this battle showed us that Jinjuseong army officials who led the first battle to victory contributed to the battle of the 2nd Jinjuseong battle. The indomitable courage shown by Jinju Province Governor, his army, and volunteer soldiers should serve as a role model for the Korean people and Korean armed forces living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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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ㆍ25전쟁과 유재흥 -주요 전투에서의 작전 수행을 중심으로-

저자 : 남찬현 ( Nam Chanhyun ) , 심호섭 ( Shim Hosub )

발행기관 : 한일군사문화학회 간행물 : 한일군사문화연구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43-177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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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ㆍ25전쟁 당시 주요 전투에서 지휘관으로서 임무를 수행한 유재흥 장군은 그가 세운 혁혁한 공에 대한 칭송보다는 전술적 패배를 야기했다는 비난을 주로 받아왔다. 특히 일본 육사 출신, 친일파라는 비난과 현리전투의 참혹한 패배의 원흉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전장에서의 승리와 패배는 지휘관의 가치를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전술적 수준의 지휘관에게 작전 성패의 책임을 온전히 지우는 것은 다수의 책임과 문제를 모두를 개인에게 전가하는 것일 수 있다. 과연 유재흥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반민족적 매국노이자 무능력한 지휘관이었는가? 그렇다면 그처럼 무능한 지휘관이 3년이라는 6ㆍ25전쟁 기간 동안 주요 직책을 맡으며 전쟁을 수행했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본 고에서는 유재흥 장군이 수행한 6ㆍ25전쟁의 주요 전투를 통해 그의 내면을 바라보고 그의 작전수행을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유재흥에 대한 맹목적인 비난의 근거와 타당성을 평가하고 그를 재조명해 보았다. 이를 통해 현재 우리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과 과거의 인물을 바라보는 방식이 전환되어야 함을 강조하고자 한다.


General Yu Jae-Hung, who performed his mission as a commander at major battles during the Korean War, is generally criticized for having caused a tactical defeat, rather than being lauded for the distinguished contributions he has made. In particular, General Yu is subjected to condemnation for his Imperial Japanese Army Academy background and being a pro-Japanese faction, and is known as the main instigator of the horrendous defeat at the Battle of Hyeon-ri Area. Victory and defeat at the battlefield are certainly important elements that determine the value of a commander. However, holding a commander entirely responsible for an operation's success or failure at a tactical level is no less than shifting the responsibilities and problems of the majority to a sole individual. Then, was General Yu Jae-Hung a traitor against the country and an incompetent commander as is commonly told? If this is true, how can one explain that such an incompetent commander held key positions for three years during the Korean War and carried out the battles? This paper looks into General Yuo's inner workings through the key battles he executed in the Korean War and makes an objective analysis of his operations, thereby evaluating the grounds and validity for the unconditional criticisms against him with the ultimate purpose of re-examining him. By doing so, the paper seeks to highlight that our view of history and the approach to historical figures should be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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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미점령기의 '원폭'을 둘러싼 담론, 문학 그리고 정치성 -일본여성문학자의 '원폭문학'을 중심으로-

저자 : 오성숙 ( Oh Sungsook )

발행기관 : 한일군사문화학회 간행물 : 한일군사문화연구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79-199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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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요코의 원폭문학이 갖는 증언성과 원폭문학논쟁에 주목하여 다음과 같은 함의를 도출할 수 있었다.
첫째, 패전 직후 피폭자라는 당사자성에 의한 요코의 원폭문학은 작가의 눈과 인간의 눈으로 원폭의 참상을 본 체험이 특권화되면서 피폭자=기록자=증언자에 의한 문학으로 정립되어 갔다.
둘째, 검열에 의해 말할 수 없는 원폭 관련 담론은 원폭 피해와 공포감을 최소화하고 원폭투하의 정당성을 강조하면서 가해자 미국이 망각되고 있었다. 이와 맞물려 원폭문학은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역전시키며 일본의 전쟁책임을 망각시키고 있었다.
셋째, 제1차 원폭문학논쟁에서 보면, 요코의 투쟁하는 원폭문학은 개인적인 체험, 기록, 상황적 문학으로 규정되면서 저열한 문학으로 폄하되고 있었다. 이는 원폭 관련 증언이 전유한 원폭문학에 대한 불쾌감, 그리고 패전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피폭자에 대한 거부감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This paper could draw following results by focusing on the evidentiality of Yoko's atomic bomb literature and issues around it.
First, Yoko's atomic bomb literature based on the identity of an atomic-bomb victim right after defeat in the war had been established as the literature by an atomic-bomb victim = a chronicler = a witness, as the experience of observing the disastrous scene of the atomic-bomb from the eyes of the author as a person was privileged.
Second, U.S., the assailant, was obliterated, as the discourse regarding the atomic-bomb, which could not be communicated due to censorship, minimized the damage and fear derived from the atomic bomb and emphasized the validity of atomic bombing. In conjunction with this tendency, the atomic bomb literature caused the oblivion of Japanese responsibility for the war, by turning Japan from the assailant to the victim.
Third, Yoko's struggling atomic bomb literature was degraded as vulgar literature, as it was identified as an individual experience, a record and situational literature, in the first debate about atomic bomb literature. This might be caused by unpleasant sensation about the atomic bomb literature monopolized by the testimony to the atomic bomb as well as the aversion to atomic-bomb victims who reminded Japanese of defeat in the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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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만주사변(滿洲事變) 직후 프롤레타리아 시인의 사상적 경향 -마키무라 코(槇村浩)의 수감생활을 중심으로-

저자 : 박상도 ( Park Sangdo )

발행기관 : 한일군사문화학회 간행물 : 한일군사문화연구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01-224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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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일본의 프롤레타리아 시인 마키무라 코의 생애와 작품의 진수에 해당된다고 여겨지는 수감생활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서 먼저 시인이 학창시절 보인 남다른 혁명시인으로서의 면모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의 고지형무소 수감 중에 만든 두 편의 작품을 중심으로 그가 어떻게 자신의 사상을 구체화했는지도 살펴보았다. 황태자의 탄생으로 인해 감형을 받고, 또 그 기념으로 하사받은 '떡'을 동지의 입장과 적의 입장에서 형상화하는 그의 수완을 살펴보았다. <떡의 노래>는 동지의 따뜻한 인간미를 칭송하는 동시에 제국일본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뛰어난 작품성이 돋보인다. <동지 고미 미네지로>는 모두가 전향하는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며 혁명정신을 관철시킨 고미에 대한 칭송을 통해 시인 자신의 의지와 심정을 나타낸 우수한 작품이다. 당시는 전향의 바람이 일던 시대였다. 많은 지도자들이 전향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전향의 유혹 가운데 있었다. 하지만 시인은 끝까지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킨, 놀라운 사상적 깊이와 실천력을 보여주었다. 그가 수감할 때 그의 생명의 불꽃은 거의 꺼져가고 있었지만 그는 그가 간직한 혁명의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수감 중에 보인 그의 이러한 면모를 통해 우리는 시인의 사상적 실체에 대해 확인해 볼 수 있었다.


In this paper, we focus on Japanese proletarian poet Makimura Ko's life in prison, which is considered to be the essence of his life and works. To this end, we first identified the poet's unique aspect as a revolutionary poet during his school days. We also looked at how he materialized his thoughts, focusing on the two works he wrote while he was in Kochi Prison. In commemoration of the birth of the Crown Prince, his sentence was commuted, and he was was given rice cake. We examined his ability to embody the “rice cake” from the points of view of comrades and enemies. “A Song of Rice Cake” stands out for its excellent workmanship of praising the warm humanity of the comrades while satirizing and criticizing imperial Japan. “Comrade Gomiminejiro” is an excellent work that expresses the poet's own will and feelings by praising Gomi, who practiced his will and revolutionary spirit against all odds even in a precarious situation in which everyone else is converting to a new ideology. At that time, the wind of conversion was blowing. Many leaders converted, and many were being tempted to convert. However, the poet showed remarkable ideological depth and practical power with which he persistently had his will realized. While he was in prison, the flame of his life was close to being extinguished, but he never gave up his dream of revolution. Through these aspects that he showed during his imprisonment, we were able to confirm the poet's ideological re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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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0년 육상자위대 지휘참모과정 소개 -현존 위협에 대비하는 작전운용과 통솔-

저자 : 김정현

발행기관 : 한일군사문화학회 간행물 : 한일군사문화연구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25-237 (1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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