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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동아시아문화연구> ‘위안부’는 어떻게 잊혀 졌나? 1990년대 이전 대중영화 속 ‘위안부’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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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는 어떻게 잊혀 졌나? 1990년대 이전 대중영화 속 ‘위안부’ 재현

The Representations of ‘Comfort Women’ in Pre-1990s South Korean Popular Cinema and the Politics of Memory

김청강 ( Kim Chung-kang )
  •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 : 동아시아문화연구 71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17년 11월
  • : 149-193(45pages)
동아시아문화연구

DOI


목차

1. 들어가는 글
2. 침묵인가? 숨기고 싶은 기억인가?: ‘위안부’ 재현의 오래된 구조(들)
3. 일본군 ‘위안부’와 미군 ‘위안부’ 사이: <사르빈 강에 노을이 진다, 1965>
4. 남성주의의 공모: 한국의 <여자정신대, 1974>와 일본의 <작부이야기, 1965>
5. 순수한 피해자와 남성중심적 민족주의의 결합: <여자정신대, 1985> 그리고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 1991>
6. 나가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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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보기

1990년대 초반 김학순의 (최초)증언을 시작으로 전세계적으로 공론화되기 시작한 ‘위안부’문제는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못한 역사(unresolved history)’의 하나로, 첨예한 대립이 계속되고 있는 기억 투쟁의 장이다. 과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중심으로 촉발되기 시작한 이 암울하고도 놀라운 ‘감추어진 역사’의 발견은 일본의 식민주의, 전쟁과 폭력, 남성주의와 젠더와 섹슈얼리티, 그리고 하위주체(subaltern)에 관한 많은 사회적 관심과 각성 그리고 새로운 연구와 교육의 촉발 계기가 되었다. 식민지 군대에서 벌어졌던 처참한 기억들은 재소환되었고 이 문제는 ‘인권’ 유린의 관점에서 전세계적 이슈로 확산되었다. 이는 즉시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으며, 영화는 ‘말해지지 않은’ 것에 대한 시각적 재현을 통해, ‘문자’로 기록되지 않은 하위주체 여성을 바라보는 방식을 전했다.
그런데 1990년대에 들어서야 ‘위안부’ 문제가 한국 사회의 수면 위로 드러났다는 일반적 인식과는 다르게, ‘위안부’에 관한 재현은 1990년대 이전에도 ‘대중물 (대중소설과 대중영화)’을 중심으로 상당수 존재해왔다. 이 논문은 1990년대 이전에 만들어진 대중물이 위안부를 재현하는 방식을 살펴보며, 대중문화 속 ‘위안부’의 재현이 ‘위안부’를 바라보는 가학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시각을 만들어내었음을 주장한다. 영화 속 ‘위안부’ 아이콘이 남성의 소비물로 유통되면서 궁극적으로는 이들을 수치스러운 ‘망각’의 대상이라는 대중적 사회 인식을 만들어 내었기 때문이다. 연구 대상은 1965년작 <사르빈 강에 노을이 진다>, 같은 해 일본 감독 스즈키 세이준에 의해 만들어진 <작부이야기>, 1975년 작 <여자정신대>, 1985년작 <여자정신대> 그리고 1991년작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이다. 이 영화들은 동아시아 사회의 뿌리 깊은 남성중심주의와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위안부’라는 하위주체가 어떻게 폭력적으로 재현되어 왔는지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또한 이 영화들은 서로 상당한 참조성(referenciality)과 간텍스성(intertextuality)을 가지고 만들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식민자였던 일본 남성이 조선인 ‘위안부’를 대하는 남성주의적 시각이 피식민자였던 한국 남성에게 공유되고 있었음도 확인이 된다. ‘위안부’ 여성에 대한 ‘순수한 피해자 (pure victim)’ 혹은 ‘타락한 여성(fallen woman)의 이분법적 태도를 시각적으로 각인시켜온 것은 물론이다. 동시에 ‘순수한 피해자’든 ‘타락한 여성’이든 관계없이 여성의 신체나 성폭력의 장면은 남성 관객의 시각적 쾌락(visual pleasure)을 위한 스펙타클로 재현된다. 이러한 방식의 ‘재현’은 ‘기억하기’ 위한 방식이라기보다 여성들의 ‘부끄러움’을 드러내 ‘잊기’을 것을 강요하는 방식이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1990년대 이전의 ‘위안부’ 재현을 추적하는 것은, ‘위안부’가 ‘잊혀지는’ 방식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분명히 하지만 이 연구의 목표는 1990년대 이전의 대중 영화가 ‘위안부’를 기억하는 방식이 동아시아 남성주의의 폭력성과 민족주의의 공모 속에서 만들어졌음을 밝히는 것이지, 한국사회의 폭력성을 드러냄으로써 식민주의의 폭력을 축소하거나 대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남성 폭력적 재현을 드러내고 이 과정에서의 한-일 남성간의 성적 공모를 밝히는 것은, 한국 남성중심주의의 후기-식민주의적 발현을 드러내는 것이고 현재에도 지속되는 ‘위안부’에 대한 남성들의 성적판타지나 가학성의 근원을 들춰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동아시아 남성중심의 폭력적 문화가 사회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한‘위안부’ 문제는 어떤 의미에서 ‘해결되지 않는 역사’로 끊임없이 재소환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In the 1990s, beginning from the first testimony of Kim Hak-soon who was mobilized as a sex slave for the Japanese imperial army during the Asia-Pacific War, the issue of ‘comfort women’ have become the most ‘unresolved’ history between Korea and Japan. While the previously unrecorded testimonials of former comfort women have enlivened the academic discourses of Japanese colonialism, war crime, feminism and subaltern studies, bringing them into conversation, they also ignited the controversies over the politics of ‘history and memory.’ On the one hand, some (often) Japanese historians emphasize the ‘fact’ in historical writing that heavily relying on conventional historical sources, which minimized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memories’ of comfort women. On the other hand, other (mostly feminist) scholars take more careful approaches arguing that history is always ‘situational,’ and testimonial process itself reveals not just ‘fact’ of the past but signifies the history of ‘the present.’ While still precarious how to integrate memory into history, many realize that the conventional historical sources have restricted the historical writing within the realm of ‘official’ history, and ‘private memory’ could challenge official history, and make the history retold.
In the course of historical ‘retelling,’ the most notable was the rise of small budge independent filmmakings. Starting with serial documentary of Nazun moksori 1, 2, 3 (The Murmur, 1995, 1997, 1999) by Pyon Yong-ju, these films functioned to deliver the ‘reality’ or the ‘fact’ of the comfort women issues by authenticating and visually documenting the ‘memory’ of comfort women. The visual representations of these independent documentary films provided the present images of comfort women provocatively revealing the traumatic histories embedded in these women’s bodies. ‘Minor’ filmmaking, in this sense, was a significant medium bringing private memory into history, and relocate ‘marginal voice’ into a central political realm. However, it is should be also noted that there had been popular and dominant representations of comfort women suggesting strikingly different images before this film movement. Mostly produced before 1990s, some popular historical films (saguk) surprisingly present graphical gaze of comfort women’s bodies and sexual violence, and erase the voices of comfort women in the movie, which displays the reasons for the silence of comfort women issue prior to 1990s.
This paper, thus, explores the representations of ‘comfort women’ in South Korean popular cinema produced from the 1960s to the early 1990s. Considering the fact that there are few public records of the comfort women remaining before 1990s, popular films’ representations of comfort women in pre-1990s period are small outlets revealing the historical perceptions of comfort women, and explain the ways in which the history of comfort women had been silenced until 1990s. This paper particularly focuses on three films that mainly deal with comfort women issue: Sarubin kang e noul i chin-da (Sunset in the River Sarubin, 1965), Yoja chongsindae 1, 2(The Comfort Women, 1974, 1985) and Emi irum un chosenppi yotta (Your Ma's Name Was Choson Whore, 1991). The aim of this paper, however, is not on discovering historical ‘fact’ of the comfort women in pre-1990s period, but on critically examining how ‘major’ films marginalized the comfort women’s image in given historical time and contributed to create a collective memory of ‘comfort women’ as a national shame in male-dominant South Korean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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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410-ECN-0102-2018-900-000642359

간행물정보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사
  • : KCI등재
  • :
  • : 계간
  • : 2383-6180
  • : 2765-558X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80-2021
  • : 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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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권0호(2021년 08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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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고려시대 광주읍치의 고고학적 고찰

저자 : 안신원 ( Ahn¸ Shinwon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8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3-35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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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그 동안 이루어졌던 고고학적 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고려시대 광주읍치에 대한 고고학적 공간양상을 검토하였다. 고려시대 광주읍치의 구체적인 위치는 각종 문헌과 고지도를 검토해 볼 때 대체적으로 경기도 하남시 교산동, 춘궁동 일대인 것으로 비정해 왔다. 이 지역에서는 하남 이성산성, 하남 동사지, 광주향교 유적 등 지정문화재와 교산동 건물지, 천왕사지 등의 주요한 유적들이 확인되었을 뿐 아니라, 주변지역에서 유사한 시기와 성격의 소규모 유적들이 다수 확인되었다. 타 지역과 비교되는 풍부한 고고학적 자료를 검토해 볼 때 교산동 일대, 광주향교 일대와 그 주변지역의 유적을 읍치와 관련한 관영, 사찰, 생활공간 등 고려시대 광주목과 관련된 중세의 도시유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다.
교산동 일대의 핵심유적과 주요시설은 수도와 지방을 연결하는 주요 도로체계 안에서 상호연결되었기 때문에, 읍치의 구성과 마을의 대체적인 범위는 핵심 유적의 분포 범위와 도로망을 통해 추정해 볼 수 있다.
고고학적 자료로 보아 광주읍치는 교산동 건물지를 중심으로 한 교산동 일대가 관아나 객사 등 관영건물이 위치한 중심지역이고, 덕풍천 서안의 광주향교 일대와 춘궁동 일원은 생활유적, 창고시설, 우물, 배수시설, 소성유구 등으로 볼 때 생활, 생산, 보관과 관련된 활동을 관리, 감독하는 관영공간 혹은 마을의 생활공간일 가능성이 더 높다. 특히 덕풍천을 이용한 물자의 운반, 보관활동과 관련된 관청과 마을이 존재했을 가능성도 상존한다. 반면 객사와 관아 전면과 인근에는 교산동사지, 하사창동사지, 천왕사지로 연결되는 평지의 사찰공간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Based on the results of the archaeological research conducted so far, this article examines the archaeological spatial aspects of Gwangju-Eupchi(廣州邑治) during the Goryeo Dynasty. The specific location of Gwangju-eupchi has been determined to be in Gyosan-dong(校山洞) and Chungung-dong(春宮洞), Hanam-si, Gyeonggi-do, considering various documents and highland maps. Not only were major cultural assets such as Hanam Iseongsanseong Fortress(二聖山城), Hanam Dongsa Temple site(桐寺址), Gwangju Hyanggyo site(廣州鄕校), but also many small relics of similar period and character found in the surrounding area. Considering the rich archaeological data compared to other regions, the relics of Gyosan-dong, Gwangju Hyanggyo site, and its surrounding areas were understood as medieval urban relics related to Gwangju-mok(廣州牧) during the Goryeo Dynasty.
Since the core relics and major facilities in the Gyosan-dong area are interconnected within the main road system connecting the capital and the provinces, the composition of the township and the general range of the village can be estimated through the distribution and road network of the core relics.
According to archaeological data, the Gyosan-dong area, centered on the Kyosandong building site, is the central area where the state-run buildings such as government offices and guest houses are located. Gwangju Hyanggyo site and Chungung-dong, west of Deokpungcheon Stream(德豊川), are more likely to be staterun or village living spaces that manage and supervise activities related to living, production, and storage. In particular, there is a possibility that there were government offices and villages related to the transportation and storage of materials using Deokpungcheon Stream. On the other hand, it is most likely that it consists of a flat temple area connecting the front of the guesthouse and the government office to Gyosan-dong Temple Site(校山寺址), Hasachang-dong Temple Site(下司倉洞寺址), and Cheonwangsa Temple Site(天王寺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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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이호철의 『소시민』 연구-탈식민주의적 지향을 중심으로-

저자 : 전철희 ( Jeon¸ Cheol-hui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8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7-57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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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탈식민주의 이론가들은 '후진국'에서 소외된 채 살아가는 서발턴들이 불가해한 타자처럼 느껴질 수도 있음을 지적했다. 본고는 이 통찰을 참조하여 이호철의 『소시민』을 독해하고자 했다. 이 작품은 6.25 전후의 한국이 기형적 사회였음을 비판하고, 그 속에서 살아간 사람들이 속물화되어 가는 양상을 모사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당시의 남한사람들이 '바람직한 삶'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그들이 한갓 폭력적 사회의 수동적 피해자에 불과하진 않으며 그들의 삶도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항변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바람직한 삶'을 추구할 수 없게끔 강요하는 사회적 상황을 고발하고, 그런 사회에서 죽어간 사람들을 애도할 것을 호소한 후, 복마전 같은 세상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간 사람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요구했다는 점에서『소시민』은 후대의 진보적 문학과 구별된다.


India's post-colonial theorists have pointed out that subalterns living in an “underdeveloped country” may feel like an incomprehensible other. This paper took this insight and tried to read Ho-Chul Lee's 『So-Si-Min』. This work criticized Korea as a deformed society before and after 6.25, and testified that those who lived in it had no choice but to become snobs. However, while acknowledging that the South Koreans at the time did not lead a “Ideal life,” this work was structured to defend that they were not merely passive victims of a violent society and that their lives should also be respected. In that it denounced the social situation that forced people to not pursue a 'desirable life' and appealed to mourn for those who died in such a society, and presented a new awareness of those who somehow managed to live in a world like the battle of evil. 『So-Si-Min』 is distinguished from later progressive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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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김종철 초기 시의 가톨릭 세계관에 대한 일고찰-「죽음의 둔주곡」과 「떠도는 섬」을 중심으로-

저자 : 김재홍 ( Kim¸ Jae-hong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8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59-84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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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시인은 196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재봉」이, 197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바다 변주곡」이 각각 당선되어 시단에 등장했으며, 2014년 지병으로 작고하기까지 46년 동안 시작 활동을 했다. 그는 생전에 간행한 모두 7권의 시집과 유고시집 『절두산 부활의 집』 등 8권의 단독 시집, 형인 김종해 시인과 함께 간행한 형제시인 시집 『어머니, 우리 어머니』, 시선집 『못과 삶과 꿈』, 『못 박는 사람』 등을 상재한 바 있다.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김종철 시인은 첫 시집『서울의 유서』의 대표작 「죽음의 둔주곡」을 모두 9곡 205행의 작품으로 완성하였다. 이 시는 대위법 형식의 악곡인 둔주곡에 맞춰 각 곡과 곡에 죽음과 죽음의 이미지를 연쇄적으로 제시하고, 그 이미지들을 서로 겹치고 중첩시키면서 비극성을 강화하고 비장미를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또 두 번째 시집『오이도』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떠도는 섬」도 11개로 구분된 단편 서정시들이 모두 181행에 이르는 시행을 포함하는 작품이다. 이 시는 전반적인 내용과 그 분량 면에서 두 번째 시집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특별히 '오이도' 연작 7편을 개관하는 의욕적인 작품이다.
본고에서는 김종철의 초기 시를 대표하는 「죽음의 둔주곡」과 「떠도는 섬」을 중심으로 그의 세계가 가톨릭의 바탕 위에 성립되었다는 점을 확인하고, 그것은 믿음의 윤리화이자 윤리의 신앙화라고 할 수 있음을 살펴보았다. 김종철에게 가톨릭 세계관은 무엇보다 '계시의 믿음' 자체이지만, 그것의 작품화인 「죽음의 둔주곡」과 「떠도는 섬」은 믿음의 실천이자 믿음의 윤리화였다.


Poet Kim Jong-chul received the 'Hankook ilbo Spring Literary Award' with 'Jaebong(sewing)' in 1968 and 'Seoul Newspaper Spring Literary Award' with 'Sea Variations' in 1970 and so began his literary career. Before his death as a chronic disease in 2014, he had done the poetical works for 46 years. In his lifetime, he published the seven collections of poetry, eight poems including the posthumous collection, “The House of Revival of Jeoldusan”, a sibling collection of poems along with his elder brother Kim Jong-hae “Mother, Our Mother” and a collection of poems “Nails and Life and Dreams” and “The Man Who hammer Nails.”
Poet Kim Jong-chul who participated in the Vietnam War completed 'The Fugue of Death' which was the representative work of the first collection of poems “The Will of the Seoul” with nine songs and 205 lines. This work was unfolded to present a series of images of death and death to each song and song in line with fugue, a musical piece in the form of a counterpoint, and to strengthen tragedy and deepen the tragic beauty by overlapping and duplicating the images. And 'The Floating Island', one of the representative works of the second collection of poems “The Oido(Oi Island)” was a masterpiece that includes a total of 181 verses of short lyric poems of 11 features. From the perspective of the overall content and quantity, this work not only represented the second collection of poems, but it was also a highly motivated work that overviewed seven series of “Oido”.
In this paper, through the analysis of Kim Jong-chul's early major poems, 'The Fugue of Death' and 'The Floating Island', it confirmed that his world was established on a Catholic basis, it regarded an ethicalization of faith and a religious belief in ethics. Although the Catholic world view is for Kim Jong-chul the 'belief in revelation' itself, to made it into a work of art, 'The Fugue of Death' and 'The Floating Island' were the practice of faith and the ethnicise of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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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남북 국어 교과 전문용어의 개념 통합을 위한 쟁점과 방향

저자 : 이성우 ( Lee¸ Sung-woo ) , 신중진 ( Shin¸ Jung-jin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8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85-105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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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남측과 북측의 국어교육의 용어를 통합하기 전에 고려해야 할 쟁점과 방향을 논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국어 교과과정 외의 문제들을 살펴보았다. 나라 이름과 이념적인 부분을 살펴보았다. 특히 이 글은 '조선'이라는 이름의 문제를 지적한다. 그리고 사회적 이념은 이념적 문제로 논의되었다. 이념적 문제가 비교적 자유로운 남한과 달리 북한의 전문용어는 사회주의적 함의를 지닌다.
둘째, 한국어 교육과정의 문제점을 살펴보았다. 기능 교육, 문학 교육 및 문법 교육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특히 이 글은 남과 북의 용어가 기능 교육의 전문용어가 아직 표준화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문학교육의 전문용어는 장르 이름에서 고려해야 할 것이 많았다. 마지막으로 문법교육의 전문용어는 개념과 사용하는 용어의 차이를 지적하였다.


This article aims to discuss matters to be considered before integrating the terminology of the Korean-North Korean language education. The contents of this article are as follows.
First, I reviewed the issues outside the Korean language curriculum. I looked at the name of the country and the ideological part. In particular, this article identifies the problem of the name 'Joseon'. And The Social ideology was discussed as an ideological problem. Unlike the South Korean, which is relatively free from ideological problems, North Korean terminology has socialist implications.
Second, we reviewed the issues within the Korean language curriculum. Functional education, literature education, and grammar education. This article points out that the terminology of the South and the North has not been standardized on functional terminology. The terminology of literary education had something to consider in the genre name. Finally, the terminology of grammar education pointed out the difference between the concepts and the terms u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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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金聖嘆의 『水滸傳』 비평 (9)

저자 : 이승수 ( Lee¸ Seung-su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8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07-137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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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수호전』의 58~70회에 대한 김성탄의 비평을 검토한 것으로, 크게 세 가지에 중점을 두고 논의하였다. 첫째, 인물에 대한 비평과 이를 위한 개작 양상이다. 김성탄은 『춘추』와 『사기』의 역사 기술 방식을 기준으로 『수호전』의 인물을 비평하였으며, 경우에 따라 인물의 성격이 더 잘 드러나도록 개작을 시도하였다. 둘째, 서사 구성미의 발견과 구현 양상이다. 김성탄은 소설의 감상과 이해에 있어, 사건의 배치만으로 인물의 성격이 빚어지고 역동적 흐름이 만들어지는 구성법에 섬세한 비평을 시도했으며, 적지 않은 분량을 덜어 내거나 첨가하기도 했다. 그가 사용한 '章法'의 개념에는 字句의 차원에서 전체 구조까지를 포함된다. 셋째, 서사의 큰 맥락에서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작은 부분의 의미를 발견하는 讀法, 인용과 창작을 섞고 상층의 문언문과 하층의 구어체를 통용하는 作法을 검토하였다. 김성탄은 17세기 중반 동아시아 소설사의 한가운데 있었다. 그는 소설 애호가이자 비평가였으며, 작가이며 출판업자였다. 소설의 내면과 환경을 넘나들었으며, 작품의 이쪽과 저쪽에 동시에 있었다. 이 논문은 70회 본 『水滸傳』의 마지막 13회를 대상으로, 소설에 대한 김성탄의 입체적 면모를 검토한 결과이다.


This study examined the criticism by Jinshengtan on the 58th to 70th episodes of Water Margin largely with focus on three aspects. The first focus was the criticism on characters and adaptation phase to this end. Jinshengtan criticized the characters in Water Margin on the basis of the historical writing method in Spring and Autumn Annals and Historical Records and attempted the adaptation to express the characters' personalities more clearly depending on cases. Second, this study focused on identifying and materializing the aesthetics of narrative plot. Jinshengtan attempted the delicate criticism on the plotting method which creates the characters' personalities and dynamic flow only by arranging episodes. He also eliminated or added substantial parts. The concept of 'sentence rules' adopted by Jinshengtan includes the overall structure in terms of the expression. The next focus was to examine the reading method identifying the significance of a small insignificant part at the big picture of narrative and writing method using the colloquial style of the lower class and literary style of the upper class as well as mixing citation and creation. Jinshengtan was in the heart of history of novels in the East Asia in the mid-17th century. He was the story lover, critic, author and publisher. He crossed the internal world of novels and reality. He was at both sides of a novel. This study presented the analysis results on the diverse aspects of Jinshengtan related to the novels with focus on the last 13 episodes of Water Margin which comprised 70 episo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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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경계 위의 오키나와 교회-정체성 찾기와 문화적 적응-

저자 : 김창민 ( Kim¸ Chang-min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8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39-160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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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오키나와의 한인교회를 사례로 다문화 상황에서 문화적 적응과 문화적 정체성 찾기 과정을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오키나와 교회는 미군 부대에 근무하는 한국계 미국인이 주도하여 오키나와에 설립한 교회이다. 그 결과 오키나와 교회는 한국문화와 오키나와문화 그리고 미국 문화가 공존하는 다문화 현장이 되었다. 이런 다문화 상황에서 오키나와 교회는 어떻게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 가는가를 분석하고자 한다.
다문화 상황에 있는 오키나와 교회의 존재 양상은 두 가지 힘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문화적으로 다양한 교인들을 통합하여 종교 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힘은 종종 대립되게 나타난다. 즉, 문화적으로 다양한 교인들을 통합하려고 하면 한국문화의 정체성이 훼손되며,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강조하면 다른 사람들이 교회에서 소외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따라서 이 두 가지 힘은 변증법적으로 작동한다. 즉, 오키나와 교회의 존재 양상은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다문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역동성을 가지고 있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analyze the process of cultural adaptation and the making of cultural identity in the multi-cultural situation by using case of Okinawa church. Okinawa church was founded by Korean Americans who worked in Okinawa U.S. military bases. As a result, Okinawa church has been multi-cultural religious community which includes Korean culture, American culture and Okinawan culture. I intended to understand how Okinawa church construct and reconstruct its cultural identity in multi-cultural situation.
The identity of Okinawa church is explained by two dimensional movements. One is to make religious community by integrating culturally diverse members of the church, the other is to pursue cultural identity of Korea. Okinawa church have carried out various activities to meet these purposes. But, these movements are sometimes contradicted each other. The activities to integrate culturally diverse members to make a religious community degrade the cultural identity of Korea. On the other hand, the activities to make cultural identity of Korea is alienated Americans and Japaneses. As a results, the activities of two movements work dialectically. The identity of Okinawa church have been reconstructed and have dynamics in the multi-cultural condi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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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동아시아 소설에 나타난 미군의 형상화와 미군기지의 장소성 연구

저자 : 이은선 ( Lee¸ Eun-seon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8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61-185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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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전쟁소설은 태평양전쟁,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으로 이어지는 '전쟁 연대기'를 다루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군과 미군기지의 재현을 사유해야 하는 일차적 이유는 미국의 대동아시아 군사 정책이 동아시아 각국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 논문에서는 먼저 이 전쟁들의 다른 이름들인 '일미전쟁', '미국전쟁'을 고려하고, '미군'에 대한 인식과 소설적 형상화 과정을 살펴보았다. '적군'이자 전쟁의 승리자, 공포감을 주는 정복자, 구원자이자 해방자로서의 '아메리카'를 대리 실현하는 '군대'의 성격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동아시아 소설이 '전쟁'을 다루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어서 미군기지에서 미군이 자행한 다양한 폭력적 행위를 처벌할 수 없었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이 공간에서 작동하는 치외법권은 해당 국민에게 분노와 안타까움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군기지라는 공간이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국가 주권'에 대한 근원적이고 도전적인 질문을 제기한다는 점을 검토하였다. 또 '화폐'를 둘러싼 경제적 질서와 미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양상 중 토지의 강탈과 환경 파괴 문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일본군 위안소와 미군 매매춘의 연관 관계를 살피고, '기지촌'에서의 내국인 남성의 역할을 분석하였다. 특히 이들의 매개적 역할과 성병 검사, 수용소 운영 등을 통해 국가가 직접 매매춘 여성들을 관리하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미군, 미군기지와 국가 주권 및 폭력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고, 제국주의, 인종, 젠더, 계층적 차이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어떠한 문화적 실천이 이루어졌는가를 검토할 수 있었다. 동아시아 작가들의 전쟁소설을 각 시기별로, 또 연대기적으로 읽는 작업은 동아시아의 20세기가 경험한, 혹은 여전히 경험하고 있는 고통, 좌절, 기대와 맞닥뜨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방법으로서의 아시아'라는 관점에서 일국사를 넘어서는 관점을 도입하는 것은 전장의 폭력과 피해, 희생에 대한 논의의 중요성을 논리적으로 무화시키거나, 이를 추상화시켜 전쟁 일반론에 해당되는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시아 국가의 '고통'과 폭력의 성격, 그 현재성을 더욱 적극적으로 사유하기 위한 시도라 할 것이다.


It is no exaggeration to say that war novels in East Asia deal with 'war chronicles' that begin from the Pacific War followed by the Korean War and the Vietnam War. This paper was intended to first illuminate the perception of the US armed forces and the process of novelistic imagery of the US armed forces from the perspective of 'Japan-US War' and 'American War', which are other names of the foregoing wars. It was identified that the characters of the 'armed forces' that vicariously realize 'America' as an 'enemy', a victor of war, a conqueror who gives fear, a savior, and a liberator, are appearing diversely. This point is affecting the way East Asian novels deal with 'war.'
Thereafter, it could be identified that the various violent acts committed by the US armed forces at US military bases could not be punished. The extraterritorial rights working in these spaces first aroused anger and regret in the relevant people. In this context, the fact that the spaces termed US military bases raise a fundamental and challenging question about 'national sovereignty' in the traditional sense was reviewed. In addition, among the aspects of the economic order surrounding 'money' and the conflicts occurring in the process of construction of US military bases, the problems of land expropriation and environmental destruction could be found. Finally, the relationship between Japanese military comfort stations and US military prostitution was examined, and the role of local men in the 'military camp side towns' was analyzed. In particular, attention was paid to the mediating role of them and the fact that the state was firsthand managing female prostitutes through sexually transmitted disease testing, and operation of camps. In the course of the discussion, it was possible to examine the relationships between the U.S. armed forces, U.S. military bases, national sovereignty, and violence, and review what kinds of cultural practice were realized as a result of the complex action of imperialism, race, gender, and hierarchical differences. In this paper, explore ways to more actively reason for the 'pain' and violence and its presentness in Asian coun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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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남북 국어 교과 전문용어의 조어 분석 - 문학 용어를 중심으로 -

저자 : 전은진 ( Jeon Eun-jin ) , 신중진 ( Shin Jung-jin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71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13-31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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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남북 국어 교과 전문용어를 분석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남북 교과의 전문용어를 분석하여 조어 특징을 밝히는 이 연구는, 궁극적으로 남북 용어의 통합안을 마련하여 용어를 표준화하고 남북 통합 교육과정의 효율성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최종 목표를 위하여 이 연구에서는 국어 교과의 문학 용어를 중심으로 조어 분석을 시도해 보았다. 남북 전문용어의 조어 분석은 용어의 형성 방식과 유형을 제공하므로 남북 전문용어의 통합에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해 줄 수 있다. 문학 분야의 남북 전문용어는 일반적으로 1~2개의 조어 단위가 결합하여 용어를 형성하였고, 1개 조어 단위와 2개 조어 단위로 구성된 전문용어가 전체 분포의 88.7%를 차지하였다. AA(Aa)형은 1개 조어 단위로 구성된 용어가 가장 높은 빈도를 보였고, AB형은 2개조어 단위로 구성된 용어가 가장 높은 빈도를 나타냈다. 또한 1~2음절로 구성된 조어 단위가 다른 조어 단위와 결합하여 새로운 전문용어를 생산해 내고 있었다. 남측과 북측 모두 한자어의 사용이 월등히 높았다. 그러나 외래어와 고유어 사용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였는데, 남측은 북측보다 외래어를 더 많이 사용하고 북측은 남측보다 고유어를 더 선호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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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최적성이론에 의한 국어 움라우트 현상 분석

저자 : 조성문 ( Cho Sung-moon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71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33-55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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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국어 움라우트 현상의 변화를 정밀하게 고찰하고, 그 결과를 최적성이론(Optimality Theory)의 제약 등급의 변화로 설명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근대에 들어 활발히 전개된 움라우트 현상은 그 기제에 대해 엇갈린 논의들이 있지만, 그것은 시대와 방언에 따른 범위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본 연구에서는 국어 움라우트가 동화 현상이라는 데 초점을 맞추어 이제 중부방언 및 국어어문규정에서도 그 현상을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한다는 논의를 진행하려는 것이다. 왜냐하면 중부방언에서도 움라우트 현상의 예들이 조건에 상관없이 다수 발견되고 있다는 연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국어어문규정에서 다루고 있는 움라우트는 이 현상이 동화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의미적 기준에 의해서 구분을 짓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동화 현상이 일반적인 것이 되어서 굳어져 있는데 일부 단어만 동화를 인정하고 나머지는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규정에는 다음과 같은 기술이 되어 있다. “기술자에게는 '-장이', 그 외에는 '-쟁이'가 붙는 형태를 표준어로 삼는다.”라고 되어 있는 것이다. 이 규정은 더욱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본다. 움라우트는 'ㅣ' 모음 역행 동화 현상, 즉 말 그대로 발음에 관한 동화 현상인데도 불구하고 의미적인 기준으로 예외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규정 역시 수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본 연구에서는 개재자음 제약이 지닌 성격을 밝혀 움라우트 현상의 적용 조건을 보다 명확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것을 종합하여 최적성이론의 제약과 등급의 변화를 통해 설명함으로써 일반 언어학적 보편성과 개별 언어학적 특수성을 모두 설명하였다. 특히 충실성 제약인 Ident-IO(F)와 유표성 제약인 IC-vowel[back], *UMLAUT-coronal의 상호 작용에 의해 중부방언과 남부방언의 움라우트변화 양상을 세밀하게 관찰하였다. 이러한 변화를 세 단계로 나누어 각 단계별로 이 제약들의 등급이 변화해서 마지막 단계로 다다르게 되었다는 것도 함께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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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조선전기 유구국(琉球國) 농업의 이해

저자 : 이병희 ( Lee Byunghee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71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57-92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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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접촉과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琉球國에 대한 많은 정보가 축적되었다. 그 정보는 사신·표류민·피로인 등을 통해서 확보한 것이다. 유구국 농업에 대해서도 다양한 내용을 파악하였다. 정보의 취득과 수합에서 정부는 매우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유구국의 농업에 관해 기후조건, 농작물의 종류, 벼 농사 방법, 밭작물, 섬유작물, 채소, 유실수, 가축, 농기구 등 다양한 내용을 파악하였다. 그 가운데 조선인의 관심이 집중된 것은 벼 농사와 섬유 작물, 채소, 유실수, 가축 등이었다. 조선초에 편찬된 『농사직설』에서도 벼 농사와 섬유 작물을 기술하고 있지만 유구국의 그것은 이질적이었으므로 풍부한 내용을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채소와 유실수, 가축은 『農事直說』에서는 기술하고 있지 않지만 조선인이 깊은 관심을 갖는 사항이기 때문에 많은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유구국의 밭 곡식 재배는 조선의 수준이 훨씬 높았기 때문에 거의 주목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농기구의 경우 유구국의 그것은 종류도 다양하지 못하고 수준도 현저히 낮은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볼 때 유구국의 농업 수준이 조선보다 높았다고 할 수 없다. 기후 조건상 수용할 수 없었지만 벼의 이모작은 매우 선망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다양한 채소, 더운 지방에서 많이 생산되는 유실수 역시 조선인의 관심을 끄는 농작물이었다. 조선전기 유구국 농업 정보의 수집과 정리는 외국 문물에 대해 열린 자세를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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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저자로 나온 궁중(宮中) - 한국 요정(料亭)의 표상 명월관(明月館) -

저자 : 전우용 ( Chun Woo-yong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71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93-124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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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9월에 문을 연 명월관은 조선 궁중 요리와 연희의 전통을 계승한 조선요리옥의 원조이자 조선의 맛과 풍류를 계승하고 보존한 '조선다움'의 표상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명월관이 내세운 것도, 당대인들이 인정한 것도, '조선다움'이 아니라 오히려 '조선답지 않음'이었다. 명월관이 내세운 것은 최신의 설비와 음식의 개량, 청결과 위생으로써 기왕의 '조선다움'을 破天荒的으로 개혁했다는 점이었다. 명월관은 '신문물'이었고, 명월관 안에서 펼쳐진 연회와 공연은 '신문화'였다. 돈만 있으면 신분고하에 관계없이 궁중에서 공연하던 기생들의 시중을 받으며 고급 요리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당대 한국인들에게는 '破天荒的'인 일이었다.
명월관이 조선다움의 表象 중 하나, 혹은 대표적 표상으로 부각된 것은 대략 1920년대부터였다. 그런데 이 '조선다움'은 料理보다는 총독부 권력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조선의 이미지와 等値했던 妓生과 관련되어 있었다. 일제 강점기 명월관 요리가 '조선 전통 궁중 요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대중도 그를 굳이 알려 들지 않았다. 그러나 기생이 '조선인'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음식은 조선식과 일본식을 섞을 수 있었으나, 기생의 몸을 藝者의 몸과 섞을 수는 없었다. 명월관의 '조선다움'은 기생의 연주, 노래, 춤, 웃음과 결부되어 공고한 지위를 획득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기생도 '기생다움' 즉 '조선다움'에서 이탈하여 퇴폐의 상징으로 변해 갔다. 개점부터 폐점에 이르기까지 반세기 동안, 명월관이 기호로서 표상하는 것들은 '신식과 개량'에서 '조선다움'으로, 다시 '퇴폐와 향락'으로 이동했다. 조선에 있던 것들을 '개량'하여 조선에 일찍이 없던 것들을 만들었음에도 그것이 '조선다움의 정수'로 인식되었고, 이 새로운 '조선다움'은 이윽고 '퇴폐 향락'과 결합되었다. 이 점에서 명월관은 한국 근대 유흥의 탄생공간일 뿐 아니라, 자체로 한국 근대가 관통한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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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압축된 시간'과 '열광' - 3 · 1운동 연구를 위한 시론 -

저자 : 윤해동 ( Yun Hae-dong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71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125-147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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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대전이 끝나는 1918년 하반기부터 새로운 헤게모니 시간으로 부상하는 미국의 제국시간과 일본의 제국시간은 갈등하고 있었다. 미국의 제국시간이 민족자결주의로 포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식민지 조선에서 이 두 제국시간은 더욱 첨예하게 부딪칠 가능성이 높았다. 한편 조선 내에서 일본의 제국시간은 양화된 시공간 관념을 통하여 조선의 중하층 시간과 부합하거나 날카롭게 부딪치고 있었다. 조선의 중층시간은 민족과 근대성 사이를 동요하며 동시대성 혹은 세계사적 동시성으로의 비약을 꿈꾸고 있었다. 조선의 하층시간은 제국주의 지배를 통해 급속한 사회적 분화를 경험하였으며, 양화된 시간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상상하고 있었다. 조선의 중하층 시간은 이처럼 동요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급속하게 '압축된 시간'을 경험하고 있었다. 조선인 중하층 시간이 '자결'과 '개조'라는 세계사적 동시성과 만나게 될 때 그것은 쉽사리 '열광'으로 변하게 될 것이었다. '불꽃'과 같았던 3·1운동의 열광은 '압축된 시간'의 폭발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열광'은 시간이 압축된 방식과 강도에 따라 그리고 그것이 폭발하는 공간에 따라 각기 그 모양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 글에서 설정한 세 가지의 제국시간과 조선에서의 3층의 중층적 시간 사이에는 각기 다른 무수한 종류의 시간이 존재한다. 그 무수한 시간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교차하거나 결합되어 있었으며, 독자적인 방식으로 압축되어 있었다. 따라서 '열광'의 방식과 내용도 모두 달랐다. 3·1운동의 열광 속에 다양한 차원의 모호함이 담겨 있다는 지적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3·1운동에는 '위대한 정신의 비약'이 담겨 있었음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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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위안부'는 어떻게 잊혀 졌나? 1990년대 이전 대중영화 속 '위안부' 재현

저자 : 김청강 ( Kim Chung-kang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71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149-193 (4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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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반 김학순의 (최초)증언을 시작으로 전세계적으로 공론화되기 시작한 '위안부'문제는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못한 역사(unresolved history)'의 하나로, 첨예한 대립이 계속되고 있는 기억 투쟁의 장이다. 과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중심으로 촉발되기 시작한 이 암울하고도 놀라운 '감추어진 역사'의 발견은 일본의 식민주의, 전쟁과 폭력, 남성주의와 젠더와 섹슈얼리티, 그리고 하위주체(subaltern)에 관한 많은 사회적 관심과 각성 그리고 새로운 연구와 교육의 촉발 계기가 되었다. 식민지 군대에서 벌어졌던 처참한 기억들은 재소환되었고 이 문제는 '인권' 유린의 관점에서 전세계적 이슈로 확산되었다. 이는 즉시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으며, 영화는 '말해지지 않은' 것에 대한 시각적 재현을 통해, '문자'로 기록되지 않은 하위주체 여성을 바라보는 방식을 전했다.
그런데 1990년대에 들어서야 '위안부' 문제가 한국 사회의 수면 위로 드러났다는 일반적 인식과는 다르게, '위안부'에 관한 재현은 1990년대 이전에도 '대중물 (대중소설과 대중영화)'을 중심으로 상당수 존재해왔다. 이 논문은 1990년대 이전에 만들어진 대중물이 위안부를 재현하는 방식을 살펴보며, 대중문화 속 '위안부'의 재현이 '위안부'를 바라보는 가학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시각을 만들어내었음을 주장한다. 영화 속 '위안부' 아이콘이 남성의 소비물로 유통되면서 궁극적으로는 이들을 수치스러운 '망각'의 대상이라는 대중적 사회 인식을 만들어 내었기 때문이다. 연구 대상은 1965년작 <사르빈 강에 노을이 진다>, 같은 해 일본 감독 스즈키 세이준에 의해 만들어진 <작부이야기>, 1975년 작 <여자정신대>, 1985년작 <여자정신대> 그리고 1991년작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이다. 이 영화들은 동아시아 사회의 뿌리 깊은 남성중심주의와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위안부'라는 하위주체가 어떻게 폭력적으로 재현되어 왔는지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또한 이 영화들은 서로 상당한 참조성(referenciality)과 간텍스성(intertextuality)을 가지고 만들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식민자였던 일본 남성이 조선인 '위안부'를 대하는 남성주의적 시각이 피식민자였던 한국 남성에게 공유되고 있었음도 확인이 된다. '위안부' 여성에 대한 '순수한 피해자 (pure victim)' 혹은 '타락한 여성(fallen woman)의 이분법적 태도를 시각적으로 각인시켜온 것은 물론이다. 동시에 '순수한 피해자'든 '타락한 여성'이든 관계없이 여성의 신체나 성폭력의 장면은 남성 관객의 시각적 쾌락(visual pleasure)을 위한 스펙타클로 재현된다. 이러한 방식의 '재현'은 '기억하기' 위한 방식이라기보다 여성들의 '부끄러움'을 드러내 '잊기'을 것을 강요하는 방식이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1990년대 이전의 '위안부' 재현을 추적하는 것은, '위안부'가 '잊혀지는' 방식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분명히 하지만 이 연구의 목표는 1990년대 이전의 대중 영화가 '위안부'를 기억하는 방식이 동아시아 남성주의의 폭력성과 민족주의의 공모 속에서 만들어졌음을 밝히는 것이지, 한국사회의 폭력성을 드러냄으로써 식민주의의 폭력을 축소하거나 대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남성 폭력적 재현을 드러내고 이 과정에서의 한-일 남성간의 성적 공모를 밝히는 것은, 한국 남성중심주의의 후기-식민주의적 발현을 드러내는 것이고 현재에도 지속되는 '위안부'에 대한 남성들의 성적판타지나 가학성의 근원을 들춰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동아시아 남성중심의 폭력적 문화가 사회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한'위안부' 문제는 어떤 의미에서 '해결되지 않는 역사'로 끊임없이 재소환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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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리메이크 영화 『방황하는 칼날』에서 나타난 소년법 인식의 비교 고찰

저자 : 남상현 ( Nam Sang-hyon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71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195-215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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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범죄가 발생함에 따라 소년법에 관한 담론은 함께 진행된다. 그리고 소년범죄사건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논의의 차이는 소년범죄와 소년법에 대한 문제의식의 차이를 형성한다. 본고에서는 이런 차이에 입각하여 한국과 일본의 영화에서 대중이 소년법에 관하여 어떠한 인식의 차이를 가지는지 그리고 어느 부분에 더욱 주목하고자 하였는지를 비교 고찰하고 파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에 2004년 출판된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의 『방황하는 칼날(さまよう刃)』를 원작으로 살펴본 후, 리메이크된 한국(2014)과 일본(2009)의 영화를 분석하였다. 먼저, 일본의 영화에서는 소년법이 소년범을 처벌하지 못하는 데에서 나타나는 피해자 가족의 박탈감과 울분에 주목하였다. 등장인물들은 소년법에 대하여 보다 객관적이면서도 심층적인 고민을 하였다. 이를 통하여 대중에게 소년법에 대하여 재고찰의 기회를 주는 장으로서의 역할을 달성하였다. 한편, 한국의 영화는 소년법의 내용은 축소되고 인물의 심리를 극대화 한다. 한국의 영화속 아버지는 소년법에 무지한 인물로 변형되며, 사랑하는 딸을 지키지 못한 울분을 표출하기 위하여 복수를 다짐하는 인물이다. 아버지를 대표하는 대중, 일반인에게서는 소년법에 대한 인식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경찰만이 소년법에 문제의식을 가질 뿐이었다.
두 영화 속 등장하는 소년법에 관한 인식의 차이를 비교해 본 결과 일본의 영화는 대중이 소년법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을 전제로 전개되며 동시에 소년법에 관한 불신을 나타내는 경향이 짙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반면, 한국은 소년법보다는 소년범죄와 그에 따른 피해자의 감정에 주목하였다. 그럼에도 사법기관에 대한 믿음과 변화에 대한 의지가 존재한다는 모습을 보이며 향후 긍정적 변화를 기대하게 하였다. 이상 본고에서는 한일 양국의 영화를 비교 분석하여 소년법의 인식의 차이를 심층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하여 영화와 소설이 가지는 사회성까지 고찰할 수 있었다는 데 그 의의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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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청대 궁정희 극본집 『절절호음(節節好音)』의 판본 및 제작시기에 관한 고찰

저자 : 임미주 ( Im Mi-ju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71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217-250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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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궁정 월령승응희의 극본집 『節節好音』은 청나라 內府에서 제작한 극본집으로, 현재 중국국가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 속에 元旦, 上元, 燕九, 賞雪, 祀?, 除夕 등 6종류의 명절연극 총 43책 86종이 수록되어 있다. 사조절부터 연구절은 묵은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송구영신의 시기로서 황궁에서 경축 연회 및 희곡 공연 활동이 가장 빈번한 때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를 통해 청 황실의 송구영신 기간의 희곡 공연상황 및 명절 풍속 및 문화를 검토해 볼 수 있어 매우 의미 있는 연구 자료이다. 또한 현전 다른 월령승응희가 대부분 단색필사나 홍색 권점을 사용하고, 주로 배우들이 공연에 사용하고 향후 연극기구에 보관하던 存庫本인데 반해, 『절절호음』은 황제께 진상해 연극 관람 시 참고하던 安殿本이며, 채색으로 필사되어 그 판본적 가치가 크다. 또 고궁박물원 등 타 기관에서 소장한 월령승응희 극본 90종에 필적하는 86종의 월령승응희를 수록하고 있어 단독으로 연구할 가치가 충분하다. 그러나 그간 원본 자료의 열람이 용이치 않고, 현전 역사 자료에서 관련 기록을 찾아보기 어려워 전문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 일부 소개들은 그 내용이 일치하지 않거나 불확실한 면도 보이고 있어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우선 『절절호음』 은 오색사본이나 오색투인본이 아닌 황색, 홍색, 흑색, 녹색 총 네 색깔로만 필사된 사색 사본이다. 또 원래는 春夏秋冬 네 계절에 속하는 명절연극을 모두 수록했으나 현전하는 것은 '春天節戱','冬天節戱' 만 남아있는 잔본이며, 현전 『節節好音』 관련 ?譜畵像 34폭의 등장인물을 통해서도 '단오절희' 및 일부 '壽戱'가 더 포함되었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한편 『절절호음』의 편찬 시기는 1720년 康熙 말년에 제작된 작품집이 아닌, 1746년을 전후한 건륭연간으로 보아야 타당하다. 이는 『절절호음』에 雍正帝가 張廷玉에게 내린 春聯句가 등장하고, 1746년(건륭11년)에 간행된 『九宮大成南北詞宮譜』에서 확립된 曲牌의 분류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곳곳에 옹정의 피휘 '眞', 건륭의 피휘인 '弘'이 사용되지 않고 있는데, 이 역시도 『절절호음』이 건륭연간의 작품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또 극본에 曲譜나 鼓板이 함께 기록하지 않고 인물 등·퇴장, 배역, 聲腔, 韻目 방면에서도 건륭 시기 출판된 대희와 상당히 유사한 형식을 띠고 있다.
『절절호음』의 작가는 누군지 명확히 규명하기 어렵다. 다만 건륭시기에 월령승응을 비롯한 절희와 연대본희를 창작했다고 여겨지는 張照·王庭章·周祥鈺 등의 御用詞人들의 공동 창작으로 추정되었다. 그러나 『절절호음』이 대다수 그 제재를 역사고사들에서 취하고, 일부는 명말 청초의 傳奇작품에서 인용한 흔적이 엿보인다. 또 명나라 궁정에서도 이미 유사한 경축연극이 공연되었던 것을 토대로 청대의 순수 창작이 아닌 기존의 전승극목들을 다시 정리하고 각색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청초 어용사인들의 각색을 거쳐 『절절호음』의 문학성과 예술성이 크게 향상되었고, 무대 공연에 더욱 부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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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나카에 쵸민의 『민약역해』와 량치차오의 「루소학안」을 양명학적 개념들을 중심으로 분석함으로써 두 사람이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어떻게 이해하였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것에 나름의 의의를 두고자 한다. 두 사람은 25년의 나이 차이가 있고 국적과 더불어 그들이 처한 상황이 달랐지만, 둘 다 어릴 적에 유학을 배운 후에 점차 서구사상에 경도되었다는 점, 그리고 자유와 민권이 생소한 사회에서 그것을 알리고자 적극적으로 노력했던 선구적 인물이라는 점에서 출발점이 동일하다. 따라서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입장이나 그것을 유학적 관점에서 이해했던 점에 있어서도 상당부분을 공유하였다. 이 글은 나카에 쵸민의 『민약역해』와 량치차오의 「루소학안」을 중심으로 그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한 주요 개념들인리의(理義), 심(心), 의지(意志), 체용(體用) 등의 개념들을 가지고 고찰해봄으로서 근대 동아시아에서 사회계약론을 수용할 때 유가사상이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특히 그들의 공통의 사상적 배경인 양명학의 개념을 중심으로 그것을 다루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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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프랑수아 줄리앙의 중국회화론 - 허실(虛實) 개념을 중심으로 -

저자 : 이근세 ( Lee Keun-se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71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275-293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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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프랑수아 줄리앙의 동서비교미학의 관점을 허실(虛實) 개념을 중심으로 논의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정초된 미 개념이 서구 미학을 미궁에 빠뜨린 가운데 동양의 미감이 대안으로 부각하고 있다. 서양의 예술사는 미가 플라톤적인 순수 관념으로서 존재한다는 관점에서 미를 규정하기 위해 경주해왔지만 미를 정의해야 하는 숙제는 그대로 남았다. 서구의 현대 미학은 고전적인 미 개념에 대한 반동 작용으로서 상징적인 차원에서 미를 해석하거나 아예 미를 포기함으로써 극단적인 추상표현주의나 형식주의로 이어졌다. 중국회화론은 '미 개념'이라는 수수께끼의 그늘과 향수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중요한 원천이다. '미'를 실체화하지 않고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대립시키지도 않은 동양의 관점은 서구 미학의 난점을 비껴간다. 동양 예술에서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의 서구적 구분을 대체하는 것은 허실(虛實), 즉 비움과 채움의 조화이다. 중국 예술의 허실 개념은 정신적 영역과 물질적 영역의 상보성을 단일한 운행의 양상으로 보는 세계관에 기초한다. 따라서 중국회화를 파악하고 감상하기 위한 초점은 빈 공간(虛)과 채워진 공간(實)의 변주를 통한 생명으로의 열림과 초월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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