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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역한문학회> 한문학논집> 조선 후기 송두신문(送痘神文)의 창작 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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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송두신문(送痘神文)의 창작 양상

A Study on the Creation of the “Songdusinmun” in the Late Joseon Dynasty

오보라 ( Oh Bo-ra )
  • : 근역한문학회
  • : 한문학논집 59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1년 06월
  • : 215-253(39pages)
한문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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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痘瘡의 유행과 痘瘡 題材 詩文의 창작
3. 痘神 拜送에 대한 논란과 送痘神文의 창작
4. 送痘神文의 특징과 문학적 변주
5.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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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 후기에 송두신문이 지속적으로 창작된 현상에 주목하여, 송두신문의 등장 배경과 내용, 송두신문의 창작이 갖는 의미에 대해 살펴보았다.
조선 시대에 두창이 유행하여 많은 인명을 앗아가자, 민간에서는 두창을 섬기는 풍습이 만연했다. 이로 인해 이전에는 시문의 주된 제재가 되지 못했던 ‘두창’이 본격적으로 시문의 전면에 등장했는데, 이현석의 「聖痘歌」가 그 시발점이 되었다. 숙종이 재위 중에 두창에 걸렸다가 낫자, 이현석은 「성두가」를 지어 두창을 ‘聖痘’로 신격화하고 두창의 공능을 칭송했다. 이현석의 「성두가」는 이후 송두신문 계열 작품의 창작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조선 시대 유자들은 굿을 벌여 두신을 섬기는 풍속을 비판했지만, 두창에 대한 확실한 치료법이 없는 상황에서 두신의 존재를 마냥 부정할 수만도 없었다. 이러한 모순 속에서 나오게 된 문학적 양식이 송두신문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의 유자들은 송두신문을 통해 두신의 존재와 두신의 영험함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이들은 두신을 보는 관점에서는 차이를 보였으나, 공통적으로 두신의 존재와 공능을 인정하고 두신을 제대로 배송하는 방법은 무당굿이 아니라 시문을 지어 전송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즉 조선 시대 문인들은 두신의 존재는 인정하되 무당굿이 아닌 제문으로 전송함으로써, 두창에 대한 주술적 대응 방식을 활용하되 미신에 빠졌다는 비판은 면하려 했던 것이다. 송두신문은 두창이라는 공포의 질병을 마주한 문인들이 유가적 이상과 현실적인 대응 사이의 괴리를 좁히고자 한 노력의 산물이라 볼 수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창작된 송두신문은 祭神文의 일종으로서 서두부-전개부-종결부라는 3단계 구성을 취하고 있다. 이때 두창의 순조로운 진행이야말로 두신을 공경히 배송하는 핵심 근거인 만큼, 대부분의 송두신문에는 병증의 규칙적인 진행 과정이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한편, 송두신문은 작자의 삶에 대한 성찰을 표현하는 문학적 장치로 활용되기도 했다. 유희와 윤기는 송두신문을 변주하여, 인간의 운명을 주관한다고 여겨지는 ‘두신’을 소재로 삼아 인간 사회의 禍福과 窮達에 대한 성찰을 드러냈다.
현재의 관점에서 송두신문을 보면, 조선 시대 문인들이 두신에게 복을 비는 것은 비합리적인 행동으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송두신문의 창작은 조선 시대 문인들이 나름의 논리로 전염병의 유행을 설명하고, 그러한 해석을 토대로 두창의 공포를 극복하려고 한 노력의 일환이었다고 볼 수 있다.
I noted the continuous creation of the Songdusinmun in the late Joseon Dynasty. So this paper is aimed to examine the background and contents of the Songdusinmun and the meaning of the creation of the Songdusinmun.
Smallpox was a fear disease that claimed many lives during the Joseon Dynasty. As a result, the practice of serving a god of smallpox was widespread in the private sector. Not only among the general public, but also among the family members of the nobility and the royal family, the shamanic ritual was held to serve the god of smallpox. As shaman rituals to worship the god of smallpox became popular, ‘smallpox’, which was not the main theme of the poem, became a theme of the poem. Lee Hyun-suk’s “Seongduga” is the first literary expression of the sacredness of smallpox. Lee Hyeon-seok wrote “Seongduga” to celebrate King Sukjong’s recovery from illness. Lee Hyeon-seok praised smallpox in his work. Lee Hyun-seok’s “Seongduga” had a direct and indirect influence on the creation of the Songdusinmun.
During the Joseon Dynasty, Confucian scholars criticized the shaman rituals to worship the god of smallpox. But in the absence of a sure cure for smallpox, it was hard to deny the existence of the god of smallpox. The Songdusinmun is the literary style that emerged from this contradiction.
Writers of the Joseon Dynasty tried to reasonably explain the mystical forces of the god of smallpox through the Songdusinmun. For example, Chae Ji-hong identifed the god of smallpox as “the energy of yin and yang that goes back and forth”. Kang Pil-sin identified the god of smallpox as the ghost who cannot receive ancestral rites. Most other writers believed that there was the god to be incharge of smallpox, because smallpox’ symptoms were carried out regularly. Although they differed from the perspective of seeing the god of smallpox, they generally acknowledged the mystical forcesr of the god of smallpox, and argued that the way to properly worship the god of smallpox was to send the god off by making poems, not by the shamanic style.
The Songdusinmun, which was created against this backdrop, consists of three stages: the beginning, the development, and the ending. The opening part describes the existence of the god of smallpox, the development part describes the progress of smallpox, and the ending part sends the god of smallpox off. As smallpox’s smooth progress is the key reason for the worship the god of smallpox, most the Songdusinmun beautifully depict the regular progress of the disease. On the other hand, the style of the Songdusinmun transformed into literature to reveal writer’s philosophy of life.
From the current point of view, it can be considered unreasonable for writers of the Joseon Dynasty to lean on the god of smallpox and pray for their blessings. However, considering the background of the emergence of the Songdusinmun and its contents, the continuous creation of the Songdusinmun cannot be dismissed as unreasonable acts. The creation of the Songdusinmun was part of the efforts of writers in the Joseon Dynasty to explain the epidemic with their own logic and overcome the fear of smallp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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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정보

  •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KCI등재
  • :
  • : 연3회
  • : 1225-1313
  • : 2713-9905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83-2021
  • : 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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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권0호(2021년 10월) 수록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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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선초 서적간행의 토대 구축과 종이의 공급

저자 : 노요한 ( Johann Noh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6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41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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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즉위 초부터 명나라로부터 經史子集을 아우르는 학문 제방면의 서적을 수입하고자 부심하였다. 책은 당대에 지식전파의 가장 유력한 미디어로서 다양한 지식정보를 싣고서 조선으로 건너왔으며, 조선조정은 책에 실려서 건너온 지식정보를 연찬함으로써 국가 경영과 관련된 최신 정보를 습득할 수 있었다. 세종은 즉위 초부터 중국으로부터 당대의 주요 서적을 구득하고 이를 경연에서 연찬함으로써 그 서적에 담겨 있는 학술문화의 성과를 섭취하고, 섭취한 학술문화를 국내에 다시 확산함으로써 유교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나갔다.
그런데 국가적 사업으로 진행된, 서적의 편찬 및 간행을 통한 지식정보의 재확산을 위해서는 책을 만들어낼 물질적 기술적 준비와 함께 이를 중앙에서 지방으로 확산시킬 행정적 준비가 요구되었다. 그렇다면 건국 초기 조선조정은 이러한 책이라는 미디어를 통한 지식정보의 축적과 재생산, 확산을 위해 어떠한 행정적 기반을 마련하였을까. 또 그러한 지식정보의 전달자로서의 책을 출판하기 위해 조선조정은 어떤 인적 물적 토대를 구축하였을까. 본고는 조선초 세종의 명으로 이루어진 『사서오경대전』과 『성리대전』의 복각 사례를 중심으로 조선초 서적 출판을 위해 구축된 행정 체계와 여러 물적 토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King Sejong, from the very beginning of his reign, strives to import books from the Ming dynasty that encompasses the whole rages of disciplines covering Jing (經, Classics), Shi (史, Histories), Zi (子, Masters Literatures), and Ji (集, Collections). Books were the most influential media for knowledge dissemination at that time and Chosŏn government could also obtain the newest knowledge and information concerning the doctrine of statecraft based on Confucianism through books. Absorbed the academic and cultural achievements of Ming China through the royal lectures, Chosŏn government now made steady and persistent effort to diffused the knowledge throughout the country.
However, it was also required to lay material and technical foundation as well as administrative foundation in order to spread the knowledge through the compilation and the publication of books which was conducted as a national project. If so, what did Chosŏn government prepare for the accumulation, reproduction, and spread of the knowledge through the book media? Furthermore, what kind of human and material foundation did Chosŏn government establish in order to publish a book as a messenger of such knowledge and information? This paper examines the administrative system and various material foundations for book publication in the early Chosŏn period, focusing on the case of republication of Sishu Wujing Daquan (四書五經大全), Xingli Daquan (性理大全) by the Chosŏn gover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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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물질로서의 책과 유만주(兪晩柱)의 도서 구매 책주릅 조씨(曺氏)와의 거래를 중심으로

저자 : 김하라 ( Kim Hara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6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43-76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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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서울 남촌의 독서인 兪晩柱가 책주릅[冊儈] 曺氏와의 서적 거래를 기록한 『欽英』의 자료를 분석해 18세기 조선에서 책이라는 재화가 갖는 물질성의 문제에 접근해 보았다.
유만주는 1784년 4월부터 1785년 7월까지 고가의 도서를 여러 종류 구매했다. 당시 그가 주로 거래한 책주릅 조씨는 조수삼과 정약용 등 동시대인이 목격한 '조신선'과 동일인이다. 1784년 4월 23일 유만주의 倉洞 집을 처음 방문한 조씨는 『珮文韻府』 등 4종의 책을 의뢰받았고, 유만주가 明洞의 고급주택으로 이주한 1784년 8월 이후로도 계속 그를 방문해 『文選』, 『패문운부』, 『人外脞史』, 『思辨錄輯要』, 『資治通鑑綱目』 및 그 시리즈에 해당하는 『續資治通鑑綱目』과 『資治通鑑綱目發明』 등 3종의 역사서 『合綱』까지 160냥 어치의 책을 차례로 판매했다. 한편 유만주는 책값을 융통하기가 쉽지 않은 처지였고, 조씨는 요청받은 도서목록집이나 중국본 역사서를 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이런 이유로 두 사람의 거래가 갈등을 보인 1784년 11월 이래 유만주는 도서목록집 『浙江書目』을 소유한 '書客'과의 교유를 시작하며 호혜적 교환의 방식으로 원하는 책을 빌려 보기 시작했다. 이 서객은 『輸廫故人錄』과 『三朝要典』 寫本, 그리고 閔聖徽의 장서인이 압인된 서적들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추후 『흠영』에서 '凜'으로 불리게 되는 교유인물 閔景涑이 확실하다.
유만주와 민경속 사이의 교유가 본격화되며, 유만주와 책주릅 조씨의 거래 빈도는 현저히 줄었다. 유만주는 1784년 12월 22일에 『西遊記』를 구매하고 『합강』의 잔금을 지불했으며, 1785년 2월 3일에 『汪南溟集』 등 1냥 어치의 책을 구입했다. 그가 조씨에게 마지막으로 산 책은 『松雪學士全集』인데 이때 그는 돈 대신 해주 먹 20개를 지불했다. 조씨는 1785년 7월 18일에 유만주의 명동 집을 마지막으로 방문했고, 유만주는 이틀 후인 7월 20일에 도로 창동으로 집을 옮겼는데 이 이주는 유만주 가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가 닥쳤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책주릅 조씨는 물질적 형편이 나빠진 유만주를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This thesis tried to investigate the problem of the materiality of books in Joseon in the 18th century by analyzing the transactions between Yu Man-ju兪晩柱, a passionate reader in Seoul, and Mr. Jo曺氏, a book salesman, recorded in Yu Man-ju' diary Heumyeong 『欽英』.
During the period from April 1784 to July 1785, Yu Man-ju purchased several kinds of expensive books. At that time, Mr. Jo, whom he mainly dealt with were the same person as the Immortal Jo曺神仙, witnessed by his contemporaries such as Jo Su-sam趙秀三 and Jeong Yak-yong丁若鏞. On April 23, 1784, Jo visited Yu's house for the first time and was commissioned for four books including Paemununbu 『珮文韻府』. Also, after Yu Man-ju moved to a luxury house in August 1784, Jo continued to visit Yu and sell 160 nyang worth of books, including the books he was commissioned for and the books in the series. It was not easy for Yu to pay for the books, so he paid for some books in installments. And Jo had difficulties in obtaining a separately commissioned catalog of Chinese books or Chinese history books. Since November 1784, when the two men's dealings were in conflict, Yu Man-ju met an anonymous book collector called 'seogaek'書客 who owned a catalog of Chinese books and started borrowing books in a reciprocal way. The anonymous book collector is presumed to be Min Kyeong-sok閔景涑, as he possesses the legacy of Min Seong-hwi閔聖徽, a legendary collector of Joseon. The relationship between Yu and Min started in earnest, and the frequency of transactions between Yu and Jo significantly decreased. The last time Yu bought Jo a book, he paid 20 sticks of ink instead of money. Jo last visited Yu's luxury home on July 18, 1785, and Yu moved to a cheaper house on July 20, two days later. The move means that Yu is facing a difficult time economically. And Jo no longer came to visit Yu, who was in a bad economic situ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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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세기 연행록에 나타난 아편, 아편전쟁

저자 : 임영길 ( Yim¸ Young-gil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6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7-103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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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은 본래 설사와 복통의 치료제로 알려졌으나 그 환각 작용과 중독성으로 인해 기호품으로서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 조선에서 아편이라는 물질은 19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병증을 치료하는 약재 정도로 인식되었을 뿐, 상품으로서의 아편은 유통된 적이 없었으며, 그에 대한 지식도 갖추지 못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조선의 연행 사절단이 아편으로 인해 내우외환을 겪는 중국의 상황을 접하게 되면서 아편의 유래, 아편 흡연도구와 방식, 아편의 효용과 중독에 따른 폐해, 아편전쟁의 경위와 내막 등에 관한 정보들을 입수하기 시작하였다. 1848년에는 역관 박희영이 아편 흡연 도구를 국내로 들여오다 적발되는가 하면, 이 일을 계기로 조정에서 아편연에 대한 금령을 내렸으나 결국 조선 내부에도 아편이 침투하여 심각한 위해 물질로 자리하게 된다.
아편(연)에 관한 기록은 19세기에 저술된 시화나 필기 등 일부 자료에 산재해 있는데, 특히 연행록에서 조선 사절단이 중국 현지에서 직접 견문한 아편 중독의 실태, 당보나 전언 등을 통해 입수한 영국과의 분쟁 상황, 아편 정책을 둘러싼 만주족과 한족 관원의 정치적 대립 등의 실상을 적극적으로 포착하고 있어 주목된다. 李圭景의 鴉片煙辨證說 에는 1820년대부터 연행을 통해 수집된 아편 관련 정보들이 조선 사회에 공유된 정황이 드러나 있다. 또한 尹程의 『西行錄』(1844), 權時亨의 『石湍燕記』(1850)에 수록된 한족 지식인들과의 필담에는 아편의 해독성 및 조선에의 유입을 경계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영국의 강한 군사력, 청 관료 사회의 부패, 은 유출로 인한 재정 고갈, 아편 금지책의 혼선 등의 내밀한 사정까지 생생하게 보고되어 있다. 아편에 대한 조선 지식인들의 관심이 서양 세력의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으로 전환된 배경에 연행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Opium was originally known as a remedy for diarrhea and abdominal pain, but its hallucinogenic and addictive properties have spread it around the world as an item of personal preference. Until the 19th century in Joseon, the substance called opium was only recognized as a medicine to treat diseases, and opium as a commodity had never been circulated and it is understood that they did not have any knowledge about it. However, after the 19th century, the Joseon delegation came into contact with the situation of China that suffers internal and external troubles by opium, then they started to obtain information on the origin of opium, tools and methods of smoking opium, the effects of opium and the effects of addiction, and the history of the opium war. In 1848, station officer Park Hee-young was caught bringing in opium smoking tools and the court imposed a ban on opium smoking, however, eventually, opium penetrated into Joseon and became a serious hazardous substance.
Records about opium are scattered in some materials such as poems and writings written in the 19th century. In particular, it is noteworthy because Yeonhaengnok actively captures the realities of the opium addiction, the conflict with the UK obtained through Tang-Bao(塘報) or messages, and the conflict and the political confrontation between Manchu and Han Chinese officials over opium policy which were experienced in China by Joseon delegation. In ApyeonyeonByeonJeungseol of I Gyu-gyeong, the situation in which opiumrelated information collected from the 1820s was shared in Joseon society is revealed. In addition, the handwritten conversations with Han Chinese intellectuals published in Yun Jeong's Seohaengnok(1844) and Gwon Si-Hyeong's Seokdan Yeongi(1850) do not stop at the level of being wary of opium's hazard and influx into Joseon, vividly reports the confidential circumstances such as the UK's strong military power, corruption in the Qing bureaucracy, financial exhaustion due to silver leakage, and confusion of opium bans. It can be seen that Yeonhaeng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background in which Joseon intellectuals' curiosity about opium developed into a crisis awareness that they had to prepare for threats from Western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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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한문고전문헌의 기계번역 평가방안 탐색

저자 : 정성훈 ( Jung¸ Sunghoon ) , 하지영 ( Ha¸ Jiyoung ) , 김우정 ( Kim¸ Woojeong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6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05-155 (5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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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기계번역을 이용한 한문고전 번역물의 품질평가 방법을 살펴보고, 품질평가의 객관성을 제고하는 동시에 번역품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한 것이다. 고립어인 한문 고전문언문은 문체가 다양하고 문법상의 변화도 복잡하다. 또한 기계번역은 평가기준·평가목적·평가비용·텍스트의 종류 등도 함께 고려하여야 하므로 신뢰성이 높고 간편한 번역 품질 평가모델을 개발하기가 쉽지 않다. 자동평가는 기계번역의 어떤 요소가 번역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지는 알 수 없으며, 점수가 가장 높은 기계번역 모델을 보여줄 수는 있지만 기계번역 품질에 대한 타당성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평가기준도 평가모델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대량의 데이터를 필요로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수동평가가 필요한데, 평가자 각각의 경험이나 수준이 존재하고, 평가기준에 대한 이해가 다를 수 있으며, 평가 환경이나 차수에 따른 차이 등 주관에 치우칠 우려도 불식하기 어렵다. 따라서 자동평가와 수동평가의 장단점을 고려하여 기계번역기의 성격과 목적에 맞는 평가방법을 찾아 적용하되, 기계번역 모델의 성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척도를 개발하여야 하며, 궁극적으로 이러한 평가방법이 기계번역 모델의 문제점을 찾아 개선해나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several methods of translation quality evaluation on the classical chinese using machine translation, and suggest some ways to increase the objectivity of quality evaluation and improve the quality of translation. The classical chinese, an isolated language, have diverse styles and complicated grammatical changes. In addition, it is not easy to develop a reliable and easy translation quality evaluation model because machine translation should also consider evaluation standards, evaluation purposes, evaluation costs, and types of text. Automatic evaluation does not know which elements of machine translation affect translation quality, and although it can show the highest scoring machine translation model, it does not guarantee validity for machine translation quality. In addition, evaluation criteria may vary depending on the evaluation model and may require a large amount of data. To compensate for this problem, manual evaluation is required, which may have different results depending on the experience or level of the appraiser, understanding of the criteria, and the environment or number of evaluations. Therefore, considering the advantages and disadvantages of automatic and manual evaluation, an evaluation method suitable for the purpose of the machine translator shall be found and applied, but a measure shall be developed to objectively evaluate the performance of the machine translation model. And ultimately, these evaluation methods should help identify and improve the problems of the machine translation mo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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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데이터 정제의 관점에서 본 한국문집총간 XML 문서 검토

저자 : 최지연 ( Choi¸ Ji Yeon ) , 조성덕 ( Cho¸ Sung Duk ) , 최동빈 ( Choi¸ Dong Bin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6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57-194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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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 기술이 고도화됨에 따라 단순한 데이터베이스의 서비스보다 DB의 재가공 또는 DB 융합 서비스 등 다양한 형태의 정보 서비스 방식이 요구되고 있다. 본고는 데이터 정제의 관점에서 현재 구축된 한국 고전 데이터베이스 가운데 한국고전종합 DB의 한국문집총간 XML 문서를 검토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은 한국고전번역원이 삼국 시대부터 대한제국 말기까지 저작된 한국의 문집 중에서 주요 문집을 선정하고, 표점·영인하여 간행한 것으로, 한국고전번역원은 지난 1999년부터 2021년까지 전체 1,259종 500책에 대한 DB 구축 사업을 진행하였다. 본 연구진은 한국문집총간 DB를 기초데이터로 사용하는 과제를 진행하면서 한국문집총간 XML 문서를 검토하였다. 데이터 정제에 영향을 주는 장애요인을 '페이지 번호 불일치', '데이터 추가', '데이터 누락', '원문 이미지와 XML 한자의 불일치'의 네가지로 나누고 그 원인을 고찰해 보았다. 본고에서 살펴본 한국문집총간 XML에 대한 논의가 신뢰도 높은 데이터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From the perspective of data reprocessing, this paper intends to review the XML document of the Korean Anthologies Collection Database among the oriental classic databases currently constructed. 'Korean Anthologies Collection' is a book published by the Institute for the Translation of Korean Classics, from the Three Kingdoms Period to the end of Joseon Dynasty by selecting and imprinting major collections of Korean literature. From 1999 to 2021, the establishment of a database (DB) for a total of 500 books of 1,259 species was completed. The researchers divided the types of errors found in the process of reprocessing and using the DB between Korean literature as basic research data into four categories: page number mismatch, data addition, data omission, and, mismatched XML Chinese characters.
As information technology is advanced, various types of information service methods such as reprocessing DB or DB convergence service are required rather than simple database services. We hoped that the discussion on XML between the Korean Anthologies Collection examined in this paper will help build reliable research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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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디지털화된 이종 언어자원의 연계와 인문학 연구의 확장성 -『통합디지털한한대사전』과 KorLex의 연동 가능성 검토를 통해 -

저자 : 윤애선 ( Yoon Aesun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6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95-244 (5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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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목적은 이종언어자원인 『통합디지털한한대사전』(이하, 『통합』)과 한국어 어휘 의미망인KorLex 의 연동 가능성을 검토하는 것이다. 상이한 동기와 배경에서 개발된 두 언어자원은 양립하기 어려운 거시적 구조와 미시적 구조를 갖고 있다. 2절과 3절에서는 각각 KorLex 와 『통합』의 특성을 살펴보고, 4절에서는 두 이종 언어자원 간 연계 가능한 요소가 무엇인지 알아본다. 또한 현 단계에서 극복해야 할 한계와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향후 한국어 사전연구의 활성화 방향에 대해 논의한다.
두 언어자원의 유일한 연계점은 한자로 된 표제어휘인데, 접점의 그물코가 매우 크고 성글기 때문에 현 상태의 그물로 당장 거둬 올릴 수 있는 유용한 결과는 크지 않다. 하지만, 두 언어자원에 연계점을 제공하는 『표준국어대사전』과 『통합』의 연동성은 좀 더 가시적이고, 기존 한국어 사전의 보완 또는 편찬 방향에 시사점을 찾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통합』의 풍부한 정보를 이용하면, 한국어 사전에서 아직 결여된 부분인 어휘의 역사문화정보를 상당히 보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앞으로 편찬될 사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시도에 디지털화된 다양한 한국어 관련 사전이 동참한다면 좀 더 풍요로운 수확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This paper aims at examining the interoperability of two heterogeneous language resources - Unified Great Chinese-Korean Dictionary (hereafter, UGCK), and KorLex, Korean WordNet. Initiated with completely different motives and backgrounds, these two language resources show their own macro and micro structures which are hard to be compatible, at a glance. In Sections 2 and 3, we examine the characteristics of KorLex and UGCK, respectively. Section 4 investigates the possible linking elements between UGCK and KorLex. The limitations and the problems to overcome at the present stage are analyzed in detail. Finally, directions to revitalize future Korean lexicographic research are discussed.
The only linking elements between UGCK and KorLex are the headword in Chinese characters. Since the mesh of their links is very large and sparse, the useful results can be hardly obtained at this moment. However, the advantage of interlinking UGCK and Standard Korean Dictionary (hereafter, STD) which provides the headword in Chinese to KorLex, is more visible: existing Korean dictionaries including STD could be significantly enriched. For example, the rich lexical and cultural information of UGCK can provide STD with the historical and semantic changes of a lexicon, which still lacks in Korean dictionaries. The interlinked language resources can suggest a new direction for the dictionary to be compiled in the future. If various digitalized Korean dictionaries participate in this new attempt, a more prosperous harvest will be obtai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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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李奎報 詔令類 散文 硏究

저자 : 김중섭 ( Kim¸ Jungseop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6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45-273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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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李奎報의 詔令類 散文에 내재되어 있는 글쓰기 방식을 살피고 의의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이규보가 작성한 조령류 산문에는 敎書, 批答, 制誥 등이 있다. 당시 관각문의 대다수를 변려문체로 지었기 때문에 이규보의 조령류 산문 역시 변려문체로 이루어진 것이 상당수이다. 하지만 이규보는 前代와 當代의 문풍에 대한 반발심과 문풍을 개혁하고자 하는 뜻이 있었으므로, 모든 유형을 변려문체만 활용하여 지은 것은 아니다. 그의 조령류 산문에는 변려문체와 산문체가 공존하며 변려문체와 산문체가 혼재되어 있는 형식도 있다.
이규보는 다양한 전고들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하여 장중한 풍격을 이루었고, 옛 문인이 사용한 구절을 알맞게 변용하였으며, 전고를 적게 써가며 자신만의 용어를 고안해내기도 하였다. 또한 자신의 뜻을 절실히 전달하기 위하여 문체에 변화를 주는 등 의도적인 글쓰기를 하였다.
이러한 특징들은, 이규보의 조령류 산문에도 그가 사적으로 지은 문장과 마찬가지로 나름의 문학적 성취와 글쓰기 방식, 그리고 좋은 문장을 짓기 위한 고뇌가 담겨 있음을 방증한다. 이규보와 그의 문학에 대하여 보다 입체적인 파악을 하기 위해서 조령류 산문을 비롯한 관각문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writing styles of Lee Gyu-bo(李奎報)'s Joryeong-ryu(詔令類) prose and to clarify its significance.
There are Gyo-seo(敎書), Bi-dap(批答), Jae-go(制誥), etc in Lee Gyu-bo's Joryeong-ryu prose. As most of Gwangak-mun(館閣文) at the time were written in Pianliwen(騈儷文), Lee also wrote many of his Joryeong-ryu prose in Pianliwen. However, he had resistance against previous and contemporary literature culture and tried to reform the culture. Therefore a part of his Joryeong-ryu prose is written in Pianliwen style, another part in prose style, with some prose in Pianliwen and prose style mixed.
Lee skillfully utilized various authentic precedent to create solemnity. Also he appropriately rephrased the lines of previous writers, and he devised his own term rather than using a lot of authentic precedent. In addition, he intentionally made changes such as shift of writing style to deliver his idea more closely.
These characteristics prove that Lee Gyu-bo's Joryeong-ryu prose contains a certain literary achievements, writing style, and personal agony for better lines just as his private literature works. This is why, in order to gain a more complex understanding of Lee Gyu-bo and his literature, more interest active approach to his Gwangak-mun such as Joryeong-ryu prose is requ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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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식민지시기 경향(京鄕)한학자들의 교유 - 변영만, 조긍섭과 정인보, 하겸진의 교유를 중심으로

저자 : 김진균 ( Kim Jin-kyun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6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75-299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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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식민지시기에 전근대 학술을 표방하는 한학자들은 상심과 소외감을 품고, 상심을 함께 나눌 사람을 찾아 결속을 강화하였다. 구시대에 귀속되는 한학을 표방하며 도학과 문장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상심의 원인이 크게 다르지 않았겠으나, 한학을 기반으로 하는 미래 전망을 어떻게 세울 것이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조금씩 결이 달랐다. 그것은 한학을 표방하면서도 어느 방향으로 변용할 것이냐 하는 문제이며, 그 사람의 성향 혹은 체질과 관련될 것이다. 상심을 공유하며 넓은 의미의 교유의 자장에 함께 묶인 사람들도 이 전망의 결에 따라 친분의 농담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조긍섭이 특히 변영만과 각별한 교유를 갖게 되고, 정인보가 하겸진과 더욱 긴밀한 교유를 하게 된 것은 상대방에게 전망의 공유 영역을 더 많이 발견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전망 공유 가능성을 보고 적극적으로 교유를 청하는 것도 각각의 주목할 만한 점이지만, 영남권에서 활동하던 같은 세대의 거유들과 서울의 문화계에서 활동하던 한 세대 아래의 명망가들이 쌍을 이루게 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During the modern colonial period, scholars advocating pre-modern studies were heartbroken and alienated, and strengthened solidarity by finding people to share their heartbreak. The cause of heartbreak would not have been very different in that it pursued moral and literature while advocating Chinese classical studies, but the decision was slightly different in terms of how to set up future prospects. It is a question of which direction to change while advocating Chinese classical studies, and it will be related to the person's disposition or constitution. People who share their heartbreak and are tied together by the magnetic field of friendship in a broad sense are bound to change their friendship jokes depending on the resolution of this prospect. Cho Geung-seop, in particular, had a special relationship with Byeon Young-man, and Jung In-bo had a closer relationship with Ha Gyeom-jin because he discovered more areas of sharing the outlook to the other party. It is also noteworthy to see the possibility of sharing the outlook and actively asking for friendship, but it is also noteworthy that the same generation of giants working in the Yeong-nam region and a generation of celebrities working in Seoul's cultural world are pa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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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三國遺事』 「古朝鮮 條」 기록에서 '古'의 의미와 그 시간적 범위

저자 : 李鏡淑 ( Lee¸ Keoungsuk ) , 文致雄 ( Moon¸ Chiung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6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01-324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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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古의 시간사적 의미인 昔과 古代에 대한 논의이며, 특히 『三國遺事』「古朝鮮條」에서 古朝鮮이라 칭한 그 古의 의미와 시기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과 정리에 중점을 두었다. 연구의 방법은 우선 고대의 내용을 담고 있는 주요 문헌의 종합적인 분석을 통해 古의 시기와 그 구체적인 시대를 세분화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三國遺事』「古朝鮮條」에서 해당 시기에 대한 기록들을 찾아 古의 시대와 비교하고 구분, 정리하였다.
「古朝鮮條」에서 『古記』를 인용하여 기록한 “昔有桓國”에서 桓國이 있었던 昔의 시대는 上古에 해당함을 보였다. 이와 관련한 내용으로 당시의 관직명인 “風伯, 雨師, 雲師”에 대해 『山海經』, 『史記』등을 포함한 고대를 기록한 문헌 분석 결과 그 시기가 上古시대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문헌 분석을 통해 나타나는 古에 대한 시간적 구분은 上古, 中古, 近古(後古, 下古)의 세 구간으로 나누고 있는데, 上古와 中古사이에 治水라고 하는 막대한 사건과 이를 중심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의 시대를 古의 중심 분기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보고, 본 연구에서는 이를 구분하여 本古로 하였다. 『玉篇』에 보면, 古는 “久也, 始也”라 하여 오래전 처음 시작하던 때라 한 내용이 보이는데, 本古를 본격적인 古의 시작으로 보고, 이보다 앞선 시대의 上古를 昔으로 하였다. 이렇게, 昔이라고도 하는 上古와 中古사이의 本古시대를 따로 분류하여 시대 구분의 한 기간으로 삼아, 단군조선을 건국한 시기를 本古로 하였다. 이를 종합하여 정리하면 '伏羲神農, 蚩尤'로 대표되는 시기는 昔인 上古시대로, 堯舜時代를 비롯한 虞夏, 殷과 고조선 건국 시기는 上古와 구분하여 本古의 시기로 분리하였다. 『三國遺事』의 “與高同時”가 의미하는 시대는 바로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세운 시대를 말하는 것으로 바로 堯舜시대와 같은 古의 시대인 本古라고 구분할 수 있다.
中古는 보통 周文王시대로, 『三國遺事』「古朝鮮條」의 “周虎王卽位己卯(周나라 虎王이 즉위한 己卯년)”에 보이는 시기를 말한다. 近古에 해당하는 기록은, “壇君乃移於藏唐京後還隱於阿斯達爲山神壽一千九百八歲。(단군이 藏唐京으로 옮겨 살다가 후에 살 곳을 아사달의 산에 만든 때는 단군이 命을 할 때부터 1908년이 된다)”의 내용 중에서 “壽一千九百八歲”이라고 한 것을 근거로 나라를 건립하고 1908년이 지난 시점은 단군 조선이 건국된 B.C. 2333년으로부터 1908년이 지난 시기인 B.C. 425년을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B.C. 425년은 공자가 사망한 B.C. 475년 보다 50년 後의 시대로, 이 의미는 이때까지도 왕검 조선이 존속하였음을 의미한다.


In this study, we discuss the old (古) means as the pre-ancient (上古) and ancient era (古代) based on temporal meanings, which is the important historical meanings in order to understand ancient era. The study approach, firstly, subdivided the ancient era and its specific period through a comprehensive analysis of major literature containing ancient contents. Based on the contents of this ancient temporal classification, the periods appearing in the records of the Samgukyusa(三國遺事) were compared with major literature, and classified into four periods such as Pre-ancient, Primary ancient, Middle ancient, and Late ancient periods.
The Phrase 昔有桓國 expressed in Gojoseon article of Samgukyusa, which means Hwan dynasty (桓國) existed in Pre-ancient era. We can also found the official titles related to this era including Hwanung (桓雄), Usa (雨師), Unsa (雲師) and Pungbaek (風伯) in Samgukyusa. The era of Dangun Wanggeom, Yao and Shun (堯舜), Yu Xin (虞夏), and Yin (殷) separated from Pre-ancient and there era can be classified into Primary ancient era. There is a record in the Samgukyusa that Dangun Wanggeom founded the country called Joseon, and that there were Yao as a person at that time. The primary ancient is the beginning of ancient and the early of ancient era.
The Middle ancient is generally classified by the time of beginning the king Wen (文王) reign of Zhou dynasty about BC 1122. This time is referred to the during the reign of King Ho (虎) of Zhou dynasty (周虎王卽位己卯) described in Samgukyusa. The record corresponding to the Late ancient is the 1908 years after the establishment of the country based on the BC 2333 in the contents of 壇君 ... 壽一千九百八歲. Therefore It's time can be seen that BC 425 years. It is 1908 years after establishment of Dangun Joseon at BC 2333 is BC 425. This time is 50 years later than BC 475 when Confucius died. This means that there were still royal Dangun Joseon during this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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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정약용 수택본 『규장전운』 안어(按語)와 전(傳) 장지완 『규장전운간오』의 비교

저자 : 심경호 ( Sim Kyungho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9-61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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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之琬(1806~1858)의 『張玉山斐然外抄』에 수록되어 있는 奎章全韻刊誤는 정조가 『奎章全韻』의 上聲梗韻에 御名 '祘'을 배속시키고 '省'의 음을 註記했다고 밝혔다. 규장전운간오 는 이외에도 『규장전운』의 편찬 과정, 字序, 字訓, 字形, 韻屬등에 관해 상당히 주목할 만한 비평을 가했다. 그런데 그 상당 부분이 정약용 수택본 『규장전운』의 안어와 일치한다. 하지만 장지완은 『규장전운』의 편집이나 교정에 참여한 인물이 아니다. 『규장전운』을 교정한 일이 있는 정약용이 그 사실을 수택본의 天頭에 기록해 두었으나 후대에 지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규장전운간오 는 장지완의 저술이 아니라 정약용이 별도로 정리해 두었던 원고를 轉錄한 것인지 모른다. 규장전운간오 의 여러 내용이 정약용 수택본 『규장전운』의 欄外按語와 일치한다. 정약용은 1800년(정조 24) 정조에게 진헌할 목적으로 文獻備考刊誤를 이룬 일이 있다. 마찬가지로 정약용은 국가 편찬물인 『규장전운』에 대해 '刊誤'를 작성했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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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안평대군의 『비해당선반산정화(匪懈堂選半山精華)』 편찬과 주해방법

저자 : 노요한 ( Johann Noh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63-102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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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안석의 시를 애호한 조선의 왕자가 있었다. 바로 安平大君李瑢(1418~1453)이다. 안평대군은 북송 때 정치가이자 시인인 王安石(1021~1086) 시의 정수를 모아 『匪懈堂選半山精華』로 엮고 목판으로 간행했다. 성균관대학교 존경각과 일본 세이기도(成簣堂) 문고 등에 소장된 6권 2책의 이 목판본은 『고사촬요』(1585년경)의 책판 목록에 '경상도 안동'에 책판이 저록되어 있어 안동에서 판각된 것으로 추정된다. 안평대군 자신의 서문과 신숙주의 서문을 수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안평대군의 『반산정화』는 어떤 과정을 거쳐 편찬되었으며, 왕안석의 어떤 시들을 담고 있을까. 안평대군은 어떤 텍스트를 저본으로 왕안석의 시를 읽고 있었으며 어떠한 기준으로 시를 선정하였을까. 안평대군이 작성한 주해는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때 참조 준거가 된 것은 무엇일까. 본고는 이러한 문제들을 염두에 두면서 안평대군 편 『비해 당선반산정화』의 편찬 과정, 저본과 작품 선정 기준, 주해 방법에 대해 간략히 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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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신숙주(申叔舟)시세계에 있어서의 '윤리성(倫理性)'의 문제와 그 파장(波長)

저자 : 김창호 ( Kim Chang-ho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03-129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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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신숙주의 시에서 '윤리성'에 대한 負荷가 시세계의 형성에 어떻게 관여하고 있는 가를 해명하고자 한 것이다.
신숙주는 정변을 거치면서 양심의 가책, 곧 윤리성에 대한 부하를 가지게 된다. 이것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고립감으로 이어졌다. 그는 세상사를 一括하는 표현이나 넒은 의미 영역에 걸쳐있는 시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했다. 투식화한 이들 시어는 교제 상황에서 감정의 곡절이나 세세한 심리 표현을 의례적 차원에서 관리한다.
그는 '閑'을 지향했고 '達觀'의 위치를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을 뿐 아니라 醉興을 통한 윤리적 상흔의 망각마저 허락되지 않았다. 酬唱이나 贈答의 상황에서 명쾌하게 자신의 지향을 제시하거나 상대와의 정서적 합일로 나아가기 어려웠다. 公的역할의 우산 아래 상투적 표현과 모호한 시어의 구사, 자아 은폐의 경향으로 흐르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신숙주는 絶句의 마지막 부분에 상대와 함께 하는 장면을 클로즈업 하거나, 限定形의 어구를 통해 상대와의 관계를 특별한 것으로 격상시키기도 한다. 이것은 세계에 대한 자아의 왜소화에 따른 불안 심리가 굴절되어 나타난 형태이다. 그의 시에는 영웅적 삶에 대한 의지와 허무감이 동전의 앞뒷면처럼 공존한다. 시인은 허무감을 느끼지만 작품 맥락에서 이것은 곧바로 영웅적 다짐으로 전환한다. 이러한 구조는 윤리적 각도에서 자신을 점검할 여지를 적게 만든다. 허무감은 윤리적 성찰로 연결될 가능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허무감에서 영웅의식으로 리셋되던 궤도가 무너지는 순간, 윤리성의 문제는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로 다가올 수 있다. 영웅의식을 대체할 지향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자기 파탄이나 종교에의 귀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만년의 불교에 대한 관심과 성찰적 시의 창작은 이런 관점에서 설명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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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이이첨(李爾瞻)과 광해군대 한문학의 한 국면

저자 : 심규식 ( Sim Kyusik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31-165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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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祖反正으로 光海君정권의 인사들이 제거됨으로 인해, 약 10년간의 館閣文學은 한국한문학사의 공백기가 되었다. 이 시기 관각문학의 중심에는 文衡을 담당한 李爾瞻이 있었다. 1613년의 癸丑獄事로 禮曹判書에 오른 이이첨은 李白·杜甫에 대한 조선 전기 시학서를 복간하고 李杜의 시 암송을 進士試응시 자격으로 두었는데, 이는 당대 學唐風을 官學에 포섭하고자 한 시도로 보인다. 또, 윤리적 프로파간다를 위해 『東國新續三綱行實圖』와 『忠烈錄』을 편찬했다. 이이첨은 四六騈儷文의 창작에 있어서 平仄規式을 엄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그가 역적으로 사형당했음에도 그의 관각문 일부는 문체의 모범으로서 보존될 수 있었다. 이이첨은 科表양식을 정확히 적용시킨 謝恩表를 지었으며, 討逆敎書에는 簡嚴한 문체로서 정권의 위엄을 선언했다. 한편으로 서적의 序跋文에는 변려문과 같은 四六言의 對句로 이루어졌으나 그 변격의 평측을 활용한 독특한 문체를 사용했다. 이이첨과 광해군대 관각문학은 17세기 초 한국한문학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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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이계(耳溪) 홍량호(洪良浩)의 고문론(古文論) 연구(硏究)

저자 : 이향배 ( Lee Hyang-bae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67-190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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耳溪 洪良浩(1724-1802)는 영·정조시기에 활동한 소론계 대표문인이다. 어려서 저촌 심육에게 수학한 홍량호는 兩館大提學을 지낸 관각문인이지만 경세치용의 실학적 글쓰기를 통해 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는 평소에 박학을 추구하여 경학은 물론, 한자학, 지리학에 이르기까지 실사구시의 학문을 추구했다. 학문의 근본을 經術에 두고는 경술을 다시 體와 用으로 나누었다. 性理를 체로, 政事를 용으로 설명함과 동시에 체용이 원활하기 위해서는 역사와 典章에 대한 넓은 지식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그의 실학적 글쓰기 이면에는 확고한 고문이론이 자리하고 있다. 그동안 연구자들이 이를 문학론의 차원에서 검토해왔지만 본고는 고문론의 관점에서 다시 분석하였다. 홍량호가 단순한 산문작가가 아니라 고문을 추구한 고문가이기 때문이었다.
이치가 象에 붙은 것이 문이며 도의 영화라고 정의한 그는 폭넓은 의미로 문을 설명하였다. 聖人의 문장을 行道와 傳道두 종류로 나누고는 학문을 통해 조화를 형용하고 사물의 변화를 다하는 글쓰기를 주창하였다. 결국 문장이 천하의 공리라고 선언한 그는 깊은 학문을 통해 공적으로 천하에 이치를 밝히는 글을 추구했다.
또한 문을 經緯라고 정의한 그는 도와 기가 錯綜이 되어야 지극한 문장이라 보았다. 도와 기를 기준으로 역대 고문의 흐름을 진단했는데 도기가 착종된 전범이 육경이었다. 진한 당송의 글은 도기가 온전하지 못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경으로써 도를 중시하고 동시에 緯로써 기가 없다면 문이 될 수 없다면서 기의 배양을 중시했다. 기를 배양하는 방법이 바로 호연지기였다.
홍량호는 육경에 기준을 두고 선진 전한의 문장이 가장 근고하다고 보았다. 先秦 前漢 및 唐宋작가에 대해 학문을 기준으로 비평한 그는 사마천보다는 가의를 가장 높게 평가하였다. 가의가 서한 고문을 창도했다고 본 그는 『가자수언』을 편찬했으며 그의 글쓰기를 추종하였다. 서한시대 재주와 학문을 두루 갖추고 체용을 겸비한 유일한 학자로 가의를 꼽고는 서한시대 최고의 작가로 평가하였다.
이러한 홍량호의 고문론은 도학가의 문학이론과 진한고문가의 이론을 절충한 특징이 보인다. 이는 진한고문가와 당송고문가의 양대 흐름에서 벗어나 고문의 전범을 육경에 두고 경세치용의 실학적 글쓰기를 위한 새로운 고문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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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열수문황(冽水文簧)』과 정약용(丁若鏞)의 변려문 인식

저자 : 신윤수 ( Shin Yunsoo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91-214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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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冽水文簧』은 丁若鏞(1762~1836)이 아들들에게 자신의 변려문을 한데 모으게 하여 엮은 책이다. 그는 自序에서 젊은 시절 몰두했던 변려문에 대한 후회를 담아 이를 엮었다고 밝혔다. 정조 연간 문장가이자 비평가, 관료로서 활동한 정약용의 변려문 인식은 '古文'이 주류를 이루었던 시기에서 변려문이 어떤 위치를 가졌는지 살필 수 있는 자료다.
정약용의 '후회'는 단순하지 않다. 변려문 자체나 존재 가치 전부를 부정한 것은 아니며, 변려문은 사명 등 용도에 맞게 작성하여야 한다고 하였고, 자신의 변려문 몇 작품을 문집에 따로 수록하기도 하였다. 그의 반성적 회고는 변려문 전체에 대한 부정보다는 '實'을 추구하고자 했던 방향성 아래에서 이루어졌다 할 수 있다. 그는 결국 기교에 지나치게 공력을 요구하는 변려문, 그 중에서도 특히 科文을 반성한 것이다. 취실과 경세의 문장을 짓고자 했던 정약용은 『冽水文簧』을 통해 기예가 되어 버린 科文에 대한 일종의 반성문을 남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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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조선 후기 송두신문(送痘神文)의 창작 양상

저자 : 오보라 ( Oh Bo-ra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15-253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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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 후기에 송두신문이 지속적으로 창작된 현상에 주목하여, 송두신문의 등장 배경과 내용, 송두신문의 창작이 갖는 의미에 대해 살펴보았다.
조선 시대에 두창이 유행하여 많은 인명을 앗아가자, 민간에서는 두창을 섬기는 풍습이 만연했다. 이로 인해 이전에는 시문의 주된 제재가 되지 못했던 '두창'이 본격적으로 시문의 전면에 등장했는데, 이현석의 「聖痘歌」가 그 시발점이 되었다. 숙종이 재위 중에 두창에 걸렸다가 낫자, 이현석은 「성두가」를 지어 두창을 '聖痘'로 신격화하고 두창의 공능을 칭송했다. 이현석의 「성두가」는 이후 송두신문 계열 작품의 창작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조선 시대 유자들은 굿을 벌여 두신을 섬기는 풍속을 비판했지만, 두창에 대한 확실한 치료법이 없는 상황에서 두신의 존재를 마냥 부정할 수만도 없었다. 이러한 모순 속에서 나오게 된 문학적 양식이 송두신문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의 유자들은 송두신문을 통해 두신의 존재와 두신의 영험함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이들은 두신을 보는 관점에서는 차이를 보였으나, 공통적으로 두신의 존재와 공능을 인정하고 두신을 제대로 배송하는 방법은 무당굿이 아니라 시문을 지어 전송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즉 조선 시대 문인들은 두신의 존재는 인정하되 무당굿이 아닌 제문으로 전송함으로써, 두창에 대한 주술적 대응 방식을 활용하되 미신에 빠졌다는 비판은 면하려 했던 것이다. 송두신문은 두창이라는 공포의 질병을 마주한 문인들이 유가적 이상과 현실적인 대응 사이의 괴리를 좁히고자 한 노력의 산물이라 볼 수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창작된 송두신문은 祭神文의 일종으로서 서두부-전개부-종결부라는 3단계 구성을 취하고 있다. 이때 두창의 순조로운 진행이야말로 두신을 공경히 배송하는 핵심 근거인 만큼, 대부분의 송두신문에는 병증의 규칙적인 진행 과정이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한편, 송두신문은 작자의 삶에 대한 성찰을 표현하는 문학적 장치로 활용되기도 했다. 유희와 윤기는 송두신문을 변주하여, 인간의 운명을 주관한다고 여겨지는 '두신'을 소재로 삼아 인간 사회의 禍福과 窮達에 대한 성찰을 드러냈다.
현재의 관점에서 송두신문을 보면, 조선 시대 문인들이 두신에게 복을 비는 것은 비합리적인 행동으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송두신문의 창작은 조선 시대 문인들이 나름의 논리로 전염병의 유행을 설명하고, 그러한 해석을 토대로 두창의 공포를 극복하려고 한 노력의 일환이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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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조선후기 문인들의 시축제작 참여양상과 관계 맺기 - 조인영(趙寅永)의 '추흥창수(秋興唱酬)'를 중심으로 -

저자 : 신민섭 ( Shin Min-seob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55-287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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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후기 문인들의 시축제작 참여양상을 살펴보고 조인영의 '추흥창수'를 통해 당시 문인들이 어떠한 목적과 방식으로 시축을 제작하였고, 활용했으며, 관계 맺기를 시도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하는 목적에서 작성되었다. 詩軸간 雅趣의 경쟁은 조선후기 시회문화의 새로운 이슈가 되었다. 한편, 황화수창이 중단된 이후 詩는 국가적 관심의 대상에서 멀어진 이유로 문인들의 作詩수준은 저하되어, 비록 詩會를 열고 시축을 제작한다 하더라고 아취를 담보할 수 없었다. 이에 문인들은 그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강구하였는데, 그중 하나가 시회와 무관한 외부 인사들을 대상으로 벌어진 '끌어들이기'였다.
申緯(1769~1845)는 1833년 2~3월 사이에 『秋興唱酬卷』의 序文을 작성했다. 이 시축에는 趙萬永, 趙寅永, 李止淵, 李紀淵, 權敦仁, 趙秉鉉, 李復鉉등 7인이 杜甫의 「秋興」 8수의 韻字를 차운한 시가 수록되어 있었다. 조인영 그룹이 당시 서산에 머물고 있었던 신위에게 시축을 보낸 이유는 『추흥창수권』의 8번째 자리를 채우라는 의도였다. 시축이 제작된 '추흥창수'는 1832년 9월, 東岩에 위치한 조인영의 別墅에서, 杜甫의 「秋興」 8수의 운자를 차운한 시가 제작된 시회이다. 추흥창수를 통해 제작된 시축이 『秋興唱酬』로서 현재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유일본(이하 고려대본)이 소장되어 있다. 그런데 고려대본에는 조만영, 조인영, 이지연, 이기연, 권돈인, 조병현, 이복현, 趙秀三, 姜溍 등 9인의 詩가 수록되어 있다.
신위가 전달받은 시축과 고려대본의 차이점은 조수삼, 강진의 존재 여부다. 고려대본을 살펴보면 조수삼, 강진은 추흥창수 참여자들과 특정한 관계를 맺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위가 전달받은 시축에서 흔적 없이 사라졌다. 이는 시축이 완성된 1832년 10월 이후부터, 신위의 서문 작성 시기인 1833년 2~3월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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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기해년 통신사행과 한일 문사의 시론 및 시 비평

저자 : 이효원 ( Lee Hyo Won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89-319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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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말 임술사행에서 新井白石의 등장으로 촉발된 일본 한시에 대한 통신사의 관심은 18세기 초 소라이학파의 등장과 더불어 고조된다. 특히 기해년 사행의 필담창화집에는 양국 문사들이 이상으로 삼는 시론과 관련한 필담이 증가했다. 또 시선집 및 비평서에 대한 언급이나 통신사에게 자신의 시를 비평해줄 것을 청하고 이를 출판하는 등 시 비평에 대한 관심 역시 증대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문사들은 주로 당시와 명시를 존숭하고 송시를 배척하는 경향을 보이는 반면, 조선 문사들은 당시를 으뜸으로 치면서도 송시의 중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통신사가 명시를 그리 중요시 여기지 않은 데 비해, 일본에서는 소라이학파의 영향으로 명시를 한시 학습의 첩경으로 여기는 풍조가 확산되고 있었다. 기해년 사행의 필담과 시 비평에는 당시 변화하는 일본의 문풍이 잘 드러난다. 양국 문사들은 추구하는 시론와 관련해서 활발하게 필담을 나누었고, 통신사는 일본 문사의 시집에 평어를 쓰고 일본 문사가 이 평어를 읽고 다시 평어를 다는 등 양국 문사 사이에 활발한 시 비평이 이루어졌다. 본고에서는 한일 문사의 문학 교류의 양상을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검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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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상서(尙書)』 강의(講義)를 통해서 본 정조(正祖)의 정주성리학(程朱性理學)에 관한 인식과 해석 방식에 대하여

저자 : 이영준 ( Lee Young-june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21-359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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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弘齋全書』의 『尙書』 講義를 통해 程朱性理學에 관한 正祖의 인식 및 해석과 이해를 개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정조는 君師를 자임하여 文治를 바탕으로 국정을 운영하고자 하였으며, 그 일환으로 1778년에 규장각을 문화정책의 추진 기관으로 재구성하고 1781년 抄啓文臣制度를 신설하였다. 經史 講義는 이 초계문신을 재교육하는 과정에 진행된 것이며 이 조문과 조대를 수합한 것이 바로 「경사강의」이다. 『弘齋全書』에 수록된 이 「경사강의」는 정조의 條問과 초계문신 및 지방 유생들의 條對를 함께 수록하고 있다.
「경사강의」는 일종의 經典解釋學자료로서, 경학에 대한 정조의 관심과 학문적 성과, 그리고 강의에 참석한 학자들의 경전에 대한 이해 수준을 종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조는 梅賾本 『古文尙書』의 위작 문제, 人心과 道心의 이해, 道學의 관건으로서 欽과 敬의 이해 등 『상서』를 둘러싼 여러 문제에 대해 어떠한 조문을 내렸으며 어떠한 조대를 취하였을까. 또 강의를 통해 표명한 정조의 학문 방법론으로는 어떠한 것이 있었을까. 본고는 『상서』 강의를 통해 정조의 정주성리학에 대한 인식을 고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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